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사랑이다(요한복음 21:15), 김덕선 목사
서로 옆에 있는 분들에게 이렇게 이사합시다. ”당신을 만난 것이 내게 큰 축복입니다. 나도 당신에게 축복이 되고 싶습니다.“
미국의 한 사회학과 교수가 학생들에게 과제를 냈습니다. 볼티모어의 유명한 빈민가에 사는 청소년 200명의 생활환경을 조사한 뒤 그들의 미래에 대한 평가서를 내는 일이었습니다. 학생들의 평가는 동일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절대로 미래가 없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25년이 지났습니다. 다른 교수가 이 연구 결과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다시 과제를 냈습니다.
"25년 전의 청소년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사망하거나 이사를 간 20명을 뺀 180명 중 176명이 대단히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었고, 변호사, 의사, 사업가 등 상류층 인사들도 많았던 것이었습니다.
교수는 추가로 "이유를 알아 보라"고 학생들에게 지시했습니다. 학생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한 여(女) 선생님 덕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그 여교사를 찾아낸 교수가 "도대체 어떤 교육 방법을 썼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미 늙어버린 여교사의 대답은 "정말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 아이들을 사랑했다" 였습니다.
교육은 사랑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마음을 그래도 빨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제게 잘 해주셨던 수학 선생님을 보면서 나도 저 선생님처럼 되어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스승의 주일입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랫동안 품어주시고 기다려주시고 사랑해 주신 부모님 덕분입니다. 학교에서 좋은 스승과의 만남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안목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시고 용기와 힘을 얻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인포멀(informal)한 교육의 현장의 현장에서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관계를 한폭의 그림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디베랴 호숫가, 갈릴리 호수에서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후에 제자들은 맨봉 상태에 빠져있습니다. 한순간에 삶의 기둥이 송두리째 뽑힌 기분입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제자들은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베드로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찬송가 가사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주 떠나 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기쁘나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베드로를 포함한 일곱 명의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습니다.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다른 여서 명의 제자들도 우리도 함께 가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밤에 고기 한 마리도 잡히지 않습니다. 정말 장사가 안돼도 너무 안되는 것입니다. 고기 잡으러 간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일까요? 날이 늬역늬역 새어갈 때에 예수님이 바닷가에 서 계셨지만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를 못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에게 찾아오셨지만 제자들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더 이상 삶의 현장 속에 주님이 찾아오신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뭐라고 질문하셨을까요? 너희들 지금 고기는 잡고 있느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지 세상적인 일로 다시 돌아가면 되겠느냐? 책망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기 몇 마리 잡았느냐고 물으십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그들이 고기를 몇 마리 잡았느냐에 있습니다.
제자들은 한 마리도 못잡았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세상을 따라가서 그렇다고 야단치지 않으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십니다.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신 것도 아니고 계속 배 주위에는 계속 그물을 던져 보았는데 다시 시도한다는 것이 좀 짜증이 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렇게 했더니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힙니다. 바로 그 순간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재빨이 알아봅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라고 외칩니다. 이 말을 듣고 베드로는 겉옷을 두른 후에 곧 바로 바다로 뛰어내립니다. 베드로는 언제나 즉각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언제나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제자는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길 때에도 저는 그럴 수가 없다고 사양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무덤 안으로 들어간 사람도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도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육지에서 거리가 한 100미터 떨어진 곳에 있기 때문에 작은 배를 타고 고기가 가득한 그물을 끌고 해변가에 도착합니다. 해변가에 올라와 보니 숯불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고소한 생선구이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아침 식사용으로 따끈따끈한 빵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최고의 아친 뷔페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이 새도록 고기잡이를 하느라 피곤하고 지친 제자들을 위해 따뜻한 식사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나누었던 이 시간은 서로의 마음이 열리는 시간이요 소명을 부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랑의 감동 그 자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이후 제자들은 멘봉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부활의 감격이 있었지만 이런 일이 있으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랑의 감동 그 자체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잡은 생선도 조금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결과 엄청난 기적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앞으로 맡겨질 소명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즐거움에 참예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즉각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그물을 끌어 올려보니 큰 물고기가 그물에 가득차 있습니다. 153마리입니다. 