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닌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인의 인생이 항상 잔잔한 물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소생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와 인도하심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때때로 영혼의 고갈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갈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캄캄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돌보심이 끊어진 것 같은 공포를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내가 깊은 골짜기 속에서 걸어간다 할지라도 너는 재앙을 겁내지 아니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당신이 나와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기와 지팡이 그것들이 나에게는 위로가 됩니다.
시인은 지금 부요하고 여유 있는 환경이나 환경 때문에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사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폭풍의 언덕을 지나면서도 평안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오직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신앙의 확신이 있는데 무슨 이유 때문에 물안해하고 초조해 하겠습니까?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주셨던 목표보다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에 더 집착하기 때문에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것이 형통한 길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협착한 길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약속의 땅 가나안 천국에 이미 들어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그들 앞에 펼쳐진 곳은 어디입니까?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아니라 전쟁과 기근과 사망과 고난과 결핍이 기다리고 있는 광야였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을 단지 축복과 평안으로만 인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장차 나타날 영광스러운 유업을 소망합니다. 바로 그 소망 때문에 고난도 견디고 시련을 이기며 하나님이 주신 목표를 찾아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은 이렇게 우리의 인생을 바꿀 뿐 아니라 우리 인생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때때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가운데 두시고, 거기를 지나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확인시켜 주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소중함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게 하십니다. 우리는 오히려 시련의 때에 하나님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느끼고 그분만이 우리의 선한 목자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간순간 숱한 시련과 난관에 부딪히며 고난과 역경의 길을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것과 같은 위기 때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이 이스라엘의 목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주셨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을 때, 홍해바다를 건널 때, 요단강을 건널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난 속에서 하나님을 야무지게 신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은혜를 받는다고 해서 내가 변한 것처럼 주위의 환경과 사람도 그렇게 간단하게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다는 것이 뭐가 다릅니까? 이전에 에수 믿기 전에는 사망의 골짜기에 있을 때 오직 두려움과 고통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슴 속에 수많은 상처를 쓸어안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그 속에서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가 믿는 주님이 누구시며, 그분과의 관계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지를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때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들어갈 때에도 우리는 언제나 분명한 목자의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인도하십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확인하시고, 혹은 돌이키게 하시 혹은 감격하게 하시고 우리로 주님없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확인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시인은 말합니다. “ 그 노염은 잠깐이나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30:5).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놓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시 속에서 이렇게 호소하였습니다.
인생의 위기 앞에서 시인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그만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하나님께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보여 줍니다.
사람이 겪는 괴로움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타락한 정서에서 오는 외로윰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좌절과 파괴로 몰아갑니다. 자신이 한없이 가련하게 생각되고, 그리하여 더 이상 무엇을 해볼 수 없는 외로움에 사무치게 됩니다.
또 하나의 외로움은 거룩한 외로움입니다. 신령한 세계에서 경험되는 외로움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더욱 거룩한 신앙의 세계를 갈망하게 되고 보다 더 완전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추구하게 됩니다. 이런 종류의 정서는 더욱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로 나아갑니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우리는 고난과 위기 속에서 홀로 시련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늘 우리 곁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 없이 살아온 때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한 순간도 우리를 홀로 두신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자신의 욕심과 유혹에 이끌려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 때 조차도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를 추적하셨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목자가 사용하는 지팡이는 길이가 매우 긴 것으로 바로 세우면 사람의 키를 넘는 길이의 지팡이었습니다. 목자들은 이 지팡이를 양떼를 인도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근시안인 뿐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행하기를 좋아하는 성품 때문에 양들은 종종 대열을 이탈하여 다른 곳으로 가곤합니다. 그래서 목자는 지팡이로 양의 목에 걸고 당깁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불순종에도 불구f하고 그와 함께 하셨고 그를 인도해 오셨습니다.
사망의 골짜기에서 판단이 흐려지고 분별력이 흐려집니다. 따라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더욱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가장 일반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말씀을 통한 인도입니다. (시119:105-107)
목자의 막대기는 맹수들의 공격으로부터 양떼를 지키는 도구입니다(겔34:15-16).
시인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 자신의 인생에 진정한 위로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상처 자체를 주목하기 보다는 목자 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체험하고 사는 일이 진정한 치유에 이르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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