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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관계회복의 비밀(베드로전서 5:5 )

by liefd 2025.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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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세우는 원리적 교회의 여섯 번째는 하모니 즉 조화입니다. 교회의 특징 가운데 세상과 다른 것은 서로 다른 배경과 여건 속에서도 연합을 이루고 하나 되는 조화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연합이 가장 중요한 공동체의 목적입니다. 연합 없는 공동체는 분열의 공동체이고 깨어진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생명은 하모니를 이루기 위하여 연합하여야 합니다.

 

아름다운 연합을 이루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온전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관계는 마치 다리(bridge)와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세워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관계는 무관심으로 인해 무너질 수 있으며 분쟁으로 인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또한 서로간의 오해로 인해서 무너질 수 있습니다. 수많은 이유로 관계는 파괴될 수 있으며 그 결과 연합, 일치, 조화, 하모니는 기대할 수 없게 되어버리게 됩니다. 이 세상은 무너진 관계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변에서 우리는 파괴된 관계들을 너무나 쉽게 접하게 됩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고용주와 고용인, 이웃과 이웃, 성도와 성도, 사역자와 성도. 그것이 어떠한 경우든 이 무너진 관계는 교회의 연합과 조화에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해결방법이 무엇입니까? 무너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입니까?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관계의 회복하기위한 핵심적인 요소들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첫째로 우리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수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고 사는 세상입니다. 우리 모두가 실수하며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갑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관계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이로 인하여 고통 가운데 있는 분들이 있을 줄 압니다. 어떤 분들은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관계가 완전히 무너져 버린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대부분의 관계는 아주 간단한 열쇠에 의해서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무너진 관계가 회복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하여 사람들은 별로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관계의 회복에 대하여 들을 수가 없습니다. 학교에서도 배울 수가 없습니다.

 

아마 어떤 분들은 관계 회복을 위한 열쇠는 용서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용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분명히 관계를 회복하는데 있어서 용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용서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용서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직함입니다. 왜냐하면 서로가 진실을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정직하지 못하다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정직함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관심입니다. 우리가 견고한 관계를 유지하기 원한다면 서로의 필요에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중요한 요소들 보다 더욱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이며 종종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고 잘못 정의를 내리는 것이며 오늘날 사람들은 이것을 종종 조롱거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견고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비밀은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겸손입니다. 이것이 바로 열쇠입니다. 베드로전서 55절에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겸손을 배우기 전에는 성공적인 관계를 만들 수 가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교만과 겸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150회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은 교만을 싫어하십니다. 그 분은 교만을 경멸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겸손을 사랑하십니다. 그 분의 자녀들이 겸손하며 그 겸손함을 행동으로 보이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십니다.

 

잠언 617절은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7가지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중 첫 번째로 기록되어있는 것이 바로 교만한 눈입니다. 잠언 1310절에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잠언 112절에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2228절에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312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언 1533절에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겸손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겸손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잠언 224절에 대하여 깊게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재물, 명예, 생명 이 세 가지는 모든 사람들이 이 땅에 살면서 가장 원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세 가지는 겸손을 통해서 얻어진 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10절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성경은 계속해서 겸손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에 대하여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분은 겸손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겸손의 마음을 소유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겸손에 대하여 사람들은 잘못 이해할 경우가 있습니다. 겸손은 항상 당신 스스로를 내려놓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선하지 않아! 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야!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가치 없는 존재야! 나는 짐승만도 못해라고 말하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게 무가치한 존재를 위해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짐승을 위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죽었습니다.

 

\바로 십자가는 당신이 헤아릴 수 없이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여러분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의 증표입니다. 십자가는 당신이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당신이 그 만큼 결점이 있다는 사실도 말하고 있습니다. 겸손은 이 두 가지 사실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겸손은 당신의 강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며 동시에 당신의 약점에 대하여 솔직한 것을 의미합니다. 겸손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영적은사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겸손입니다. 자기 자신을 항상 무능한 존재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겸손입니다.

