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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배.순종.변화(사무엘상 15:17-23)

by liefd 2024.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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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학교 유치부에 다니는 어린 소녀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이 소녀가 교회에 다녀오더니 체중계에 올라가서 자기 몸무게를 달아보는 것입니다. 엄마가 이상하게 여겨 너 어제도 몸무게를 달더니 오늘도 그러니?”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소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엄마, 얼마전에 우리 교회 선생님이 예배드릴 때에는 하나님께 마음을 다바쳐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 말씀대로 오늘 예배드릴 때 내 마음을 전부 다 하나님께 드렸거든요. 그래서 몸무게가 얼마나 줄었는지 궁금해서 몸무게를 달아보았는데요, 이상하게도 몸무게가 하나도 안 줄었어요.

 

다윗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배에 성공하였습니다. 결국 그의 생애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을 드렸습니다.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그의 생애의 최고의 목적이었습니다. 유대인의 표시가 별인데 그것은 다윗의 왕국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을 나타냅니다.

 

예배는 자신의 유익을 위한 방편이 아닙니다.

 

반면에 사울은 예배에 실패했기 때문에 그의 생애가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사무엘상 1312절에 보면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오자 다급한 나머지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오지 않지, 백성들은 흩어지지 너무 당황하여 절차를 무시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울은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예배를 자신의 유익을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예배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린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울은 백성들이 피채 소와 양을 먹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무엘상 1435절에 보면 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단이었더라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워주셨지만 사울은 예배를 드리는 일에 소홀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다고 했지만 백성들의 죄로 인해 화를 막아보려는 방편에 불과했습니다. 여전히 그는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그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사무엘상 151절에 보면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그가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뿐이지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이라도 제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 군사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보장해 줄 테니 그들을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이 이번 시험에 패스하였을까요? 이번에도 그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그를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세우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문제는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무엘상 1513절에보면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나름대로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고 했습니다. 20절에도 보면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왔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여기까지는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순종은 선택 사항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21절에도 보면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어떻게 보면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가장 좋은 양과 소를 남겨 두었다는 것이 기특하지 않습니까? 구태여 아깝게 가장 좋은 양과 소를 없애버린 것이 낭비가 아닙니까? 더구나 오늘날의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철저한 멸절은 비도덕적이고 야만적인 행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순종은 결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자신의 이익에 관계된 것은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 판단이 다를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전쟁은 자신들만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섬기는 신의 전쟁이었습니다. 따라서 전쟁에 패한 자들은 승전한 족속의 종교를 포함한 문화를 완전히 수용하고 동화되든지 아니면 완전히 진멸되어 재기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였습니다.

 

사울과 백성들은 그 짐승들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후에 그 고기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바로 이와같은 이기적인 계산에 따라 짐승을 진멸치 않았던 것이다. 사울은 제사드리는 것조차도 자신의 이해관계와 언제나 맞물려서 생각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자기 자신을 부각시키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12절에 보면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사울은 승리에 기쁨에 도취된 나머지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는데 언제나 신경을 썼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려드려야 한다는 의식이 부족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통쾌한 한판 승부를 마친 후에 여인들의 노래에 그의 심기가 불편했습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하나님께서 결정적인 순간에 위기를 극복하게 해주셨다는 데 대해 감사하기 보다는 불붙는 질투심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본문 2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사울은 스스로 하나님께 순종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행위는 짐승을 잡아 피를 뿌리고 그 고기를 제단 위에서 태우는 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러한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 헌신하고 순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만 좀처럼 우리의 삶이 변화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기적을 체험하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태도가 전혀 바뀌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성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어떤 분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예배를 통한 영적 경험은 각 개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교회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교회가 예배를 통해 영적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개인에게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할 뿐입니다. 그러나 예배의 성공은 각 개인에게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각자가 예배가 무엇인지, 왜 예배를 드리는지 잘 알아야 하고, 예배가 무엇인지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 23절에 보면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고 했습니다. “사술이란 점을 치는 행위를 말하는데 성경에서 절대 금지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거역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사술의 죄와 같습니다. “완고한 것은 성격의 탓으로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집을 주장하는 것은 우상숭배와 같은 무서운 죄악입니다. 본문 23절에 보면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말로 하나님을 철처하게 순종하는 삶을 살겠다는 말과 일맥상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고 내 방식대로 삶을 꾸려가는 것이 불순종의 죄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불순종하는 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에베소서 22절에 보면 "곧 지금 불순종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불순종의 영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공중의 권세잡은 자들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사단의 세력의 실체는 바로 불순종입니다. 인류 최초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넘어뜨렸던 것은 다른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사실 불순종하는 것이 순종하는 것보다 언제나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미적미적거리며 뒤늦게 순종하는 것은 불순종이며,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에 대하여 투덜거리거나 불평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도 불순종입니다.

 

순종하기만 하면 변화가 나타납니다.

 

우리 교회의 부흥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됩니다. 또한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변화가 나타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세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그 날이 가까워 옴을 볼 수록 더욱 그리하자.

 

이제 우리는 수요기도회에 참석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를 원합니다. 적어도 장로님, 피택안수집사님, 시무권사님, 전도회장, 교사들, 찬양대원들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수요기도회에 다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출장을 가거나 바쁜 일이 있어서 간혹 한번씩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예 1년에 한번도 참석조차 안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중병에 걸려서 그렇습니다.

 

사실 저는 지난 주 수요 기도회에 저는 많은 성도들이 참석해서 하나님께 영광돌려드릴 것을 기대했습니다. 다같이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일원동 지역의 교회를 탐빙하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이 수요기도회에 잘 모이는데 교회였습니다.

 

이제 우리 예람교회는 예배는 회복하는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금요기도회가 없어서 다른 교회에 가서 은혜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부흥하는 교회들을 이번에 가보니 금요기도회에도, 저녁 10, 11, 12시에 모이는데도 자리가 꽉 찬 모습을 보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열심히 모이는 교회가 부흥합니다.

 

사랑하는 예람의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진정으로 부흥하기를 원하십니까? 이제 말씀에 도전을 주실 때 마다 순종하고 변화되기를 소원합니다. 과연 우리 교회는 비젼이 있는 교회입니까? 분명히 우리 교회는 비젼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비젼이 없는 교회입니다. 순종하기만 하면 비젼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으면 비젼이 없는 교회가 되고 맙니다.

 

예배에 성공해야 인생에 성공합니다. 이제 우리는 말씀에 도전을 받을 때마다 순종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큐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헤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10월 첫 주일부터 구역 나눔방을 통하여 소그룹운동이 활성화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는 두 날개를 가지고 상승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의 날개인 예배가 살아야 합니다. 다른 날개인 소그룹이 살아야 합니다.

 

신명기 281-2절에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미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후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즉시, 기쁘게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고 우리의 삶이 반드시 변화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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