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틀이 지나 유월절에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위하여 팔리게 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바로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아야라고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잠정적인 결론은 유월절 절기에는 민란이 날지 모르니 피하자고 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유대의 종교적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좌목을 씌워서 십자가에 처형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려는 계획을 진행시키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체포당하시기 전에 베다니에 사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을 방문하여 식사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이 시몬은 전에 문등병에 걸렸는데 예수님에 의해 깨끗하게 치료받았던 것 같습니다 은혜에 너무 감사하여 예수님과 제자들을 자신의 집에 식사 초대하였던 것입니다. 한참 식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한 여인이 매우 비싼 나드 향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제자들이 이를 보고 분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예수님께 한 이 여자의 행동이 허비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이 훨싼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1. 거룩한 낭비
마가복음 14장 3절에 의하면 이 여인이 가지고 온 나드 향유는 인도에서 나드라는 나무에서 채취된 것으로서 다른 것을 섞지 않은 순전한 향유였기 때문에 매우 비싼 것이었습니다.이 향유의 가격은 삼백 데나리온 이상이었습니다. 한 대니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일당인데 근 연봉에 가까운 금액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 받은 구원의 은혜에 너무 감사하여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여인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향유를 팔아서 생기는 돈에 관심을 가질 뿐 예수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여인에게는 이것이 얼마짜리인 데가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께 받은 은혜를 그 어떠한 것으로도 갚을 수 없는 심정으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여인의 행동에 대해 분ㄱ대하였습니다. 효율성의 차원에서 볼 때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예수님의 머리에 한번에 다 붓는다는 것에 대해 일리가 있는 것 아닌가요? 가성비가 너무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의 머리에 몇 방울 뿌리고 계속해서 아껴서 사용해야 하는 건 아닌가요? 더구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써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거룩한 낭비는 누구에게 하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가장 사랑하는 대상에게는 그 어떤 것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가격이나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 여자는 자신을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표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 하는 일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좋은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주의 이름으로 어떤 일을 하든지 결코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마 10:42-44; 고전 15:58).
2. 사랑의 타이밍
본문 11절입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제자들이 이 비싼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를 하는 것과 자신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것에 대해 다른 측면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에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누군가 위로와 격려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의 이러한 행동이 예수님께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랑의 타이밍이 이렇게 중요합니댜. 가난한 자들에게는 항상 도움을 제공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시면 더 이상 육체적으로는 그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허비는 앞으로 계속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하고 싶은 가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한 번 밖에 없는 기회를 앞으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다가 기회를 놓쳐버린 경우가 이외로 많습니다. 앞으로 잘 해야지 하지 말고 지금 잘 해야 합니다.
3. 거룩한 장례
예수님은 이 여자가 행한 것을 자신의 장례를 위한 것과 연결시키십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이 여자가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이 여자가 예수님의 장례를 위하여 향유를 부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인의 이러한 행동이 예수님의 장례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행한 것에 대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온 천하에 이 여인이 행한 일을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너도 나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여인의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사건은 기념비적인 사건이요, 두고두고 기록되는 아름다운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섬겼던 모든 것들은 영원히 기억되는 금자탑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또한 복음을 위한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도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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