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있을 때 마지막으로 기록한 서신서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처음 개척할 당시의 상황을 우리는 사도행전 16장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 교회는 자주 장사를 하던 루디아와 감옥의 간수가 처음 예수를 영접함으로 그들을 중심으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이 가정에서 시작된 교회가 후에는 유럽에 복음을 전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서 빌립보서를 쓸 때는 처음 빌립보에 전도를 시작한 후 10년쯤 지난 뒤의 일입니다. 그동안 빌립보 교회는 바울과 사랑의 교제를 계속적으로 유지해 왔으며 말씀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특별히 관심과 애정을 보였던 교회가 바로 빌립보 교회였습니다.
빌립보 교회에 대한 바울의 사랑은 그의 서신서 가운데 잘 나타나 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3-8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빌립보 교인들을 사모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절에서 빌립보 교회에 대한 그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안에서 서라.”
이처럼 빌립보 교회는 말씀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교회이며 그래서 바울이 사랑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빌립보 교회이었지만 문제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옥중에서 사랑의 편지를 쓰는 동시에 문제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문제들은 그 당시 소아시아 지역에 세워진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이며 공통적인 문제였습니다. 첫째는 유대주의 자들과 관련된 문제이며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빌 3:2) 다음은 교회의 일을 다툼과 허영심으로 하는 문제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빌 1:15,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2:3) 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장 20-21절에서 먼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신앙고백을 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리고 다음과 같이 빌립보교인들에게 권면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1:27).
다시 말씀드리면, 너희는 무엇을 하든지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그에 합당한 방법으로 행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하모니를 이루고 교회가 연합하며 하나 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빌립보 교회나 오늘의 한국 교회에 동일하게 바라시는 기대가 깨어지지 않고 하나 됨을 지키며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교회의 하모니를 이룰 수 있습니까?
1. 복음의 합당한 생활을 하라.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교회 안에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두 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서로 협력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빌1:27). 둘째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일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빌 1:28).
그리스도인이 신앙을 위하여 서로 협력하는 일과 그리고 대적으로부터 승리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 중요성을 살피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존재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어떠한 존재들이 되었는가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공동체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서 먼저 우리들의 과거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세잡은 자를 따랐으니 지금 불순종의 아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의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1-3).
뿐만 아니라, 에베소서 1장 12절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들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결국 우리의 과거를 돌아볼 때 우리들은 세상 풍속을 쫓고 육체의 욕심에 따라 살았으며 진노의 자녀이었으며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변화에 대하여 바울은 빌립보서 2장 8절에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선물이라.”
또한 빌립소서 2장 13절에 바울은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소망도 없는 진노의 대상자들이었습니다. 각자의 길을 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습니다. 한 형제자매가 되었습니다. 한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둘째, 우리들은 하나님의 시민이요 권속입니다(엡 2:19).
바울은 먼저 우리의 과거를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이루어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변화된 신분에 대하여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2장 19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개인적 신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분에 대한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제 외인도 아니며 손도 아니고 하나님의 시민이며 하나님의 권속입니다.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분에 대하여 이처럼 포괄적이고도 완벽한 성경구절을 일찍이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외인이 아닙니다(엡2:19). 국어사전에서 “외인” 이란 “어떤 일에 무관한 사람, 어떤 둥우리 밖에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무엇과 관계 지어졌으며 또한 어떤 둥우리 안에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안에서 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둥우리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일에 관계되어있는 사람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손이 아닙니다(엡 2:19). 국어사전에서 “손”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딴 데서 임시로 와서 묵는 사람” 저와 여러분이 교회에 손입니까? 딴 데서 임시로 와서 묵는 사람들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요 둥우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며 한 가지 일에 관계된 사람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시민입니다(엡 2:19). 저와 여러분이 외인도 아니며, 손도 아니기에 사도바울은 저와 여러분을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라고 말합니다. 시민은 나라의 주인입니다.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시민이란 한 나라의 주인으로서 국정에 참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며 그 국가로부터 모든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시민은 국가가 요구하는 것을 지키고 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시민으로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모든 은혜를 받을 권리와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고 명령하신 모든 것을 행하고 지키며 순종해야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권속입니다(엡 2:19). 권속은 한 집안 식구를 의미합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한 식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국가보다도 더욱 결속력이 있는 것은 바로 권속입니다. 피로 연결된 집단이 가정이며 권속입니다. 국가와의 관계는 법을 앞세워서 서로의 의무와 책임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가족은 법으로 이루어진 집단이 아니라 피로 이루어진 집단입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가족입니다.
