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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국을 침노하는 자(마 11:12),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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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한 신학자로 목회자였던 마빈 감독이 내란으로 인하여 그의 가족과 집을 떠나 아캔자스 지방의 황야를 홀로 헤매고 있을 때였습니다. 마음에는 평안이 없고 실망과 고독스런 마음으로 어느 마을을 지나고 있을 때에 한 여인의 찬송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천국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이와 같은 찬송 소리에 이끌려 발길을 그곳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찾아 들어간 곳은 말로 형언할 없는 낡은, 가난한 과부가 홀로 살아가는 집이었습니다. 뜰에 앉아 무슨 일을 하면서, 낡은 쌤을 입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행복에 쌓여 여인의 얼굴은 소망의 빛으로 가득해 보였습니다. 한참 동안이나 넋을 잃고 여인이 부르는 찬송 소리를 듣고 있던 마빈 감독은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
! 나의 하나님! 나도 주께로 가까이 가기를 원합니다. 나를 주께로 가까이 이끌어 주옵소서!"하고 외친 다음 여인과 함께 찬송을 불렀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 마빈 감독은 그때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세상의 소망이 끊어진 같은 지독한 가난함 속에서도 주와 함께 사는 여인이 부른 찬송은 수만 명의 설교자들보다 분명하게 나의 심령을 울려주었습니다."

 

이것은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면서 부르는 찬송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감동을 주는 것임을 알게 하는 말입니다. 찬송이 우리의 신앙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천국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1.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얻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천국을 얻기 위해서는 침노해야 합니다. 천국이 어떻게 침노를 당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본문의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서 자기 제자들을 그리스도께 보내어 이렇게 질문합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세례 요한은 마태복음 10 3절에서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여있다는 표현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심판자로서 오실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혼동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는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이요, 재림 때는 심판하기 위해 오실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심판하시는 메시야 상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을 들을 공의와 심판 대신에 은혜와 긍휼을 많이 베푸시기 때문에 의구심이 생긴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가서 보고 들은 것을 말하라고 명합니다. 마태복음 11 5절입니다. “맹인이 보며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이사야 61 1, 2절에 보면 메시야의 사역에 대해 이렇게 예고합니다. “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들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예수님의 초림은 은혜의 해를 선포하시고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세례 요한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대중적인 의견에 좌우되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느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세례요한은 감각을 만족시키며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부드러운 대신 낙타털로 옷을 입었고, 왕국이 아닌 광야에서 살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느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례 요한은 선지자보다 나은 자니라. 말라기 3 1절에 보면 메시야가 오기 전에 사자를 보내기로 되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나 내가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라.” 그가 누구일까요? 말라기 4 5절입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엘리야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마태복음 17 13절입니다.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 인줄을 깨달으니라.

 

또한 세례 요한은 자신의 길을 준비하는 사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10).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을 사모하면서 그들이 천국을 사모하게 만들었습니다. 마태복음 11 11절에 보면 여자가 낳은 중에서 세례 요한보다 이가 없다고 칭찬하십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위대하고 대단한 사람이라도 천국에서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전파하던 날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침노하는 자가 그것을 빼앗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6 16절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해서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구원의 은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함을 받지 않으면 누구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입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얻기 위하여 노력 그 자체를 포기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얻기 위하여 노력하면 할수록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 구원의 은헤가 절실히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천국을 찾고 구해야 합니다. 천국을 침노한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소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2.천국을 어떻게 침노해야 할까요?

천국을 침노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은혜를 구하려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천국은 값없이 주어지지만 , 우리는 그것을 얻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 10절입니다.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천국을 침노한다는 표현은 단호하고 진지한 결심을 나타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일에 진진하게 몰두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구원에 대한 관심이 다른 모든 관심을 압도합니다. 다른 모든 것은 하찮게 여기고 오직 구원에만 마음을 집중하는 것을 말합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전적인 은혜가 필요하고 은혜를 구하려는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3 24절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천국에 들어가기를 힘쓰지 않는 사람은 어려운 난관을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이유는 영원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시간을 어디서 누구와 보내느냐 하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합니다. 천국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이유는 은혜받을만한 기회가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의 방편을 주셔서 구원을 얻게 하십니다. 구원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방법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 때로는 포기해야 것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 24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지금이 은혜 받을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많은 사람이 은혜를 받고 있는 이때에 나태함에 빠져 뒤쳐지고 정욕을 좇고, 사소한 어려움도 견디기 힘들어 하고 , 삶의 태도를 조금이라도 고치기를 언제까지 거부하시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한동안 어떻게 해야 구원받느냐고 묻다가 결국에는 구원을 얻지 못하고 안일함에 빠져 있지 않습니까? 구원의 기회가 있을지는 매우 불확실합니다. 설령 그런 기회가 오더라도 우리가 그때까지 살아있을지 장담할 없습니다.

토마스 왓슨은 [천국을 침노하라] 그의 책에서 가지 요소를 강조합니다. 첫째 요소는 결연한 의지입니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천국을 소유할 것입니다. 그런 의지는 그리스도의 힘을 의지할 때만 가능합니다. 구원받고 싶은 의지와 죄를 짓고 싶은 의지가 적당히 섞인 절반의 의지로는 천국을 침노할 수가 없습니다. 두번째 요소는 열정입니다. 감정이 움직이는 곳에서 천국을 향한 침노가 이루어집니다. 세번째 요소가 힘찬 노력입니다. 생사가 걸려있다고 생각하고 구원을 추구하면 열심히 노력하게 되어 있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이나 행위나 자격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지지만 단순히 은혜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에 대한 갈망은 은혜의 수단인 말씀과 기도를 통해 더욱 간절해지는데 반해, 이러한 수단에서 멀어지면 구원에 대한 의심에 빠지게 됩니다. 거룩한 열정은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구하고 찾는 사람에게 생기는 것입니다. 강렬한 소원과 단호한 결심이 있으면 거기에 합당한 노력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며 구원을 얻기 위해 갈망합니다.

 

 하지만 마가복음 7 27절에서 수로보니게아 여인은 예수님께 나아와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합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자녀의 떡을 개에게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주님의 이 말씀 앞에서 자신의 체면이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이렇게 간청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만은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수보니게아 여인은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기회를 결국은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이후에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참으로 믿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 갑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끊임없는 영적 전투를 치러야 합니다. 온갖 난관과 고난과 유혹을 극복해야 합니다. 구원은 당신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바쁘다는 핑계나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때문에 구원의 기회를 연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시험을 받아서 여러 가지 근심 때문에 구원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구원의 관심은 있지만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이 있을 곳입니다. 지금은 은헤 받을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지금의 기회를 무시하고 계속 불신을 고집한다면 당신은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구원의 길을 달려가십시오. 구원을 얻으려면 열심히 구해야 합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마치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설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천국을 침노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영광의 왕께서 들어오실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의 영원한 문을 활짝 열어젖혀야 합니다. 기도를 기도답게 만드는 것은 간절함과 열정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를 한 구절 인용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진정한 은혜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주를 찾고 구합니다. 이같은 과정에서 자신의 죄를 (용서) 주시는 분은 오직 주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용서해 주시는 주님만 사랑하고 경외합니다. 그렇게 얻는 구원의 은혜를 소중하게 간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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