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비난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고난의 이유 대한 주제입니다. 내 여동생이 성도들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백혈병으로 죽었습니다. 지난 밤에도 전세계의 삼분의 일이나 되는 사람들이 굶주린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런 현실이 어떻게 기독교의 사랑과 조화되는가?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고통의 이유
같은 교회에 다니는 어떤 집사님은 틀림없이 당신의 생활 가운데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당신은 분명 어느 지점에선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서 그런거예요.
또 하루는 어떤 부인이 찾아와 격려와 선의로써 고통을 몰아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치유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했습니다. 병은 절대로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고침을 받을 것이라는 충분한 믿음을 가질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또 한번은 교회에서 가장 신령하다는 부인이 찾아와서 당신은 이렇게 고백해야 돼요. ‘하나님 저를 이처럼 고통받게 해주시니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저에게 이런 경험을 허락하실만큼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뿐입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은 당신은 특별한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분을 위해 고난 당하도록 지명된 것이며 그분께서는 당신에게 상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욥을 택하신 것처럼 당신의 능력과 성실함 때문에 당신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을 모델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당신의 반응으로 인해 다른 이들의 믿음이 커질 수 있습니다
제 1장 왜 고통이 존재할까?
생체공학자의 근시안적 견해로 본다면, 고통 감각망은 분명히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걸작품 가운데 하나dlqsl다.
고통은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는 교통망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신체의 여기 저기를 방어하고 보호하려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그 모든 부분들을 함께 묶고 연합시킵니다.
예수님은 해산의 고통의 비유를 통해 고통 후에 기쁨이 오며 이 기쁨이 고통을 흡수해 버린다(요 16:21)고 하셨습니다..
기독교의 진수는 성취라는 안일한 이기심의 만족을 통해서가 아니라 고통스럽고 지루한 수고를 통해 알게 됩니다.
고통은 기쁨과 성취에 이르는 필수단계입니다.
고통은 하나님의 확성기입니다. 고통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에게 소리치는 하나의 외침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멈처 세우며 우리로 하여금 다른 가치들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신뢰하듯이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도록 하기 위해 고통을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욥기는 우리가 고통을 당하는 것이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를 벌하고 게시거나 우리에게 무슨 특별한 것을 말씀하시기 때문이라는 개념을 바꾸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서 혹은 고통을 무릅쓰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고통을 사용하실 수도 있습니다.
제 2장 고통을 만났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고난은 두 가지 쟁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도대체 누가 나에게 고난을 일으켰는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나에 대해서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결정하기 전에 고통의 원인을 먼저 밝혀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인에 집중할수록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분노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누가 고통을 일으키는가? 대해서는 욥에게 원인을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원인의 쟁점에서 반응의 쟁점으로 방향을 돌립니다. 성경은 고통에 반응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에는 내 형제들이여 여러분이 여러 가지 시련을 만날 때 그것을 순전한 기쁨으로 여기시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아무 결함이 없는 성숙하고 완전한 사람이 되려면 인내가 끝까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13절입니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여러분이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시련을 놓고 여러분에게 무슨 이상한 일이나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오히려 주의 영광이 나타날 때 여러분이 기뻐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한다는 사실로 기뻐하십시오(벧전4:12-13). 고통은 당신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해줍니다.
제 3장 어떻게 고통에 대처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경우 고통을 당할 때 두려움과 무력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의술은 환자들의 이러한 태도를 변화시켜 주는 데는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고통받는 사람은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자원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곧 사랑, 희망, 존재의 느낌입니다. 큰 고통 가운데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그들은 그 고통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며 어느 누구도 자신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다른 이로부터 버림받은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비슷한 체험을 겪은 사람이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신 것은 그가 우리를 고난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고난을 견딜 수 있는 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통과 고난을 돌아보신다는 증거가 됩니다. 세상 가운데 있는 고통의 대부분은 단지 바로 옅에 있는 기관이 고통을 받을 때 관심을 갖지 않는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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