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고 십 년이나 따라 다녔던 사울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이럴 때 우리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1. 다윗은 원수가 당하는 불행을 즐기지 않고 가슴 아프게 여겼습니다.
사람의 인격은 그의 원수를 대하는 데서 나타납니다. 특별히 자신의 경쟁자나 원수관계와 같은 사람에게 불행한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처신하는 가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넉넉히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을 인하여 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11, 12절).
다윗은 자신과 원수 관계에 있는 사울 왕이 죽었다고 할 때 어떻게 처신합니까? "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과연 다윗이 사울왕으로부터 지금까지 당한 고난의 현장들을 돌아 볼 때 이렇게 슬픔을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의 고난의 일들을 아는 사람들은 이러한 행동에 대하여 형식적인 슬픔이었지 내심은 기뻐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진심으로 슬퍼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 일이 기뻐할 일인가 아닌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원수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다윗은 일찍부터 자신이 사울왕을 완벽하게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감히 자기 손을 들어 죽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름부음 받은 자를 자기 손을 들어 치는 것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하들은 빨리 죽이라고 했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의식하고 사울왕을 죽이지 않은 것입니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이었기에 오히려 사울왕의 죽음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슬퍼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이러한 슬픔의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체 남의 불행을 함부로 이야기하면서 다윗에게 보고한 사람이
있었습니다.그는 아말렉 사람입니다(14절)." 그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 곁에 서서 죽이고 그 머리에 있는 면류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 왔나이다."
그는 다윗의 진심을 모르고 자기가 사울왕을 죽였노라고 자랑삼아 말하면서 그 증거로 사울왕의 머리에 있는 면류관과
팔에 있는 고리까지 내어놓았습니다.
그러면 칭찬을 받고 상을 받을 줄로 생각한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는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 다윗의 원수인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그 원수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면 크게 기뻐할 줄로만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자기가 죽인 것이 아니었는데도 오직 상을 받기 위해서 다윗의 마음도 모르고 그렇게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당사자인 다윗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그 소식을 듣고 마음 아파하며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되 저녁까지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소식을 자랑스럽게 전한 아말렉 사람을 칭찬하고 상을 주기보다는 대신 죽이도록 명령을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자기 입으로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아말렉 사람은 다윗의 슬픈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남의 불행을 즐기려고 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자기의 원수가 죽었을 때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 조가(弔歌)까지 지어 불렀습니다.
그 조가가 여기 19~27절까지 기록되어 있는데 보통 노래라면 기쁠 때 부르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 노래는 슬픈 노래입니다. 그것으로 사울과 요나단을 조상하고 그 노래를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도록 명했다고 했으니 우리는 이 노래를 통해서도 다윗의 진심을 알 수 있습니다.
"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18 명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17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헐뜯고, 핍박하고, 너무 힘들게 하고, 내 영혼을 넘어뜨리려 했던 원수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들이 혹 불행을 만났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 어떠십니까? 이럴 때 우리가 잘 처신을 해야 합니다. 그들을 위해 축복해 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그들에게 승리하는 길 아닐까요?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 12:19, 20).
2. 다윗은 원수가 당하는 불행을 공동체의 입장에서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아 너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20 이 일을 가드에도 고하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19절)
다윗에게 있어서 사울왕은 개인적으로는 원수지만 공동체적으로는 자기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나라의 왕이
쓰러지고 죽임을 당했으니 개인적으로는 다행한 일이겠지만 나라 전체적으로 볼 때는 아주 비통한 일입니다.
다윗은 개인적인 감정으로 생각할 일을 뒤로 미룬 뒤 사울왕의 죽음을 국가적으로 이해하였는데 자신이 지어 부른 노래에서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아 너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19절)
비록 자신을 죽이기 위해 끈질기게 따라 다녔던 사람이지만 그래도 그는 일국의 왕이 아니었습니까? 그 왕이 죽었으니 자기 개인으로는 시원한 일이요 기쁜 일일지 모르지만 나라로는 얼마나 비통한 일입니까? 나라의 영광이 쓰러진 것입니다.
