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구 종말까지 남은 시간이 100초'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바로 '지구 종말 시계(Doomsday Clock)' 발표 이벤트였습니다. 인류가 만든 기술이 인류 문명을 얼마나 파괴하고 있는지 경고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시계가 지구 종말 시계다. 지구 종말을 '자정'으로 설정하고, 세계가 지구 재앙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자정에 가까운 시각으로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2007년부터 지구 종말 시계는 핵무기 외에도 기후변화로 인한 치명적인 영향을 추가했습니다. 현재는 바이오 테러리즘, 인공지능, 사이버 공격 등도 위협의 대상으로 고려되고 있습니다. 000년 지구 종말 시계는 자정까지 불과 100초밖에 남지 않은 11시 58분 20초로 발표됐습니다. 인류가 처한 상황이 그만큼 위급하다는 것입니다. 시계바늘을 앞당기게 한 가장 큰 요인은 역시 핵무기 위협과 기후변화였습니다. 북한과 미국의 협상이 결렬되고, 이란과 미국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핵 위협이 높아졌으며, 기후 변화에 대한 세계 각국의 대응이 여전히 미흡한 탓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첨단과학을 자랑하고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자율 주행이 현실화되고 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둡기만 합니다. 대한민국의 상황 역시 이렇게까지 문제가 많았던가 탄식을 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교훈하고 있을까요?
1.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
본문 11절입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음이라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원문에는” 너희는 지금의 시기가 자다가 깰 때인 것을 알므로 이렇게 행하라” 입니다. 영적인 나태함이나 게으름의 잠에서 벗어나 깰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란 그리스도의 재림 때 나타날 미래적 구원의 완성의 때를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이 어떤 시기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시간의 노예가 되지 말고 시기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세의 징조에 대한 말씀들이 거의 다 이루어져가는 시대입니다. 거짓의 미혹, 지진과 기근, 전쟁의 위협 등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악법과 불법과 불의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어둠이 이 땅을 덮고 있는 이러한 시기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잘 때는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깨어 일어날 때입니다. 더 이상 죄악의 잠에서 더 이상 뒹굴어서는 안됩니다.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때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때를 분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때에 어떠한 사람이 되는 것이 마땅합니까? 베드로후서 3장 12, 13절입니다.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싫어합니다. 지금까지 말세, 말세 하면서 아직도 아니지 않습니까? 베드로후서 3장 3, 4절에 의하면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그런데 분명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가 기록된 연대를 주후 57년이라고 추정한다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1968년이 지나간 겁니다. 우리가 회심했을 때부터 계속해서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종말이 가까워진 것도, 역사적인 종말이 가까워진 것이 사실입니다.
혹시 아직도 마음에 은밀한 정욕을 즐기고 있습니까? 은밀한 정욕은 우리 마음에 뿌리를 내린 채 거룩한 삶을 방해합니다. 은밀한 정욕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약화시키고 기도생활과 신앙생활을 무기력하게 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게 만듭니다. 은밀한 정욕은 생각을 어둡게 하고, 수치스런 죄를 짓도록 유혹하며 악성질병처럼 영혼을 파괴합니다. 그것은 독성이 매우 강해 영혼을 거의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갑니다. 이제 우리는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나이에 맞게끔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시대에 분별하며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당신의 인생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며 살아가십니까? 타이밍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때에 맞게 살아가야 합니다. 개인의 종말이 어디까지 왔는지 계수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역사의 종말이 갑자기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일할 수 있는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종말을 이렇게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초만원 극장 밖에서 불이 났습니다. ‘불이야!’ 소리를 지르면 많은 사람이 넘어져 발에 밟혀 죽게 될 아비규환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한 배우가 공연을 멈추고 사람들 앞에 나서서 차분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지금 밖에서 불이 났습니다. 여러분이 한꺼번에 뛰어나가면 모두 죽습니다. 출입구는 뒤와 좌우에 하나씩 있습니다. 출입구 가까이에 있는 분부터 차례로 나가시면 좋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관중은 그의 말이 연극의 일부인 줄 알고 박수를 치며 웃고 떠드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상황이라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연기가 스며들어 오고 불길이 순식간에 극장 안을 뒤덮었습니다. 이미 때는 늦고 만 것이지요.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롯의 사위들은 심판의 메시지를 농담으로 여기다가 망했습니다. 종말의 징조가 왔다는 말을 농담으로 흘려보내서는 안 될 것입니다./류영모 목사(한소망교회)
2.어떻게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할까요?
