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생활 십대 헌장
1. 나는 하나님만이 나의 삶의 주이시며, 성경만이 나의 삶의 오류 없는 기초인 것을 믿습니다.
2. 나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분의 뜻을 찾고, 그 분을 닮아 가는 일에 나의 생의 우선권을 두겠습니다.
3. 나의 육체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전이기에 불의의 도구가 되지 않고 의의 병기가 되도록 할 것입니다.
4. 나의 가정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 분의 뜻대로 사랑하고 순종하며, 용서하는 가정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5. 나는 나의 남편(아내)을 내 생의 유일한 반려자로 알고 영원히 사랑하고 섬기며 나의 자녀들은 주께서 주신 기업이므로 주의 나라를 위하여 키우겠습니다.
6. 나의 행동은 불신자들에게는 빛이 되게 하며 그리스도인의 형제들에게는 걸림이되지 않기 위하여 세상의 어두움과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7. 나의 언어는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같이 하여 항상 복음을 증거하고 형제를 격려하는 마땅히 할 말만 하고저 합니다.
8. 주께서 내게 하락하신 모든 재능, 재물, 건강, 은사, 환경등은 청지기적 신념으로 주님의 선한 뜻을 따라서만 사용하겠습니다.
9. 나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하며 내가 발견한 이 풍성하고 놀라운 사라의 삶을 모든 이웃들에게 전하겠습니다.
10. 나는 성경에서 배우고 받은 그리스도인의 위대한 삶의 원리를 근면하게 인애로서 자신의 삶 속에 적용시키며 실천하겠습니다.
◉ 풍성한 삶을 위한 10대 새 생활
1. 자아 수용의 원리
자아용납, 자아영접, 이런 단어도 가능할 것입니다.
자아 수용의 원리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나 자신과 나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그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것,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일체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새 생활 세미나에서 우리가 정의한 자아 수용의 원리입니다.
시편 139편 14절에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시편 기자는 나를 이렇게 지어주신 하나님 앞에 무한한 경의를 가지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성경에서 봅니다.
계속해서 시 139편 16절에서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내 삶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허락된 삶인 것을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순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순간 우리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지닌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8절에서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이 진리를 말슴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가 낳음을 받은 그 순간부터 거듭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주님의 첫 열매로서 부활의 생병을 지닌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이 시작됨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은 분명한 의미가 있고,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같은 목적과 계획 속에서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성경이 가르칩니다.
2. 권위 순복의 원리
모든 권위는 하나님께로서 오는 것을 알고 주께하듯 모든 권위들에게 순복하여 자신의 위치에 성실하고 충성스럽게 살고자 하는 것, 우리는 이것을 권위 순복의 원리라고 정의합니다. 이 원리의 적용이 없이는 우리의 삶의 모든 장에서 우리의 권위들과 부딪치는 갈등 속에서 영원히 헤어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절에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 이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질서요, 아름다움을 위해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가운데서 허용되는 권위들입니다.
3. 양심 청결의 원리
하나님과 사람을 향하여 모든 거리끼는 느낌들을 원천적으로 그 원인을 발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씻음을 받고, 양심의 해방과 자유를 얻는 것, 하나님을 향해서, 그리고 이웃을 행해서, 자신을 향해서, 우리는 과연 거리낌이 없는가? <양심은 참으로 자유합니다.> 이 자유함 없이는 우리의 삶은 어느 한 순간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그가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에게 이루어진 이 해방의 감격스러운 사실을 그는 어떻게 고백합니까? 롬 8장 1절 이하를 보면 “그러므로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며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또 주께서 허락하신 이 말씀의 원리를 참으로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에서 참으로 자유하게된 이 양심의 청결의 사건이 뇌 속에서 이루어졌는가? 이것이 양심의 청결의 원리입니다.
4. 이웃 사랑의 원리
이웃 사랑의 원리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정의합니까? 이것은 대인 관계에서 주께로부터 받은 제일의 계명으로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으로서의 이웃을 바라보며, 이웃을 섬기는 것을 나의 삶의 최고의 특권으로 여기는 것, 하나님을 향해서는 내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서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웃 사랑의 원리는 바로 이런 대인 관계에 대해서 주님께로부터 우리가 부여 받은 제1의 계명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으로서 인간을 주목하고 그런 인간을 우리의 이웃으로 간주하며, 그 이웃을 섬기는 것을 내 삶의 최고의 특권으로 여기는 것이 자세와 태도의 설정이 없이는 이웃과의 관계는 참으로 자유할 수도 그리고 행복할 수도 없지요. 눅 10장 27절에서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5. 권리 양도의 원리
우리는 모든 권리는 주께로부터 온 것으로 주님만이 모든 것의 주권자이심을 알고 내 모든 권리를 주님께 드려서 나의 권리를 주장하기 보다는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 그 권리를 양도하면서 살고자 하는 것, 모든 권리는 다 주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이 모든 권리를 주정하시는 분은 유일하신 주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권리를 그 분 앞에 참으로 양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권리의 주인이신 그 분의 원하시는대로만 이 권리를 사용하여 이 권리를 가지고 주께서 원하시는 그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하며 살기를 원하는 것, 이것이 바로 권리 양도의 원리입니다.
