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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울어라 부르짖으라(요엘 1:8-20),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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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도 이 세상에 살기 때문에 사회적인 전반적인 상황에서 일어나는 문제들로 인해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떤 문제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어서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상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과이 관계를 회복해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것 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맺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요엘서에서 강조되는 것은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일어나느냐? 하는 것입니다(1:2). 아마도 주전 6세기경 이스라엘 전역에 메뚜기 재앙으로 인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 피해가 심각했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이 재앙이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밝힙니다.

 

당시에 하나님이 개입한 사건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호와의 날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엘 선지자는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는 자기 백성들에게 "울어라 부르짖으라"고 촉구합니다. 경제적 파탄, 정치적인 억압, 전반적인 좌절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매일 드려지는 제사가 그들에게 매우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메뚜기 재앙으로 인해 성전에서 드려야 할 재물들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존재 자체를 흔들만큼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재앙이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이거나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로 발생한 것입니다(1:15).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요엘 선지자를 통해 제사장들이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고 합니다. 금식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슬퍼하며 하나님을 갈망하며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 가운데 절망에 빠져 우울한 얼굴을 하지 말고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께 울부짖으라고 권면합니다.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으라고 합니다.

 

먼저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어라고 권면합니다(5-7절).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자들아 깨어 일어나 흐느껴 울라고 합니다. 어떻게 울어야 하는가 하면 처녀가 약혼한 남자가 갑자기 죽어버리는 경우 정혼한 처녀는 결혼도 하지 못하고 과부 신세가 되어서 오열을 삼키고 통곡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포도주는 하나님께 주시는 축복의 상징입니다. 이제 더 이상 포도주를 마실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포도주가 끊기게 된 이유는 다른 민족이 이스라엘을 침략했기 때문입니다. 강대국이 이스라엘에 위협을 가해왔기 때문입니다.

 

자기 백성들이 곤경에 처하게 될 때 하나님의 슬픔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본문 7절에 보면 이방 나라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 나무를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고 말씀하십니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가 하얗게 벗겨졌다는 것은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변할 정도로 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농부들아 울라고 합니다(9-12)

 

농부들이 밭의 소산이 다 없어진 것을 바라보며 부끄러워하라고 합니다. 포도원을 가꾸는 자들이 열매가 없는 것을 보고 울어라. 포도나무가 시들고 무화과 나무가 마르고 석류나무와 사과나무와 밭의 모든 나무가 시들어버렸습니다. 농부는 이 황폐한 논밭을 바라보며 실망하며 포도원 지기는 통곡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 때문에 웁니까? 분해서 웁니까? 회개의 눈물입니까? 이러한 비참한 상황으로 사람의 즐거움이 다 말랐습니다.

 

제사장들아 슬피 울지어다(13-20절)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 첫 열매를 제일 먼저 여호와께 드리고 소득의 십일조를 냅니다. 제사장들은 그것으로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고 나은 음식은 먹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가 끊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이 언약 관계가 깨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먹을 것이 끊어지고, 씨가 흙덩이 아래에서 썩어졌다는 것은 씨가 땅밑에서부터 완전히 말라서 식물이 더 이상 자랄 수 없는 심각한 기근 상태를 말합니다. 곡식이 시들었고, 창고는 비었고, 곡간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의 전에서는 더 이상 기쁨과 즐거움이 말라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가축이 울부짖고, 소때가 소란하고 양떼도 피곤해하니 이는 꼴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불이 목장의 풀을 사르고, 불꽃이 들의 나무를 다 태웠기 때문에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립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자연까지도 고통당하고 멸망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역에 가뭄이 들게 함으로 타들어 갑니다. 메뚜기 재앙이 지난 간 후에 심각한 가뭄이 찾아오고 이어서 들불이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립니다. 이렇게 당하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부르짖지 않습니다(26:21-23).

 

요엘 선지자는 노인들에게, 젊은 이들에게, 농부들에게, 제사장들에게 그들이 악을 버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을 호소합니다. 하지만 부르짖어야 할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요엘 선지자가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들이 더 이상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르고 두려워할 줄도 모르고 영적 불감증에 걸려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헐떡거리는 들짐승들처럼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부르짖어야 합니다. 교회가 이 민족의 희망이 될 것인가? 아니면 국민들에게 버림을 받고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존재가 될 것인가?

 

과연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눈물이 어디에 있습니까? 기쁨이 어디에 있습니까? 회개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없다고 부르짖지 말고 제물이 들어오지 않아 제사가 중단되었다고 부르짖지 말고, 나에게 은혜가 사라지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에 대해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젠부터인가 눈에 보이는 풍요 앞에 자신들이 흉악한 죄성을 잊고 교만해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겸손을 회복해야 합니다. 누구 때문이라고 원망하지만 사실은 우리의 교만이 우리를 파고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부여 의지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가리이까? 신앙의 제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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