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청지기’ 라는 주제를 가지고 계속하여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크리스천의 청지기 삶은 교회를 세워가는 원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주제의 첫 번째 말씀은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물의 소유주는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의 관리자로 세우시기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 속해있는 것을 관리하도록 우리에게 맡겨진 것입니다. 이것이 청기기 삶의 기초입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을 향한 분명하고 명확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오늘 저는 청지기 삶의 다른 한 면을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헌금에 대한 말씀입니다. 즉 성도여러분의 풍성한 삶과 넘치는 드림에 관한 말씀입니다. 저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헌금에 대하여 설교하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헌금은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헌금은 성도들의 마땅한 행위라는 측면에서 이 문제를 설교하고 가르쳐야하는 것은 목회자의 마땅한 의무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에 대하여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모든 선입견들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여십시오. 그리고 성경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성도여러분이 성경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게 된다면 우리 주변에서 물질과 관련하여 일어나는 문제들을 올바로 평가하고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크리스차니티(Chris·ti·an·i·ty-기독교, 그리스도교; 기독교적 신앙[정신, 성격]의 실천)의 핵심적 요소인 헌금은 성도 여러분 삶의 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후히 주시는 분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그리고 저와 여러분을 그 분은 너무나 사랑하셨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드리며 살도록 원하시는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행하신 행위를 우리가 닮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후히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위해 온전히 자신을 드리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그분처럼 후히 주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다(Give)”는 단어는 성경에 1500번 이상 사용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이처럼 빈번하게 사용된 단어의 용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차니티의 핵심은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예수님과 바울의 말을 살펴보면 아주 흥미 있는 차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헌금의 양 보다는 헌금에 대한 동기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신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말씀드리면, 예수님은 얼마큼을 헌금하느냐 보다는 우리가 헌금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훨씬 관심을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헌금의 양보다는 질에 관심이 있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헌금의 자세가 헌금의 양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너희가 올바른 자세로 헌금하지 않는 다면 차라리 헌금하지 말라고 말하십니다. 왜냐하면 억지로 하는 헌금은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헌금은 성도들의 책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헌금은 책임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헌금은 성도들에게 주어진 하나의 기회라는 것입니다. 저는 왜 성경이 우리들에게 후히 헌금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지 그 이유에 대하여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이유를 성도여러분이 분명하게 이해하신다면 성도 여러분들의 청기기 삶(헌금을 드리는 삶)에 어떠한 압력이나 죄책감 같은 것은 자리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세 가지 측면에서 헌금이 하나님을 향한 성도들의 반응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과거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한 나의 반응입니다.
둘째: 지금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한 나의 반응입니다.
셋째: 미래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실 은혜에 대한 나의 반응입니다.
이 세 가지가 저와 여러분이 헌금을 드리는 세 가지 이유입니다.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에 헌금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 헌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헌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명예나 명성을 얻을 목적으로 헌금하는 것도 아닙니다. 드리지 않으면 죄의식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헌금하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은 헌금에 대하여 말씀하는 성경장입니다. 그래서 헌금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헌금에 대하여 성도여러분과 고린도후서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헌금에 대하여 제가 알고 있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헌금에 대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삶 가운데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헌금은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축복으로 우리들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헌금에 대하여 한 가지 해결해야만 할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드림에 대하여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흡족한 마음으로 헌금하는 일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에 관한 문제입니다. 가장 첫째 되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내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내 것이라는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혀있습니다. 즉 내 것인데 드려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가난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물질이 필요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가난해 지기를 원해서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들을 주시기 원하시기 때문입니까?
먼저 고린도후서 8장 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찌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드리는 삶, 사랑, 지식 가운데에서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드리는 삶을 통해서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1. 헌금은 과거 축복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헌금이 과거 축복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는 것은 드림의 첫 번째 이유인 동시에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헌금은 어제의 축복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성도들의 헌금에 대한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먼저 하나님은 성도 여러분들이 죄의식이나 어떤 부담감 때문에 헌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기쁨으로 드리는 성도들의 헌물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가 넘치게 하려 하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지금까지 주신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는 그 뿌리와 기초를 하나님께 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 속해있습니다. 우리의 재능과 능력이 하나님께 속해있습니다. 모든 자연적 요소들이 하나님께 속해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의 근본이 되십니다. 즉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그 분의 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을 보시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자신이 먼저 우리에게 주셨기에 우리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값없이 거저 받았으니 값없이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가족이나 친구 가운데 생일이나 기념일을 맞이하면 선물을 준비할 것입니다. 선물을 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상대방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는 것은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일반적인 행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물질의 일부를 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물질의 일부를 드리는 것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나님! 나의 마음이 항상 당신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행하신 모든 일에 무한히 감사드립니다.”
