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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예배의 목적을 찾으십시오.(에베소서 1:3-14),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5.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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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예배학 교수인 폴 훈(Paul W. Hoon)은 기독교 예배란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의 응답이라고 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예배학 교수였던 피터 부르너는 말하길 예배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배는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게 될 때 위험하고 잘못된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사람 의 일함이 일치를 이루는 조화입니다.

 

교회 안에 흐르는 부정적 의식 중에 신비신앙, 맹종신앙, 기복신앙이라는 말이 생겨난 원인이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예배에 대한 부족이나 예배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예배자의 반응이나 응답의 부족 때문입니다.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어느 한 방향으로 끌려가는 극단적인 예배는 신앙의 방향까지 잘못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보아왔던 사실들입니다.

 

예배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하시는 것을 읽고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인 하나님 중심이 먼저이고 그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과 감사와 헌신을 드리는 응답 중심이 그 다음입니다. 매 주일 예배 때마다 이 둘의 교통과 관계가 얼마나 정상 적으로 활동하는가에 따라서 교회의 예배는 살아있고 생동력 있음을 평가받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목적이 있고 교회 안의 사역들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적이란 언제나 최종적인 방향인 동시에 꼭 실천해야 될 내용들입니다.

 

교회의 목적은 5가지의 사역을 해야 합니다. 예배의 사역, 전도의 사역, 교육의 사역, 봉사의 사역, 교제의 사역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서 하시는 가장 큰 사역은 예배 중심입니다. 예배는 선택이 될 수 없는 필수 사역으로 교회의 본질이며 교회의 자기표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입니다

 

만일 교회가 예배를 소홀하게 취급하고 성도가 예배 생활에 불성실하다면 그 교회나 그 성도는 교회의 목적을 등한시하는 건강하지 못한 교회를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의 열정이 사라진 교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배로부터 멀어진 신앙생활을 보십시오. 예배에 관심이 적은 교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초대교회가 건강하고 오늘의 교회들이 그 뒤를 쫓아야 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 그들이 어떻게 예배를 드렸는가를 보십시오. 예배를 위하여 모이기를 힘쓰고 마음을 같이 하여 예배에 몰두하고 예배를 뜨겁게 사랑하는 그들의 모습(2:42)은 그들이 섬기는 교회와 그들의 신앙생활까지 능력 있고 폭발적인 하나님의 부흥을 예루살렘 전체에 퍼뜨렸습니다. 그들은 온 도시와 마을을 예배의 파워에 의해서 영향을 주는 기적을 일으키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목적을 분명히 한 예배이기에 성도들 또한 바른 신앙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예배의 목적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4가지를 살펴보면서 우리 들이 드리는 예배가 선명한 목적 안에서 충실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는가 스스로 점검 하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1. 만남의 예배를 드려라.

 

예배는 하나님과 예배자의 만남입니다. 기독교 예배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며 무의미한 관계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의 관계입니다. 이미 인간은 에덴의 동산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습니다. 죄인 된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경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의 구속적 은혜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과 사람의 교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남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유한한 인간을 찾아오신 무한하신 절대자 하나님과의 만남이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매 예배 시간마다 오셔서 만남 의 자리를 열고 계십니다. 죄인이든, 병든 자이든, 버림받은 사람이든 상관없이 모두를 만나주시길 원하십니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 살고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는 한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위로해줄 자를 찾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위로자는 하나님이십니다.

