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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예배의 의미를 세우십시오.

by liefd 2025.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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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기본적인 신앙생활에 속합니다. 예수를 믿는 어린 아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첫째 되는 신앙 생활의 위치에 세워진 것이 예배신앙입니다. 현대 교인들의 의식 중에 가장 위험한 흐름이 바로 예배를 소홀하게 취급한다든지, 예배 중심의 신앙 생활에 대한 적극성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흐름 가운데 안타까운 것이 주일을 정상적으로 지키는 일이나 주일예배에 대한 열정이나 철저한 헌신이 멀어지고 있는데도 교회나 성도들이 주일 회복이나 예배 회복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주일예배에 빠지는 것은 사회의 흐름이고 세상의 문화이니 이해해야 한다고 변명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사회적 압력과 세상의 흐름에 대해 단호하게 말씀하시길 "너회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세상을 따르고 세대의 흐름에 빨리 적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어느 시대, 어떤 세상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뜻에 대해 민감한 사람이 바른 신앙의 가치관으로 세워진 사람일 것입니다. 그 가치관은 질서 신앙을 만들어 냅니다. 무엇이 우선 신앙인가를 말해주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한 기준을 새워줍니다. 그러나 현재 교회에서 그 기준이 점점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욕심은 편하게 예수를 믿고 싶어합니다. 열심히 모든 예배 시간마다 참석하는 것은 교회 안의 소수의 직분을 가진 사람만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든지 아니면 교회의 중직이나 앞으로 중직이 될 사람들이 해야될 시험 과목처럼 여깁니다. 1년의 52주일을 모두 지킨다는 것은 너무 많은 회생을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간혹 특별한 경우는 주일을 범하면서 사회 생환도 하고 친구들의 모임이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오늘의 흐름이며 교인들의 문화라고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 흐름은 어느새 교회 내부에도 깊숙하게 스며들어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는 실정이며 목회자가 주일예배를 너무 강조한다든지, 예배 참석을 강요하면 교인들은 큰 부담을 느끼고 유쾌하지 않은 반응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는 결국 한국 교회의 주일예배 참석률이 2천년에 들어서면서 50~60%에 머물게 했고 더 큰 문제는 기독교의 힘이 약해지고 있으며 앞으로 매년 성장률이 한자리 숫자를 유지하기에도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잘못된 의식과 흐름이 계속해서 나쁜 쪽으로 전염되어 가는 교회를 차단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명령하신 교회의 븐질적인 모습들을 회복시키고 새로운 새 부대를 만드는 작업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배 학교에 참여하는 여러분은 한 사람의 방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으로 환경을 바꾸고 흐름을 바꾸는 선도자로 다시 시작해야될 책임을 부며 받은 이 시대와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위치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은 손해보는 신앙 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성도에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약속과 축복과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너무 많은 성도들이 위로부터 내려 주시는 그 아름다운 열매들을 경험하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 자신이 만든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맴돌고 있다가 침몰하는 배(Sinking Ship)가 되고 마는 안타까움을 보게 됩니다.

 

신앙은 파도를 타고 즐기는 것이지 파도 속에 칭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교회는 파도를 탈 수 있는 능력을 가르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약하고 약한 사람을 만들고 겁이나 바다에도 나가지 못하는 신자가 되도록 한다면 교회는 하나님 앞에 직무유기입니다. 교회가 가르쳐야될 최고의 교육은 예배입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고 자신을 알려주시는 최고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를 최고의 정상에 서도록 하려면 최고의 예배 훈련을 시켜야 됩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왜 예배 신앙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인가?

 

첫째, 예배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지켜야될 최고의 말씀입니다.

 

로마서 9:4-5 "그들에게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둘째,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최고의 행위입니다.

 

요한계시록 14:7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셋째,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최고의 고백입니다.

