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의 추구
종교개혁자 칼빈(J. Calvin, 1509-1564)의 거대한 업적을 두 가지로 종합한다면, 한 권의 책과 그 책의 실천이었던 한 시(市)이다. 곧 칼빈의 생애 저서인 원리적 이론서인 「기독교강요」와 그 원리를 구체화시킨 제네바라는 도시를 그의 업적으로 기꺼이 제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칼빈이 위대한 것은 그에게는 탁월한 이론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이론의 증거물인 제네바라는 현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칼빈은 종교개혁자 마르틴 부쳐(M. Bucer, 1491-1551)가 있는 슈트라스부르크에서 “일생 가장 행복한 3년을”(the three happiest years of his life)을 부쳐의 소개로 프랑스 이민교회를 목회하고, 부쳐가 설립하고 슈투엄(John Sturm)이 교장으로 봉직하고 있는 신학교(academy)에서 가르치며, 역시 부쳐의 소개로 이델레뜨(Idelette de Bure)와 결혼을 하였다. 이렇듯 칼빈은 뷰쳐를 “그리스도의 가장 탁월한 종”(That most exellent servant of Christ, Martin Bucer)으로 일컬으며, 서로를 깊게 존경하며 함께 대화를 나누며, 여러 번 공적 회의를 동행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더할 수 없는 매우 친밀한 인관관계를 종교개혁자 부쳐와 누렸다.
이 슈트라스부르크에서 3년(1538-1541)의 생활을 마치고 1541년 9월 13일 제네바로 돌아온 후 칼빈은 이제는 자신을 부른 제네바의 개혁을 구체화하기 위해 3대 프로그램을 가져야 했는데, 3대 프로그램이란 교리문답, 예배모범, 교회법이었다. 칼빈은 1541년에는 「제네바 교회법」(Ordonnances ecclesiastiqes)을, 1542년에는 「제네바 예배모범」(La forme des chantz et prieres ecclesiastiques)을, 1545년에는 「제네바 교리문답」(Catechismus ecclesiae Genevensis)을 이룩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칼빈의 추구였던 제네바의 성시화를 역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칼빈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세 가지 개혁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으로 요구됨을 부정할 수 없다. 본고에서는 우선적으로 1541년 형성된 「제네바교회법」에 대한 이해를 시도할 것이다. 이 「제네바교회법」은 20년 후 1561년 보다 세련된 모습으로 제네바 의회를 통과하여 선포되었는데, 필자는 이 1561년 판의 독일어 번역본을 텍스트로 할 것임을 밝힌다. 무엇보다도 칼빈은 이 교회법에서 어떻게 제네바를 하나님의 도성으로 형성하려고 했는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러니까, 칼빈이 생각하는 세상을 변혁하는 교회를 이 교회법 속에서 찾는 것이 필자의 추구이다.
역사적 스케치
슈트라스부르크의 3년 생활을 청산하고 1541년 9월 13일 칼빈이 제네바로 돌아왔을 때, 제네바의 개혁, 곧 제네바의 성시화를 위한 일환으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칼빈이 가장 먼저 추진한 일은 교회법을 만드는 일이었다. 사실 제네바교회가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나름대로 적응해 가고 있던 칼빈을 다시 불렀을 때 칼빈은 하나의 조건을 전제로 하여 제네바로 돌아갈 것을 허락하였다. 역동적이며 실질적인 교회치리를 확립한다는 조건이었다.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 Luther, 1483-1546), 슈트라스부르크의 마르틴 부쳐에게와 마찬가지로 칼빈에게도 ‘성만찬의 공동체’인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교회였다.
그런 맥락에서 칼빈의 교회법은 일종의 ‘성만찬의 규례’(K. Barth)이기도 했다. 주의 만찬(Lord's Supper)에 부름 받은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선택에 근거를 두고 있는 칼빈의 교회이해는 아우구스티누스(A. Augustinus, 354-430)의 이해와도 다르지 않다. “칼빈은 그 다락방의 예전과 함께 말씀의 예전의 통합(integration)의 중요성을 부쳐처럼 인식했다.” 칼빈의 교회법은 세상과 교회를 구별하는 시금석으로 제네바를 이 교회법 위에 견고히 세우려는 칼빈의 강력한 의지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특히 칼빈의 교회법이 제네바에서 공식적으로 세 단계를 거쳐 통과되어 시행되었는데, 이는 교회법의 강력한 적용을 염두에 둔 칼빈의 조치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 세 단계 회의를 통과하기 전 우선적으로 60명의 목사로 구성된 회의에서 칼빈이 내어놓은 교회법은 토론을 거쳐 점검을 받아야 했다.
칼빈이 이렇게 공식적으로 제출한 교회법이 제네바에서 거쳐야 했던 세 가지 정치적 차원은, 먼저는 명망 있고 영향력 있는 가문의 사람들로 제네바 시민의 지지를 받는 4명의 시장이 함께하며 의회를 주도하는 25명으로 구성된 소회의를 통과해야 했으며, 다음으로는 200명으로 이루어진 대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했고, 마지막으로 일 년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모이는 일반 제네바 시민대회에서 인정을 받아야 했는데, 당시는 11월 20일 시민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일이 있은 후 20년이 지난 1561년 11월 13일 칼빈은 보다 포괄적이고, 교회의 독자성이 강화된 교회법을 의회를 통해 완성하였다. 「제네바교회법」은 매 3년마다 6월 첫 주일에 성 피에르(St. Pierre) 교회에서 모인 시민들 앞에서 낭독되어야 했고, 여기에 모인 시민들은 손을 들어 시장의 참석 하 하나님 앞에서 성실히 지킬 것, 교회규례에 가감하지 않을 것을 엄숙히 선서하였다.
