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스승의 주일입니다. 우리는 참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한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활약하던 시대는 대단히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관계를 통하여 그 시대를 빛냈던 사람들입니다. 정말 이 시대에 사랑하는 우리의 아들과 딸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엘리사는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22장 51-53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유다 왕 여호사밧 제 십칠년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의 길과 그의 어머니의 길과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바알을 섬겨 그에게 예배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기를 그의 아버지의 온갖 행위같이 하였더라”.
당시에 이스라엘의 왕은 아하시야입니다. 아하시야 왕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더구나 그의 아버지의 길로 그의 어머니의 길로 이스라엘을 범죄하게 한 부모의 좋지 않은 영향을 그대로 본받았습니다. 대개 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 자녀가 아버지의 길로 행했다는 표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하시야의 경우에는 그의 어머니의 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아하시야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누구입니까? 바로 아합과 이세벨입니다(왕하 22:51).
한 마디로 아하시야 왕은 가정에서 부모의 좋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자라났습니다. 아하시야 왕은 부모와 영향력을 그대로 받아 바알을 섬겨 숭배하였습니다. 이 세상에는 물질이 최고이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성공하고 출세하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나봇의 포도원까지 빼앗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탐욕에 가득찬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자라났습니다. 우리 사회에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물질을 섬기고 숭배하는 것이 만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하시야 왕은 영적으로 너무나 어두운 왕이었습니다. 자신이 다락에서 떨어져서 병들었을 때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파리의 주)에게 찾아가서 병이 낫겠느냐고 물었습니다(왕하 1:2). 아마 아하시야 왕은 하나님이 자기 병을 낫게 하실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거나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은 아하시야 왕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를 잘 나타내주는 사건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서 아하시야에게 임할 징계를 선포하셨습니다.
아하시야 왕이 오십부장과 그 군사를 보내어 엘리야에게 내려오라고 하였지만 두 번씩이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들을 태웠습니다(왕하 2:10,12). 불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이는 경건하지 않은 인간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로마서 1장 18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베드로후서 3장 7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엘리야는 분명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함께 해주시는 증거를 보여주었습니다. 3년 동안 비가 오지 않겠다고 하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왕상 17:1). 3년 만에 비가 온다고 하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왕상 18:1). 사렙다 과부의 통에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에 기름이 다하지 아니하리라고 했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왕상 17:14-16). 엘리야의 간곡한 기도로 과부의 아들이 다시 살아났습니다(왕상 17:24).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도 제단에 불이 떨어졌습니다(왕상 19:38).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셨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길갈의 선지 학교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벧엘(2절)과 여리고(5절)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기 위한 여행을 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엘리야의 승천 소식에 대해 선지자의 제자들의 반응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3절에 보면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은 엘리야의 승천의 소식을 알고 있습니다. “벧엘에 있는 선지자들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 5절에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의 반응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생들 역시 그저 스승의 승천 소식에 관해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선지자의 제자들의 반응은 스승 엘리야의 승천 소식에 관해 지식적으로 알고 있을 뿐 자산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스승의 승천 소식에 관해 그대로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승이 어느 산이나 골짜기에 떨어졌을까? 찾아나셨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참된 관계는 단순한 지식의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엘리야의 승천 소식에 관해 어떠한 반응을 나타냈습니까? 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살아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그의 스승 엘리야에게 대답했습니다. 2절과 5절에서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너는 여기 머물라”고 했을 때 나는 당신을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엘리사는 자신의 행동으로 스승 엘리야가 갖고 있는 그 위대한 영적 유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지식은 얼마든지 책이나 매스콤, 인터넷을 통해서 얻을 수 있지만 스승의 영적인 노하우는 함께 시간을 가져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겉옷을 취하여 요단강의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야와 엘리사는 육지 위로 건넜습니다. 그 시간에 다른 50명의 선지자의 제자들은 두 사람이 요단강을 건너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7절). 요단강을 다 건넌 후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내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가 어떻게 할 지를 구하라”(9절). 엘리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엘리야가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 도다 그러나 나는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
엘리사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단순한 어떤 지식으로 해결되지 않고 영감의 갑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평소에 엘리야의 영감이 넘치는 사역에 대해 언제나 부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사는 엘리야의 승천을 목격함으로써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하고 견고한 믿음을 얻기 위해 끝까지 따라가고자 했습니다.
드디어 엘리야는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는 광경을 엘리사는 지켜보았습니다. 그 순간 엘리사는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라고 불렀습니다. 엘리사에게 있어서 엘리야는 아버지와 같은 교사였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15절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오늘날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교사 역시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필요합니다. 나라를 가장 사랑하는 교사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또한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을 가지고 요단강의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나이까?라고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요단강 물이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넜습니다. 영감은 단순한 공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감은 단순한 어떤 구호을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영감의 갑절이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영감은 함께 생활하는 과정을 통해서 사람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보면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엘리사의 위에 머물렀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엘리사의 영감은 대단하였습니다. 열왕기하 2장 19-21절에 보면 여리고성의 좋지 않은 물을 고쳤습니다. 열왕기하 3장에는 모압과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엘리사가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였더니 승리하였습니다. 열왕기하 4장 1-7절에서 과부의 기름병이 채워지는 사건, 열왕기하 4장 8-37절에 보면 수넴여인에게 자녀가 태어난 사건, 그 자녀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사건, 열왕기하 4장 38-44절에 독을 해소하는 사건, 열왕기하 5장에 나아만 장군의 문등병 고치는 사건, 열왕기하 6장 1-7절에 물에 빠지 도끼 자루를 떠올리는 사건, 열왕기하 8:1-19에 아람 군대를 눈이 멀게 해서 물리치는 사건 등, 실로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감을 갑절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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