 

마태복음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위에 소개된 말씀들처럼 예배는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생활을 하고있는가 그렇지 않는가를 확인시켜주기 때문에 교회는 정기적으며 지속적으로 꾸준한 예배 훈련을 해야 성도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공적인 예배는 어떻게 드려지는 것이고 어떤 예배자들을 하나님은 원하시는가를 훈련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예배 훈련은 건강한 예배자를 만들어주고 예배에 성공하는 신자가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잘 배워 예배드릴 때마다 예배의 능력을 힘입는 강하고 참된 예배자로 세워져야 합니다

 

예배 훈련의 목적은 먼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이론이나 신학보다 정확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참된 예배를 드리려면 성경에서 제시하는 예배란 무엇인가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고 그 예배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예배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4:22).

 

예배를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의 차이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은 수다한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무엇을 예배하고 있는지 예배의 의미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예배를 아십니까? 이 질문은 어떻게 예배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예배의 정의를 내릴 수 있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예배와 성경적 의미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론을 배우고 머리에 입력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는 실제이지 이상이 아닙니다. 머리로 접근하는 방법에서 당신의 마음을 열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당신이 예배드릴 때에 그대로 옮기는 태도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방금 예배를 드리고 나온 성도들이 설교의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면 얼마나 한심하겠습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예배 시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배에 참석하는 것에만 의의를 부여한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종교심의 표현일 뿐입니다.만나서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 이야기는 별로 기억하지 않고 만났다는 사실에만 의미를 둔다면 말한 사람의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비슷한 예로 성경은 읽지만 읽고 나서 그 내용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이 어렵다면서 그저 읽는 것 자체에 의미를 찾는다고 말합니다. 그것 역시 신앙이 종교심의 표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식의 성경 읽기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신문을 읽고 난 후에 무슨 내용이 있느냐는 질문에 내용도 모르고 그냥 읽었다고 대답한다면 제 정신이라고 말할 사람이 없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에는 관심이 없이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보다 말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를 드리기 원하는 성도들을 기뻐하십니다. 어느 때에나 그래야 하지만 특히 예배를 드릴 때 말씀에 관심을 집중하십시오. 말씀이 당신과 예배 드리는 사람에게 역사 하시도록 기도하면서 예배에 입하시기 바랍니다.

 

1. 시하아 예배를 드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애굽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지도자 모세와 아론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시하신 말씀과 약속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외쳤고 그 말씀을 들은 백성들이 보인 행동이 이렇습니다.

 

출애굽기 4:31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이것이 샤하아입니다. 머리를 숙여 경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엎드리게 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께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예배자가 자신을 드러내는 교만이라 자기 우월과 자기 과시를 없애는 것입니다. 샤하아는 전적인 순종과 복종을 의미하는 종의 태도를 가집니다. 몸을 숙이는 것은 자기를 버렸다는 것을 겉으로 보이게 하는 표현입니다.

 

시편의 말씀에서 저자는 이렇게 예배드렸다는 것을 간중하고 있습니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끓자(시 95:6).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받는 예배자는 무릎을 끓는 자이고 머리를 숙이는 자이고 허리를 굽히는 자입니다. 과연 당신은 이런 예배 자세를 마음과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습이 너무 뻣뻣한 것은 아닌가? 혹시 고개를 곧게 들고 있지는 않는가? 완악한 마음으로 예배드리는 것은 아닌가? 진실로 겸손하지 않고 교만과 자만의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만 감찰하시고 돌보시는 것뿐만 아니라 오늘까지 우리들을 그들과 똑같이 대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받고 머리를 숙이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샤하아 예배 행위를 보여준 것은 우리가 본 받아야될 예배 태도입니다. 지금까지 보호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예배에 대해, 하나님께 대하여 내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따지는 불평의 태도는 사치입니다. 우리는 머리를 숙여 온 몸으로 그분께 경배를 드려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욥기 120절에 "욥이 일어나 겉옷을 입고 머리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한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 앞에 완전히 굴복한다는 자세와 순종하는 태도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당신은 진실로 엎드려 예배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진실로 머리를 숙이는 예배자입니까?

