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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선택(빌립보서 1:21-26),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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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주 선택의 갈림길에 섭니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을 맞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결정을 해야 가장 옳고 후회함이 없는 좋은 인생을 살게 되는 걸까요?

어도 선택하는 데 있어 어떤 원칙이나 기준을 갖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것일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선택의 갈림길에서 옳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렇게나 즉흥적으로 감정에 끌려 선택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분위기에 따라서 어정쩡하게 선택해서도 안됩니다. 명확한 선택의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갈림길에서 어떤 원칙을 가지고 선택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하였을까요? 바울은 말합니다. 23절에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그는 죽음과 삶의 사이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고민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둘 사이에서 갈등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갈림길을 만날 때마다 기억할 선택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1.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도록 선택해야 합니다(20절).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이 더 존귀하게 되는 쪽을 선택합니다. 내 이름이 유명해지고 내 지위가 높아지며 내 신분이 존귀하게 되는 길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결정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이 존귀하게 되는 것보다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을 앞세웠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바울에게 있어서 최대의 관심은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되 그의 삶을 통해서("내 몸에서")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오직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을 통하여 존귀하게 되는 것에 관심을 집중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오래 사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건강하고 부요하게 사는 것에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지금 살든지 죽든지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길이 무엇이냐?에 관심이 있습니다. 죽어도 믿음을 지키고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순교당하면 그리스도를 높이는 길이 될 것이요. 살아도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자랑하며 살면 사람들이 바울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우러러 보기 때문에 존귀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바로 그의 존재 이유였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사는 것은 그리스도였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가 없이는 모든 것이 무의미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죽음조차도 그리스도와의 관계하에서 의미있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사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서 살아갑니까? 사는 목적이 그리스도를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까?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이 소유한 가축과 거느린 식솔들이 많아져 더 이상 함께 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먼저 조카에게 선택의 기회를 줍니다. 롯은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살핍니다. 동편을 보니까 물이 아주 풍부했습니다. 에덴동산처럼 아름답고 땅이 기름져 보였습니다. 그리고 애굽처럼 모든 풍요롭고 잘 발달된 지역으로 살기가 좋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망설임없이 요단 들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땅은 소돔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악하고 큰 죄인들이 사는 땅,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이 풍요해 보였으나 영적으로 황폐하고 삭막한 땅이었습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고 유황불의 심판이 내려 재산뿐 아니라 아내까지 잃고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덕에 겨우 두 딸과 함께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약속의 땅 헤브론을 선택하고 장막을 옮겼습니다. 우선 당장은 화려함도 없고 농사나 목축이 잘 되리라는 보장도 없었으나 하나님의 약속이 깃든 땅이기에 그는 그곳으로 옮겨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자신의 감정보다도 자신의 유익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위하는 아브라함의 선택이 옳았습니다.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믿음을 통하여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을 우러러보고 인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면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존귀함을 받습니다. 세상에서 핍박을 받고 버림을 당해도 주님으로부터 존귀함을 받으면 최상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경멸히 여기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 2:30)하셨습니다.

2. 교회가 유익하게 되도록 선택해야 합니다(24절)

 

우리는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편을 선택하여야 할 뿐 아니라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선택하여야 합니다.
여러분 정말 천국에 가고 싶습니까? 그러면 다시 묻겠습니다. 여러분 지금 당장 천국에 가고 싶습니까? 왜 사람들은 천국에는 가고 싶어 하면서 정말로 빨리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드물고 아주 천천히 가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만 바울은 정말 천국을 빨리 가고 싶어서 당장에라고 세상을 떠나고 싶어하는 소원을 가졌습니다.

 

바울은 사느냐? 죽느냐? 둘 사이에서 고민하다 사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사실 바울은 육체를 속히 떠나서 그리스도께 가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며 얼마나 많이 고생을 하였습니까? 옥에도 수 없이 갇히고 매도 엄청 많이 맞았습니다. 추위와 굶주림, 파선하여 바다에서 말할 수 없이 심한 고생을 하고 이방인에게 쫓기고 유대인에게 시달리고 비참한 고생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언제나 깨어 있었습니다. 어서 빨리 천국 가서 사랑하는 예수님을 만나 뵙고 위로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1:23)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더 나으나,' 그렇다고 자살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자신을 위하여서는 정말로 천국에 빨리 가고 싶은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이 빠른 순교를 선택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유익보다 먼저 교회를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24 이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육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할 것입니다. 이렇게 확신하므로, 나는 여러분의 발전과 믿음의 기쁨을 더하게 하기 위하여, 여러분 모두의 곁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으로 압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아직 어리고 연약한데 자신이 천국이 좋다고 일찍 떠나가 버린다면 영적으로 어린 성도들을 누가 돌볼 것이며 그들이 큰 슬픔에 젖어 있을 것을 생각하여 바울은 어떻게든 죽이려는 사람들을 피하여 살아 남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교회를 염두에 두고 결정을 합니까? 바울처럼 교회의 지체들 즉 교인들에게 더 유익한 방향으로 결정합니까? 우리가 교회 즉 교회안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지체들이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확장하라고 부탁하며 맡기신 사람들임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개인의 유익보다 교회의 유익이 더 앞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적으로 교회가 꼭 필요로 하는 일군이 더 좋은 직장이 있다고 교회를 떠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의 감정이 조금 상했다고 교회안의 존귀한 영적 가족들에게 함부로 상처를 입히는 경우가 흔합니다.