이 원리가 잘 나타나 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그 이야기가 뭡니까? “파인애플 스토리” 우리가 바로 이런 원리 때문에 마음 속에 거리낌과 갈등이 올 때마다 이 파인애플 스토리를 잊지 마세요. 이 짤막한 스토리는 정말 감동적으로 우리에게 있어서 이 권리를 양도하며 권리릐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얼마나 실감나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여러분! 이 이야기를 보시면서 감동을 받으신적 있습니까? 대단히 감동적인 이야기 입니다. 감동이 없으신 분은 아직 읽어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희 부부는 이따금씩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싸우다가 문제가 생기면 이따금씩 “파” 그럽니다. 그 이야기는 [“파인애플 스토리” 를 기억하라 아내여!] 권리 양도의 원리 대상 29장 11절에 다윗왕의 마지막 고백이지요. 그가 인생의 마지막 최후의 석양에 성전건축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드리고 나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그의 고백입니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그리고 13절, 14절에서 말하기를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바로 이 양도의 위대한 프린스풀을 자기의 전생애를 통해서 배운 이 땅에서의 감동적인 마지막 고백입니다.
6. 고난 극복의 원리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고난 앞에 부딪치게 됩니다. 고난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여하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그 고난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행복을 누리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고난 극복의 원리를 우리의 삶 속에서 적용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 늘 이 고난 속에 억압 당하며, 계속해서 이 불안과 좌절의 심연을 벗어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성도의 모든 고난에는 뜻이 있으며 하나님의 지혜로운 계획 가운데 허용되는 것이므로 고난을 피하려 하지 말고 그 뜻을 찾아서 기쁨과 감사로 인격의 성숙을 가져오게 하는 기회로 삼는 것, 우리는 이것을 고난 극복의 원리로 정의 했습니다.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의 지혜로운 계획 가운데서 주께서는 이 고난을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주께서 나에게 이 고난을 주신 것이라면 이 고난을 피하려고만 하는 것은 성도다운 고난에 대한 접근의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고난을 피하려 하지 말고 오히려 고난 속에서 부여된 하나님의 적극적인 뜻을 찾아서 기쁨과 감사함으로써 내 인격의 성숙을 가져오게 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동안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서 주어진 고난을 어떤 태도로 극복해 오셨습니까? 우린 참 쉽게 잊어버리지죠? 그래서 매년 다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난 극복의 원리, 야고보서 1장 2절에서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4절에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며 구비되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이런 인격으로 삼으시기 위해 우리에게 여러 시험을 허용하신다고 야고보는 이해 했던 것입니다.
7. 도덕적 자유의 원리
풍성하고 아름다운 새 생활을 위해서 반드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될 원리는 [도덕적 자유원리]입니다. 우리는 이 원리를 어떻게 이해 합니까? 유혹과 충동에서의 참된 자유는 욕망이나 욕구를 충족시키기 보다는 그 욕망에 대해서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고 하나님을 향해서만 자신을 응답하도록 스스로를 주께 드리는 것입니다. 현대 심리학에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라 Need는 채워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소리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채울수록 이 욕망은 우리를 더욱더 커다란 욕망으로 우리를 삼키고자 합니다.
현대 심리학의 딜레마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에 관해서 어떻게 가르칩니까?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고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서만 신자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부합되도록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적용되었을 때 우리는 이 도덕적 자유를 비로서 누릴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문제에 관해서 롬 6:13에 가르치고 있습니다. 롬 6장 13절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8. 말씀 적용의 원리
말씀 적용의 원리는 말씀에 대한 많은 지식보다 말씀을 생활에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더 큰 특권과 책임으로 여기며 구체적 삶을 위해 부단하게 말씀을 읽고 연구하며 묵상하여 이 말씀이 활동하도록 하는 것, 우리는 이것을 말씀 적용의 원리 정의하고 싶습니다. 말씀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내가 안 한 구절 말씀을 오늘 생활 속에 구체적으로 적용시키는 것은 얼마나 더 소중한 일이니까?
