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우리가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믿다가 믿음을 포기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모습은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포기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선포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받은 진동치 못할 나라는 무엇이며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았으며 그 나라를 받은 우리들은 어떤 믿음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진동치 못할 나라란?
진동치 못할 나라가 있다는 것은 역으로 다시 진동할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진동할 나라라는 것은 그 존재가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젠가는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벧후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요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착각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욕심을 내고 죄를 짓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나라를 받았다"는 것은 '왕권을 받았다는 것 또는 왕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받은 나라는 진동치 못할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움직일 수 없는 왕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왕 노릇 할 수 있는 왕권을 받은 자들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특권을 받은 자들입니까?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왕권은 인간 생활 형태 중에 가장 존귀한 것입니다. 왕의 지위는 지상에 알려진 바 가장 존엄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최고의 행복과 영예를 얻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진동치 못할 나라를 어떻게 받았습니까?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어떻게 받았는지 17절 이하에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두 개의 산이 나옵니다. 율법을 전수 받은 시내산과 왕권을 전수 받은 시온산이 나옵니다. 이것은 구약과 신약으로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먼저 율법을 전수 받았던 시내산의 상황은 어떠하였습니까?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두렵고 떨리는 공포 분위기였습니다.
히 12:18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 만한 불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히 12:19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히 12:20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
그래서 백성들은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고 중보자 모세를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모세조차도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에 압도되어 두려움에 떨 지경이었습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만질만한 불붙는 산, 흑운, 흑암, 폭풍, 나팔소리, 말하는 소리 등은 정말로 두려움을 유발시키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율법을 거역한 자가 받을 형벌의 중대함을 암시할 뿐 아니라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히 부담스럽고 감당하기 어려운 법으로 다가왔음을 보여 줍니다. 실제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어느 누구도 영원토록 온전한 자로 인정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반면 새 언약(신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 은혜의 피(십자가 죽음)로써 기초를 놓으시고(24절), 부활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 좌정하심으로써 완성하신 하늘 예루살렘(하나님의 도성, 시온산)의 영광이 보장된 은혜 언약입니다. 그러기에 새 언약은 불붙는 산(시내산)에서 흑운, 흑암, 폭풍 가운데 주어진 구약의 율법과는 달리 소망과 위로와 용기를 주는 언약인 것입니다.
이것은 28절에서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 즉"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러므로 어떤 핍박이 와도 환난이 와도 낙심치 말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언약을 비교하면서 믿음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3.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은 우리는 어떻게 믿음생활을 해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말아야 합니다.
히 12:25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우리에게 약속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믿음을 포기하거나 버리는 것은 예수님을 거역하는 것이요, 거역하는 것은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입니다(25절). 그것은 불순종이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죄악입니다.
본문 25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에서 경고하는 사람, 모세를 말하는데, 그가 하는 말을 거역하였을 때 그 벌을 피할 수 없었다”고 하면서,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는 사람, 예수님의 경고를 배척하면 어떻게 그 벌을 피할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 백성들이 불순종하고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면,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새 언약을 믿다가도 그것을 안 믿으면 더 큰 심판과 징계가 있습니다.
본문 21절에서,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징계가 얼마나 컸는지 그 말을 전한 모세도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21절)고 할 정도니 우리가 오늘 주님의 약속을 거역하고, 믿음을 포기하고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고 한다면 우리에게 닥칠 더 크고 무서운 징계를 결코 피할 길이 없습니다.
26절을 보면,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땅을 진동시켰지만,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을 진동시킨다고 했습니다(26절). 땅을 진동시켜도 사람들이 모두 삼킴을 당하고 비참한 형벌을 받았는데, 하늘이 진동하게 되면, 결코 남아 날 사람이 없습니다.
믿음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배척한 행위에 대한 심판은 너무나도 단호한 것입니다. 27절에서는“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들을 나타내심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흔들리는 것들, 믿음이 흔들려서 믿음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배반하고, 약속을 거역한 자들에 대해서는 없애버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을 져 버리는 자에게는 다시 은혜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우리에게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거역하면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분을 배척하는 것이 되는 것이요, 그것은 하늘을 진동시키는 엄청난 심판을 피할 길이 없게 되는 것임을 기억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겨야 합니다.
히 12: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여기에서 "은혜를 받자"라는 말씀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감사하는 자가 되자!'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은혜를 붙들자'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 말씀 속에 두 가지 양면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를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영원한 왕권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야 할까요? 우리 성도들이 구속의 주요, 은혜의 주며, 생명의 주님되신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의 삶을 사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는 것입니다. '기쁘시게 섬기다'는 문자적인 의미는 '받으실 만한 (합당한) 예배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려면 무엇보다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드리는 예배의 성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의 실패는 신앙의 실패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겨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지만 원문 성경을 보면 29절 초두에 그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고 우유부단한 분이 아니십니다. 저자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겨야 한다는 자신의 가르침을 단순한 훈계 정도로 흘러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마음에서 본문 말미에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엄위로우신 심판 사역을 분명하게 상기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되 자신의 뜻을 거역하는 사람은 반드시 징계하십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인 새 예루살렘, 시온의 백성이 된 우리, 진동치 못할 나라 즉 영원한 왕권을 받은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제 천국행 티켓을 확보하였으니 마음대로 자행자지해도 되는 것입니까? 은혜를 크게 받은 사람은 더 많은 것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십니다. 왕의 권위를 부여받은 우리는 왕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순종하며 삽시다. 은혜를 굳게 붙드는 삶을 삽시다. 감사하며 더욱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며 사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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