고린도후서 8장 8절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하나님은 우리의 드림이 그 분을 향한 우리들의 사랑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하십니다. 우리들이 어떠한 말을 하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생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헌금을 드리는 첫 번째 이유는 우리들이 부담감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를 표현하려는 것입니다.
2. 헌금은 현재 삶의 동기와 우선순위를 점검하게 합니다.
헌금은 현재의 삶 가운데 나의 드림에 대한 동기를 다시 살펴보도록 우리를 돕는 역할을 합니다. 헌금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들이나 내 자신이란 범위를 넘어 그 이면을 보도록 우리들을 돕게 됩니다.
본능적으로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를 위한 것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기적으로, 우리의 가치관에 대하여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동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내가 과연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내 자신만을 위해 살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지, 뒤돌아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헌금은 나 자신을 돌아보도록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헌금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주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헌금은 나는 그저 하나님의 관리자로 세움을 받아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헌금은 축복해 주신 과거에 대한 나의 감사의 표현 일 뿐만 아니라, 지금 내 삶에 있어서 나의 우선순위가 무엇이며,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나에게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에 대한 두 번째 이유를 성경은 이기심을 막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말씀드리면, 헌금은 균형 잡힌 우선순위를 유지하도록 성도여러분들을 도와줍니다. 신명기 14:23절은 십일조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십일조의 목적은 하나님을 제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마태복음 6:33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우선순위를 제자리에 돌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아내와 결혼한 후, 맨 처음으로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분이며 첫째가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십일조란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애썼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십일조는 우리가 만든 소득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 당신은 정말 이 10%를 저보다 더 필요로 하십니까? 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이렇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너는 지금 핵심을 놓치고 있다. 나는 너의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너의 돈이 아니라 그 돈이 상징하는 것이다. 너의 돈은 너의 인생을 상징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돈이 필요한 분이 아닙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물질이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당신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인생을 원하십니다. 그는 당신이 당신자신을 그에게 온전히 의탁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이 사실을 온전히 이해하신다면 여러분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림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이 헌금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이었습니다. 바울은 아낌없이 그리고 큰마음으로 베푸는 신자들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고린도후서 8:5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우리의 바라던 것 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이 같은 행위는 정당하고 옳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드림에 대한 아주 중요한 순서와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먼저 그들은 그들 자신을, 즉 그들의 인생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그들의 헌금을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큰마음으로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순서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우선순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약 내가 너의 인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너는 나에게 헌금을 드리는 것에 대하여 염려조차 할 필요가 없다. 나는 너의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물질을 필요로 하시기 때문에 헌금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들의 필요 때문에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림으로 우리들은 이기주의로부터 벋어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헌금은 우리들이 스쿠루지가 되는 것을 막아주고 자기중심적인 삶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치 하나님인양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왜 드림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까? 우리들의 죄 때문에 헌금을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눈치나 무언의 압력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어려운 일들을 피하기 위한 방편도 아닙니다. 우리가 헌금을 드리는 이유는 첫째로 우리가 받은 과거의 축복에 대하여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이며 둘째로 현재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동기가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과 행위들에 대한 동기를 돌아보는 것은 인생의 올바른 우선순위를 세울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줍니다. 이것은 올바른 우선순위를 세우는데 도움을 주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우리들에게 헌금의 삶을 살도록 요구하시는 이유입니다.
누가복음 16:1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청지기적 직무와 영성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이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저는 왜 자신이 성장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크리스천들, 한 번도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한 사람들, 자신들의 삶에 어떠한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물질적인 문제와 잘못된 습관이나 행동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의 근본적인 문제는 누가 나를 소유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청지기 삶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지기 삶은 주권에 대한 문제입니다. 청지기 삶은 “예수 그리스도여! 모든 것의 주가 되옵소서-시간, 돈, 물질, 그리고 모든 것....”
그러므로 첫째로 우리들은 하나님이 베푸신 과거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서 헌금을 드리며 둘째로 우리들 행위에 대한 동기를 확인하기 위해서 헌금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온당한 길을 가도록 도와주며 유리를 균형 있는 크리스천이 되도록 도와줍니다.
3. 헌금은 미래에 대한 보다 큰 기대를 허락합니다.