우리는 이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책임으로 생각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우리는 삶을 위해서 이 말씀을 읽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한국교회는 성경공부 붐이 일어나고 있는데 대단히 다행스런 일로 여기고 있는데 또한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성서의 지식만을 증가시키기 위한 성경공부를 위한 성경공부가 되지 않을까 그런 우려가 때로 마음 속에 일어나곤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성서 연구와 성경을 접근하는 우리의 태도와 헛점이 언제나 우리의 삶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삶을 위해서 이 말씀을 연구하며 묵상하고 있는가? 이것이 말씀적용 원리입니다. 계 1장 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듣는 일도 중요하고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더 중요합니까?
9. 목적 설정의 원리
우리가 이러한 여러 가지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인생의 목적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목적 설정의 원리] 우리는 이 원리를 어떻게 이해 합니까?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야망이나 계획보다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적인 목적을 세워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것을 나의 생의 궁극적인 성공으로 아는 것, 오늘 어떤 현대신학자가 현대교회의 성장학의 대두는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또 이런 비판을 한 것을 읽어본적이 있습니다. 현대교회가 너무 성공 중심의 목회지향적인 현상 때문에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얼마나 그 피곤한 억압속에 쫓기고 시달리고 있는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성공이 참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실이며, 무엇이 성공인가 하는 것이 우리에게 다시 제시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그것은 내 뜻이나 내 계획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내 생애 속에서 이루는 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 목적 설정이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고는 우리는 언제나 피곤한 억압 속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야망을 기대보다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을 세워 그 뜻을 이루는 것을 나는 내 생애의 가장 큰 궁극적인 성공으로 이해 할 수 있는가? 이것이 목적 설정의 원리입니다. 시편 40편 8절에서 시편기자는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 의 심중에 있나이다” 내가 나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 나는 계속 달리는데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피곤합니다. 이것이 현대인의 고백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을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내 심중에 있습니다.”
10. 은사 발견의 원리
주님의 목적을 나의 생 가운데서 실천하기 위해서 주께서 내게 주신 영적인 은사와 부르심이 무엇인가를 이해하여 내가 구체적으로 어던 일로써 평생에 주님을 섬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은사”라는 단어는 ‘카리스마’라는 단어인데 “카다, 조이” 기쁨이라는 어원에서부터 나왔다는 것을 지적한 일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원이 있는데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은사는 나타납니다. 주께서 내게 주신 은사를 발견하여 그 일 가운데 자신을 드릴 때만 참으로 기버하며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 있어서 이 은사 발견의 원리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원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의 목적을 나의 생 가운데 실현하기 위하여 주께서 내게 허락하신 영적인 은사는 무엇이며 부르심은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나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통해서 평생에 주님을 섬길 것인가? 그냥 무조건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일 가운데 나 자신을 드림으로써 내가 구체적으로 주님을 섬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 대단히 중요한 원리입니다. 은사 발견의 원리 고전 12장 11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성령께서는 그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성령의 주권적인 의지를 따라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다고 합니다. 그것은 무엇을 위해 주어집니까? 바울은 다시 에베소서 4장 12절에서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렇게 해서 주님을 섬기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 나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열 가지 원리>가 그동안 우리의 생 속에서 얼마나 잘 적용되어 왔는가를 다시한번 검토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 성공적인 가정형성의 원리 적용
1. 성공적인 인간이 먼저 되십시오.
우리는 언제나 “어떻게”라는 물음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그런 가정 생활을 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는가?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이 생활의 문제에 앞서서 인격의 문제를 강조합니다. 인격의 문제는 생활의 문제를 언제나 앞서 옵니다. 존재의 문제는 행위의 문제보다 언제나 앞서 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성경은 우리의 일을 말하기에 앞서서 사람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성공적인 인격이 되면 그 인격을 통해서 그 생활은 저절로 흘러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활이나 행위를 말하기 전에 먼저 인격과 존재를 좀더 힘주어서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공적인 인간이 되십시오. 그러면서 여기 10가지 사실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방금 전에 공부한 10가지 원리입니다. 이 원리가 내 생활 속에서 참으로 적용되어 나타나는 인격의 결정체 그것을 우리는 성경이 요구하는 성공적인 인간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1) 자아를 수용하십시오.
