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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 예수께 받은 사명(사도행전 20: 24-35),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5.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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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는 두 부류의 이름이 있습니다. 한 부류는 명자, 다른 한 부류는 신자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이름은 앞에 무엇이 붙는 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명자 앞에 자가 붙으면 사명자입니다. 신자 앞에 자가 붙으면 배신자입니다. 서로 옆에 계신 분들에게 이렇게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명자가 됩시다

 

본문 24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옛날에 국민헌장에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말은 아무 생각없이 외웠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돈 때문에 상황 때문에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사명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하고 싶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기 때문에 해야 합니다. 흔히 우리는 사명자라고 하면 목사, 전도사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같은 평신도는 사명자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엄밀한 의미에서 평신도 선교사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선교를 위하여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82-3절에 보면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와 사도 바울의 직업이 같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3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었더라”.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업을 하면서 받은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받은 사명과 달려가는 길이 같았습니다. 본문 24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 바울이 받은 사명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제1차에서 4차까지 선교여행을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823절부터 2116절까지는 사도 바울의 제 3차 선교여행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 조차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살아갑니다.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그 길을 달려가지 못하고 각기 제 갈 길로 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사야 536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가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평생의 기도 제목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제 우리가 받은 사명을 위해서 달려가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시작은 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복음증거하는 일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기 위해 먼저 기도하십시오. 당신을 필요로 하는 일이 있다면 동역자가 되십시오. 당신의 시간이나 물질이나 기도나 은사나 행정적인 지원이나 그밖에 여러 가지 채널로 당신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임받는 자가 되십시오.

 

사도행전 201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징로님들을 잠깐 만나고자 전갈을 보냅니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그들은 서로 부둥켜 앉으며 울면서 전송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2037-38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면서 어떠한 자세로 감당했을까요? 서로 헤어질 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관계였습니다.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관계는 사랑과 희생의 관계가 형성될 때 가능합니다. 사도행전 2019절 말씀에 보면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과 서로 헤어질 때만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2031절 말씀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에베소 교회에서 사도 바울은 3년 동안 눈물로 성도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설교할 때나 가르칠 때만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목회 사역 전체에 눈물이 배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019절 말씀 에 보면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사도 바울은 겸손에서 나온 눈물이었습니다. 사랑만이 눈물의 씨앗이 아니라 겸손이 눈물의 씨앗입니다. 희생이 눈물의 씨앗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유익한 것이 있다면 아낌없이 다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또한 자신이 주께 받은 사명을 어떠한 자세로 감당했을까요? 어떠한 경우에도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033-34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사도 바울은 자신이 받은 사명을 감당하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사심이 없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천막치는 직업을 가지면서 전도 여행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사람인지라 은근히 바라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하는 일에 지장을 초래할까봐 자신의 손으로 수고한 것으로 전도일행의 필요한 것을 충당하였다고 했습니다. 주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할 때에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심이 들어가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주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면서 범사에 너희에게 모범을 보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035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우리는 이 세상에서 주의 사명을 감당할 때 모든 것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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