셋째, 우리들은 지어져가는 건물입니다(엡 2:21).
바울은 저와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의 터 위에 지어져 가는 건물이라고 말합니다. 건물은 어떻게 지어집니까? 먼저 건물을 세울 터를 만듭니다. 그리고 네 모퉁이에 주춧돌을 세웁니다. 주춧돌을 중심으로 벽돌을 쌓아갑니다. 하나님이 거하실 이 지어져가는 건물의 주춧돌은 이미 놓아져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의 벽돌이 되어 하나님이 거하실 건물이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건물을 세울 때 벽돌을 어떻게 쌓아갑니까? 벽돌마다 서로 맞물려서 쌓아 올라갑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도와 성도가 마치 건물의 벽돌처럼 서로 맞물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와 사랑으로 견고히 맞물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느 것도 이 견고한 연결을 파괴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8장 37-39절에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특별한 신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 즉 복음을 통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었으며, 하나님의 시민이며 권속입니다. 그리고 지어져가는 건물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그리고 성도와 성도는 서로 연합하고 협력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서 우리가 서로 한마음으로, 그리고 한 뜻으로 협력하고 연합해야만 합니까? 사도바울이 에베소서 1장 27절에서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라고 권면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복음의 신앙을 위해서 서로 협력하는 일(1:27)과 둘째 대적하는 자들과 싸워 승리하기 위해서입니다.
1) 대적하는 자들로부터 승리하기 위해서 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빌립보서를 기록할 당시 소아시아 교회들의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문제는 바로 유대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들어와 잘못된 교리를 주장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을 강하게 배척했으며 그들과 맞서 싸웠습니다. 빌립보서 3장 2절에서 바울은 이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바울이 교회에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에 대하여 얼마나 강하게 비난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들의 가르침은 교회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 시켰던 것입니다. 이들은 교회에서 파당을 만들며, 분쟁을 일으키고, 교회의 하나 됨과 연합을 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을 개들과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합니다. 바울은 이들을 교회의 대적이라고 표현합니다. 바울은 이들을 두려워하여 피할 존재들이 아니라 이들과 싸워서 이겨야만 하는 대상이라고 권면합니다. 이들과 대적하고 이들과 싸워서 이기기 위하여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협력하라고 말합니다(27).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의 대적은 그리고 우리가 싸워야할 상대는 잘못된 교리 뿐만은 아닙니다. 결국 우리의 대적은 사탄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갖가지 시련과 영적고난 그리고 육신의 질병 또한 우리가 싸워서 이기고 믿음으로 극복해야할 대적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4장 12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오늘 본문 29-30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너희 안에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우리는 우리의 대적 자들로부터 승리하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갖가지 고난과 시련들로부터 승리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권속으로서, 지어져가는 하나의 건물로서, 한마음과 한뜻으로 연합하고 협력해야만 합니다.
2) 성도의 신앙을 위해서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권속으로서, 그리고 지어져가는 건물로서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서로 협력하고 조화를 이루어야하는 이유는 성도들의 신앙을 위해서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참 신앙을 지키고 성장하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분쟁과 분열과 파당 짓는 일은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참 신앙을 지키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만큼 성장하기 위해서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서로 협력해야만 합니다. 이점에 대하여 바울은 빌립보서 2장 1-2절에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이 편지를 쓰기까지 10년 이상 말씀을 따라 살려고 노력했던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투기와 분쟁, 다툼이나 허영심이 교회 안에 싹트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1:15, 2:3). 투기와 분쟁, 다툼이나 허영심은 결국 성도의 온전한 신앙생활을 방해합니다. 성도의 신앙성장을 방해합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다음과 같이 빌립보 교인들을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가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1-3).
성도의 신앙을 위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은 4가지 구체적인 덕목을 제시합니다.
첫째, 성도들 피차간에 권면하는 일입니다.
둘째, 사랑으로 위로하는 일입니다.
셋째, 성령 안에서 교제하는 일입니다.
넷째,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일입니다.
이 일을 통해서 성도들 서로 간에 협력과 한마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 간에 이러한 아름다운 권면과 위로와 교제와 긍휼과 자비가 없이는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을 온전히 지켜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일을 복음의 신앙을 위해서 협력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27). 성도여러분 서로의 신앙과 성장을 위해 이 네 가지를 행하십시오.