이 자아 수용의 원리입니다. 기초 세미나의 창조적인 자아 형성 그 부분의 소리가 이 사실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던 것입니다. 다 잊었다면 한 번더 창조적인 자아 형성을 복습해 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권리와 그가 세우신 권위들 앞에서 온전히 순복하십시오. - 권리 순복의 원리
3) 양심의 일체의 갈등에서 자유하십시오. - 양심청결의 원리이죠.
4) 주님이 사랑하신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을 삶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으십시오. - 이웃 사랑의 원리
5) 모든 권리를 주께 드리십시오. - 권리 양도의 원리
6) 원망스런 환경이나 사건을 영적인 성숙의 동기로 삼으십시오. - 고난 극복의 원리
7) 죄 문제에 대한 성령의 지적하심과 인도하심에 민감하십시오. - 도덕적인 자유의 원리
8) 성경의 말씀을 당신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적용하십시오 - 말씀 적용의 원리
9) 하나님의 관점에서 성경의 교훈을 따라 삶의 목적을 세우십시오. - 목적 설정의 원리
10) 받은바 은사와 재능을 최선을 다하여 최선의 방법으로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십시오. -은사 발견의 원리
우리가 지금까지 성공적인 인간이 되십시오 성공적인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성공적인 인간이 되십시오. 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2.성공적인 배우자가 되십시오.
성공적인 남편, 혹은 성공적인 아내, 성공적인 파트너가 되십시오 하는 얘기죠.
1) 당신의 배우자를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람으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십시오.
롬 15:7에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남편은 아내를 변화시키려고 하기보다는 ㄹ있는 그대로 나는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는가? 아니면 나는 지금도 계속해서 남편과 아내를 변화시키는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그래서 나는 더 피곤하고 더 좌절돼 있는 것은 아닌지 .........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람으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십시오.
2) 피차에 복종하십시오.
엡 5:22이하의 말씀, 모든 남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절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그러나 엡 5:21절의 말씀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우리는 그 구절을 읽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사실을 강조하기에 앞서서 성경은 먼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성경은 피차 복종할 것을 강조하면서 남편에게 한 가지씩 부탁하는 장면에서 아내를 향하여 이 복종의 윤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피차에 복종하라. 롬 12:10에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의 코이노니아의 사귐에 중요한 태도를 가르치면서 서로 이해하고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하라. <피차에 복종하라는 것>
3) 나의 허물이나 실수 혹은 잘못된 행위를 인정하고 고백하며 배우자의 도움을 받아서 교정을 하는데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잘못된 사상은 가장 기독교적인 것 같으면서 가장 기독교적인 가르침과 실제로 거리가 먼 것이 있습니다. 그는 완전주의 사상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완전을 지향해야 합니다. 추구해야 합니다. 그것을 좌절시키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너무 완전주의에 집착한 나머지 우리가 우리의 실패나 잘못을 은폐하려고 하면 이것은 이 말씀이 우리에게 잘못 적용된 현상입니다.
우리는 너무 완전해야 된다는 이런 말씀의 강력한 도전 때문에 우리는 그 잘못을 해놓고서도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언제나 불신자의 눈 앞에는 위선적인 인격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인 다울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잘못을 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했을 때 누구보다도 신속하게 인정하며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그리스도인적인 인격과 인간의 모습을 것입니다. 약 5: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우리가 피차에 그리스도의 사귐 속에서 서로의 잘못을 고하는 일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보! 내가 잘못했오.” 이 고백이 자유로울 수 있는 부부 관계, 이런 부부관계 속에서만 참된 성경적인 축복관계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쉽지 않지요? [여보! 내가 잘못했오.] 세미나 참석후 한 달간은 잘되셨을 줄 모르겠습니다만 그 이후에 계속해서 잘 되셨는지 .......
4) 나의 가장 가가운 이웃은 나의 배우자임을 알고 그와의 사랑을 증진시키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두십시오.
벧전 3:7에서 “남편된 자들아...” 하면서 베드로는 시작하게 됩니다.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무슨 얘기입니까?) 영원한 삶을 함께 준비하는 파트너입니다. 이 사실을 강조합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믿지 않는 분에게는 이런 믿음이 참 필요할 것 같아요. 최근 우리 교회에 나오는 여집사님댁에 성경공부를 하는데 그 집사님께서 남편이 믿질 않기 때문에 그 집에서 하면 믿겠지 하는 바램 때문에 화요일 시간에 꼭 시간을 내어 달라고 일년간 조르셔서 마음이 감동이 되어서 다른 스케줄을 포기하고 화요일마다 그 남편 한 분을 위해서 그 가정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첫날부터 계속해서 도망을 다니셔요. 다른 남편들은 나오는데 그 집주인만은 계속해서 빠집니다.