 

당신은 진실로 경배하고 계십니까?

 

예배의 행위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교만입니다.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맞추려는 의식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맞추기 위한 자신과의 전쟁이며 영적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샤하아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엎드릴 때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체휼하심은 우리 예배를 온통 은혜의 기름 부음으로 가득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2. 아바드 예배를 드려라,

 

이사야 1921절에서 사용된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 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출애굽기 312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봉사, 섬김의 의미인 아바드는 여호와를 섬기는데 사용되고 제물을 드리는 일이나 레위인이나 제사장들이 회막에서 봉사하는 것(4:19, 대하 8:14))을 아바드라고 합니다. 예배를 서비스(service)라고 할때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행위입니다. 나는 그의 종이라는 것이고 그분을 위해서 봉사한다는 것입니다.

 

그 봉사는 자신의 모든 것, 지성과 감성과 의지와 태도 그리고 소유를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입니다. 회생제물을 드리는 자세로 하나님을 섬기는 헌신의 예배와 전인적으로 자신을 드리는 희생의 예배가 아바드 예배입니다.

 

애굽에서의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알고 그 여호와 하나님께 제물과 예물을 드리는 경배(19:21)는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것과 같은 깊이 있는 예배입니다. 노예 생활과 종살이를 하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바드입니다. 습관적이나 기계적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일주일에 한번 하나님께 나아와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에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아바드는 희생을 전제로 한 예배로서 나의 마음을 담고, 나의 눈물을 담고, 나의 헌신을 담고, 나의 사랑을 담고, 나의 소원을 담고, 나의 생명을 담아서 드리는 고백이여 하나님이 나의 주인임을 표현하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생명이며 나의 주인임을 알고 드리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443절에 "이는 그들이 자기나 너희나 너희 열조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에게 나아가 분향하여 섬겨서 나의 노를 격동한 악행을 인함이라"는 말씀에서 분향하여 섬긴다는 것이 아바드인데 그것은 신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예배드리다가 오히려 하나님의 격노를 받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은 진실로 하나님을 알고 예배드리고 있습니까?

 

당신은 진실로 하나님을 당신의 주인으로 섬기고 계십니까?

 

당신은 진실로 하나님께 당신의 모든 것을 드리며 예배하십니까?

 

오늘의 교회에 아바드 예배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강한 자기 표현이나 자신만이 특별하다는 의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존재임을 고백하며 자신을 철저하게 항복시키며 봉사하는 예배가 가치 있고 존귀한 예배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호와의 종들입니다. 열방에 하나님의 종으로 사명을 감당하고 우리의 예배 모습을 통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하는 예배가 살아있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3. 프로스쿠네오 예배를 드려라.

 

신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말씀이며 누구의 손에 입맞추는 것, 존경의 표시로 자신을 낮추는 행위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입맞춤이란 신뢰와 사랑을 기초로 해야합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셨습니다. 때문에 예배를 가르치실 때 이 말씀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한 여인이 예수께 찾아와 예배에 대하여 질문을 합니다. 예배란 무엇입니까?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무엇을 예배해야 합니까? 예배에 대해 혼동하며 예배에 대해 흔들리고 있었던 수가성의 한 여인에게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dud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4:24)

 