첫째, 권면하는 일입니다.
성도가 온전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교회에서 성도들 간에 아름다운 권면이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권면은 영어로 “격려”를 번역한 것입니다. 격려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일입니다. 형제를 실족시키기는 아주 쉽습니다. 그러나 격려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하여 확신할 수 없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언제 직장을 잃어버릴지 모르는 불안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자격증 취득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자고나면 사람들이 떨어져 죽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모든 사람들이 보험가입에 열심입니다. 이 모든 현상이 불안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신앙생활이 항상 순탄하지만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시험 가운데 빠질 때도 있습니다. 낙망할 때도 있습니다. 실족할 때도 있습니다.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이 시대 저와 여러분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일은 서로 격려하고 용기를 불어주며 서로를 위해 힘이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서로의 신앙을 지켜내고 성장하는 일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축복은 격려입니다. 격려가 많은 교회는 성장을 하지만 격려 대신 흠집을 잡는 교회는 쇠퇴해 집니다.
둘째, 사랑으로 위로하는 일입니다.
우리 가운데 사랑의 위로가 필요한 형제와 자매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저와 이곳에 있는 모든 성도여러분이 사랑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습니까? 마음의 상처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외로움으로 지쳐있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여러분 피차간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위로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한 공동체이며 하나님의 가족이며 함께 지어져 가는 건물입니다. 사랑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의 위로를 주지 않는다면 교회가 무엇으로 그들을 가르치며 무엇으로 그들의 영적 성장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서로 위로하는 돌봄의 품이 있어야 좋은 교회입니다.
셋째, 성령 안에서 교제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성경공부, 기도회를 통해서 성도 간에 아름다운 교제가 가능합니다. 각 기관들을 통해서 성도들의 교제가 가능합니다. 성도간의 아름다운 교제를 통하여 서로의 신앙을 지키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모임이 아니라 성령의 모임에 주의해야 합니다. 차 마시고 떡 먹는 교제가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이 있는 교제를 말합니다. 이것은 서로 기도하는 모임이며 서로 영적인 교제입니다.
넷째,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일입니다.
성도의 필요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성도들이 한마음이 되어 협력하지 않고 어떻게 교회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최대의 용서가 있고 참음이 있고 용기를 주는 자비의 장소이어야 합니다. 결국 성도들 사이에 이와 같은 아름다운 역사가 없다면 냉냉한 교회밖에 될 수 없습니다. 성도의 신앙성장은 이와 같은 아름다운 역사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행하기 위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2. 다툼이나 허영을 피하라(3).
사도바울은 이러한 일을 행할 때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볼 때, 빌립보 교인들은 이러한 성도들의 사역이 교회 가운데 행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일을 분쟁과 투쟁으로, 다툼이나 허영심으로 행했습니다. 다툼이나 허영심으로 권면하고 위로하며 교제하고 자비를 베푸는 일은 긍정적 결과를 초래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다툼이나 허영심으로 구제하는데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다툼이나 허영심으로 다른 사람을 격려할 수 있겠습니까? 다툼이나 허영심으로 사랑의 위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합니다.
첫째, 겸손한 마음입니다(3).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나보다 낫게 생각하라고 당부합니다. 요한복음 13장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분부 하십니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본을 보였노라(요13:14-15)” 성도여러분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길 때 다툼이나 허영심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둘째, 각각 자기를 돌아보며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는 일입니다(4).
다툼이나 허영심을 피하기 위해서 바울은 먼저 자기를 돌아보고 그리고 다른 사람을 돌봐 주도록 권면합니다. 먼저 자신의 눈에 들보가 있다면 그것을 빼내고 다른 사람의 눈 속의 티를 빼도록 돕는 것입니다. 많은 문제들이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다른 사람만을 주시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셋째,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5).
다툼이나 허영심을 피하기 위해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6-8절을 통해 바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면 어떻게 다툼이나 허영이 있겠습니까? 야고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충고합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성도여러분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만들어진 한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로 하나님의 자녀이며 권속입니다. 우리들은 운명적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 즉 성도들이 신앙을 위해서 협력하며 대적들과 싸워 승리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할 때 건강한 교회 능력이 있는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교회의 살아있는 평가는 협력의 힘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헐벗고 지쳐있는 교회가 아니라 역동적이고 힘이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서로가 힘을 모으는 협력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는 서로 하나 되기 위하여 기도하고 눈물을 쏟는 교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렇게 되기 위하여 모두가 한 마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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