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해가 되어서 새것이 되었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새것이 되었다는 것은 구체적인 변화를 체험했다는 뜻입니다.
과연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변화를 체험할 수 있을까요? 고린도후서 5장 15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쉽게 말씀 드리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을 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렇게 변화됩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따라서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야 하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과연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으십니까? 당신은 예수님이 당신의 인생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더 이상 자신을 위하여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이제는 당신은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여전히 자신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다면 당신은 아직도 새로운 피조물이 아닙니다. 당신의 생에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리고 싶은 욕구가 없다면 당신은 아직도 그리스도 밖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행하여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의미가 또한 무엇일까요? 고린도후서 5장 17-18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깨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는 순간부터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고 새것이 되었습니다. 에수 믿기 전에 우리는 화목하지 봇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시기와 다툼과 분냄과 당짓는 것과 수군수군함과 분리함과 또 이와같은 말들로 하나님을 대적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전에 화목하지 않던 우리가 이제는 화목하게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즉 화목하지 못했던 우리가 화목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사신이 되었다는 의미일까요?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라” 는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 이유는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일이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4-16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받으셨습니다. 이 직책을 완수하시기 위해, 즉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우리를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지만,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서 죄인처럼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멸시와 천대를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죄악의 담을 헐기 위해 이 땅에 화목제물로 오셨습니다. 그 직책을 온전히 감당하시기 위해 사람에게 버림받고 멸시당하셨습니다. 하지만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어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받아 그 직책을 감당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에서는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처럼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자신을 낮추셨던 것처럼 내가 먼저 낮아져야 합니다. 내가 먼저 낮아져야지 화목할 수 있습니다. 서로 높아지려고 하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간단합니다. 내가 먼저 낮아져서 남을 섬기면 됩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와 교회, 목사와 목사, 목사와 성도, 성도와 성도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사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직책을 얼마나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6장 3-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자신이 화목하게 하는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아무에게도 거리낌이 없게 신앙생활했다고 고백합니다.
만약 사람과의 거리낌이 있다면 어떻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잘 감당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백 번 옳고, 백 번 잘 하고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이 명백하더라도 우리는 말없이 그 사람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그 사람이 내 말을 들어주고 화목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화목을 위해 스스로 얼마나 낮아지려고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말을 소금이 고르게 하는 것같이 화평케 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소금의 사명을 잘 감당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내가 먼저 낮아져야 합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화평하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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