 

겸손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며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하고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 제가 나 대신 다른 사람을 생각할 때, 저는 겸손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겸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사명은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사명은 너의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전념할 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 전념할 때 여러분은 자신을 잊게 됩니다. 그 때야 비로소 겸손의 영역에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여러분이 스스로에 대하여 몰두하는 한, 여러분이 교만하던 아니면 겸손하던 상관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여러분이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집중하지 않는 한, 여러분이 에고이즘에 빠져있든 겸손하다고 생각하든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에 대하여 몰두하는 한, 여러분은 겸손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인지하는 순간 여러분은 겸손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사랑함으로 자기 스스로를 잃어버린 것이 겸손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에 대하여 적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 분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실제적으로 우리 개인의 삶에 어떻게 겸손을 적용할 수 있는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6가지 단계적 요소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6가지 단계적 요소들 말씀드릴 때 여러분들은 누구와의 관계를 회복시켜야 하는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제안하는 단계는 점점 여러분이 행하기에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첫 번째 단계는 가장 쉬운 일 이며 두 번째 단계는 첫 번째 보다는 어려운 일이 될 것이고 세 번째 단계는 두 번째 보다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6번째 단계에 대하여 말할 때 여러분은 할 수 없다고 소리를 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단계를 지나면서 점점 높은 차원의 겸손에 대하여 배우게 될 것이며 그 것은 어쩌면 여러분이 한번도 배워보지 못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한번도 배워보지 못한 그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축복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계가 약해지고 파괴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겸손하기위해 필요한 일들을 기꺼이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래서 관계를 회복하는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요구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도움을 요구하십시오.

 

여러분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첫 번째 하나님의 도움을 간청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늘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겸손이 요구되어집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독립적인 사람이나, 자기중심적인 사람, 그리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문제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아와 그 분의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출발점입니다. “하나님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당신께 겸손히 간청하오니 저에게 무너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야고보서 46절에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교만을 물리치신다면 저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그 자리에 서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성경은 내가 교만할 때 그 때가 언제든지 나는 하나님과 반대편에 서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는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은혜는 관계를 회복시키는 힘입니다. 은혜는 용서를 받고 용서할 수 있는 힘입니다. 은혜는 여러분의 잘못된 생각을 회복시키는 힘입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도록 하는 열쇠는 바로 겸손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자기중심적인 사람으로 남는 한, 여러분이 교만이 가득한 사람으로 남는 한, 하나님께서는 관여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기 자신을 나추고 하나님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라고 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 힘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관계를 회복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여러분이 받을 수 있는 도움을 모두 받아야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관계를 회복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겸손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쉬운 일이라면 우리 모두는 겸손한 사람일 것입니다. 겸손하기란 교만하기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먼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2. 관계의 가치를 확인하십시오.

 

여러분이 관계를 회복하기 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관계의 가치를 인정하십시오. 그 사람들에게 찾아가십시오. 그리고 왜 관계가 회복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십시오. 왜 그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말하십시오. 왜 당신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시간과 에너지를 기꺼이 사용하겠다는 이유를 말하십시오. 당신이 그 관계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0절에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 말씀을 실천하지 않기 때문에 분쟁과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지 않거나, 상대방의 말을 하찮게 취급하는 것이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을 때 항상 분쟁과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당신이 존중하게 여겨지지 않는 다고 생각들 때 당신은 화가 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관계회복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도움을 간청하는 것이며 다음으로 사람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다름과 같이 말씀하십시오. “당신은 귀한 존재입니다, 당신은 중요한 사람입니다. 힘들더라도 저는 당신과의 관계를 단절하기 원치 않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

 

빌립보서 23절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마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여러분들은 이일을 어떻게 실천하고 계십니까?

 

어떻게 당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존중하십니까? 두 가지를 제안하겠습니다.

 

첫째,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십시오.

 

당신이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때 상대방을 존중하는 행위입니다. 경청함으로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둘째, 상대의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하십시오.

 

상대의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함으로 당신이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는 당신이 상대방의 감정이나 느낌에 동의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저는 상대의 감정이나 느낌이 항상 바르고 그래서 변화될 필요가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항상 때와 장소가 있는 것입니다. 감정은 그것이 좋든 나쁘든 그저 감정일 뿐입니다. 그러나 감정에 영향을 주는 이면에 숨겨져 있는 생각은 나쁠 수도 있으며 변화되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앞에 찾아와 자기의 감정을 말할 때, 그 자리는 무엇을 변화시키려고 시도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닙니다. 그저 상대방의 감정 그 자체를 인정해주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상대방이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사람들의 감정이나 문제들을 너무나 쉽게 취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가 요즘 정말 무기력 증에 빠졌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무기력 증에 빠지면 않되라고 쉽게 말해버립니다. 물론 정답입니다. 누가 나는 너무나 무서워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무서워 하지 말아야해라고 말합니다. 이것도 정답입니다. 누가 나는 너무 걱정이 되라고 말하면 우리는 걱정할 필요 없어라고 쉽게 말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참지 못할 만큼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식으로 쉽게 말한다면 그것은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며 인정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상대방의 감정을 인정하십시오. “그렇군요! 그 기뿐이 어떤지 이해할 것 같습니다또는 ! 그렇습니까? 제가 정말 마음 아프네요! 상대방의 감정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십시오. 이 것이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함으로 겸손함을 보여줄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입니다.

