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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스승의 주일 설교 1

by liefd 2026.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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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스승, 예수(마태복음 5:17-32), 김덕선 목사

 

오늘은 스승의 주일입니다. 가정에서 부모는 우리의 스승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은 우리의 스승입니다. 교회에서 교사는 우리의 스승입니다. 그러나 참된 교사는 바로 예수님 그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참된 교육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먼저 참된 스승은 제자들이 참으로 행복하게 되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마태복음 51-2절은 소위 팔복이라고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복인가 하면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복인가 하면 위로를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팔복은 인간이 행복해지는 비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때 실제로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제일 먼저 팔복을 가르쳐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떤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신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께서 과연 누구신가를 깨달을 때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팔복에 이어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스승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게 해줍니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할 때 가능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란 의미가 무엇일까요? 여기서 이란 마태복음 516절에 보면 착한 행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15절에 보면 우리의 착한 행실은 먼저 가정에서 비추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여기서 소금이란 골로새서 46절에 보면 은혜 가운데 화평케 하는 말, 화목케 하는 말을 가리킵니다.

 

왜 우리가 세상에서 빛이 되어야 할까요? 왜 우리가 세상에서 소금이 되어야 할까요? 마태복음 516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과 소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누구인신지를 깨닫고, 또한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당신은 최고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지 말씀을 통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본문 17-18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나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예수님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페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완전케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어떤 분은 구약의 율법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다 이루셨고, 또 그리스도께서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셨기 때문에 폐하여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10:4). 물론 구약의 율법 중 짐승의 피, 제사법, 할례법, 각종 의식법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미 성취되었으므로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율법들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폐하여 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케 되었습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스승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불변의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변하는 상황에 적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불변의 말씀을 고수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참된 스승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마태복음 519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참된 스승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려서는 안됩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게 됩니다. 참된 스승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참된 스승은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지식적으로만 전하는 자가 아니라 행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 본문 21절부터 예수님께서는 신약에 외서 완전케 된 율법들을 에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구약에서는 직접적으로 살인하는 행위만이 살인죄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형제에게 분노를 터뜨리고, 미련한 놈이라 말해도 심판을 받게 됩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또한 요한일서 315절에 보면 마음으로 남을 미워하는 것 자체가 살인입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마태복음 523절에 보면 용서하지 않는 것까지 살인입니다. 물론 사람이 순간적으로 화를 낼 수 있고 욕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곧 용서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27-32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푸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구약의 법은 행동으로 간음해야 간음죄입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여자를 보고 마음으로 음욕을 품어도 이미 간음하였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눈으로 간음해도 간음입니다. 손으로 간음해도 간음입니다.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는 것도 간음입니다. 이혼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것조차도 간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구약의 율법들을 살펴보면 겉의 법이 적용되었지만 신약의 법은 마음의 법이 더하여 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케 된 신약의 법은 구약의 법과 달리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지킬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약의 법에 비추어 볼 때는 아무런 흠이 없는 사람이었지만(3:6), 자신의 속사람은 죄의 법아래 자신이 팔려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게 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7:21-24).

 

그러나 사도바울은 로마서 83절에서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84절에 보면 이런 나를 위해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대신 죽게 하심으로 성령을 부어 주셔서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2절에 보면 사도바울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즉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통해서 마음의 법까지 지킬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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