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은 하나님 말씀의 권위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폭적으로 따르는 교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진리입니다. 디모데후서 3:15-16은 성경에 대해 가장 확실하게 정의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마지막 쓴 글이 바로 디모데후서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제4차 전도여행을 하기 까지 수많은 어려움들을 겪었습니다. 특히 순교직전에(A.D 65-68) 허모게네, 데마, 그레스게, 디도, 두기고(딤후4:10-12)는 바울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외로운 전도여행과 투옥을 당하면서 바울은 아들이 아비를 따르듯 섬겼던 디모데(고전4:17, 빌2:22)를 생각하며 편지를 쓴 것입니다. 네로 황제가 박해를 할 동안 교회를 염려하며 데모데에게 복음을 지키고(딤후1:14) 그 안에서 견고하게 되고(딤후3:14), 말씀을 꾸준히 전하며(딤후4:2), 고난까지도 담대하게 받으라(딤후1:8, 2:3)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죽음을 앞에 놓고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절규의 복음, 상생의 복음, 유언의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은 마지막 편지에서 간결하지만 ‘우회 복음’을 말하지 않고 직설적인 ‘성경 복음’에 대해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같이 디모데후서 3:15-17의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사도 바울은 성경은 이런 것이라고 정확하게 성경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를 설명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11을 다시 읽겠습니다.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바울은 자신이 핍박 가운데 있을 때, 고난의 때가 왔을 때 극복하고 이겼던 비밀은 주께서 자신을 건져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핍박과 고난의 때에 무엇을 붙잡고 있었습니까? 그것이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다같이 3:12-14을 보시겠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그러기 위해서 그 다음에 성경에 대해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배우고 성경의 말씀에 확신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든지 넘어지고 핍박을 이기지 못하며 고난에 대처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이 어떤 시기이며 세상의 흐름이 어떠할지에 대해 예견했습니다. 그러므로 미래에 패배하지 않고 사는 방법은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배우고 확신하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는 너무나 빠르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시대에 살면서 사람들의 사는 목적이 점점 타락해 지고 어리석은 길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도 성경의 말씀과 멀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위험의 시대입니다. 교회 안에 흐르는 의식도 점점 세속화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적한 대로 이제는 돌아서야 합니다(turn away). 너무 인간적인 생각이나 세상의 흐름에 묻혀 굴러가는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 돌아서야 합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보호로부터 외면당하지 않기 위해서 돌아서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2-5의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바울은 종말의 때를 설명하면서 말하길 경건의 모양(form of godliness)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power of godliness)이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대상을 혼동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건의 능력 즉 말씀의 능력이나 영적인 능력이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는 길이 능력 있게 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왜 성경으로 돌아와야 합니까? 그 대답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 교훈, 책망, 바르게 함, 교육, 훈련”에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5대 사역이며 사명이며 목적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사람을 만드는 유일한 교과서입니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 하나님이 기록하신 살아계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쓰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 담아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성경에 가득 채워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성경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사역을 이루도록 계시되어 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을 믿을 때 성경의 말씀들은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사람들을 구원시키고 치료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기쁨을 주며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들을 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헌신된 교회,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교회가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교회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온전히 지배받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역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소설이나 수필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활동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55:10-11을 보십시오.“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하나님께서는 항상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언제든지 그것이 해야 할 역사를 이루십니다. 말씀은 결코 빈 것으로 뒤돌아 오지 않습니다. 말씀은 무의미하거나 무능력하지 않습니다. 마치 비와 눈이 싹을 나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메신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십니다.
시편 147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메신저(messenger)로 묘사되어있습니다. 말씀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 민첩하게 움직입니다. 말씀이 하나님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뛰어다닙니다. 시편 147:15에 그 명을 땅에 보내시니 그 말씀이 속히 달리는 도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눈을 양털같이 내리시고 서리를 재같이 흩으시며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십니다. 누가 능히 그 추위를 감당하겠습니까? 누가 하늘을 움직이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앞서 보내시어 그것들을 녹이시며 바람을 불게 하사 물이 흐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야곱에게 그리고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선포하십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추위도, 서리도 그리고 태양과 모든 자연적인 요소들을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을 성취하십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가르치며, 성경을 우리 인생의 기초로 삶는 우리들에게는 이 사실은 너무나 분명한 확신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도록 사역을 하십니다. 비와 눈처럼 항상 생산을 일으킵니다.