며칠 전에 “집사님 좀 쉬어가며 하면 어떨까요?” 사정을 했더니 “쉬기는 왜 쉬어요. 우리 남편은 틀림없이 믿습니다. 언젠가는 틀림없이 이 자리에 등장합니다.” 버티는 그 믿음이 대단합니다. 예, 계속기도하죠. 잘못했습니다. 하고 말씀을 드렸습니다만은 우리가 서로 남편이나 아내가 신앙에 들어오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영원한 삶을 함께 준비하는 파트너로서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기도하면서 믿는 이 신뢰가 있을 때 주님께서 결코 그 신뢰를 부끄럽게 아니할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함게 성숙하면서 함게 서로 남편과 아내 사이에 서로를 세워가는 이 작업이 없이는 성공적인 배우자의 관계는 세워질 수 없을 것입니다.
5) 배우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자신의 욕구 충족보다는 배우자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힘쓰십시오.
남편은 남편의 권리를 아내는 아내의 권리를 주장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욕구보다는 배우자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더욱 힘 쓸 수 있겠는가? 빌 2:3을 보시면 “너희는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각각 남을 돌아볼 뿐더러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여기서 우리의 시선보다는 남을 향해서 더욱 먼저 둘 수 있는 것, 남편은 아내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고 아내는 남편의 필요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안목이 없이는 부부 관계의 행복한 그 조형은 결코 기대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6) 예배와 사귐, 나눔을 통해서 고난의 의미를 함께 묵상하고 고난 중에서 인격의 성숙을 위해서 서로에게 격려를 힘쓰십시오.
베드로전서는 고난과 소망의 서신인데 이 고난의 서신을 기록하다가 베드로는 그 가운데 벧전 3:1-7까지 (남편과 아내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벧전3:1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벧전 3: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벧전3:3)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벧전 3: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벧전 3: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벧전 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벧전3:7)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이 고난 가운데서 삶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이 편지를 띠우다가 아내에게 순복의 중요성을, 남편에게 아내를 존귀히 여기라는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벧전 1:7에서 베드로는 고난의 과제를 다루면서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주께서 오늘 잠시 잠깐의 시련을 주신다는 것을 부부가 서로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고난 속에서 이 부부의 삶을 얼마나 영광스럽게 만들 수가 있겠습니까?
7) 부부관계에 거리낌이 없는 거룩함을 지키도록 부부의 침상을 성결케 하십시오.
히 13:4절에 보시면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그 침상이 부부사이에 사랑과 순결의 거룩한 표현의 장소가 될 수 있도록 침상을 성결하게 하는 일, 계속해서 히브리서는 말하기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이 거룩함이 유지됨이 없이는 부부관계는 한 순간에 어두운 수렁에 빠질 수 있는 사실을 얼마든지 우리 주변에서 목격하고 있습니다.
8)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며 적용하는 삶을 서로에게 격려하십시오.
행 17:11에서 보시면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 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베뢰아의 성도들처럼 우리도 이 말씀을 우리의 삶 속에 적용할 수 있는지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면서 서로 말씀을 (암송, 묵상, 적용)하는 삶을 격려하는 일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서로 돌아보나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라 이 말씀이 문자 그대로 우리의 삶 속에 적용되도록 해야만 할 것입니다.
9) 한 몸으로써 부부가 성취해야 할 삶의 목적을 자주 상기하고 나누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가? 그 목적을 계속 확인하는 일 예배의 시간마다 우리가 그 목적을 함께 부부가 다짐하는 일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라고 히브리서 12:2이하의 말씀처럼 그 예수님을 계속 바라보고 그리스도 안에서 주께서 허락하신 그 목적을 계속해서 확인하는 작업이 요청됩니다.
10) 주어진 삶의 프로잭트를 위해서 부부가 서로 협력할 것인가를 지속적으로 의논하십시오.
우리 부부도 같으면서도 얼마나 다릅니까? 다른 남편 다른 아내를 주셨다는 것, 이것은 서로의 보완을 위해서 주셨다는 사실을 참으로 이해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서로에게 기여하고 공헌할 수가 있는지 전도서 4:9절이하를 보면 전도서의 기자는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 그리고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킨다고 했는데 남편이 넘어질 때 아내가 붙들어 일으며 세우고 도 아내가 넘어질 때 남편이 붙들어 일으켜 세워주는 보완과 협력은 부부관계에 얼마나 요청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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