역사적 의의
법학 학위(Lizentiat)를 가진 칼빈의 교회법은 중세의 거창한 교회법을 거부한 종교개혁이 이룩한 일종의 개신교 교회법의 근간 내지는 기본(Grundbuch des evangelischen Kirchenrechts)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칼빈은 순전히 복음에 입각하여 신학적으로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교회가 어떻게 이끌어져야 하는지를 제시하였다. 물론 이 교회법은 그가 이미 이룩한 「기독교강요」(1536, 1539)의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칼빈의 슈트라스부르크 시절의 도전 내지는 종교개혁자 마르틴 부쳐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통찰력으로 재편된 신학적 열매임을 또한 부정하지 않으며, 개혁교회의 교리문답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준 1545년에 나온 칼빈의 「제네바 교리문답」 역시 슈트라스부르크 시절과의 상관성 속에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1563년에 나온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도 칼빈의 「제네바 교리문답」의 연장선에서 물론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이 교회법에서 칼빈이 그리스도의 삼 중직인 선지자, 제사장, 왕의 직분을 교황직을 통해 하나의 손 안에서 통합하려는 교황의 요청을 거부하며, 가장 큰 사역의 공간을 차지하는 하나님의 말씀 사역자로서 말씀선포와 성찬집례를 할 뿐 아니라, 성도들에게 개인적 권면과 치리를 해야 하는 사도와 밀접한 상관성을 갖는 목사를 선두로, 학교교육의 영역에서 성경해석과 건강한 교리교육을 감당하는 선지자의 직분과 상관성을 갖는 박사, 부쳐처럼 목사와 더불어 당회를 구성하여 교회치리의 역할을 담당하는 장로,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물질로 섬기며 보이는 교회를 구체화하는 집사로 이루어지는 교회의 네 직분을 신약에 근거하여 새로운 통찰력으로 제시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그리스도는 모든 교회직분의 모델이 되지만, 엄격하게는 교회의 직분들과 그리스도는 구별이 됨을 보여주고 있다. 칼빈은 삼 중직의 선지자직을 목사와 박사(교사)로 나누어 쪼개었을 뿐 아니라, 보다 그 역할을 세분화하였는데, 이를 서구에서 대의민주주의를 발전시킨 현대적 개념의 보다 앞선 ‘칼빈적 민주화’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 그 역할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칼빈의 네 직분은 역사적 전개 과정을 보이는데, 1536년 「기독교강요」 초판에서 목사와 집사를 언급하며, 1537년에는 순전히 감독과 말씀의 종으로서의 목사를 언급할 뿐이었다. 그러다 1541년 칼빈이 제네바에서 돌아온 후 일주일 만인 1541년 11월 20일 의회에 제출된 「제네바교회법」에서는 네 직분이 너무도 선명하게 제시되게 되는데, 이는 칼빈의 슈트라스부르크의 체류가 전환점을 가져왔음을 인정하게 된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슈트라스부르크의 종교개혁자 부쳐의 입장이 칼빈에게 영향을 주어 반영된 결과라는 점이다.
교회치리
일종의 ‘마녀사냥’으로 오랜 시간 중세교회에서 남용되었던 교회재판을 통한 출교(Exkommunicatio)는 이제 돌아와 오직 복음에 입각한 새로운 모습을 갖게 되었다. 다른 표현으론 어떻게 교회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규명하는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자유의 법’을 칼빈은 「기독교강요」 초판에서 이미 제시하였다. 역사적으로 어떤 동기로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치리 규범을 새로이 마련해야만 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중세교회의 강력한 로마제국 통치가 무너진 후, 일반적으로 세속정부가 그 역할을 떠맡게 되었을 때, 십계명에 해당하는 종교적 분야, 또는 개인적 도덕적 영역을 다루는 일을 규정하는 일은 보통 쉽지가 않았고 어려움과 혼돈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특히 칼빈이 거주하는 제네바에는 당회도, 출교도 없어 말 그대로 여간 어렵지 않은 상태에 이를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칼빈은 순전히 교회공동체를 위해 교회법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국가와 교회를 혼합하는 식의 신정정치(theocrasy)를 칼빈은 결코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도리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교회공동체를 이전의 혼합상태에서 분리하여 이제는 순수하게 보존하여, 본래의 모습 내지는 크리스천공동체의 정체성을 구현하고자 함에 그 의도가 있었다. 그럼에도 교회와 정치는 긴밀한 상관관계에 있음을 칼빈은 분명히 제시하였다. 결코 교회에 무관한 정치, 정치에 무관한 교회가 아니라는 점이다.
