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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이 보이느냐?(마가복음 8장 23절),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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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백내장으로 인해 보지 못한 아이들을 수술을 해서 눈을 뜨게 하면 제일 먼저 보는 것은 단지 빛과 색깔의 뭉치가 빙빙 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물체로 보이지 않고 그냥 추상화처럼 빛과 색깔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과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우리는 우리들의 생각으로 물체를 봅니다.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그렇다면 좋은 경험과 좋은 생각을 많이 한 사람이 좋은 시력의 소유자가 된다는 결론이 내려지게 됩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사람은 아름다운 경험을 많이 한 사람들입니다. 아름다운 생각을 많이 한 사람들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경을 쓰고 사물을 바라봅니다. 때로는 선입견이라는 안경을 쓰고 인생을 힘들게 살아갑니다. 사람은 어디에 링크를 걸어 놓고 사는 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당신은 누구에게 링크를 걸러놓고 살아가십니까? 당신의 인생모드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인생 컨텐츠는 무엇입니까? 당신은 주로 어떤 것을 접속하며 살아가십니까?

 

오늘 본문에는 벳새다의 맹인이 눈을 뜨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814-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떡 일곱 개와 생선 두 마리로 남자들만 사천 명을 먹이시고 일곱 광주리를 남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남은 떡 일곱 광주리를 배에 가져온다는 것을 깜빡 잊었습니다. 제자들이 그 떡을 챙기지 못해 어떡하지? 하며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16).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과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육적, 세속적인 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제자들의 귀에는 누룩만 귀에 들어오고 두고 온 떡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으로 착각하였습니다. 한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거의 다 그렇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떡 가지고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너희가 아직도 알지 못하느냐? 깨닫지 못하느냐? 그렇게 마음이 둔하느냐? 예수님의 제자들도 육적인 양식에 연연하다가 영적 교훈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신앙은 생활 가운데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교훈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기 위해서 급급한 사람은 영적인 교훈을 깨닫지 못합니다. 문제 그 자체를 상처로 생각하기 때문에 기억하는 것 자체를 끔찍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 북동쪽에 위치한 벳새다에 도착했습니다. 벳세다는 마가복음 645절에 나오는 갈리리 호수 서편에 가버나움에 가까운 벳새다와 다른 곳입니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나왔습니다. 자신들보다 주위 사람들이 예수님께 그들을 적극적으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때로는 스스로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위의 사람들이 적극성을 띠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 옆에는 항상 돌봐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연약한 자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그들은 이 시각장애인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안수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환자에게는 그 누구도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이 손대시기를 간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시각장애인의 손을 붙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을 많은 사람의 구경거리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에게 수치와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예수님의 지극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시각장애인의 손을 붙잡고 사람들이 왕래하지 않는 마을 밖으로 가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단순히 병을 고쳐주기보다는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환자의 눈에 침을 뱉으시고 그의 눈에 안수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은 그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는 모습입니다. 공감한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의 공화국이란 책에 보면 이상적인 의사는 환자의 고통을 아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이 맹인에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렇게 물으시는 이유는 맹인으로 하여금 눈이 밝아지는 것을 느끼게 함으로써 예수님에 대한 신뢰를 갖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보입니다. 나무 같은 것이 걸어다니는 것이 보입니다. 당시 팔레스틴 여인네들은 들의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면, 그것을 베어 긴 다발을 만들어 어깨나 머리에 얹고 걸어서 집으로 그져왔다고 합니다. 그것을 햇볕에 말린 후 짐승들의 먹이나 땔감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풍습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사람이 보이기는 하는데 흐릿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시각장애인이 사람과 나무를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을 볼 때 후천적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삶의 의미도 모른채 우리는 분노와 좌절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혹시 우리는 영적 시각 장애인이 아닌가 점검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기억조차 하지 못한 상태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당장 해결해 주시지 않는 것으로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환자의 눈에 다시 안수하십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 다시 안수하신 것이 아닙니다. 본문 25절입니다.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그제서야 모든 것을 밝히 보게 됩니다. 밝히 본다는 말은 이 시각장애인의 완전한 치유와 회복이 일어났음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두 번씩이나 안수를 하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육체의 눈과 더불어 영적인 눈이 동시에 열리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번에 문제가 해결되는 방법만 택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눈높이에 맞추어 주십니다. 열등의식과 부정적인 감정이 걷히게 될 때에 사물을 밝히 보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다고 해도 하나님을 말씀을 제대로 믿지 않는 사람은 신앙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의심과 회의 안개가 걷혀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한 번에 낫지 않는다면 한번 더 기도하면 됩니다. 사람들이 부족하면 격려해 주고 또 다시 시도하고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되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는 과정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에게는 지속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 맹인이 밝히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한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과정이 결과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가장 먼저 찾아가라고 하십니다. 기쁜 소식이 있으면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야 합니다. 먼저 가족들에게 가서 자기로 말미암아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을 부모님한테 먼저 눈뜬 사실을 알리라는 것입니다. 마을로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벳새다는 주님의 능력을 많이 보았지만 주님을 믿지 않았던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120-22절입니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때에 책망하시되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있을 진저 벳세다여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벳새다라고 하는 지역에서 많은 실망을 하셨지만 그 가운데서도 구원받고 치유 받아야 할 영혼을 찾으셨던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모든 것이 어둡게 보입니까? 내 마음의 눈이 어둡지 않은가 점검해야 합니다.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모든 것이 어둡게 보입니다. 혹시 지난 한 해동안 누구 때문에 내 마음이 좁아졌다고 생각하지 있다면 그것까지 내려놓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은 스스로 내 마음이 좁게 만들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하고는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면 먼저 내가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냅시다. 그러면 내 마음이 열립니다.

 

고린도후서 611-13절입니다.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좀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하나님을 상대로 하는 사람은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그래야 솔로몬처럼 하나님의 지혜가 부어집니다.

 

시각 장애인의 눈을 뜨게 되는 사건은 시기적으로 예수님께서 이사야 2918절에 예언한 대로 메시야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믿음의 눈이 열리는 사건을 예고합니다. 한번 했는데 상태가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말고 또 한 번 더 기도해야 합니다. 낫게 해주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병 때문에 더 많이 기도하고 하나님을 찾으면 됩니다. 문제를 당장 해결해 주시지 않으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위한 과정임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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