그물이 찢어지지 않는 것이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아침을 먹자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주십니다. 사랑은 건네주는 기쁨입니다. 정답을 주기 전에 정서를 먼저 알아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힘내라고 말하지 말고 힘들지요”라고 말하는 것이 더 파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명을 맡기실 때 먼저 회복시켜 주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부인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기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큰 소리쳤지만 어이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서 잊어버려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시던 바로 그날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던 장소도 예수님이 안 보이는 곳이 아니라 서로 바라볼 수 있는 같은 공간에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60-62절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는 순간 닭이 울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바라보십니다.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예수님이 돌이켜 베드로를 바라보실 때 어떤 표정으로 바라 보셨을까요? 1번 못마땅한 표정으로, 2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3번 따뜻한 눈빛으로. 정답은 3번입니다.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따뜻한 눈빛입니다. 사랑의 시선입니다. 회복은 실망스러운 순간에도 따뜻한 눈빛을 보낼 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회복을 위하여 택하셨던 두 번째 준비가 바로 고기잡는 사건입니다. 누가복음 5장 4절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제자의 사명을 맡기실 때에도 밤새도록 고기를 잡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잡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셔서 그대로 했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명을 맡기실 때 처음 불렀을 때와 비슷한 상황에서 기회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헌신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 아가페 사랑을 물었습니다. 이에 비해 베드로는 자신이 실패한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단지 그보다는 다소 차원이 낮은 사랑. 필레오로 대답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만 주님을 떠나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존재가 이미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두 번째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치라고 하십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표현에서 주님께서 이신다는 표현은 헬라어로 오이다입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째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씩이나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근심합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의 확인입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아십니다는 표현은 어떤 사실에 대해 직관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오이다). 세 번째의 아십니다라는 표현은 경험으로 얻어지는 지식을 말합니다(기노스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씩이나 물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베드로로 하여금 실패와 죄를 제거하는 과정입니다. 깊은 회개와 겸손하게 하심으로 베드로를 진정으로 회복시키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실패가 아무리 절망적이고 우리의 수치가 아무리 뿌리 깊다 하더라도 주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셔서 그분을 섬기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리타 스노우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용서가 무엇이냐고 나에게 물어온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명예를 손상시킨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신뢰를 받는 그런 경이이다.“회복된 베드로는 섬김의 길로 나아갑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먹이라', '치라', '먹이라'고 부탁하십니다. 15절에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베드로에게 부여된 사명이 힘이 들고 많은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스승은 제자들을 향하여 따뜻한 눈빛과 사랑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스승은 제자에게 정답을 주기 앞서서 정서적으로 품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에 대한 헌신은 교회에 대한 헌신을 포함합니다.
이번 총회교직자 수련회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로비에 나왔는데 어떤 목사님 사모님이 저희에게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케이 딸을 둔 누구의 엄마입니다. 목사님 내외가 교회에서 우리 딸을 포함해서 오케이들에게 너무 잘 해주시고 사랑해 주신다는 소식을 듣고 한참 망설이다가 그래도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될 것 같아 이렇게 인사를 드립니다. 마지막 날 오전에는 그 아이의 아빠가 저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우리 딸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너무 부끄러워서 혼났습니다. 이렇게 사랑의 관계를 확인하는 것은 굉장한 행복과 설레임이 있습니다.
신학은 사랑학이라는 책을 소개합니다. ”고통이 없는 사랑은 추억을 만들지 못합니다. 희생이 없는 사랑은 아예 사랑이 아닙니다. 암초가 다하면 불이 거지듯이 희생이 없으면 사랑의 불꽃은 꺼지게 됩니다. 사랑은 곧 희생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나 진행형이기 때문에 문장의 끝에 붙이는 문장부호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영원한 미완성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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