「제네바 교회법」
1) 형식 분석
칼빈이 형성한 제네바 교회의 교회법(1561)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제1부는 네 직분(Die vier Aemter)을 다루며, 제2부는 교회생활의 규례(Verordnungen ueber das kirchliches Leben)를 제시한다. 1541년 처음 교회법이 만들어진 이래 “보완되어, 존경하는 시장들과 소 의회, 대 의회 그리고 일반 시민대회를 통해 1561년 11월 13일 추인되었음”을, 또한 “우리 주님의 거룩한 복음의 교리를 순수하게 존중된 너무도 중요한 것”으로 인정되었음을 서두에 제시한다. 그래서 각자가 직분을 부여받은 대로 지체로서 장래 청소년 신앙교육과 가난한 자들을 위한 기관을 잘 운영하는데 잘 활용될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
제1부에서 네 직분은 목사, 박사, 장로 그리고 집사의 순으로 열거된다.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목사는 약 6쪽에 걸쳐 서술되며, 박사는 1/2쪽, 장로는 1쪽 그리고 집사는 2쪽으로 그려지고 있다. 목사 다음으로 집사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목사는 소명과 역할규례로 둘로 구분하여 서술하는데, 소명은 시험, 목사 자격에 관하여, 안수, 서원을 다루며, 역할규례는 공동의 성경공부, 목사의 치리집행, 목사의 심방을 목적과 심방의 종류, 제네바 시교회의 설교계획을 다룬다. 두 번째 ‘지위’(Stand)로 언급하는 박사와 세 번째 지위로 다루는 당회 구성원인 장로는 세부 주제를 제시하지 않은 채 목사와 비교할 때 훨씬 간략하게 서술된다. 교회의 지도를 위한 네 번째 지위에 속하는 집사는
집사의 임무와 선출, 사회봉사기관과 도시빈민, 구걸금지로 나누어 묘사한다.
제2부는 10가지로 나누어 교회생활의 규례를 제시한다. 성례에 관해(1/2쪽), 성찬에 관해(1/2쪽), 찬송에 관해(1/4쪽), 혼인 서약에 관해(1/3쪽), 장례에 관해(1/3쪽), 병자 방문에 관해(1/3쪽), 갇힌 자 방문에 관해(1/4쪽), 성찬참여 허락과 교회치리에 관해(4+1/3쪽), 1560년 11월 9일 대의회가 확정한 이전 장로 선출 규례와 성찬참여 금지에 대한 설명(2+1/4쪽), 본 교회법의 시행에 관해(1/3쪽)를 제시한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제네바 교회법」이 성찬을 중심으로 한 교회치리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점인데, 이런 맥락에서 「제네바교회법」은 일종의 실질적 성찬규례로도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2) 내용 분석
교회의 네 직분은 주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이끌기 위해 만드신 네 개의 과업영역이라고 정의한다. “먼저는 목사들을(les Pasteurs), 그 다음 박사들을(les Docteurs), 그런 후 장로들을(les Anciens) 그리고 네 번째로 집사들을(Diacres)” 만드셨는데, “우리가 역시 질서가 잘 잡히고 온전한 교회를 갖기를 원하면, 그들 리더십의 이 모습을 견고히 붙들어야만 할 것이다.”고 강조한다.
-목사
선견자, 장로, 말씀의 종(ministres)으로 성경에 불리는 목사의 직무는 공적 장소에서나 개인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말씀선포는 가르침, 권면, 교훈, 책망으로 구성된다. 목사는 또한 성례를 집례하며, 장로들과 함께 의회가 임명한 자들과 더불어 사랑으로 교훈하는 일을 마땅히 해야 한다. 분명 기억해야 할 것은 세 가지 과정을 거쳐 이 일을 위해 부름 받은 자이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목사고시를 통과한 후, 안수를 받아야 하며, 청빙을 받은 자이어야 한다. 「
제네바교회법」이 객관적 절차인 목사고시를 가장 중요한 절차로 내세우는 것은 중세교회의 성직임명의 부정적인 면을 상기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목사고시는 두 가지 요소로 이뤄지는데, 먼저는 성경에 대한 “좋고 기본적인” 지식을 소유할 뿐 아니라, 백성들의 경건을 위해 과연 그 기독교적 원리를 전하는 능력이 있는지를 시험해야 하고, 그런 후 바울 서신을 근거한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흠이 없을 뿐 아니라 모범된 생활을 하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제네바 교회가 두 번째 부분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점검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목사임직에 대해서는 초대교회의 원리를 “가장 좋은 것”(das beste)으로 인정하며, 성경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 먼저 후보자를 노회가 목사직에 적임자로 받아들인 후, 공개적으로 확인하였을 때, 예배 중 모든 사람들에게 소개하여, 지역교회의 동의를 얻어 목사로 받아들인다. 여기서 목사임직에 있어서 중요하게 제기되는 바는 지역교회의 선거를 통한 동의가 담임목사를 받아들임에 있어서 결정적이라는 점이다. 이는 종교개혁 이전 가부장적 중세교회가 지녔던 감독권 내지는 임명권을 지역교회가 갖게 되어, 전통과의 단절을 보여줄 뿐 아니라 새로운 전환점을 보여주고 있다.
뿐 만 아니라, 교회가 담임목사로 받아들이는 임직식을 행할 때는 이전의 다양한 미신적 관습을 버리고, 한 담임목사가 설명을 하고 권면을 한 후, 주기도를 통해서 새로 임직에 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면 족하다는 것이다. 이 임직식에 제네바의 시장이 참여하여 모든 절차를 확인하고, 임직자의 서원이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특이한 데, 지역교회의 담임목사로서 뿐 아니라, 모든 시민의 합의 하에 세 단계를 거쳐 만들어진 「제네바교회법」에 합치한 목회자로서의 책무를 다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울러 영적 지도자인 목사의 직무가 일상생활 심지어 전쟁, 전염병 그 외에 더 어려운 일 등과 상관없는 전혀 동떨어진 일이 아님을 확인시킨다.
제네바에 속한 모든 목사들은 함께 모여 정규적으로 성경공부에 참여해야 한다. “교리의 순수성과 일치”를 위할 뿐 아니라, 잘못된 성경해석과 이단사설이 틈을 타지 않도록 하는 예방책으로 일종의 근원적 목사 연장교육인 셈이다. 질병과 특별한 이유를 빼 놓고는 결석이 용인되지 않음을 보는데, 매우 엄격하게 제네바에서 정규 목사 성경공부가 실시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성경해석도 목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성경해석을 확인하는 식의 철저함과 꼼꼼함을 잊지 않고 있다. 만약 성경해석에 있어 일치를 보지 못하는 경우, 소정의 절차를 거쳐 일치를 보아야만 한다.
