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께서 열 처녀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찾아와서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44절에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마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님은 열 처녀의 비유를 드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13절에 보면 이 비유의 결론에 해당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깨어 있으라는 것은 잠을 자지 말고 있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주 맞을 준비를 하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변수를 늘 고려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예수님의 비유는 불신자가 아니라 신자들에게 주신 비유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열 처녀의 비유의 배경은 유대의 결혼 풍습입니다. 유대의 결혼 축하 행사는 1주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신랑은 결혼 하루 전날 잔치를 배설하고 친구들을 불러 잔치를 시작합니다. 그 다음날 결혼식날이 되면 자기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다가 신부의 집으로 행진합니다.
유대인들은 대부분 밤에 결혼식을 합니다. 한편 신부는 신랑의 친구들과 함께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신랑을 기다리게 됩니다. 마침내 신랑이 도착하면 신부를 돕던 처녀들은 각각 횃불을 들고 친구들 맨 앞에 오는 신랑을 영접하러 나갑니다. 만약 이때 횃불을 들고 있지 않으면 결혼식을 방해하거나 도둑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신랑되신 예수님은 신부를 위해 혼인 잔치를 위해 언젠가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열 처녀들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은 결혼 잔치에 함께 초대를 받았고 신랑을 기다렸습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은 만약에 신랑이 밤에 올 것을 대비해 주님의 등과 기름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설마 밤에 오지는 않겠지 생각하고 등은 있었지만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사용하던 횃불은 꼭대기에 기름을 담뿍 묻힐 수 있는 솜뭉치로 되어 있는데 기름이 묻은 솜뭉치에 불을 붙이면 횃불이 밝게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하자 기름이 곧 고갈되어 버립니다. 계속 횃불이 타오르게 하기 위해서는 15분마다 솜뭉치에 감람유를 공급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신랑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그만 졸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어떻게 했을까요? 그들 역시 다 졸며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밤 중에 소리가 들렸습니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2. 중요한 순간에 빌려 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갑작스런 상황이 벌어지자 어리석은 다섯 처녀들이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에게 기름을 좀 빌려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자 지혜로운 다섯 처녀가 둘 다 쓰기에 부족하니 너희 쓸 것을 시장에 가서 사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순간에 빌려 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닮아가는 거룩은 빌려줄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름은 평소에 신앙의 상태를 말합니다. 부모가 신앙생활 잘 한다고 해서 자녀가 저절로 신앙생활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교회에 안 나가지만 아내와 아이들을 교회에잘 다니고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을 조건으로 신앙생활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신앙은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붙였다 때었다 할 수 있는 이동식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누구의 지배를 받는가가 중요합니다.
3.한 번 문이 닫히면 다시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자 어리석은 다섯 처녀들은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와서 문이 닫히고 말았습니다. 신랑이 신부의 집에 들어가면 문은 닫히고 늦게 온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다섯 처녀들은 1주일 내내 문밖에 있으면 그 잔치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 후에 와서 문을 열러 달라고 사정했지만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는 대답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너무 늦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한 번 문이 닫히면 다시 열리지 않습니다.
지금은 은혜받을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입니다. 그러나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신앙의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다음에 잘 해야지가 아니라 지금 잘 해야 합니다.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잃어버린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와 여행을 위해서 필요한 많은 것들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워한 여행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게십니까?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위해서 준비를 갖춰야 할 때는 지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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