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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무언가를 배우는가에 많은 시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것을 배운 것에 비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언가를 해야 하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가정에서 해야 할 일, 직장에서 해야 할 일, 내가 속한 단체와 기관에서 해야 할 일들이 이외로 많습니다.
그러다가 활동하기 어려운 나이가 되면 또 다른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합니다. 젊은 집사님들은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 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됩니다. 나이 드신 분들 가운데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겠느냐고 후회하며 살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무엇을 남길 것인가? 를 발견하고 무엇을 한다면 얼마나 가치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4월 첮째 주에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참된 행복의 비결임을 확인해 드렸습니다. 두번째 주에는 네가 어디 있는냐?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상태에 있는지? 하나님의 낯을 피하고 있는지 구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세번째 주에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에 대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 두 개의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하나의 산은 성공을 얻기 위하여 올라가는 산입니다. 다른 하나의 산은 의미와 가치를 얻기 위하여 오르는 산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산을 오르고 있는 중입니까? 성공의 산을 오르고 난후에 의미와 가치의 산을 오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처음부터 의미와 가치의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 당신은 결코 후회하지 않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살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4-26절에 의하면 우리의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모세입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하였습니다. 모세는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만약 제가 모세였다면 공주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갖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세에게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는 장차 상 주시는 이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3장 14절입니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한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귀하게 여기십니까, 헛되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그대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행하는 것을 기뻐하십니까, 슬퍼하십니까? 이렇게 행하는 것이 자신에게 손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이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본문 15절입니다.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 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지금 어떤 사람이 복 될까요? 교만한 자입니까, 아니면 겸손한 자입니까? 교만한 자가 아닙니까? 악을 행하는 자가 잘 됩니까, 선을 행하는 자가 잘 됩니까?
악을 행하는 자가 이외로 잘 되는 것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합니까,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화를 면합니까? 욥의 경우를 보면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화를 당하지 않습니까? 악이 무엇일까요? 예레미야 2장 19절 하반절입니다.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신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이 악이요 고통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경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 18절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서로에게 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의 기념책에 기록하셨습니다. 진정으로 남는 것은 하나님의 기념책에 당신의 이름과 행위가 기록되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을 특별한 소유로 삼으십니다.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아끼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특별히 아껴주십니다. 하나님이 아껴주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본문 18절입니다. “그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는 자를 분별하리라.” 마지막날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인이란 하나님을 섬기는 자를 말하여, 악인이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심판의 기준은 하나님을 섬기는 인생을 살았는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인생을 살았는지를 판단하십니다. 우리가 일평생 사는 동안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섬기는 기회로 삼았는지, 아니면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아왔는지를 심판하십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입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는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선악간에 행한 것에 따라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남겨야 할 것은 자로 이것을 위하여 준비하는 것입니다. 선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악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건축을 하려면 기초공사와 건물짓기과 관건입니다. 기초공사란 구조물의 밑바닥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하는 공사, 즉 구조물을 지탱할 수 있도록 지면을 단단히 하는 공사를 말합니다. 기초공사가 약할 경우 지반이 함몰되어 구조물이 침강하거나 지반이 무너지는 큰 문제가 일어나기 때문에 기초공사는 매우 중요한 과정입니다. 건물짓는데 있어서는 좋은 재료를 사용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3-15절입니다.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여기서 말하는 그날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킵니다. 그 불은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지를 시험합니다. 세상에서 얼마나 성공하고 인기가 있고 칭찬을 받았느냐가 아닙니다.
사용된 재료가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것이 금은, 보석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저 나무, 풀, 짚이 될 것인가? 사람들이 세상에서 행한 일들이 성령에 이끌림을 받았느냐, 아니면 자신의 유익과 영광을 위하여 했느냐?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주님을 위한 것이고 진리 안에서 행한 것이면 심판 날에 좋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대단한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고 진리 안에서 행한 것이 아니라면 심판 날에 서지 못합니다.
바울은 어떤 건축 자재를 사용하여 집을 짓는가에 따라서 언젠가 그 진가가 드러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과 같이 비싸고 견고한 재료로 집을 지었습니다. 이는 복음에 입각한 진리의 교훈을 가리킵니다. 어떤 사람은 나무나 풀이나 짚과 같이 구하기 쉽고 허술한 재료로 집을 지었습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은 세상의 초등학문이나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와 같은 거짓된 교훈을 가리킵니다(갈 4:9; 골 2:8). 그들은 그리스도와 전혀 연합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 때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란하는 것 같지만 어느새 자기 중심적으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그들이 왜 진리의 교훈을 듣는 것을 싫어할까요?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수술해야지 우리의 영혼이 살아납니다.
당신은 어떤 건축 자재로 인생의 집을 지어가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경우는 금이나 은이나 보석과 같은 재료와 나무와 풀이나 짚과 같은 재료를 섞어서 지어가고 있습니다. 당장은 다들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공력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공력이 나타날 때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시는 그 날입니다(히 10:27). 공력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아십니까? 본문 13절에 말하는 불은 징벌이나 정결케 하는 그런 불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의 공력으로 어떤 것인지를 시험하는 수단입니다. 각 사람이 공력은 그것이 얼마나 성공적이냐, 효율적이냐, 인기가 있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동기가 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불의 시험을 거친 후에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습니다. 공적이란 수고를 말합니다. 금과 은과 보석은 불 가운데 부피가 줄어들지 않고 빛나는 광채로 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무와 풀과 짚은 불가운데 살려져 검은 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여기서 상을 받는다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상급을 의미합니다. 공적이 불타는 사람은 겨우 구원을 받게 됩니다. 과연 우리는 교회를 세워가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교회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까?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 칭찬받는 신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자신이 선교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는가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죽을 고비를 맞게 되고 육체적인 고통을 당해야 했던 그것이 예수의 흔적이었습니다. 괴연 나에게는 예수의 어떤 흔적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 위하여 당했던 예수의 흔적이 있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누리는 영광을 자랑하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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