게다가 교회치리 규례와 교회방문 규례를 목사가 바로 인식하도록 한다. 제네바 성시화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진행되었는지를 인식할 수 있는 중요 대목이다. 목사에게 있어 교회치리는 목사직의 존엄을 유지시킬 뿐 아니라, 무고한 자를 악으로부터 지키는 행위로 이해한다. 교회치리를 통해 목사가 처벌 범죄(Straftaten)를 간과하거나 용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실수(Fehlverhalten)는 형제애를 가지고 그들을 권면해야 한다. 처벌을 해야 하는 행위들에는 이단, 분열, 교회법 부정, 공개적 하나님 모독, 성직매매, 자리를 놓고 벌이는 부정부패, 허락 내지는 정당한 부름 없이 교회를 떠나는 행위, 위조, 거짓 맹세, 무례, 절도, 술 취함, 처벌에 해당하는 수위의 폭력, 고리대금업자, 법에 금하는 오락, 춤과 유사한 탈선, 시민의 명예를 훼손하는 범죄, 출교에 해당하는 범죄 등이다.
그렇지만 형제애를 가지고 권면할 수 있는 실수들은 다음과 같다. 논란을 일으킨 인위적 성경해석, 쓸데없는 질문으로 불러일으킨 점잖지 못한 몰두, 교회 내에서 별난 교리나 관습에 동의하는 일, 성경공부와 성경읽기를 소홀이 함, 법적인 잘못에 무관심한 태도, 직무태만, 어릿광대짓, 사기, 험담, 단정하지 못한 대화, 명예를 훼손하는 대화, 경솔함, 간계한 놀이, 탐욕과 도를 넘는 인색함, 분노의 격발, 다툼과 투쟁벽, 종들이 싫어하는 조롱행위 등이다. 만약 목사 자신이 처벌을 받아야 하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정당한 벌을 의회를 통해 주어져야 할 뿐 아니라, 목사직에서 떠나게 해야 한다. 먼저 교회 당회를 통해야 하며, 의회에 의해 위임받은 자들이나 목사들과 함께하는 장로들의 회의를 통해서 정당하고 신중한 조사와 절차가 이뤄져, 최종적 처벌은 의회에서 결정된다.
과연 이런 복잡한 절차를 통해 교회재판이 행해질 경우 최종 판결에 이르기 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일임을 확인하게 될 때, 제네바교회의 처벌이 매우 신중했음을 인식하게 된다. 물론 제네바교회의 치리가 엄격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매우 합리적인 법적 절차를 통해 교회치리가 행해졌음을 인식할 때 일반적으로 있을 수 있는 우려는 감소된다. 그럼에도 문제는 일반 법정이 충분히 다룰 수 있는 범죄를 교회에서 다루고 있는 점은 역사적으로 전환기의 혼재상황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교회치리의 대상이 꼭 영적인 일에만 해당되지 않고 보다 포괄적임을 보여준다.
제네바 의회에서 그리고 담임목사 측에서 각 두 사람씩 참여하여 일 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교회방문(시찰)의 최우선적 목적은 결코 법적 심의나 그 어떤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결코 아니고, 발생한 교회문제를 치유함에 그리고 목사가 제대로 직분을 수행하도록 함에 있다. 교회방문이 끝났을 때 목사모임에서 보고를 해야 하며, 형제의 실수나 부족함이 발견되었을 때 사랑에 의한 조언을 하나, 조금은 심각한 도를 넘는 문제가 나타났을 때는 방문한 네 명의 보고를 따라 그에 상응한 조처를 취하게 된다.
그런 맥락에서 네 가지 확인점이 제시된다. 하나, 지역교회의 담임목사가 그 어떤 다른 새 교리를 주장하여 복음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있지 않은 지를 확인한다. 둘째, 지역교회의 담임목사가 교회공동체의 경건을 위해 제대로 설교를 하며, 가르침에 있어서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너무 엄격하거나 유사한 실수를 범하여 교회공동체에서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은지 확인한다. 셋째, 목사의 설교를 성실히 듣고 그 말씀대로 열심히 실천하는지 확인한다. 교인들로 하여금 목사직의 고귀함을 바로 인식하도록 함도 목적이다. 넷째, 목사의 설교, 병든 자 심방, 권면 등의 사역에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치중하는지 확인한다. 곧 목사가 거룩한 생활을 영위하며 스스로가 성도들의 모범이 되고 있는지 주목한다.
제네바 시에 위치한 세 개 교회(St. Pierre, St. Gervais, Madeleine)의 설교계획(Predigtplan der Stadtgemeinde Genf)이 교회법에서 제시되는데, 설교 횟수, 장소, 시각이 사정을 고려하여 확정된다. 주일 이른 아침 설교는 St. Pierre와 St. Gervais 교회에서 행해지며, 일반적인 시간에는 세 개 교회에서 설교가 있다. 주일 정각 12시에는 교리문답 공부시간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위해 세 개 교회에서 함께 시행되며, 주일 오후 3시에 교리문답 공부가 세 개 교회에서 함께 행해진다. 평일에도 세 개 교회가 다 같은 시간에 설교가 시행되는데, 부활절부터 10월 1일까지 여름에는 6시에서 7시까지, 그 외 겨울철에는 7시부터 8시까지 시행된다. 특히 수요일은 기도의 날로 정함이 타당한데, 이보다 더 늦지 않도록 함이 좋다. 그 외 이른 아침 시행되는 설교는 St. Pierre 교회에서 일주일에 세 번 월, 수, 금 시행되고, St. Gervais 교회에서는 수요일에 시행된다.
