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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공정한 사회로 가고 있는가?(이사야 32:7),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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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리는 공정한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일까? 공정한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요? 죄악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공정한 사회로 가능한 것이 가능할까요? 공정한 사회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공의가 구현되어야 합니다. 이사야 32장은 하나님의 백성, 남 유다가 범죄하였다 하더라도 회개하면 회복시켜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이렇게 무너져가는 상황에서 어떻게 공정한 사회로 갈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의 배경은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공격하지만 전멸당하고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될 것을 예고합니다. 오늘 본문은 악한 정부의 통치와 선한 정부의 통치, 공정하지 못한 사회와 공정한 사회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사야 32장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9-14절은 공정하지 못한 사회는 어떻게 되는지, 1-8절은 공정한 사회에 나타나는 특징에 대하여 15-20절은 공의로운 사회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먼저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현상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집행하는 주류의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가에 그 사회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본문 5절입니다.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부르지 아니하겠고 우둔한 자를 다시 존귀한 자라 말하지 아니하리니.” 성경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완악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악행을 저지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불법을 저지릅니다. 아리석은 사람들이 중요한 보직, 높은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공정하지 못한 사회의 한 면모입니다. 우둔한 사람이 중요한 위치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지 아십니까?

 

왜 그런지 아십니까? 본문 6절입니다.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리며 주린 자의 속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어리석은 사람은 실없는 말을 하고 악한 일을 마음속으로 꾸며서 그럴듯하게 속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함부로 말합니다. 배 고픈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목마른 사람에게서 위한다고 하면서 물을 빼앗아 버립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는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다고 하면서 더욱 힘들게 합니다. 본문 7절입니다. “악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세워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가난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거니와.“ 악한 자는 그릇 자체가 악합니다. 악으로 똘똘 뭉쳐있기 때문에 악한 계획을 세워 거짓말로 가난한 사람들을 죽을 지경으로 몰아갑니다. 힘이 없고 가난한 사람이 말을 바르게 하여도 곤경에 처하게 만듭니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는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것을 보시고 다 이시기 때문에 심판하십니다. 불의를 행하고 악한 계획을 일삼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절에 안일한 여인들과 염려없는 딸들이란 예루살렘의 여인들 가운데 교만과 허영과 사치를 위해 남편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부추기는 여인들을 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세상의 마음을 두고 거기에 행복을 거는 자들이 언젠가는 환난을 겪게 될 것을 경고하면서 회개를 촉구합니다. 1년의 기간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본문 10절입니다. ”너희 염려없는 자들아 일년 남짓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일이 이르지 않을 것이라.“ 한 해가 조금 더 지나면 자신만만하던 사람들은 불안해 할 것입니다. 포도 수확을 하지 못하고 열매를 추수할 때가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일한 여인들아 마음을 졸이라. 믿는 구석이 있다고 느끼는 딸들아 벌벌 떨라. 옷을 벗어 벌거숭이가 되고 허리를 굵은 베로 두르라.

 

그뿐이 아닙니다. 본문 13절입니다. ”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에 나리니 대저 궁전이 폐한 바 되며 인구가 많던 성읍이 적막하며 오벨과 망대가 영원히 굴혈이 되며 들나귀가 즐기는 곳과 양떼의 초장이 되려니와.“ 우리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공정한 나라가 되지 못하면 징계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를 세우신 목적은 불의를 막고 공의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공정한 사회가 되지 못하는 것 그 자체가 최고의 위기입니다.

 

 