 

3. 자신의 책임과 죄인임을 인정하십시오.

 

자신의 책임과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은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보다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갈라디아서 65절에 각자 자기의 짐(책임)을 질 것임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기의 책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코 견고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관계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만의 문제일 수는 없습니다. 쌍방의 문제인 것입니다. 당신이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한 그 관계는 회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책임을 받아들이십시오. 만약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관계를 유지하기 원한다면 비난을 그만 두어야만 합니다. 비난을 멈추고 자기의 책임을 인정하십시오.

 

그러나 이것과 더불어 한 가지 당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 더 있습니다. 당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로마서 3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죄의 왕국입니다. 우리는 지금 죄인들의 소굴에 있는 것입니다.

 

월요일 날 누군가 여러분에게 주말에 무엇을 했느냐고 물어본다면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십시오. “나는 죄인들과 함께 어울렸다고.” 왜 그렇습니까? 이곳은 죄인들이 모이는 소굴이며 제가 대장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호텔이 아니라 죄인들이 모여 있는 병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거나 또는 그들의 교만 때문에 자백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교만함을 버리고 겸손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는 한 당신은 성장할 수 없습니다. 본성적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우리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인생 전부를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자기 자신을 비우는 일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성장하면 어릴 때 보다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됩니다. 성숙함과 겸손함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성을 인정하는 것과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겸손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이 막힌 담을 무너트리는 시발점이며 관계가 다시 회복되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중요한 말을 기억하십시오. “내 잘못이야,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만약 이 말이 목에서 잎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결코 성숙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4. 한사람의 인간으로 생각하십시오.

 

우리는 사람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생각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완벽하지 못하면서도 상대방은 완전한 사람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자신한테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상대방에게 기대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 세상에서 전혀 흠 없고 온전한 사람을 알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이 세상에서 죄 없는 사람을 알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이 세상에서 완벽한 사람을 알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이 세상에서 연약함이 전혀 없는 사람을 알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이런 사람을 알고 있는 분이 여러분 가운데 한분도 없을 줄 압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도 사람들의 실수를 냉혹하게 바라봅니까? 여러분들이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교회를 섬기며, 함께 사역하는 형제와 자매의 작은 실수에 왜 그렇게 냉담하게 바라봅니까? 여러분 자신을 포함해서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왜 여러분은 그들이 완벽한 사람이기를 기대하십니까? 왜 여러분들은 그들도 때로는 연약하고, 때로는 실수할 수 있는 한사람의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겸손은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13절에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용서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용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은혜를 베푸는 것이 마땅한 도리가 아닙니까? 상대방의 부족함을 함께 나누십시오. 그리고 그들도 한사람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십시오. 결코 인간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다툼과 분쟁은 분명히 줄어들 것입니다. 그리고 기쁨은 증가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더 좋은 관계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며 매일같이 실망하는 일은 줄어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2절에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37절에 언제나 모든 것을 용납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New Jerusalem Bible)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사랑입니다. 자기 자신도 완벽할 수 없으면서 상대방에게 완벽함을 요구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5번째 요소를 살펴보겠습니다. 지금까지보다 더욱 어려운 요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겸손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5. 상대방의 요구들을 수용하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관계를 회복하기 원하신다면 상대방의 요구들을 수용해야만 합니다. 이 일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다루어온 그 어떤 요소보다도 더 많은 겸손이 요구되어집니다. 먼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필요들이 당신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필요에 대하여 확언하고 그 것이 온당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의 필요에 맞추기 위해서는 엄청난 겸손이 요구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상대방의 필요에 자신이 맞추기 보다는 자신의 필요에 상대방이 맞추기를 요구합니다. 빌립보서 24절에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볼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모든 사람이 우리들에게 맞추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와는 반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52절에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진리는 신약성경 천체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513절에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상대방의 필요에 내가 맞추는 일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십니까? 성도간의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십니까? 가정에서, 직장에서 무너지고 약해진 관계를 회복하기 원하십니까? 먼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두 번째 관계의 가치를 확인하십시오. 세 번째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십시오. 네 번째 한사람의 인간으로 생각하십시오. 다섯 번째 그들의 필요에 당신이 맞추십시오.