-박사
‘선생의 직’(l' Ordre des escoles)이라 명명되는 교회의 두 번째 직분인 박사의 고유의 과업은, 신자들이 복음의 순수성을 바로 인식하여 신앙적 무지나 잘못된 교리에 넘어가지 않도록, 거룩한 교리를 가르침에 있다. 박사는 목사의 직분과 교회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의 신구약 성경공부를 위시한 신학교육에 긴밀한 유대관계를 갖는데, 무엇보다도 언어훈련과 보편적 신학지식을 소유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박사의 과업은 교회지도자 및 정치지도자를 사전에 준비하게 하는 과정으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부터 학생들에게도 교육할 수 있는데, 학교규례에 따라야 한다. 박사에 대해 제네바교회법은 상대적으로 제일 적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장로
공동의회로부터 당회원(consistoire)으로 허락되는 교회의 세 번째 직분인 장로의 과업은 생활에 있어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잘못을 행하고 무질서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가지고 권면하는 것이다. 필요할 경우 장로는 회중 앞에서 공개적인 권면을 할 수 있다. 작은 교회공동체는 2명을, 60명의 회중에서는 4명을, 보다 큰 회중은 6명의 장로를 선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로의 자격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규모 있는 생활을 하고, 무흠하며, 어떤 오해도 받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영적 지혜를 소유한 자여야 한다. 당회원 서약(serment)을 보면, 장로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의 개혁”(l'honneur de Dieu et a la reformation de l'Evangele)을 위하여 모든 우상숭배, 하나님 모독행위에 앞장설 것을 맹세한다. 장로는 자신이 과업으로 얻은 바를 당회에 마땅히 알려야 하며, 공과 사를 떠나 제네바의 질서가 잡히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도록 신실히 책임을 다해야 한다. 장로의 과업은 교회법, 소회, 대회, 게다가 제네바시민의회 규례까지를 신실함으로 이행하는 자여야 한다.
-집사
「제네바교회법」은 ‘집사의 과업과 선출’에서 두 종류의 집사를 소개하며 언급한다. 두 종류의 집사란 초대교회의 전통에 근거한,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위해 필요한 재원을 모금하고 분배하며, 관리하는 일과 매일 들어오는 자선, 재산들, 이자 그리고 집세를 관리하는 집사, 그리고 병든 자를 돌보며 가난한 자를 직접적으로 먹이는 일을 담당하는 집사이다. 그 중 양로원이나 자선기관에 봉사하는 집사는 보다 효과적으로 이 일에 집중하기 위해 임금을 받도록 한다. 그러니까 집사의 업무에 필요한 재원은 바로 관리되어야 할 뿐 아니라, 목적에 맞게 바로 사용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제네바 시는 공공 사회제도를 통해 병든 자,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노인들, 과부들, 고아들, 그 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의 편에 섰다. 병든 자들은 한 곳에 모여 치료를 받도록 하며, 도시에 사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제공했다. 게다가 낯선 이방인들에게 거처, 공간, 그리고 도움이 필요할 경우 특별한 차원의 보호를 제공하는 일을 힘썼다.
제네바는 이방인들이 거쳐할 집으로는 품위를 잃지 않고 말씀에 입각한 거룩한 생활을 유지하는 집사의 가정에 거하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딤전3:8-13). 담임목사들, 의회 책임자들, 장로들은 책임을 맡은 시장과 함께 이러한 봉사의 일들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3개월 간격으로 정규적으로 자선시설을 방문하여 확인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시설에 거하는 가난한 자들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위해 시 재정으로 의사 또는 외과 의사를 고용하는 것을 구정하고 있다. 교육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시설에 거할 경우 교사도 배치하는데, 일반교육과 더불어 신앙교육도 목적으로 한다. 철저하게 구걸을 못하게 조치를 취하되, 그래도 구걸을 하는 자들은 시장 앞에 불려가야 하며, 이후로는 더 이상 구걸할 수 없도록 감독을 받게 하였다.
교회생활 규례
제네바교회법의 제2부는 교회생활에 대한 규례를 매우 실질적으로, 곧 성도의 교회적 생활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1) 성례에 관하여
세례는 설교시간에 행해져야하고, 단지 목사에 의해 베풀어짐이 타당하다. 혹시 낯선 사람이 세례 대부(d' instruire les enfans)가 되는 경우 신앙공동체에 속한 믿는 자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책벌로 인해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자는 해벌될 때까지 세례 대부가 될 수 없다. 세례대부는 세례 받는 아이를 소정의 절차에 의해 가르칠 것을 교회에서 서약함으로 성립된다.
2) 성찬에 관하여
우리 주님이 세우신 성찬은 당시 제네바 교회가 시행하는 것보다 더 빈번히 행해짐이 타당하다. 어쩌다 드문드문 시행되는 성찬은 고로 수정되어야 할 하나의 폐해(un defaut)이다. 최소한 일 년에 4회 성탄절, 부활절, 오순절, 그리고 가을 들어 9월 첫 주일에 시행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목사가 규례에 따라 경외심을 갖고 성찬의 빵과 잔을 분배함이 마땅하고 다른 사람은 하지 않음이 원칙이나, 공동의회의 위탁을 받은 자나 집사도 참여할 수 있다. 준비된 성찬대는 설교단 가까이 위치하여 목사의 집례가 보다 편하고 쉽게 되도록 함이 바람직하다. 성찬식이 행해지는 장소는 “절대적으로 교회당 안에서”(ausschliesslich in der Kirche) 행해져야 할 것을 명기하고 있는데, 중세교회의 사적 성찬식을 금하는 것으로 본다. 사전에 성찬이 행해질 것을 미리 광고로 알려야할 것이며, 어린 아이는 교리문답교육이 종료되기 전까지는 참여해서는 안 된다.
