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코리아 2025]이란 책에 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지키다 "와 "바꾸다" 입니다. 아나로그 시대에는" 지키다'가, 디지털 시대에는" 바꾸다"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지키다는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이고, 바꾸다는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입니다. 한 개인도 가정도 기업도 국가도 지켜야 할 것과 바꾸어야 할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신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불변의 원칙, 성경 말씀을 반드시 지켜내야 합니다. 그러나 변하는 환경에는 적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비둘기같이 순결하고 뱀같이 지혜로와야 합니다.
2025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수 개월전부터 하나님께서 새해에 어떠한 목표를 주실까? 기도하고 묵상하는 중에 하나의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새롭게 일어나는 교회”입니다. 또한 성경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에베소서 4장 24절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새해에 교회 뿐만 아니라 개인도 가정도 직장도 나라도 새롭게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새롭게 일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벗어버려야 할 것이 있고, 입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우리는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본문 22절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옛사람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17절 하반절에 의하면 이방인이 그 마음이 허망한 것처럼 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허망하다”는 것은 꼭 있어야 할 것이 빠져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하지만 채워지지 않습니다. 현대인을 가리켜 시인 엘리옷은 “ 텅빈 인생 가득찬 인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왜 우리의 인생은 이렇게 허망한 것일까요? 18절에 보면 그 원인이 나타납니다.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총명”이란 사랑을 인식할 수 있는 중심부가 파괴된 상태를 말합니다. 마음이 굳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전혀 감동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은 그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19절에 의하면 그들은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합니다. 사람들은 아는 대로 살지 않고 익숙한 대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습니다
옛사람은 무엇을 따라가는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갑니다. 유혹의 욕심이란 무엇일까요? 에베소서 2장 3절입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 사탄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풍조를 악한 영이 충동질하고 있는데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입니다. “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
바울은 로마서 7장 14절에서 옛사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옛사람을 “자기 자아”라고 표현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 17절에서는 ‘육체의 욕심’이라고 부릅니다. 이와 같이 옛사람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삶의 특징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입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우리는 엣 사람을 벗어버릴 수 있는 의지를 달라고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주여 주의 말씀에 의지해 옛사람을 벗어버리겠습니다. 다시는 허망한 행동을 하지 않겠습니다. 방탕한 습관들을 끊어 버리겠습니다. 썩어져 가는 죄악의 행동을 끊어버리겠습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가 나름대로 결심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지만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의지가 약해서 그런 것일까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새해가 되어도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2.우리는 심령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본문 23절입니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에스겔 36장 26, 27절입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때 우리의 딱딱하고 굳은 마음을 제거해 주시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오직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지 아니하면 옛사람을 좇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변화를 위해서는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집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채워질 때 꽉 차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에 보면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24절에 보면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벗어버리고 입는 것은 원문에 보면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마치 우리가 저녁에 옷을 벗고 아침에 옷을 입는 것처럼 계속되어야 합니다. 새롭게 일어나기 위해서는 연초에 한 두 번 하다가 마는 것이 아니라 매일 계속해서 실천해야 합니다. 한 가지 습관이 생기기 위해서는 적어도 30번 이상 반복되어야 합니다.
3.우리는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 새 사람을 입는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본문 24절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옛사람은 육체의 욕심을 따르고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것이라면, 새사람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따라”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의와 거룩함'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의 특징입니다. '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모든 생활 가운데 올바르고 충실하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의 악에 물들지 않는 성결한 삶을 말합니다. 의와 거룩함은 '진리'의 말씀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1:13) .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받을 때 이미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습니다(골 3:9).
