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적인 축복을 가지고 믿음의 상태를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축복을 많이 받았으면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믿음이 좋으면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축복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믿음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믿음 때문에 축복을 포기하고 고난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게 됩니다.
예수 믿고 잘 풀리는 케이스가 있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이삭,야곱, 요셉 등은 과정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정말 잘 풀리는 케이스였습니다.
예수 믿고 손해를 보고 희생을 당하는 케이스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6-37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카레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본문 7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노아가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창세기 6장 13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였으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창세기 6장 17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장차 홍수로 이 세상을 심판하시겠다는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때 노아는 어떠한 반응을 나타냈습니까? 왜 나에게 이런 어려운 부탁을 하느냐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노아의 나이가 500세 가량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붙여 주시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홀로 방주를 짓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방주를 짓는 과정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100년 이상이 소요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남들은 그렇게 살아가지 않늗 데 자신만 그렇게 살아가야한다는 것이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많은 경비가 소요되고 많은 사람이 있어야 된다고 투덜거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방주를 짓고 나서 가족들이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암수 한쌍 씩 방주로 이꿀어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홍수 기간동안에 짐승들이 먹여야 할 식물까지 다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신경을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앞으로 100년(120년) 이후에 과연 홍수가 실제로 일어날 것인가?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고 행동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 어떤 반응을 나타냈을까요? 창세기 6장 22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노아는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물론 노아도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이 있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방주 짓는 데 회의가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습니다. 노아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노아는 자신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노아는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신뢰하였습니다. 믿음은 신뢰의 대상을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기는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받았을 때 심판을 준비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이 노아의 때와 같이 심판을 준비하지 못하고 마지막 날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7-39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노아의 때에 사람들이 일상적인 생활에 얽매여 심판의 때를 준비하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에도 우리가 그렇게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해 전혀 준비하지 않다가 주님을 만나게 될 수 잇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본문 8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세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 있는 아브라함을 무조건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쌓아왔던 기반을 버려두고 “갈 바를 알지 못하는 길”을 떠났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하지만 인간적으 볼 때에는 이렇게 대책 없는 사람도 있습니까? 어떻게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거기서 떠날 수 있었을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현실적인 조건과 이해관계를 따라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본문 9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언제나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는 ”장막“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갔습니다. ”장막“이란 언제나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또한 언제나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11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니라”. 사라 역시 자신의 현실적인 상황이 바라 볼 때는 자녀를 낳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약속하신 하나님이 신실하신다는 사실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에 이삭을 선물로 받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본문 12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늘의 별과같이 바다의 모래알같이 많아지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볼 때에는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지게 되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14장 24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사라.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본문 13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7-38절에 나타나는 믿음의 사람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한결같이 약속을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약속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어떻게 믿음의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약속을 받지 못했지만 믿음의 증거를 분명히 받았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약속을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는 외국인처럼,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
과연 우리도 약속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기뻐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 10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그들은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살아온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습니다. 그 성은 어디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본문 14절 말씀 다같이 일겠습니다.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그들은 앞으로 분명히 가야할 본향이 보였습니다.
본문 16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여기서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은 어디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천국을가리킵니다. 그들의 믿음은 단순히 세상에서 축복받는 믿음이 아니라 장차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믿음을 굳게 지킬 수 있었습니다(35절). 사도 바울 역시 이러한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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