3) 찬송에 관하여
찬송은 설교 전후에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간구를 보다 힘 있게 불려진다. 먼저 학생들이 찬송을 배워 부르다가 전 회중이 함께 부를 수 있도록 한다.
4) 혼인축복에 관하여
사전 광고가 있은 후 혼인축복은 교회회중 앞에서 이뤄지는데, 주일이든 평일이든 설교 순서 앞서서 행해지되, 성찬식이 행해지는 주일에는 성찬의 존엄을 생각해서 피함이 마땅하다. 부부싸움은 영적 일이 아니기에 국가규례를 따라 시의회가 다룬다. 그럼에도 의회가 당회에 일임하였을 경우 이를 다뤄 의회에 입장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좋은 혼인법을 따라 질서를 지킴이 바람직하다.
5) 장례에 관하여
죽은 자는 상당한 존경을 갖고 예정된 장소에 매장하여야 할 것이다. 장례행렬은 개인의 판단에 따라 행해지되,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미신적 습성을 따라 해서는 안 된다. 죽은 자의 매장은 빨라도 12시간 이후에 늦어도 24시간 이전에 이뤄져야 한다. 물론 시의회에 통보해야 한다.
6) 병든 자 방문에 관하여
늦어도 병든 자들이 병상에 누운 지 삼일 안에 교회 목사에게 알려야 하여 목사의 심방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의 위로를 얻도록 해야 한다. 결코 복음의 약속과 교리를 듣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일이 없어야 한다.
7) 옥에 갇힌 자 방문에 관하여
주 중 하루를 정해서 옥에 갇힌 자들과 함께 모여 마땅히 위로와 권면을 하되, 의회원이 함께 참여하도록 하여 혹시 있을 수도 있는 불상사를 방지함이 좋다. 독방에 갇힌 죄수에게는 의회의 허락을 받아 목사가 그가 있는 방으로 가서 위로의 말씀을 전하도록 한다. 사형집행은 토요일 오후에 행한다.
8) 성찬참여 허용과 교회치리에 관하여
8.1) 어린이를 위한 규례에서 「제네바교회법」은 제네바의 모든 아이들은 주일 오전 12시에 신앙교리문답 교육에 참여케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신앙교육이 완료되고 교회 앞에서 공적으로 독자적 신앙인으로서 고백이 이뤄졌을 때, 4주 후 성찬에 참여를 허용한다. 그렇지 않고선 어린이에게 성찬참여를 엄격히 금한다. 곧 바른 신앙과 성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는 것이 성찬참여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신앙교육은 일반 학교선생이 학생들을 소정의 과정에 따라 각 교회에 가서 신앙교육을 받도록 이끌어준다. 이 “의무”를 어기거나 거부할 때 제네바교회는 장로회나 의회를 통해 조치를 취했다.
8.2) 교회의 좋은 질서 유지를 위한 성인을 위한 규례는 가정방문, 장로의 임무와 권한, 장로들과 위임받은 자들의 권면이 누구에게 어떻게 행해져야 하는지를 언급한다. 가정방문이 행해져야 하는 가장 앞선 이유는 성인들의 신앙교육에 있다. 중세 교황시대 어린이 신앙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에 성인들이 신앙에의 무지, 성찬의미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신앙교육에는 노예, 여종, 이방인을 묻지 않고 성찬에 참여를 하기 위해선 마땅히 행해져야 한다. 부활절 성찬식 전에 당회원인 장로가 함께 동참한 가운데 가정방문 신앙교육이 이뤄지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긴다. 장로의 과업과 권한은 공동의회의 위임을 받은 자들이 매주 목요일에 목사들과 함께 교회가 여러 면에서 제대로 되어 가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필요할 경우 권면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장로는 그 어떤 법적 권한을 행사한다거나 행정적 조치를 취할 수 없기에 의회에 보고하여, 필요할 경우 공무원에게 알려 타당한 조치를 취하면 된다. 장로 또는 공동의회로부터 위임을 받은 자들은 기존 교리를 공격하거나 교회법을 위반하는 자들을 권면해서 변화되기를 바라지만, 다른 교인들에게 악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주시해야 할 것이다. 급기야는 성찬에 참여하는 것을 금하며, 공동의회에 보고를 해야 한다. 만약 교회출석을 소홀히 하는 자들은 성도의 교제(la communion des fideles)를 정식으로 무시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할 뿐 아니라(muss), 교회법을 경멸하는 자로 간주하여 경고를 해야 한다. 경고를 받고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는 순종을 할 때는 공동체가 사랑으로 그를 받아들여야 마땅하지만, 세 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개전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더욱 나빠질 경우, 공동체로부터 제거하고, 의회에 알려야 한다. 은밀한 잘못은 은밀한 가운데 책망할 것이지만, 도리어 여러 절차를 통해서도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을 땐 교회 앞에 알려 성찬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여야 한다. 단순한 실수일 경우 장로나 공동의회로부터 위임 받은 자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권면하여 바르게 하도록 할 것이다.