헌금은 세 가지 영역의 행위입니다. 과거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현재 나의 행위에 대한 동기와 우선순위에 대한 균형을 유지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헌금은 미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고린도후서9:6절 에서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바울은 농사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농부가 들판에 나가서 많은 양의 씨를 뿌리면 가을에 많은 수확물을 얻게 되는 것과 아주 똑같다는 말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아주 적은 양의 씨를 뿌린 다면 당신이 예상할 수 있는 수확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물론 적은 양의 수확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씨를 풍부하게 뿌리면 당신은 풍부한 양을 수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기본원리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뿌린 만큼 수확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부족(또는 인색)하게 씨를 뿌리면 당신은 부족한 양을 수확하게 될 것입니다.
헌금은 우리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헌금은 마치 한 알의 씨를 심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예금과도 같은 것입니다. 통장에 돈을 넣지 않으면 찾을 것도 없는 것입니다. 헌금은 씨를 심는 것입니다. 헌금은 미래를 위해서 투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보물들을 쌓아두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천국에 보물들을 쌓아놓을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성도여러분 미래를 위해 투자하십시오. 그렇다면 미래를 위해서 어떻게 투자를 할 수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당신이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삶을 사는 것이 당신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입니다.
내가 헌금을 할 때 나는 매번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잠언 19:17절 말씀을 하신 이유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나는 네가 헌금하는 것이 그저 과거에 대한 감사함과 현재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고 본다. 나는 헌금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본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의 선한 행위는 그 것이 무엇이든지 보상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제공된 냉수 한잔도 하나님께서는 상으로 갚아주십니다. 이것이 천국에 보물을 쌓아놓는 방법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보다 더 크고 많은 것을 돌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이 더 많은 것으로 그분께 드릴수록 그분은 언제나 우리가 드린 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우리에게 돌려주십니다.
말라기서는 십일조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3:1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말라기서에서 “그것으로(십일조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누구든지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둘 것이며, 누구든지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게 된다는 진리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당신의 헌금은 당신의 인생에 하나님이 어떻게 간섭하시는지를 결정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청지기 직분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심는 만큼 거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에 어떻게 관여하시느냐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드리느냐에 달려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무엇을 행하시기를 기대하십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얼마만큼 우리의 인생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라십니까? 당신은 얼마만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역사하기를 기대하십니까? 당신은 지금 얼마만큼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만약 당신이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원하신다면, 만약 당신이 얼마만큼 하나님께서 당신 미래의 삶에 역사하실는지 알고 싶다면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드림 즉 헌금 생활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가 심은 만큼 거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풍족한 삶은 풍족한 드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충동적인 감정으로 드리는 것은 옳지 못한 행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책감 때문에 헌금을 드리는 것도 잘못된 행위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 때문에 헌금을 드리는 행위도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들은 감사의 표현으로 헌금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이 최우선 순위에 있음을 나타내는 행위이며 다음과 같은 우리들의 믿음을 표현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해 주실 것을 믿기에, 나는 그분께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것이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믿음의 표현이기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무엇을 받치든지 너를 향한 나의 축복보다 더할 수는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성경 속에 나타난 위대한 약속들이 드림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이유입니다. 누가복음 6: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여기에서 말하는 주체가 누구입니까? 텔레비전에 나오는 어떤 설교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분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이러한 약속이 우리로 하여금 때로는 약속헌금을 하도록 하게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약속을 결단하는 것은 바로 믿음의 행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약속에는 언제나 위험성이 내제되어있습니다. 약속은 지키지 못할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이 약속을 이행하도록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약속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약속들을 하며 살아갑니다. 여러분들은 약속을 하지 않고 인생을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결혼식에서, 일터에서, 약속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과의 약속은 마치 구속당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금전적인 약속을 하며 살아가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경제력이 미약하고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물질적 약속을 거부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20년 건강보험을 계약하고, 3년 할부로 자동차를 계약하며, 신용카드를 사용합니다.
이와 같은 우리들의 삶에 대하여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집과 자동차 그리고 다른 모든 금전거래에 대해서는 지불할 수 있는 경제력과 신용이 있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중적인 행위는 그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두 가지 종류의 헌금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성적 헌금과 계시에 의한 헌금입니다. 이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성에 의한 헌금은 집에 돌아가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재정적 상황을 면밀히 검토한 다음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내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액수이다” 계시에 의한 기부는 집에 돌아가서 당신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당신은 제가 얼마만큼을 드리기 원하십니까? 저는 당신이 원하시는 그 만큼을 헌금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 액수를 드릴 수 있도록 주께서 힘을 공급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신앙으로 드리는 것이 최상의 형태입니다.
사람들은 “나는 빚을 많이 졌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헌금할 여유가 없습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저도 한 때는 그렇게 말한 경험이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물질적 자비를 베풀 수 없습니다. 저는 빚이 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물질적 도움을 줄만한 여유가 없느냐? 그러면 너의 삶은 나의 복을 필요로 한다. 내가 너에게 복을 주마.”
