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얼마나 우리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을 때는 우리는 ‘아멘’으로 받아들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성도들이 교회에 나오면 쉼을 얻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가지고 교회에 나왔는데 쉼을 얻기는 커녕 오히려 더 무거운 짐이 더 가중되고 있지 않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여러분에게 실제로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와도 무거운 짐이 사라지지 않고 항상 그대로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게 안되니까 우리는 예배만 끝나면 잽싸게 교회에 빠져 나가지 않습니까? 더 이상 교회에 나와도 쉼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해결해 보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수고와 무거운 짐이 그대로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란 의미가 무엇일까요?
세상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라는 의미는 이차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면 일차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당시에 서기관과 바라새인들은 믿음 생활을 잘한다는 명목으로 지키기 어려운 많은 조항들을 만들었습니다. 마태복음 15장 1-3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니이까 떡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그들은 지킬 수 없는 조항들을 만들어서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종교적 지도자들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3장 4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당시에 종교적 지도자들은 자신들도 지키지 않는 수많은 조항들을 만들어 놓고 백성들에게 강요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은 오히려 신앙생활 한다는 것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는 것같이 힘들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든 전통과 조항이 우리에게 유익을 주지만 그것이 때로는 우리의 신앙을 흔들리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마음이 상하여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9장 3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린 그들을 바라보면서 우리 주님은 안타까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을 잡지 못하고 여기 저기 방황하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주위의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을 보면서 시험에 들면 안됩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때문에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들 때문에 실망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때문에 실망해서 예수 안믿는 분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당신이 그것 때문에 실망을 느끼고 주님을 멀리하게 된 것에 대해 참 마음이 아프네요. 예수님께서도 나의 잘못 때문에 다른 사람이 믿음에서 떠나버리는 죄가 너무나 크다는 사실을 지적하셨답니다.
마태복음 18장 6-7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예수님은 실족케 하는 자는 차라리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족케 하는 자는 화가 당하게 된다고 말슴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4절에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사람에 대한 실망 때문에 믿음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분이 예수님을 잘못 믿어서 그런 것이지. 예수님이 그런 분 아니십니다. 예수 잘 믿어서 실망시키는 분이 성경은 없을 수는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멀리한다면 우리는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담그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우리가 신앙생활의 축복을 포기하고 천국의 축복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저와 당신이 예수님을 정말로 잘 믿어서 믿음의 좋은 영향을 끼쳐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예수님께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우리의 마음이 쉼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쉼을 얻는 데는 조건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우리가 에수님의 마음을 가질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쉬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한 마음일까요?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수고하고 무거운 짊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결단코 우리의 수고가 무거운 짐들이 없어지지 않고 더 늘어나서 고통을 받게 됩니다. 내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압니까? 그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버리운 자니라”우리가 믿음이 있는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지 안계신지 어떻게 압니까?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에게 아직 옛사람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으로 무언가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이 분명히 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빌립보서 2장 5-8절에는 그리스도의 마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종의 형체를 가졌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1장 14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복종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복종한다면 주님이 우리의 마음이 쉼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계속해서 배워 나가야 합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갈 때 예수님이 우리를 쉬게 해주십니다. 또한 마태복음 11장 29절 하반절과 3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여기서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16장 24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나의 멍에”란 “자기 십자가”를 가리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할 때 당하는 고난을 가리킵니다. 주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려고 할 때 고난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멍에는 사실 가볍고 쉽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멍에는 주님이 항상 함께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단이 우리로 하여금 그것이 무담이 되고 힘들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자기의 마음으려 하려고 하면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마음으로 하려고 하면 쉽습니다. 신명기 30장 11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신명기 30장 14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그대로 적용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가 나온다고 자동적으로 쉼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에 나오지만 사람 때문에 실망한 나머지 주님을 멀리해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은혜에 보좌 앞에 계신 예수님께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무겁고 힘들 때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 예수님께로 나아오십시오.
무엇보다 우리는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으로 인해 모든 것이 어둡고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곧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려면 우리의 마음이 쉼을 얻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면 자기 십자가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그 멍에는 가볍고 쉽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아가면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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