만약 동일한 잘못을 할 경우, 다시 권면을 함이 타당하나, 그래도 변화가 없을 땐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로 간주하여 개전의 정이 보일 때까지 성찬참여를 금지시킨다. 권면 뿐 아니라, 상당한 법적 처벌이 요구되는 경우,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때까지 일정 기간 성찬참여를 허락할 수 없다. 성찬에 대한 혼자의 판단에 의해 잘못된 기준에 의해 성찬을 모독하는 자(1557년 11월 12일 결정), 또는 성찬참여를 오랫동안 하지 않은 자는 성도의 거룩한 교제를 멀리하는 자로서 당회는 절차를 따라 과업을 이행해야 한다. 만약 미워하는 원수때문이면 그 상대방과 화해하도록 이끌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유로 6개월 이상 성찬에 불참할 경우, 그리고 다른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질 않을 경우, 공동의회에 보고하여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는 자로 간주하여 1년 동안 제네바 시로부터 추방하도록 함이 옳다. 특별히 여기에서는 신학적 이유, “le scandale”(scandalon: 스캔들)로 성찬에 불참하는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이해한다.
9.1) 장로 선출에 관하여 「제네바교회법」은 첨부된 부록에서 세속정권과 교회의 감독권을 혼돈의 지난 기간을 거친 후 비로소 성경에 근거하여 분명하게 명시한다. “성경은 그러나 한 면으로 정부의 칼과 권위, 다른 면으로 교회의 감독권 사이를 우리에게 구별할 것을 가르친다. 교회의 감독권이란 진정한 예배를 유지하며, 신학적 오류를 예방하며, 멀리하고자 모든 성도들이 순종하여야 할 것이다. ...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통치권과 정부,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서 행사하라고 명령하신 영적 다스림은 나누어질 수 없이 서로 긴밀한 관계에 있다. 그럼에도 이 둘이 서로 잘못 섞여져서는 안 된다.”
비교와 해석
1541년 슈트라스부르크에서 제네바에 다시 돌아온 32세의 혈기왕성한 젊은 칼빈이 제네바 성시화를 위해 제시했던 「제네바교회법」은 과연 실질적으로 어떤 점에서 영향력을 미쳤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칼빈이 1536년 「기독교강요」를 집필하고, 처음 제네바에 도착한 지 1년이 되는 해 1537년 「기독교강요」의 요약으로서 정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동시에 제네바교회를 염두에 둔 「신앙의 가르침」(Instruction in Faith)을 대략 30쪽 분량의 결코 두껍지 않게 선배 동역자 파렐(G. Farel)의 권유에 의해 현장중심적인 저술을 간단명료하게 세상에 내어놓았는데, 이것과 비교할 때도 전혀 다르게 더욱 실질적으로 제네바교회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규례를 내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제네바의 개혁을 목적으로 한 칼빈의 의지와 열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초대교회와 교부들의 사상에 근거를 둔 슈트라스부르크의 종교개혁자 부쳐의 교회개혁 내지는 그의 실질적 교회법에 힘입은 바 크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마르틴 부쳐는 독일 헤센(Hessen) 주의 교회법, 독일 울름(Ulm)의 교회법(Ulmer Kirchenordnung, 1528-1533) 등을 중세교회법과는 차별화하면서 주도적으로 만든 교회법 전문 종교개혁자이었다. 과연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돌아온 칼빈은 자신의 이 교회법(1541년)을 통해, 몇 년 전 나름대로 실질성을 가미한 역시 자신의 「신앙의 가르침」(1537년)과 비교할 때도, 어떤 점에서 더욱 실질적으로 제네바를 거룩한 도시로 개혁하려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부쳐의 「울름교회법」과 비교할 때 「제네바교회법」은 훨씬 양에 있어서 축소되었고, 간결한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첫째, 슈트라스부르크 이민자 교회에서의 경험의 반영이며, 둘째, 간단(simplicity) 명료성(clarity)을 추구했던 칼빈의 정신과 추구가 반영된 결과이며, 셋째, 부쳐의 교회법의 요약(summery)의 성격도 제시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 「제네바교회법」의 추구에 대해 몇 가지로 종합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이전까지 기독교강요와 신앙의 가르침을 통해 이론적으로 중세교회와 교리적 차별화에 중점을 두었던 칼빈은 이제 종교개혁 교회의 실현에 매우 구체적으로 그 실천적 노하우를 제시함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실질적 행동하는 개혁자(acting reformer)로서 거듭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른 말로 자신의 교리적 이해에 부쳐를 통해 확신과 자신감을 가진 칼빈은 이제 그 교리와 신학의 실천에 중점을 두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리에 대한 언급은 생략되고 있는데, 칼빈이 이미 제네바에서 앞서 발표한 「기독교강요」와 「신앙의 가르침」에 제시된 교리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말씀의 종”(diener des worts), 또는 “교회의 종”(kirchendiener)으로서 교회의 네 직분에 집중하고 강조점을 둠으로써 종교개혁의 실현에 있어 교회의 성경적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칼빈은 슈트라스부르크의 체류를 통해 실감하였음을 보여주는데, 특히 부쳐의 네 직분론(설교자, 목회자, 돕는 직, 시험관)을 칼빈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로도 부쳐야말로 칼빈의 탁월한 멘토(mentor)로 인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칼빈에게 등장하는 박사(교사)의 역할은, 부쳐가 말하는 “시험관”(examinator)에 비교할 수 있지만, 칼빈의 기술이 상대적으로 너무 적은 양으로 목사의 역할과 구별하면서 바른 교리의 정립과 신학생의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셋째, 칼빈에게 있어서 목사는 지역교회의 영적 지도자이면서 동시에 자기가 속한 사회의 지도자로서 “좋은 역할 모델”로서 인식되고 있는데, 제네바 세속정부 역시 이 점에서 목사를 파트너로 삼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을 주목할 때, 한국교회의 성직을 향한 인식의 협소성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물론 칼빈은 교회의 역할과 정부의 역할에 확실한 구별을 시도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동역자(partner)의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넷째, 지역의 목사들이 정규적으로 함께 모여, 교리의 순수성과 일치를 위해 그리고 이단사설이 틈을 타지 않도록, 성경공부를 매우 엄격하게 실시하였다는 사실은 프로그램 위주의 현대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곧 텍스트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전제되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한국교회는 우선적으로 목사 정규성경모임을 실시하는 교회여야 할 것을 가르친다. 이로써 한국교회를 어렵게 하는 이단문제 해결뿐 아니라, 성경의 해석으로서의 진정한 바른 설교도 더욱 풍성해질 것을 기대한다.
