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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빌 2:1-4),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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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나의 마음은 어떠한가? 나의 마음은 누구의 마음인가? 다른 어떤 마음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떤 팆을 있을까요? 

 

첫째, 일치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2:2) 예수님의 마음은 서로 일치하는 마음, 같이 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일치하는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한마음 한뜻을 품어야 하고,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며, 서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기의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하기보다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하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조건 없이 주는 아가페 사랑입니다.

 

에베소서 43,4절을 보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일치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2:3a) 예수님은 모든 일을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툼이란 자신을 내세우고자 하는 욕구, 당파심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허영이란 헛된 영광이란 뜻으로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툼이 생기는 원인은 다른 사람보다 나 자신을 먼저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나를 먼저 앞세우면 결코 화합이 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도 들어줄 줄 알고, 다른 사람의 처지도 이해해 줄 줄 알아야 다툼이 없게 됩니다.

 

또 미움이 있을 때 다툼이 생깁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10:12) 미움은 어떤 평안과 화평 속에서도 싸움과 갈등을 초래하며, 끊임없는 보복과 살인을 일으킵니다. 우리는 미움이 있을 때 십자가 위에 자신을 못 박고 조롱하고 침 뱉는 이들을 향해 용서의 기도를 드린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미움을 버려야 합니다.

 

분노함이 잠재해 있을 때 다툼이 생깁니다.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15:18) 시비가 있을 때 그 분노를 참는 자는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고 자기에게도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분을 참고 이기는 사람이 승리자입니다.

 

또 미련한 마음이 있을 때 다툼이 생깁니다.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어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20:3) 미련한 자는 다툼을 잘 일으킵니다. 우리는 미련한 자가 되지 말고,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이 함께 할 때 다툼과 허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4:6). 우리는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온유하게 대해야 합니다(딤후 2:24).

 

셋째,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2:3b) 예수님은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으로 낮아져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창조주로서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들을 섬기는 삶을 사셨고,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자기를 희생하셨습니다(2:7,8). 이것은 바로 겸손의 극치입니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려면 예수님의 온유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과 사랑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1:29)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때 평안이 있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 항상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넷째, 타인의 마음에 기쁨을 주는 마음입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2:4)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3:17)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기쁨을 주는 마음을 가질 때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려면 먼저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자기의 사명과 직분을 소홀히 하면서 남의 일에 참견하고 비판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을 돌아보고 서로 도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될 때 자기도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툼과 허영을 버리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일치하는 마음과 타인의 마음에 기쁨을 주는 마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품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1. 화합하는 자세로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2절)

 

어떤 사람은 혼자서 하는 일은 잘 하는데 다른 사람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을 잘 못합니다. 그래서 직장에서도 적응하지 못합니다. 상사와 싸우고 부하직원과 갈등을 겪고 동료와도 자주 싸우고는 뛰쳐 나옵니다.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화합입니다. 우리는 더불어 살 줄 알아야 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시각이 다르고 입장이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이해를 하고 이해를 시키며 서로 조화를 이루고 함께 일할 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소한 문제로 목숨을 걸고 싸워서 얻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딴에는 열심도 있고 지식도 있고 의욕도 넘치지만 별 것 아닌 문제로 다투고 미워하고 등지고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회의를 하다보면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팀을 이루어 일을 추진하다 보면 방법이 다른 사람도 나타납니다. 우리가 교회를 부흥시키려고 교회를 사랑하고 관심을 갖다보면 입장이 다른 사람과 부딪칠때가 있습니다. 이때가 중요합니다. 사단은 이때 우리를 이간시킵니다. 오해하게 하고 미워하게 하며 속상하게 만듭니다.

 

이런 때 다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비난하지 않으려고 힘써야 합니다. 이해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럴수도 있지', '그 말도 일리가 있군', '그런 방법도 있네', 하며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나와 다른 것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라고 자신을 타이를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와 다른 사람과 맞서려고 말고 불필요하게 고집을 내세우지 말고 마음을 화합하려는 자세로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한 마음을 품어."