공정한 사회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통치자가 공의를 시행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한 나라를 통치하는 왕의 책임을 네 가지로 지적합니다. 자기 백성을 보호하고, 생활을 책임지고, 의롭게 살도록 하고, 한 사람이라도 억을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공의로 통치하는 한 왕이 나타나야 합니다. 공의로 통치하는 한 왕이 누구일까요? 일차적으로는 히스기야 왕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메시야를 가리킵니다. 공정한 사회는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가능합니다. 신자나 불신자나 불의가 무엇인지 공의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죄성이 있기 때문에 욕심의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시행되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는다면 우상 숭배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ㅗ히복 이전에 회개를 촉구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너희가 자기 손으로 만들어 범죄한 은 우상, 금 우상을 그날에는 각 사람이 던져.“ 코로나를 통하여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은 물질의 우상, 쾌락을 우상을 내어 버려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괴롭히는 앗수르의 공격을 제거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나라의 통치자에게 권한을 주신 것은 공의를 시행하기 위함입니다. 이사야 321절입니다.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한 나라의 통치자가 공의로 통치해야 하지만 또한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려야 합니다. 방백들이라 함은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 국무총리, 삼부요인, 각부 장관, 국회의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법에 근거하여 공정하게 판단하고 집행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통치자와 방백이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모든 통치자들은 백성들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본문 2절입니다.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은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통치자들은 세상의 광풍과 폭우 가운데서 피할 수 있는 터널과 같아야 합니다. 바싹 마른 땅에 흘러가는 냇물과 같이 국민들을 마음을 뚫어 주어야 합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햇빛을 막아주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큰 바위 얼굴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원활한 소통과 올바른 판단력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 3절입니다.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가 귀를 기울 일 것이며.” 우리말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그때 감찰하는 관리는 더 이상 눈을 감지 않을 것이고 심리하는 관리는 귀를 기울여 들을 것이다.“ 통치자들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소통해야 합니다. 삼권이 분립되어 서로 견제하며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서 최고의 결과를 도출해 내야 합니다.

 

본문 4절입니다.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며.“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다는 것은 무엇을 경정할 때 서두르지 아니하고 올바른 판단력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정책은 조급하게 밀어붙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판단력을 갖고 집행해야 합니다. 그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사전에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안을 세워서 충분히 반영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전문성을 가지고 자신의 역할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사회인가요?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비전문가들이 판치는 그런 사회가 되면 안됩니다. 줄을 잘 서야 성공하는 사회, 이권 개입이 통하는 그런 사회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누구든지 열심히 공부하고 실력을 쌓으면 성공하는 공정한 사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존귀한 자가 존귀한 일을 계획하고 항상 존귀한 일에 힘쓰는 사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셋째, 성령이 부어져 사람의 마음이 획기적으로 변해야 합니다.

 

본문 13절입니다.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 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사람 중심으로 통치하는 나라는 불의와 욕심으로 치닫게 되지만,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그곳은 풍요함을 되찾고 집집마다 희락이 찾아 들며 나라 전체에 평안이 깃들게 될 것입니다.

 

성령이 부어질 때 곡식이 자랄 수 없는 불모의 땅이 추수를 기다리는 아름다운 밭으로 변화됩니다. 그곳에서 거둔 소출이 너무 많아 야생 숲으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공정한 사회로 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새로운 영, 성령의 부어주심이 있어야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합니다. 그렇게 될 때 광야 같은 세상에 정의가 거하고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게 됩니다.

 

공정한 사회에 나타나는 두 가지 현상이 있습니다.

 

본문 17절입니다.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정의와 공의가 시행되는 나라는 물질적인 축복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과 영적인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공정한 사회는 하나님을 높이고 사람의 귄리를 존중합니다. 참된 평화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가능합니다. 로마서 51절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5:1).

 

이와 같이 공정한 사회는 화평과 평안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그 어디에도 평안이 없습니다. 요즘에는 코로나 신드롬에 걸려 있습니다. 코로나에 걸리는 것보다 확진자로 인한 세상의 시선이 더욱 힘이 듭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하고 탄식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참 죽을 쌓였구나.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참된 평안이 있습니다. 주 예수의 구하신 은혜로다 참 기쁘고 즐겁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결과가 바로 평안과 안전입니다.

 

공정한 사회에 나타나는 복이 있습니다.

 

본문 18-20절입니다.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 그 숲은 우박이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도다.” 부동산 문제로 인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평화로운 거처, 안전한 거주지, 조용한 휴식처에서 살게 됩니다. 이러한 축복은 오직 하나님의 통치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경건한 성도들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19절입니다. “그 숲은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화평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20절입니다.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 다시는 전쟁과 기근이 없으며 풍년과 평화를 보장해 주겠다는 축복의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이 세상을 그냥 방치해 두시지 않으시고 공의롭고 복된 나라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처한 상황이 탄식할 수밖에 없지만 희망과 안정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공정한 사회로 나아갈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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