다섯째, 제네바교회의 치리가 법적 처벌이 집행될 수 있는 범죄와 장로의 권면으로 족한 실수 등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나열된 죄 종류가 어떤 기준에 의해 법적 처벌로 옮겨지고, 권면 수준에 머무르게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궁금하다. 게다가 「울름교회법」이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여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는 거룩한 부부(Von der hailgen Eh, 248-250), 부부의무(Von Ehverpflichtung, 265-267), 간음(Von Ehbruch, 262-263), 이혼(Von Ehschaiden, 262-263; Der Ehschaidung halb, 267), 혼전임신(Der Kinder guets halb, uss voriger Eh geporn, 269) 등에 대한 언급이 제네바교회법에 보이지 않음은 그 배경이 궁금하다.
여섯째, 「제네바교회법」이 두 종류의 집사를 소개하는데, 재원을 모금하고 관리하는 집사와 그것을 가난한 자, 병든 자, 고아, 이방인을 대상으로 양로원이나 자선기관에서 재물을 집행하는 유급 집사이다. 특히 유급집사는 한국교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데, 사회봉사를 긴급히 요구되는 한국교회에서 고려해볼 만 제도이라 생각한다. 물론 독일에서는 교회차원에서 이런 유급집사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어쨌든 당시 제네바교회는 구체적이며 조직적인 사회봉사실천에 힘을 기우렸음을 확인하게 한다.
일곱째, 예외 없이 실시되는 주일학교 어린이교육은 전적으로 성찬참여를 위한 교육이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성찬식을 중하게 여겼음을 인식하게 한다. 성찬참여의 중요한 기준은 신앙교육을 이수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의 여하에 달려있음을 확인할 때, 나이를 떠나 매우 실질적 신앙교육이 강조되었음을 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네바교회가 성찬식을 매우 중요한 교회의식으로 보다 포괄적으로 성도의 삶과의 관계에서 간주했다는 점이다. 강조하여 말하면, 「제네바교회법」은 성찬규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의미를 보이는 복음인 성찬에 두고 있다. 이 역시 한국교회에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여덟째, 「제네바교회법」은 세속정부의 “칼과 권위”를 통한 통치와 교회의 영적 다스림과 분명하게 구별하면서도 서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둘이 서로 잘못 섞여져서는 안 된다.”는 점도 첨언한다. 이것은 한국교회에게 두 가지를 시사하는 데, 전혀 구별이 없이 혼동되고 있는 교회의 사회참여 내지는 정치참여에 나름대로의 지침을 주며, 역으로 전혀 사회적, 정치적 인식이 전무한 가운데 의식이 현실에 대한 의식이 없는 무감각한 교회에게 새로운 생각을 일깨운다.
맺는 말
칼빈의 교회법에는 그가 앞서 받은 부쳐의 영향과 나름대로의 이해, 해석이 분명하게 보이며, 그러면서도 그의 독특성(originality)이 종교개혁에의 실천적 의지와 함께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의 「기독교강요」와 「신앙의 가르침」은 종교개혁의 이론적 의지를 보인다면, 칼빈의 이 교회법은 제네바를 말씀의 도시로 구체화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규례, 곧 교회의 네 직분을 통해, 성찬의 규례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성찬을 향한 규례는 성도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을 매우 치밀한 상관성 속에서 보여준다. 성찬의 의미를 왜곡하고, 또는 성찬을 소홀히 여기는 교회에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신학적 근거가 있는 강력한 성도의 삶, 성화를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칼빈은 신학적으로 근거를 갖는 제네바의 성시화를 추구한 반면, 그저 윤리적으로만 성도의 변화를 요청하는 교회는 힘이 없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21세기 한국교회와 여러 면에서 당시 16세기 제네바의 상황이 다른 것을 전제하면서도, 많은 면에서 오늘의 한국교회에 시사하고 교훈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 마디로 칼빈에게는 복음의 실천과 구체화라는 관점에서 심혈을 기우렸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한국교회는 두 가지 점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인데, 첫째는 교회를 성찬식을 겨냥하여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세상과 구별하여 선택받은 성도들의 모임으로 교육하고 영적으로 성장하게 하는 일로, 교회 스스로 내적 강화가 요구된다. 둘째는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소통하는 일인데, 단지 복음전파만을 생각하는 좁은 의미의 선교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랑과 봉사 그리고 섬김의 대상으로 역동적인 관계를 유지할 것을 요청한다. 특히 유급집사 제도, 성찬규례의 엄격성, 영적 통치와 세상적 통치의 상관성 내지는 파트너십 등은 오늘 한국교회가 칼빈 500주년을 맞으며 보다 신학화되고, 개혁적이어야 하며, 전문화할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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