또 이 사실을 블레셋 사람들이 알면 무척이나 좋아하고 기뻐할 일이지만, 이스라엘 입장에서 보면 나라 전체의 큰 수치이며 어려움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20절에서 "가드에도 고하지 말고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여러 일들을 내 중심적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좋은 것일지라도 전체에게 안 좋은 것이라면 자기의 유익은 뒤로하여야 하며 개인적으로 안 좋아도 전체에 유익이 된다면 그것을 따라야만 합니다.
우리가 성도이면서도 사람이기 때문에 때로는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서로 의가 상할 수도 있고, 때로는 분쟁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미워하는 사람, 많이 싫어하는 사람이 불행한 일을 만나는 경우를 볼 수도 있고요. 그러나 이 사람이 잘못되는 것이 결코 나와 무관한 일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배를 탄 믿음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웃의 불행은 나의 불행 곧 우리 모두의 불행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잠 24:17)
그래서 우리가 이웃의 불행을 공동체적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하며 그렇게 되면 우리가 남을 미워할 것도, 남의 불행을
기뻐할 것도 없게 되는 겁니다.
우리의 이웃뿐만이 아니라 다른 교회와 선의의 경쟁을 하는데 있어서도 우리교회 성도가 혹 다른 교회로 가는 일이 있다고 해서 미워하거나 불행이 깃들기를 위하는 마음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쓸데없이 다른 교회를 놓고 평가할 필요도 없고요.
특별히 염두에 둘 것은 교회 안에서 서로 의견이 충돌되고 다툼이 생길 때 이것은 우리끼리의 문제라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우리 안의 문제나 어려운 일을 교회 밖의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면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들끼리 남의 불행을 기뻐하고 고소해 한다면 결국은 누구를 기쁘게 하는 일이 됩니까?
마귀만 기쁘게 하는 일이 됩니다.
우리들 안에 있는 불행한 일들로 인하여 우리들끼리는 혹 분쟁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우리의 원수 마귀가 기뻐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자 하는 넓은 마음을 지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다윗은 원수가 당하는 그 불행 속에서도 장점만을 생각했습니다.
다윗이 자기의 입장만 생각하면 사울왕의 죽음은 분명 기뻐할 일이지 슬퍼할 일은 결코 아닙니다만 그러나 공적인 입장에서 보면 사울왕에게도 장점이 있고, 칭찬할 점이 있고, 배울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19절과 23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이스라엘아 너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19절)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저희는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23절)
19절에 보면 그를 가리켜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하고, 용사라고도 하며, 또 23절에 보면 사울과 요나단의 관계를 가리켜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관계라고 묘사하면서 또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사울왕의 장점을 칭찬한 말들로서 다윗은 사울왕을 아주 공평하게 아주 후하게 평가를 하는 셈이지요.
비록 자기의 원수요 자기를 죽이려고 오랫동안 집요하게 쫓아다녔던 악한 영에 씌운 사람이지만 그가 죽은 후에 그를 가리켜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하며 그의 용맹 그의 힘 그리고 그 부자의 아름다운 관계를 높이 평가합니다.
이와같이 다윗은 사울왕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사울왕의 업적을 존중하고 그의 명예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객관적인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다윗과 같은 눈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 주관적인 눈으로 보면 나는 옳고 그 사람은 다 틀렸으나 그러나 객관적으로 그를 평가해보면 아무리 나쁜 사람도 그에게 좋은 점이 있고 단점 투성이인 것 같아도 그 속에 장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못난 사람일지라도 그에게서 배울 것이 있는 것 아닐까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남을 깎아 내리려고만 하여 자기 기준의 잣대로 평가하고 맞지 않으면 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라면 달라야 하겠지요. 아무리 나에게 원수라고 해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잘 한 것은 잘 했다고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 나와 취향이 다른 사람이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칭찬할 것은 칭찬해야 합니다.
특별히 그가 어려움을 당했든지 불행한 처지에 빠져 있다면 더더욱 그러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을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성숙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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