구체적으로 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까요? 본문 12, 13절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려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밤이 깊었다는 것은 죄악의 어둠이 깊어진 것을, 낮이 가까웠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웠음을 뜻합니다. 이 세상은 죄악의 밤이 점점 더 깊어가지만 구원이 완성되는 낮의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두움의 일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죄와 어둠이 지배하는 악한 세상에 우리는 동화되지 말고 영적인 전투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먼저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해야 합니다. 단정하게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말합니다. 흩트러진 모습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첫째 방탕하고 술 취하지 말라는 것은 폭식과 폭음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음란과 호색은 성욕의 방종입니다. 셋째 다투거나 시기하는 것은 자기 중심주의의 방종입니다. 야고보서 3장 14절입니다. 시기와 다툼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라고 했습니다. 과학 기술 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시간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카운트다운 하면서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본문 14절에서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는 일이 무엇인지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죄란 자기중심적인 삶의 방식, 욕심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전투에 임해야 하는 군인들이 밥에 입었던 곳을 벗어버리고 전투복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죄악의 생활을 버리고 신자로서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롬 6:1-10). 그리스도이 주 되심을 인정하고 우리의 모든 욕망과 행실을 그분의 통치 아래 두어야 합니다. 우리 나라를 덮고 있는 거짓의 영광과 분열의 영과 음란의 영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택하신 자처럼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힙 입고.
에베소서 5장 8, 9절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우리는 생활 속에서 착함, 너그러움과 관대함을 드러내야 합니다. 불법이 성행하는 세상 가운데서 공의를 나타내야 합니다. 거짓이 만연 돤 사회 속에서 진실함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두운 생각, 부정적인 말, 더러운 습관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안되는데 자꾸 그렇게 하는 것들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것에 당신은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죄의 종 노릇 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을 밝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어두움에 속한 사람이 아무리 밝게 만들려 하여도 밝아질 수 없습니다. 어두움은 모이면 모일수록 더 어두워질 뿐입니다. 어두움을 밝힐 수 있는 것은 빛입니다. 세상에는 빛과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 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어두움 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빛이 비추어질 때 사회의 어두운 부분들이 서서히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존 번연의 [거룩한 전쟁]이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더러워진 영혼을 깨끗이 하는 작업을 하셨습니다. 이제 영혼은 거룩한 것을 담을 수 있으며 거룩한 삶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이렇게 회심을 했어도 인간의 내면에는 아직 부패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더욱 은혜의 수단을 이용해야 합니다. 성도는 은혜의 수단을 사용하는 것에 게을러지면 마귀는 더욱 기회를 얻어 성도의 영혼을 공격합니다. 성도는 한편으로 영적 게으름과 부주의로 인하여 세상적이며, 육신적 삶 가운데 있게 됩니다. 그러나 본인은 자신의 영적 퇴보에 대해서 눈치 채지 못하고 육신의 즐거움에 있게 됩니다.
신자는 영적 황폐함과 그것에 대한 비참함을 깨닫고 나서 다시 하나님께 용소를 구하지만, 하나님의 용서의 응답은 곧 바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가 하면 우리가 죄의 비참함과 그것에 대한 고통들을 철저히 경험하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영혼이 죄를 미워하고 싸우는 성향을 보다 강력하게 만들려고 하십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영혼을 낮추어서 더욱 겸손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은혜에서 떠나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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