 

49:13

 

66:13

 

하늘이 노래하고 땅이 기뻐하는 것은 최고의 예배 모습이고 그 속에서의 위로는 마치 어미가 자식을 품에 안고 위로하는 것 같은 친밀한 모자의 관계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인간이 가장 가깝게 만나는 곳입니다. 당신은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품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활동하시는 그 움직임을 느끼고 있습니까?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인간에게 주시고 인간을 이끌어 그 생명을 누리도록 하시는 거룩한 행위라고 했습니다. 생명 운동을 일으키며 사람을 살리도록 만드는 곳이 예배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사람은 다시 태어나는 구원을 경험하고 예배의 중심이 되는 십자가와 부활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예배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육체를 살리시고 고치고 가르치시며 죄인들과 식탁을 함깨 하시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그 나타내심의 절정 이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하여 자기를 나타내 보이시고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가장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릴 때마다 예배자들은 하나님과 깊은 사귐과 교제를 기다리고 예배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하나님을 집중하고 우리의 예배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일예배에 당신이 간절한 소원을 담은 만남의 예배를 원하고 계십니다. 목사나 사람을 만나는 친교의 장소로 예배를 타락시키지 않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며 나의 인생에 놓칠 수 없는 축복 된 시간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2. 대화의 예배를 드리라.

 

예배는 하나님과 예배자의 대화입니다. 그 대화는 정신, 영혼, 마음, 감정, 내적 확신, 신체, 믿음의 전체를 찬양으로 고백으로 화답으로 응답으로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예배 속의 대화란 언어의 차원 그 이상입니다. 말로서 소리를 내는 것만이 대화가 아닙니다. 혀로서 표현하는 정포만이 아닙니다. 속삭임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배 속에서의 대화란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열정을 헤아리는 예배자의 자기표현입니다. 그러나 예배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하나님과 대화를 자기중심적 표현으로 고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감정이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을 대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대화의 예배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곳이 시편입니다.

 

103: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하나님과 대화하는 예배란 내 속에 있는 것들을 다 그분 앞에 쏟아놓는 것입니다. 대 화는 감추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가시적이고 일방적이며 거짓과 감정의 폭발이나 분위기에 이끌려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자 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그를 송축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나 욥이 고백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3:41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욥기I6:20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나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고󰡒

온 몸으로 대화하도록 지시하는 예레미야의 모습과 눈물을 홀리며 하나님을 향하는 욥의 모습은 너무나 감동적이고 하나님께서 어떤 예배자들과 대화 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배는 예배자의 반응 즉 응답으로 완성되어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면 그 은혜를 보고 하나님께 갖가지의 방법으로 대답을 합니다. 예배자의 모든 몸짓과 언어와 표현이 곧 대화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전에서 예배하는 중에 스랍들의 찬송소리를 들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보면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6:3)하며 자신이 죄인 됨을 고백하며 응답을 했습니다.

 

우리들은 매 주일 몇 번씩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상하리만큼 예배자들의 무표정, 무반웅,무감각은 이미 대화가 없는 예배와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이 단절된 예배처럼 돼버렸습니다. 구원을 경험하고 은혜를 받고 평안을 누리고 위로를 받았으면, 기왐으 로 입을 열고 손을 들고 춤을 추며 온 몸으로 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해야 당연한 것인 데 아직도 대화의 예배는 어색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펀금을 드리는 것도 대화입니다. 성전에서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을 넣는 여인의 모습을 보신(21:2) 예수님께서 무감각하시고 무반응을 보이시지 않았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참된 예배는 온 몸으로 대화하는 예배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속에서 밖으로 표현하십시오. 생명은 역동적이고 활동하는 것입니다. 대화가 일절 없는 가정이나 직장을 상상해보십시오. 숨이 막히고 그곳에서 탈출하고 싶을 것입니다. 예배에서는 침묵 보다 대화를 더 높이 평가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3. 봉사의 예배를 드려라,

 

예배를 영어로 워십 서비스(Worship service)라고 합니다. 서비스란 봉사를 의미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예배자의 상호봉사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는 역할이 있고 무질서하게 드릴 때는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는 것을 성경의 예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패하게 되자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언약궤를 전쟁터로 옮겨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삼상 4:3), 이게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지 않고 언약궤를 끌고 다니며 그 궤에다가 구원을 호소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패하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빼앗기고(삼상 4:10,11) 그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서 자빠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삼상 4:18). 예배를 위하여 봉사하는 자들의 실수가 얼마나 큰 위험을 가져오게 하는지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예배 봉사를 위하여 선택된 레위인에 대한 내용이 민수기 75절에 있습니다. "그것을 그들에게서 받아 레위인에게 주어 각기 직임대로 회막봉사에 쓰게 할지니라." 회막은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레위인의 봉사는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 봉사를 위하여 특별하게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봉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의 생사를 결정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레위인들이 어떤 모습으로 회막의 일들을 돌보고 예배를 위하여 어떻게 준비하고 봉사하느냐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명에 영향력을 줄 정도로 중요한 직무였습니다.