예수님은 한 과부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분은 성전에 앉아 헌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모든 부자들이 와서 많은 액수의 헌금을 연보 궤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과부가 와서 단 두 개의 동전을 넣었습니다. 그 광경을 목격하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모든 사람들보다 많은 것을 드렸도다.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드렸느니라.” 그녀는 믿음으로 드린 것입니다.
당신이 실제로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의 양 또는 약속 헌금의 정도는 당신과 하나님 사이의 문제입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헌금의 양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말할 어떤 자격도 없습니다. 그것은 극히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급하게 결정해야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은 그것에 관하여 기도하고, 의논하고, 생각하고, 그리고 기도제목으로 내놓아야 할 문제입니다.
고전16:1-2절 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헌금의 특징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원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던 방법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들이 미리 연보를 따로 모아 놓기를 원합니다. 내가 거기에 갔을 때에 바로 수거하여 재난과 큰 위기에 있는 예루살렘의 사람들에게 가져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도움을 제공하기를 원합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물질을 드리는 것에 대하여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규칙적이고 체계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매주일 첫날에” 즉 일주일에 한 번씩 거두어 저축하라고 말합니다. 규칙적이고 체계적으로 하고 즉흥적으로 또는 불규칙적으로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당신이 하나님에게 팁을 주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 도다 더 많은 돈을 여종업원에게 팁으로 줍니다(음식값의 15%를 팁으로 주는 것이 서양에서의 통상적인 관례입니다). “매주일 첫날에” 한번 규칙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둘째: 계획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순간적인 감정에 이끌리어 헌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여 예물을 드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성도여러분의 감정을 자극하여 충동적이고 성급하게 결단하지 않도록 주의 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깊이 생각하고 계획한 후 결단하고 행동으로 실행하는 것이 성서적인 방법입니다.
아내와 나는 십일조에 대하여 특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십일조와 헌금을 따로 떼어두어서 다른 돈과 섞이지 않도록 합니다. 계획적이고 규칙적인 십일조가 되도록 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셋째: 헌금은 수입에 비례해야 합니다.
성경은 헌금에 대하여 “이를 얻은 대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그에 상응하는 물질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적게 축복해 주셨습니까? 그러면 적게 드리실 수 있습니다. 헌금은 수입의 정도에 합당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신명기16:17절에는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찌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원칙이 십일조입니다. 이 원리가 십일조의 모든 것입니다. 십일조는 헌금의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것의 10%를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 가운데 지금까지 이러한 신앙적 행위를 이행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다시 한 번 이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깊이 생각해 보시는 기회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나 우리들 가운데는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십일조를 드려온 성도여러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가 풍성히 주는 삶 안에서 자라가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말한 것처럼, 저와 성도여러분은 십일조 그 이상의 헌신을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헌금하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것은 결코 힘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텔레비전이나 여러 가지 방법들을 통해서 헌금을 요청하는 사례들을 보아왔습니다. 헌금하는 것은 어떤 굉장한 기술을 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이유입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 헌금을 드려야만 합니까?
첫째,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지금까지 축복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당신은 우리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여기 당신에게 일부를 돌려 드립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당신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감사함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주인께 돌려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만 하는 첫 번째 사실입니다.
둘째,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현재 삶의 동기와 우선순위를 되돌아보기 위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것은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이 첫 번째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헌금은 이기심으로부터 벋어나도록 도와주며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가 헌금을 드리기 위하여 계획하고 기도하며 준비할 때 그것은 삶에 있어서 물질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온전히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물질을 돌려드리는 것은 우리는 단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의 관리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셋째, 물질을 드리는 것에는 미래를 위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헌금은 성도들로 하여금 더 큰 소망을 소유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위하여 어떠한 일을 행하시기 원하십니까? 당신의 믿음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방법은 당신의 헌금과 물질관리입니다. 물질을 드리는 것은 믿음의 행동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는 것입니다. 그것은 심고 거두는 것입니다. 저축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행위입니다.
저는 여기에 모인 모든 성도여러분들이 겸손함과 믿음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 앞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 나는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 나는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가?
* 나의 우선순위는 어디에 있는가?
* 나는 규칙적이고 계획적이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에 비례하여 물질을 돌려드리고 있는가? 이 문제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십시오. 그리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십시오.
여러분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십일조를 드리기로 작정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 이상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저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떠한 결정을 하시든지 그것은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서 행해지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결단에 대하여 괴로워하지 마라, 그리고 그것에 관하여 걱정하지 마라. 내가 원하는 것은 너의 물질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네 자신과 물질이 대변하는 너의 헌신과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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