영적 예배와 진리의 예배란 먼저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사랑이 없이는 드릴 수 없는 예배입니다. 마태복음 22절에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했던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가 경배하는 모습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열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배는 사랑하는 하나님과의 입맞춤이며 고백이고 표현입니다. 그리고 존경의 표시입니다. 수가의 한 여인이나 동방의 박사들처럼 의미 있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오늘의 예배자들에게 프로스쿠네오 예배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너무 멀어진 것 같은 예배의 모습이나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 같은 예배 행동과 하나님을 존경하는 진지함이 없는 예배에 '경배하는 예배'로의 새로운 변화와 예배 자의 갱신이 있어야 예배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왜 신약 성경에서 제일 많이 쓰여진 단어가 프로스쿠네오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사랑의 예배와 신뢰의 예배를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단순히 시간만을 드리는 행위 이전에 사랑을 드리는 시간이며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통해 서로가 표현하는 시간입니다. 예배를 위하여 봉사를 하는 찬양인도, 안내위원, 헌금위원, 헬퍼, 워십팀은 자신이 예배를 얼마나 사랑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헌신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사랑이 없이는 하나님이나 사람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당신은 진실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진실로 사랑이 담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당신은 진실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뜨겁습니까?

 

프로스쿠네오 예배는 사랑의 존경과 신뢰의 관계 속에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예배에 참석할 때 은혜를 받고 문제가 해결되는 욕심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는 법을 터득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예배 가운데서 보여주는 찬양과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도 사랑을 느끼기까지 적극적이며 헌금을 드리는 것도 사랑으로 드릴 때 진정으로 예배로 예배되게(Let the worship be the worship)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표현의 르네상스와 같은 화려한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창조적인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예배를 드릴 때 당신이 표현하는 예배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사랑의 경배입니다. '당신에게 하나님이 계시다면 당신은 당연히 그에게 경배해야 한다.󰡐 루터의 말입니다.

 

4. 레이투르기아 예배를 드려라.

 

레이투르기아는 신약 성경에서 예배에 대해 가장 폭넓게 사용되는 말로 백성의 일,사역,섬김으로 해석되고 공공의 목적을 위하여 무보수로 하는 봉사나 고대 헬라의 공동체를 위한 봉사에도 사용되었습니다.

 

레이투르기아는 크게 3가지로 사용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사가랴의 제사장 직무를 가리킬 때 사용합니다.

 

누가복음 1:23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

 

둘째,사도 바울이 자신의 헌신과 봉사를 말할 때 사용합니다.

 

빌립보서 2: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셋째, 예수님께서 중보자로서의 직무를 하실 때 사용합니다.

 

히브리서 3: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ㅇ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그의 집이라."

 

위의 말씀처럼 레이투르기아는 행동으로 옮겨지는 실천의 예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대한 다양한 섬김의 행위들의 집합입니다. 그 중에서 레이투르기아 예배는 특히 봉사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봉사이다라는 말은 예배자들이 추구하던 받는 예배에서 드리는 예배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에서 예배는 성숙함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참 여하는 것에 만족을 느끼기 보다 예배를 위하여 어느 자리에서든지 봉사하는 역할을 하고 예배를 통하여 기독교인들의 생사를 바치는 것(2:17)과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는 장면(13:3)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봉사하는 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현대 교회가 예배의 부실을 지적 받는 이유가 바로 봉사하는 자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예배자들은 예배 사역에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소수의 몇몇 직분자들에 의해서 진행되는 예배나 매주 반복되는 예배, 예배의 역동성이나 축제적인 만남이나 즐거움이 없는 원인도 봉사하는 예배자들보다 관람하는 구경꾼예배자 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앉아있는 의자만 따뜻하게 만들다 예배가 끝나면 곧바로 돌아가는 매주 똑같은 예배를 매주일 드리는 것은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예배는 공동 참여입니다. 예배는 봉사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단지 목사나 목회자들만이 준비하고 봉사하는 일이 아니라 모든 성도는 예배를 위하여 일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예배자들의 섬김과 봉사는 예배를 풍성하게 만듭니다.

 

당신은 진실로 예배를 위하여 사역을 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진실로 예배를 위하여 중보하며 도움을 주고 있습니까?

 

당신은 진실로 예배를 위하여 봉사하고 있습니까?

 

예배는 종교 의식에 참여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예배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나의 믿음을 표현하는 시간이며 예배자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그분께 감사하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섬김과 경배의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몸으로, 마음으로, 믿음으로 최고의 봉사를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레이투르기아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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