 

구약의 민수기 819절의 말씀은 큰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그들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선물로 주어서 그들로 회막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봉사하게 하려 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가까이 할 때에 그들 중에 재앙이 없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예배를 위하여 봉사하는 일이 작은 일이 아너라 큰 일이며 하나님의 사역 중의 큰 사역입니다. 다시 민수기 169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성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예배는 예배로 부름 받은 모든 사람들의 봉사와 역할 분담을 통해 서로 협력하는 예배 공동체가 될 때 건강합니다. 봉사가 없는 예배는 목회자 흔자만이 수고하는 다양성이나 역동성이 결여된 예배가 될 수밖에 없으며, 예배 인도자만이 예배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은 예배의 질과 폭과 깊이에서 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의 예배 형태는 목회자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장하는 교회와 예배를 통하여 부흥하는 교회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예배를 위하여 봉사자들이 많이 참여하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보는 예배(Seeing wouhip)에서 봉사하는 예배(Sering worship)로 바꾸는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이 가장 먼저 사역할 영역은 예배 봉사입니다. 예배를 위하여 맡겨진 봉사의 위치를 소홀하게 취급하지 않고 서로 예배를 영광 되게 하기 위하여 힘을 모아 봉사하는 교회가 될 때 하나님의 예배 역사는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는 봉사하는 일꾼들의 열매입니다.

 

4. 체험의 예배를 드려라.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성령님의 역사 속에서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는 예배의 공동체"라고 합니다. 이것은 언어중심의 '지각적 기능' 보다는 보고 듣고 경험하는 '체험적 기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의 세 가지 요소 가운데 기대, 만남, 응답 " 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체험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에 대해서 표현하기를 '맛보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4:8). 하나님이 예배 속에서 베푸시는 선하신 일들은 예배자들만이 느끼는 특권 입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계속해서 여호와의 전에 머물기를 소원했고 그곳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을 맛보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시편 27: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 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사도 바울도 하나님을 노래하면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엡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우리는 매주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회를 찾아옵니다. 교회의 예배 가운데로 나을 때 우리는 은혜 받기를 원하고, 자신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힘을 얻기를 기대하며 예배에 온 정성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좀더 성숙함과 깊은 맛을 느끼는 예배란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를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문제 해결이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 이며, 잘 드리는 예배인가 그렇지 않은 예배인가를 초월하는 하나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예배의 용어 가운데 "유행을 따라가는 예배" (Faddish worship)가 있습니다. 이것은 보통 예배자들이 주일 신자가 되어 습관적으로 예배에 나와 어떤 변화나 감격이나 체험이 없이 드리는 예배자의 모습을 말합니다. 왜 예배에서 예배자들이 하나님을 체험 하지 못하게 되는가? 어찌하여 예배 속에서 하늘의 은사의 맛(6:4,5)을 느끼지 못하는가? 그것은 예배의 가시적인 것들에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예배 체험의 핵심은 하나님께 온 마음과 뜻을 고정시키고 그 하나님만을 열망하며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충성스럽게 바라보고 기대하는가에 의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40:16),

 

왜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에게 마음을 찢고 회개하며 자복하고 가난한 마음밭을 원하시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마음이 나누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것과 세상의 것을 동시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모두 누릴 수 없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시선을 맞추는 훈련입니다. 그러므로 찬양을 하든지 기도를 하든지 봉사를 하든지 한 마음으로만 하여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만을 최고의 예배 자리에 놓을때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배는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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