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저의 시선을 사로잡는 책 한 권이 있었습니다. 「일 잘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가? 」 직장에서 회의를 열고 문제 해결의 3단계를 제시합니다. WHERE=문제가 어디에 있는가? WHY=그 원인은 무엇인가? HOW=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 원인이 무엇인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제 해결의 3단계가 많은 도전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사회적으로 수많은 문제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더구나 신앙인들은 총체적인 어려운 문제 앞에서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하지, 왜 이렇지? 불안해하다가 문제가 점점 더 꼬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각지 않게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지금 손을 대고 계신다는 것이 깨달아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십니다. 요엘서 1장 1절입니다.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요엘이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엘 선지자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가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는 나에게 필요한 말씀을 한 번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적으로 주십니다. 욥기 33장 14절입니다.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 그래도 알아차리지 못하면, 꿈이나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사건을 통해서 교훈하십니다.
하나님께 징계인지,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인지 잘못해서 생긴 일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가 불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때리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우에도 우리가 돌이키지 아니하면 계속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되고 치명적인 위기를 겪게 됩니다. 하나님의 징계의 강도가 점점 높아집니다(레 26:21-24).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서도 고집을 부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 가볍게 여기거나 낙심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요엘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일어나느냐?고 반문합니다. 본문 2절입니다.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다 일어날까요?
지금까지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이 있었는가? 도대체 그 일이란 어떤 일입니까? 본문 4절입니다.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메뚜기, 팓종이, 늣, 황충이란 애벌레로부터 메뚜기가 되어 까지 성장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팔레스틴에 날아오는 메뚜기는 갈색이며 손가락 크기만 하고 양턱에 톱날 같은 이빨이 있어서 풀잎은 말할 것도 없고 식물의 줄기와 뿌리까지 송두리째 긁어먹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메뚜기 재앙이 남 유대 땅 전역을 덮쳤습니다.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껍질이 하얗게 벗겨지고 채소는 뿌리채로 짤렸습니다. 지면에 푸른 빛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잎도 없고 줄기도 없고 뿌리도 없습니다. 씨를 말린 것입니다.
이러한 비참한 광경을 목격한 늙은이들에게 이런 일을 본적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또한 물어봅니다. 너희는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는가? 부모는 자녀에게 그 일에 대해 말하라는 것입니다.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네는 후세에 말하라는 것입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반드시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도 전해야 하지만 매를 맞았던 때도 전해야 합니다.
대개 힘든 일은 부모가 자녀에게 말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왜 하나님께서는 요엘 선지자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는 재앙을 보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징계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말씀으로 깨어 있어야 하고 말씀을 주실 때 즉시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징계를 잘 알지 못하는 세대들에게 그것을 가르치고 깨닫게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하십니까?
이러한 재앙이 갑자기 나에게 일어난 원인이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동안 단 포도주를 마실만큼 평안하게 풍족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단 포도주를 마실 수 없을만큼 살아가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앞으로 무시무시한 재앙이 일어날 것을 예고합니다. 남 유다의 노인들도 지금까지 이런 일을 겪어 본 적이 없는 치명적인 재앙입니다. 다른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도 들어본 적이 없는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안타까운 일은 왜 이러한 재앙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도대체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심각한 결과가 초래할 것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6-7절입니다. 다른 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수가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사자의 이빨같고 암사자의 어금니와 같이 무섭고 강한 이빨이라서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매를 맞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지 모릅니다. 심지어 젊은이들은 하나님께서 계속 회개하도록 부르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거역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눈이 멀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어떤 놀라운 사건을 당하면 처음에는 신경을 쓰다가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재앙을 당하게 된 원인이 기록된 구절이 바로 요엘서 1장 15절입니다.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멸망의 날이 전능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엘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각한 재앙을 내리실 때에는 한 가지 패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이나 세상을 심판하실 때 공통된 패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기다리고 참으셨다가 심판하십니다. 인간의 죄가 세상에 관영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노아 홍수의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처럼 사람들이 영적인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육체가 되었을 때 총체적으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데드라인을 정해 놓으시고 기다리다가 한꺼번에 심판하십니다. 그 심판의 강도가 점점 강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멸망의 패턴도 거의 비슷합니다. 그들이 언약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멀리한다고 해서 당장 무슨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래도 괜찮은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문제의 원인을 지적해 주고, 죄를 지적해 주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실 그때가 그래도 좋은 기회였다는 것을 우리는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이런 심각한 재앙이 나에게 왜 일어났는지 알 수 없을 때,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고 도대체 그 원인조차도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러한 상황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요엘서 2장 12-13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그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하나님께서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주시는 유일한 해결책은 회개를 촉구하는 일입니다.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기도를 해도 회개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고 찬양을 드려도 생명이 없을 때가 최대의 위기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멀리했던 증거입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바라보고 우리는 울어야 합니다(5-13절). 부르짖어야 합니다(1:14-20).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요엘 선지자를 보내서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뉘우치고 통회하고 거룩한 금식일을 선포하고 모든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은혜를 베푸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실 것이다. 그런 말씀을 하고 있는 책이 요엘서입니다. 요엘을 통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중징계를 받을 때 인간이 취할 자세는 진지하게 회개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체념하거나 무감각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1장 4-5절입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파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를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느니라.”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누구의 간섭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간섭을 받아 살아가는 것조차도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무엘하 24장 14절에 보면 다윗이 인구 조사의 범죄를 지을 때 갓 선지자가 나타나서 어떤 하나님의 징계를 받겠느냐고 물었을 때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빠지기를 원합니다.
다윗은 매를 맞을 때에도 하나님의 손에 빠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는 그냥 넘어갈 일도 성도들에게는 때리십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징계 중에도 은혜를 더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한쪽으로 몰아가신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강권적으로 엮어가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힘들기는 하지만 우리의 인생에 최고로 행복한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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