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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누가복음 23:34),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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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 삶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의 척도는 용서입니다. 하나님이 용서를 통해 사랑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내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내게 행한 것 때문에 원망스러우십니까? 겉으로나 속으로나 사람들에게 종종 화를 내십니까? 사람들의 등 뒤에서 그들을 욕합니까? 이것은 옛사람의 삶의 방식에 해당합니다. 다른 사람을 살아하고 용서하려면 그런 삶의 태도를 온전히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본보기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셨습니다(벧전 2:23). 사람들은 예수님께 침을 뱉고, 그분의 수염을 잡아 뜯고, 머리에 가시관을 눌러 씌우고, 손과 발에 못을 박아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누군가가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아마도 그는 복수심이 활활 불타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는 분이시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고문하는 이들을 지옥의 불 속에 처넣을 수 있는 권세를 지니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의 처형을 하는 그들에게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 하시며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참된 용서는 무조건적입니다. 내가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용서해 줄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용서는 내가 얼마나 많이 용서받았는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복수하려는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악을 선으로 갚는 사람입니다(6:27). 참된 용서는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축복할 때 증명됩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자신이 상처를 입은 사람입니다. 향나무는 찍어도 상처를 주어도 향기를 냅니다. 그 안에 향기를 품었기 때문입니다. 참된 용서를 하려면 먼저 내가 하나님께 용서받은 것을 생각하고 복수하려는 권리를 포기하고, 악을 선으로 대함을 반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그 사람을 용서합니다라고 기도하지만 금방 또 미워집니다. 그리고 또 용서를 반복합니다. 미움은 자꾸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이때 다시 기도하라. 하나님 그 사람을 다시 용서합니다. 예수님이 일흔번씩 일곱 번 용서하라는 말씀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죄인들 가운데는 그분을 박해했던 이들도 포함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만 구원의 영광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아셨기에 아무런 원망이나 분노나 복수심 없이 모든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고난을 당할 때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부탁하셨기 때문입니다(벧전 2:23).

 

베드로 사도는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고 권고했습니다. 우리도 직장이나 가정, 또는 인간관계에서 부당한 박해를 당할 때는 그렇게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보복하려고 하면 고난이 가져다 줄 축복과 상급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은 정하신 때가 되면 불의한 자들에게는 형벌을 , 고난을 충실히 감당한 자들에게는 상을 각각 베푸시고 모든 상황을 바로 잡아 주십니다. 보복은 하나님의 이러한 능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힘을 달라고 기도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그 문제를 가지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시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더 나아가 그들을 축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곧바로 뒤돌아서서 우리의 혀로 그들을 저주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단지 용서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는 용서에 따라 매이기도 하고, 풀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18:18).

 

그런데 용서가 반드시 관계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관계가 회복된다면 최선의 대안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깨어진 관계가 금방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를 이제 용서해야 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하더라도 그 부분에서 상처받은 감정들이 회복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수가 있습니다. 감정이 바뀌지 않는 한 용서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경계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할 뿐 아니라 나 자신도 용서해야 합니다(요일 1:7,9). 우리에게 잘못한 다른 사람들의 죄를 신속하게 용서해주어야 하듯, 우리 자신들의 죄와 실패, 그리고 연약함도 신속하게 용서해야 합니다(8:1, 고후 5:17). 그렇지 않으면 결국 죄책감과 정죄감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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