 

여러분 무언가 결정을 하고 선택을 할 때 자기의 유익보다 교회의 유익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자기의 만족보다 교인들의 기쁨을 먼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믿음이 연약한 교인들의 믿음의 진보를 위하여 과감히 여러분의 자원을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모든 성숙한 교인들은 자기 유익보다 먼저 교회와 교인들의 유익을 위하여 선택해야 합니다. 자신의 만족보다 교인들을 만족하게 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자신의 기쁨보다 다른 교인이 기쁨을 주고 감동을 주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올바른 선택입니다. 그것이 행복을 위한 바른 결정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예수안에서 자랑거리가 되도록 선택해야 한다(26절).

 

여러분의 자랑은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사람들이 자랑하는 자랑거리들이 참 많습니다. 돈 많은 것 자랑하는 사람도 있고 지식과 지혜를 자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힘 자랑하는 이, 인물 자랑하는 이도 있으며 권세와 줄이 닿아 있음을 자랑하는 사람도 있고 자동차 좋은 것 타는 것을 자랑하는 이도 있습니다. 희귀한 보물을 수집하여 자랑하거나 기르는 동식물을 자랑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 안에서 자랑할 거리가 풍성해야 합니다. 빌립보 교인들의 자랑은 무엇이었겠습니까? 바울이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었을 것입니다(1:26) . 그것은 내가 다시 여러분에게로 감으로써 여러분이 나를 대면하는 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많아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로 인하여 자랑거리가 풍성하게 해 주려고 바울은 빌립보에 가서 그들과 같이 있으려고 애썼습니다. 정말 바울 같은 믿음의 거장이 그들과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빌립보교인들은 자랑할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자랑했을까요? 틀림없이 예수 안에서 바울의 믿음과 맺은 아름다운 영적인 열매, 헌신적인 복음 사역 등을 가지고 자랑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아주 자랑스러운 인물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이 이처럼 서로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에게 예수 안에서 풍성하게 자랑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가 은혜스러워지고 활기차려면 성도와 성도간에 예수안에서 칭찬과 자랑으로 풍성해져야 합니다. 교회가 부흥되려면 성도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예수 안에서 목회자와 교인들의 아름다운 면을 부지런히 자랑하여야 합니다.
미켈란젤로가 어느날 친구들과 함께 있는데 갑자기 그 자리에 없는 사람들을 향한 비난과 흉보는 말들이 오갔습니다. 모두 한 마디씩 거들고 맞장구를 치는데 미켈란젤로는 아무 말없이 가만히 있었습니다. 한 친구가 "여보게 자네는 왜 아무 말이 없나?" 하고 물었습니다. "응 나는 지금 그림을 생각하고 있었네!" 모두들 그가 그림을 구상하고 있다는 말에 굉장한 작품이 하나 나오는 줄로 알고 "어떤 그림인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붓을 들더니 하얀 캔버스 중앙에 점을 하나 찍었습니다. 그리고는 "자네들의 눈에 무엇이 보이는가?" "까만 점이 하나 보이네."그러자 미켈란젤로가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점 주변에 있는 새 하얀 종이를 보고 있네." 여러분은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보며 까만 점을 보고 있습니까? 하얀 면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교인들을 가리키며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까? 칭찬과 자랑에 열심입니까?

 

여러분, 우리 교회는 예수 안에서 자랑거리가 풍성합니까? 여러분이 다른 성도들로 하여금 자랑거리를 풍성하게 제공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 교인들간에 비난하고 흉보는 것을 선택하는 대신 예수 안에서 풍성한 자랑거리를 제공하고 서로를 자랑하기를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결정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훌륭한 인생을 선택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그 길을 믿음으로 걸어갈 때 동행하며 인도하십니다. "내가 만들지 않은 인생은 없습니다. 다만 행복한 이는 행복하기를, 불행한 이는 불행하기를 선택했을 뿐입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항상 바른 선택을 하고 확신을 갖고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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