신명기 8:3에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떡”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사람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며, 사람을 성장하게 하며, 목적을 성취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역하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목적 있는 사역을 이루도록 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사역에 첫째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말하길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을 이루는 능력으로 사역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크 힐스(Oak Hills)교회를 섬기며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영성학자이기도 한 맥스 루카도(Max Lucado)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금서로 지정하고 불태우고 비웃고 조롱했다. 학자들은 성경이 유치하다며 우롱했고, 왕들은 성경을 불법으로 낙인찍었다. 무덤을 파고 성경을 묻은 뒤 만가를 부르기를 수천번. 그래도 한사코 성경은 무덤에 머물지 않았다. 성경은 살아남을 정도가 아니라 번성을 구가했다. 역사를 통틀어 가장 널리 보급된 책은 단연 성경이다. 해마다 전 세계 베스트셀러는 성경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책이요 하나님의 음성이다. 성경의 목적은 그 자녀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열정을 선포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가장 귀한 보물인 영생으로 인도하는 보물지도다.’
성경의 주 사역이며 1차적인 목적은 ‘구원’입니다. 디모데후서 3:15에서 성경은 너에게 지혜를 줄 수 있어 그 지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도록 인도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성경은 특별히 구약성경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디모데후서를 기록할 때 신약성경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기까지 구원을 이루어 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사람을 지혜롭게 만들어 구원에 까지 이르게 합니다. 성경이 바로 구원을 얻는 하나의 기구입니다.
요한복음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능력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가르치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이 말씀은 복음에 대하여 아주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영생을 얻고 심판에서 해방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이 말씀 가운데 한 가지 주목해야만 하는 핵심적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 말을 듣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매개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을 낳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다시 요한복음 6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에서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생명의 떡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6:63을 보시겠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즉 말씀이 영이며 생명입니다. 그리고 64절에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과 믿음이 연합하여 생명을 이루어 낸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반응인 믿음이 함께 할 때 구원을 이룹니다.
또한 요한복음 12장은 우리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반드시 살펴보아야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2:49에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예수님조차도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자로서 사역하셨으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셨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언급하셨습니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요 12:50).
사도 요한이 이 모든 말씀에 대한 최종 결론을 요한복음 20장 31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서 뿐만 아니라 모든 복음서의 기록 목적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 다시 한번 영원한 생명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드러난 말씀, 하나님의 성경을 믿음으로 얻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 진리의 출처이며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진리의 길입니다.
신약성경의 로마서 10장을 소개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똑같은 진리에 온전히 헌신되었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0:17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 구절의 핵심은 말씀이 구원을 이루어 낸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 말씀 때문에 저나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누군가가 나가서 진리를 외쳐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로마서 10:13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주의 이름을 부르며, 듣지 못한 사람들이 어찌 믿으며, 전하는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듣겠으며, 보내심을 받지 않은 사람이 어찌 전파할 수 있겠습니까?(딤후4:2). 비록 보내심을 받은 사람일지라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반드시 들어야만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0장 역시 성경말씀이 구원을 가져오는 근본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에서 믿는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활동하시며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위한 마음의 문, 믿음의 문이 열려있을 때 구원은 일어납니다. 사도 야고보는 그의 서신 1:18에서 이와 동일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그러므로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의 근본입니다. 이것이 바로 빌립보서 2장 16절에서 “생명의 말씀” 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여기에서 말씀이 생명을 주는 특징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19장 7절에는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영혼을 소성케 하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고 사람의 영혼을 소성케 만드는 능력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에 대한 놀라운 예가 느헤미야 8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느헤미야 8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정한 신앙회복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수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사람들은 학사인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서를 가져오도록 요구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가장 핵심은 바로 “율법서를 가져오라”입니다. 그리고 칠월 일일에 에스라는 율법 책을 가지고 남자, 여자 무릇 말씀을 알아들을 만한 회중 앞에 이르러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읽었을 때 백성들이 그 율법 책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사람들은 광장 앞에 서서 말씀을 들었으며 말씀은 몇 시간 동안 계속해서 읽혀졌습니다.
4절에 보면 그곳에는 나무로 만든 강대상이 있었습니다. 5절에 에스라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책을 펼쳤습니다. 사람들 앞에 우뚝 서서 에스라는 율법 책을 펼 때 사람들은 그 앞에 일어섰습니다. 6절에 에스라는 하나님께 송축하며 사람들은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 드렸습니다. 8절에 율법서 즉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고, 통역하여 사람들이 율법을 깨닫게 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웠습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울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에 대하여 슬퍼했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들음으로 사람들은 권고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의 결과로 사람들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낭독하는 일은 계속되었습니다. 18절에 7일 동안 절기로 지켰으며 첫날부터 끝 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했습니다. 그런 후 9장에 의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말씀 가운데 자기 자신을 보여주신 하나님을 송축했습니다. 10장에는, 언약문서에 서명한 사람들의 명단이 나오고, 다음 28-29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함께 모여, 맹세하며, 죄에서 돌아서며, 하나님의 율법을 좇아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킬 것을 맹세했습니다.
