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들 중에 두 사람을 예수님께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실 그 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세례 요한도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한 의심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세례 요한이 이렇게 의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이 곧 메시야의 앞길을 예비하는 선지자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 안티파스가 동생의 아내를 빼앗는 일에 대해 죄를 지적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정말 예수님이 그분이라면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고 바로 잡아야 하는데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축복하는 일에는 적극적이시지만 심판하시는 일에는 소극적인 이유가 궁금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다른 유대인들처럼 정복자이시며 왕이신 메시야를 기대하였습니다. 더구나 세례 요한은 그분은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하기까지 했는데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섭섭했습니다.
신앙 생활을 할 때 주님께서 내게 무엇을 해주셨는가에 신경을 쓰기 시작할 때에 혼란이 생기고 섭섭한 마음이 들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해주셨는가에 대해 한 번도 흔들려 본적이 없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 때문에 너무 자주 흔들리고 변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해주시를 요구하며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분노합니다. 성공과 출세를 시켜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더 많은 돈을 주시 않으신다고 분노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돌봐주지 않는다고 원망합니다.
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들을 보낸 또 다른 이유는 자기가 언젠가 죽은 후에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확실한 신앙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마침 그때에 예수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들을 보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두 제자들에게 너희가 본 것을 너희 선생님에게 이렇게 전하라.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변환자가 깨끗함을 얻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된다고 하라. 이 여섯 가지 표적들은 모두 메시야임을 증거하는 이적으로 유대인들이 구하는 것들이었습니다(사 26:18-19; 35:5,6;61:1).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닌을 오해하여 거절하는 사람은 화가 있습니다. 예수를 생명의 주로 바로 알고 받아들이면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보고서 그를 메시야로 믿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가 떠난 후에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가질 것을 우려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 나타나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할 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세례 요한이 어떤 사람인지, 왜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세례 요한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약하고 흔들리는 사람이 아님을 강조하십니다. 당시에 자신들의 일신의 부귀와 안락을 위해 마치 바람 앞에 선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며 신앙 양심마저 팔아 넘겨버리는 배신자들과 매국노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강직하게 헤롯의 악행을 지적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는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사람은 왕궁에 있느니라. 당시 헤롯의 왕궁에는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 자들이 왕의 총애를 받으며 삶을 즐기고 있었습니다.이와 대조적으로 세례 요한은 거칠고 값싼 약대 털옷을 입었습니다. 만일 세례 요한이 권력자들에게 아부하고 그들의 귀를 즐겁고 하는 설교를 했다면 근사한 옷과 음식을 누리며 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과감하게 책망하는 용기를 가졌기 때문에 곤욕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도다. 세례 요한은 그 어떤 선지자 보다 탁월한 선지자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메시야의 오심을 증거하는 자이며 회개의 세례를 통해 메시야의 첩경을 평탄하게 한 선구자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라기 3장 1절에 예언된 말씀이 세례 요한과 자신에게 성취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그가 위대한 선지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세례 요한이 크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신약에 속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밝히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례 요한 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목격했기 때문에 세례 요한보다 더 큰 특권과 지위를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이심을 인정했습니다. 반면에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은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살려고 하다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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