그렇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과 한마음을 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족들과 한마음을 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가족과도 한 마음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한마음을 품으려면 먼저 이웃과 "마음을 같이"해야 됩니다. 이웃과 마음을 같이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내 욕심을 버리자." "내 고집도 버리자." 그렇습니다. 내 고집과 욕심을 버려야 이웃과 한마음을 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족끼리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한마음을 품으려면 "같은 사랑을 가져야" 됩니다. 사랑은 하되, 차별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자기에게 잘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도 얼마든지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한 사랑은 하나님 아버지처럼 누구까지도 사랑하느냐?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까지도, 원수까지도 사랑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44절 말씀이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우리가 한마음을 품으려면 ""을 같이 해야 합니다. ""을 같이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뜻을 앞세우지 않고 주님의 뜻을 내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투는 이유는 내 생각, 내 뜻, 내 의지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두 뜻을 합하려면 내 뜻은 포기하고 주님의 뜻을 깨닫고 내 뜻으로 삼으며 살아야 합니다. 교회가 한 뜻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고 확신속에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믿고 추진하면 절대 그 방침에 순종해야 합니다. 본래 내 뜻이 아니어도 기도하면서 우리가 함께 정했으면 이제는 그것이 내 뜻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 화합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 먼저 사람들과 화합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편협하지 않고 교회안의 모든 사람들과 원만하게 두루두루 화합할 줄 알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화합하려는 자세로 주의 일에 임하시기 바랍니다.

 

2.겸손한 자세로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3절).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129절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말씀하십니다. "병고치는 능력을 내게 배우라." 또는 "설교하는 것을 내게 배우라" 그렇게는 한번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 내게 겸손을 배우라", 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시는 겸손함을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가장 높은 분으로서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비천한 사람들을 섬기는 모습을 보고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기독교의 최고의 덕목이 무엇입니까?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의 제일의 덕목이 무엇이냐?" 질문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겸손입니다", 두 번째 또 묻습니다. "기독교의 두번째 덕목이 무엇입니까?" 두 번째도 "겸손입니다." 세 번째 또 묻습니다. "기독교의 세번째 덕목이 무엇입니까?" 한결 같이 "겸손입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겸손한 사람이 됩시다. 우리가 겸손하게 살면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받는다,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독교인이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니까, 성령의 사람들이니까, 성령과 교제하는 사람들이니까, 겸손하게 살아야 됩니다.

 

육체에 속한 사람은 어디를 가나 시기와 분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어떤 일이든지 다툼과 허영으로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3절 상반절에 보니까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아무 일에든지", 그게 무엇입니까? 교회 일이든지, 직장 일이든지, 가정 일이든지, 나라 일이든지, 아무 일이든지 라고 그랬습니다. 아무 일이든지. 또 곧 모든 일에 있어서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아야 된다 그 말입니다.

 

나보다 상대방을 낫게 여기는 그런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얼마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으며, 평화롭게, 행복하게, 건강하게 우리가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낫게 여긴다"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계속해서 존경한다" 그런 뜻인 것입니다. 이웃의 사정과 형편에 따라서 존경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귀한 영혼이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웃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경외하듯이 피차 서로 복종"(5:21)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복종이 무엇입니까? 이웃을 위해 낮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아지셨듯이, 우리도 낮아져야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일군은 "겸손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

 

어떤 청년이 신학자 풀리처에게 "어떻게 하면 가장 유력한 전도자가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풀리처는 이렇게 대답했다. "만일 그대가 스스로 영국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대를 들어 써 주실 것입니다."

 

3. 섬김의 자세로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4절).

 

사람들은 자기에게 곧 유익을 가져다 주는 일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기심때문입니다.

 

주님은 "각각 자기의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 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일도 잘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에 반해 자기의 일을 철저하게 잘 해내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에서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아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맡은 일을 잘 못하면 도와 주라는 말씀입니다. 대신해서 감당하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안에서 어떤 사정으로 맡은 일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를 비난하기에 앞서서 대신 짐을 져 주려고 서로 앞장서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섬김의 자세입니다.

 

섬김의 기본은 그 사람의 사정과 형편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우리는 이웃의 5분 전 상황을 모르고, 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가 보이면, 상대에게 문제가 보이면, 비판하려고 합니다. 먼저 비판하기 전에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문제를 가진 성도가 있다면, 문제를 가진 이웃이 있다면, 문제를 가진 가족이 있다면, 정말로 내가 도울 게 무엇일까? 무엇을 도와줄까? 도울 일을 찾는 것,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일군이요. 이것이 섬기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혼자 살도록 사람을 창조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둘이 서로 돕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합니다. 전도서 412절입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가서 상급과 면류관 받습니다. 어떻게 받습니까? 얼마나 어려운 사람들을, 연약한 사람들을, 우리가 도와줬느냐, 섬겼느냐에 따라서 상 받고,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도 섬기는 사람, 도와주는 사람을 하나님이 보상해주시고, 축복해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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