최종적인 결과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을 맹세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기간동안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있었으며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았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백성들이 서서, 말씀을 읽고, 통역하고, 설명하는, 단순한 행동의 직접적인 결과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한 단순한 행동은 사람들의 영혼을 변화시키는 능력과 사람들을 구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이와 유사한 다른 예를 하나 더 보시겠습니다. 누가복은 8장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서 위에서 언급한 내용과 똑같은 사실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누가복음 8:5-8을 보시길 바랍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 쌔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 버렸고,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그리고 9절에 사람들은 예수님께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을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이 비유에 대하여 너희들에게 설명해줄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들은 분명히 하나님께 속해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비유는 하나의 수수께끼로 남겨질 것이다. 이해하지 못할 비유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을 대상자들에게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대한 설명은 11절부터 시작됩니다.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즉 좋은 땅에서 새로운 생명을 자라게 하는 것이 씨로 비유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이 비유의 핵심입니다. 만약 좋지 않은 땅이라면 여러분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길가의 흙처럼 딱딱하다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사람이나 마귀가 와서 그들의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아 결과적으로 그들은 말씀을 믿지 못하여 구원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위 위에 있는 흙이라면 그들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뿌리가 견고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잠시 동안 믿지만 고난이 닥치면 실패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이며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한 결실을 맺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준비되지 않은 땅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잡초가 무성하며, 가시덤불이 가득하고, 딱딱한 흙이나 또는 돌들로 가득한 밭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15절에는 그와 정반대의 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곳은 좋은 땅입니다. 열리고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말씀을 견고히 지키어 인내로 결실을 맺는 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면 생산을 일으키는 땅입니다. 말씀의 수확이 이루어지는 땅이며 말씀이 능력을 발휘하는 땅입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은 준비되어진 마음에 떨어졌을 때 구원을 이루어 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우리의 삶에 적용한다면, 영혼 구원사역에 있어 우리의 마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교회에서 항상 성경만을 가르친다면 언제 전도를 합니까? 공부만 하고 있으면 언제 전도를 합니까?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전도를 위한 가장 위대한 도구입니다. 누가복음 10:25-26에 예수님께서 한 율법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 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성경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져 있으며 그리고 너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주님께서는 성경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너를 구원에 이르도록 지혜롭게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돌아온 사람은 성경의 사역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사랑이 강권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너무나 명확한 말씀이 베드로전서 1장에 나타납니다. 베드로전서 1:23에 “너희가 거듭난 것”은 즉 우리가 거듭난 것에 대하여 성경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씨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씨가 좋은 밭에 심겨질 때 구원을 이루어 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효과적인 전도를 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만약 친구와 이웃들을 효과적으로 전도하기 위한다면 하나님의 말씀 가르치는 일에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주기를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알고 있다면, 당신이 그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첫 번째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성경입니다. 너무 복잡하게 접근하지 마십시오. 논쟁을 피하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모든 신학적인 문제들을 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모든 질문들에 대한 모든 대답을 알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으로 충분합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성경을 준다면 사복음서를 읽도록 독려하십시오. 복음서를 다 읽고도 변화가 없다면 아직 땅이 준비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 씨에는 아무런 부족함이나 결함이 없습니다. 다만 땅이 준비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씨는 그곳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히 그 씨(말씀)에 맡겨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5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함께 있고, 영원하며, 역사하고,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5가지의 사역을 하도록 유익을 줍니다.
첫째, 성경은 구원을 알게 하는 진리입니다.
둘째,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활동하는 것을 보게 하는 진리입니다.
셋째, 성경은 영혼을 회복시키는 진리입니다.
넷째,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이 선포되는 진리입니다.
다섯째, 성경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하도록 용기를 주는 진리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성경은 구원을 이루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 사역이 1차적 사역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의 진리입니다. 성경은 구원 복음입니다. 우리 교회는 구원을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바른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세워진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교회가 진리를 고집하고 진리를 따르는 이유는 우리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이 살아있는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들을 구원시키고 그들의 영혼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 구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당신이 진실로 성경의 말씀을 믿고 따른다면 이제부터 구원 복음인 성경을 전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인 예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영생을 보여줍니다. 천국에 들어가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하게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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