골로새서에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다는 것은 과거형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4장 22, 23절에 나오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은 현재형입니다.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이미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은 마치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신앙의 갈등과 혼란이 생기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 것은 옷을 벗고 입는 것과 같이 매일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옷은 우리의 행위를 가리킵니다. 인도에 한 어린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어린아이에게 새 옷은 엄청난 선물입니다. 그에게 옷은 너무 귀하기 때문에 낡은 옷도 무척 아껴 입습니다. 그는 때때로 새 옷을 낡은 옷 위에 겹쳐 입어 마치 낡은 옷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고 했지만 낡은 옷을 숨기기는 어려웠고, 오히려 새 옷이 낡은 옷처럼 보이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명을 얻은 우리는 낡은 옷에 새 옷을 겹쳐 입는 행위를 해서는 안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을 변화시키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바로 우리의 행위에 달려있습니다. 감정을 변화시키는 것은 행동이 변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9장 8절에 성도들이 입어야 할 것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인데 이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옷을 갈아입을 때는 어떤 자리에 가는 것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결혼식에는 정장을 입고 가야 합니다. 장례식에는 검은색 옷을 입고 가야 합니다. 옷은 자신의 역할을 나타냅니다. 군대에 가면 자신이 입고 간 옷을 벗고 군복으로 바꾸어 입습니다. 어머니들이 아들이 군에서 보내온 옷을 입고 웁니다. 군복도 사병인가, 장교인가에 따라서 옷이 다릅니다. 법관은 특별한 옷을 입습니다. 죄수는 죄수복을 입습니다. 이와 같이 어디를 가는가, 어떤 임무를 띠고 있는가에 따라서 옷이 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신자는 구원의 옷, 의의 옷, 거룩한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합니다.
새 사람의 입는 생활을 위한 구체적인 과제가 무엇일까요? 25절에 의하면 거짓을 말하지 말고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26절에 보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도록 해야 합니다. 분을 낼 수는 있지만 품지는 말아야 합니다. 거룩한 분노는 있어야 합니다. 28절에 의하면 도둑질하지 말고 수고하여 구제해야 합니다. 더러운 말은 하지 말고 덕을 세우기 위해 선한 말을 해야 합니다. 32절에 따르면 불친절하거나 악독을 품지 말라 친절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새롭게 일어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이렇게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받을 때 적어도 한 가지씩은 실천하는 습관을 가지면 어떨까요? 내가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새해에 한 가지씩 이것을 실천한다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나름대로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안보이지만 자신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깨서 당신에게 보여주시는 은사입니다. 누가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서 하고 싶어하셔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해롤드 라미스 감독의 영화 <사랑의 블랙홀>은 직장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송국 기상 캐스터인 필은 유능한 방송인이라고 자부하지만 ‘왕자병’이 중증입니다. 작은 마을의 두더지 축제를 취재하라는 지시를 받고 투덜거립니다. 취재를 할 때도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분명히 하루가 지났는데 다음날도 똑같은 축제의 날인 것입니다. 같은 사람을 만나고 같은 방송을 또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도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하루에 지친 필은 자살을 시도하지만 죽음도 반복되는 일상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거의 미칠 지경이 된 뒤에야 필은 마음을 바꾸기로 결심합니다. 이왕 보내는 동일한 하루라면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방송의 멘트도 긍정적으로 바꿉니다. 그리고 평소에 좋아하면서도 퉁명스럽게 대했던 PD 리타에게 사랑하는 마음도 표현합니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고 난 후 다음날 아침이 되었는데 드디어 다른 새 날이 왔습니다.
만화 같은 영화이지만 직장 생활의 현실, 즉 권태와 불만을 잘 표현해줍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교훈은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나 자신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새로운 마음가짐과 묵묵히 충실한 자세로 일할 때 우리에게 희망찬 내일이 올 것입니다. 오늘도 따지고 보면 어제와 별다르지 않은 날이지만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해서 일합시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잘못된 죄의 습관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못지 않게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습니다. 새롭게 변화되려면 성령의 소욕을 좇아 헌신함으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무력함을 고백하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상처의 치유를 구하고, 용서를 받고 용서받아야 할 사람을 용서하고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오랫동안 문제되어온 그릇된 행동 습관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은 서로 거스르나니 서로 대적함으로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됩니다(갈 5:1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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