 

6.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십시오.

 

오늘날 우리의 문화에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웃고 조롱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본인의 책임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권리 많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여러분은 거칠고 억센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볼 때,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서 우리가 싸워야만 합니다. 우리는 불공정에 대하여 분명히 지적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똑같은 권리와 똑같은 대우를 받도록 주장해야 합니다. 실제로 사회적인 측면으로 보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권리에 대하여 관심을 보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측면에서 볼 때, 성경은 전혀 다른 윤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은 너의 권리를 나에게 양보하라! 너희 권리를 나를 위해 포기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곳에 모인 여러분들은 모두 크리스천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아주 중요한 맞교환에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의 죄를 용서함 받을 수 있으며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그 분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것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그 분께 온전히 의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이제 나의 길이 아니라 당신의 길을 가겠습니다. 저의 인생에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것이 추한 것이든 모두 드립니다. 나의 과거와 현제와 미래도 당신께 모두 드립니다. 나의 희망도, 간절한 바램도, 꿈도, 야망도 모두 당신께 드립니다. 나의 실패들도, 나의 결함도, 나의 죄도, 자의 나약함도 모두 당신께 드립니다. 나의 인생의 목표도, 계획도 이제 당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크리스천이 되는 순간 여러분의 소유권에 대해서도 그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것을 내 것으로 여기며 살았던 것입니다. 본 주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70-80년 사용하고 나면 다른 사람이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나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이 계획 가운데 나의 삶이 펼쳐지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쾌락을 쫓아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나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나의 명예나 명성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명예와 명성에 대하여 염려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종이 자신의 명예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종은 오르지 주인의 명예를 위해 충성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여러분 인생에서 아주 깊은 진리로 적용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인정할 정도의 성숙한 크리스천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잠시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사용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자동차를 운전합니다. 그것조차도 여러분의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해있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동차에 흠짐을 냈다고 합시다. 하나님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동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소유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법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며 동시에 화낼 필요가 없는 이유입니다. 누군가가 나의 명예에 흠집을 가한다고 합시다. 나의 명예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예이기에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필요한 일은 나의 모든 소유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권리를 그 분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포기하셨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 최고의 모델이 예수님이십니다. 빌립보서 25-7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인간의 형체를 입고, 인간의 연약함을 지니고 이 땅에 온신 것이 어떠한 겸손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종려주일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알고계십니까?

 

로마의 황제처럼 이집트의 파라오처럼 화려한 마차를 타고 입성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귀의 등에 앉아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이보다 더한 겸손을 보이신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입니다. 그 분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경배 받을 권리가 있는 분입니다. 그분은 찬양 받을 권리가 있는 분입니다.

 

사랑받고 존경받을 권리를 그 분은 모두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권리를 포기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를 낮추어 연약하고 조롱받는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으며 그리고 고난 받고 창에 찔려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분은 여러분을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주님은 사랑으로 감당하셨습니다. 그 분이 우리의 모델입니다.

 

성도 여러분!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권리를 다시 찾게 다고 하는 표시등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다음 한 주간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나의 권리가 무엇인지 종이에 기록해보십시오. 그리고 그 권리를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리고 놀라운 일을 기대하십시오. 여러분이 자신의 권리를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보호자가 되시며 여러분의 권리를 수행하시는 분이 되어주십니다. 여러분과 하나님 둘 중, 누가 훌륭한 보호자가 될 수 있습니까? 여러분과 하나님 둘 중, 누가 더 훌륭하게 우리의 필요를 채울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손상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여섯 가지 요소들을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은 여섯 가지 요소 가운데 어떠한 요소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언급한 여섯 가지 요소들을 실천하는 일은 상당은 인내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관계가 하루아침에 나빠진 것이 아닌 것처럼 관계의 회복도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려운 일들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거기에는 -정직, 눈물, 고통, 고백, 용서, 배움, 성장, 성숙- 이러한 어려운 일들을 감당해 내야만 합니다. 견고한 관계를 만드는 것,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인내가 필요하며 용기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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