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스승이 되게 하소서(빌립보서 2:19-24), 김덕선 목사
[스승이 필요한 시간]이란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자는 “선생은 있어도 스승은 없고 학생은 있지만 제자는 없다”고 역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스승이 필요한 세 가지 이유를 밝힙니다. 삶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인간관계 중에서도 나는 스승과의 만남에 특히 주목한다는 강조합니다.
첫째, 나 자신이 스승에게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람은 사람에 의해 바뀌는데 가장 주요한 변화요인이 스승입니다.
셋째, 좋은 스승만한 인생교과서가 없습니다. 훌륭한 스승은 그 자체가 최고의 학교입니다.”
더구나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스승의 역할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신앙은 단순한 지식 교육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접촉과 성령의 감화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15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이들은 아버지의 지도에 따라 아들을 가르치며 예의 범절을 지킬 수 있도록 돌보는 노예들입니다. 이들은 아들을 학교에 데리고 가는 수행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식과 정보를 알려 주는 스승은 많지만 아비지로서 책임지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자녀들은 아버지를 따라하는 것처럼 사도 바울은 일상생활에서 본을 보이려고 애를 썼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13장 14, 15절에서 예수님이 선생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것 같이 너희도 서를 발을 씻기라는 것입니다.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이셨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디모데를 언급하면서 스승의 두 가지 중요한 역할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1.사정을 진실히 생각하는 스승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정을 진실히 알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139편 1절에서 3절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예수님은 사람들의 대할 때 그들의 중심을 간파하셨습니다. 목자 없는 양같은 무리들을 보시면서 민망하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사람의 사정을 깊이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서로 바쁘게 살아가면서 사정을 알아준다는 것이 쉽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날 때 감동을 받게 됩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있으면서 빌립보 교회의 사정이 궁금합니다. 그래서 누구를 보낼까 하다가 디모데를 보내게 됩니다.
본문 19, 20절입니다.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 빌립보 교인들이 디모데를 통해서 바울의 소식을 듣고 위로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디모데가 빌립보 교회의 근황을 듣고 바울 자신이 위로받기 위함입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서로의 사정을 알고 위로를 받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디모데는 빌립보 교회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빌립보서 2장 20절에 보면 디모데는 바울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코드가 가장 잘 맞는 사람이고 빌립보 교인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가 뜻을 같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잘 맞는 것 같은데 어떤 것을 결정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맞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의 복음 사역을 위해 돕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바울과 뜻을 같이하여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해 줄 사람이 디모데 이외에는 없었습니다. 디모데는 빌립보 교인들의 행복에 진정한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형식적인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관심을 가진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디모데는 또한 연단의 과정을 잘 통과한 사람입니다. 빌립보서 2장 22절에 보면 빌립보 교인들이 디모데의 연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때에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바울을 만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행 16:3).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시 에베소의 소동이 있을 때 디모데는 바울을 대신하여 빌립보 지역을 순회하며 심방하였습니다(행 19:22). 연단을 많은 받은 사람이 성도들의 사정을 진실히 헤아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디모데는 여러 가지 시험을 잘 견뎠고, 인격이 검증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평소에는 참 괜찮은 사람 같아 보여도 그 사람을 겪어 봐야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시련과 고통과 역경 가운데서 연단을 받아서 인격이 검증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디모데는 또한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과 동역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성격과 일하는 스타일 때문에 인간적으로 보면 많이 힘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적극적이고 추진력이 있는데 반해, 디모데는 소극적이고 신중형이었습니다. 바울은 주도적이고 정열적이었는데 반해, 디모데는 협조형이고 자제형입니다. 많은 사람이 누구를 도와서 일하는 것보다 자신이 혼자 일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일을 할 때에도 자기의 생각과 계획을 따라서 자기 혼자서 일하기를 원합니다. 디모데는 이러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과 환상적인 조화를 통해서 복음의 진보를 이루었습니다
디모데는 복음을 위해서 세대 차이를 극복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사심을 극복해야 합니다. 아무리 그 사람의 능력이 있다 해도 자기 일을 앞세우는 사람은 위험합니다. 자기를 위하는 마음, 자기를 알아 달라는 마음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디모데의 훈련 과정을 통해서 디모데의 사람됨과 진실함을 확인했습니다. 사람을 알아 보려면 세 가지를 보면 안다고 합니다. 돈을 쥐서 어떻게 쓰는가를 살피면 안다고 합니다. 칭찬해서 겸손한지 교만한지 그 반응을 살피면 안다고 합니다. 그리고 책망하여 반응이 어떤지 보면 안다고 합니다.
2.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는 스승
바울이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기로 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21절입니다.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 이외에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기 일이란 어디에서 하는 일이 아니라 누구를 위해서 하는 일인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자기 일을 구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자신의 이익이나 욕망을 우선시하며,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문제나 목적에 집중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이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 예수의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일, 즉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구원에 이끄는 일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사랑과 은혜를 실천하는 일, 즉 자비와 긍휼을 베풀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일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시업이나 일에 대해서는 밤잠을 설치하면서 하면서도 주의 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이외로 많습니다.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일만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위해서 희생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 수고하는 일이나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는 등한히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주님의 일을 하다가 마음이 상한다고 그만두거나 포기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일은 2차적이고, 자신의 일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만사를 제쳐 놓고 빌립보에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의 제3차 전도 여행시 핍박을 피해온 바울을 영접하고 그들과 함께 복음 전도에 동참하였습니다(행 20:4).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사정과 형편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빌립보 교회의 형편에 대해서도 잘 아는 적격자였던 것입니다. 신앙의 연단을 겪은 사람이 신자들의 형편을 잘 살피고 교회에 유익을 끼치게 됩니다. 복음을 위하여 함께 동역하고 수고한 사람이 진정한 일꾼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방송인인 에디 칸토는 성공을 위해 정신없이 질주하는 전형적인 미국인이었습니다. 그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숨가쁘게 달려가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보낸 짤막한 한 줄의 편지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후에 인생관이 바뀌어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됐습니다.
어머니의 편지는 이렇습니다. “내 아들 에디야, 너무 빨리 달리지 말아라. 그렇게 하면 주변의 좋은 경치를 하나도 못보고 그냥 지나친단다!
에디 칸토는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자신의 수첩에 네가지 질문을 적어 넣고 한평생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살았습니다.
(1) 내가 하는 일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인가?
(2)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가?
(3) 인생의 참다운 보물을 추구하고 있는가?
(4) 이웃에게 어떤 공헌을 할 것인가?
영예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수고는 영예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헛될 뿐입니다. 진정한 영예는 사람들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야겠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시고, 칭찬하시고, 영화롭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 일을 구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주 예수에 대한 헌신에서 모든 사람을 능가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추구하는 것은 자신을 우선으로 놓고 예수님을 그 다음에 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 노회의 어떤 장로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전에 우리 장로들은 먼저 주님의 일을 위하여 우선순위를 두었지만 후임 장로들은 자신들이 해야 하는 일을 다하고 그 다음에 남은 시간에 주의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신들과 너무 다른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에게 사정을 진실히 생각하는 것과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것은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의 사정을 진실히 돌아봄으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탁월한 헌신을 나타내야 합니다. 모든 수고는 복음을 위한 수고가 연결되어야 합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였습니다. 본문 22절에 보면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과 같이 나아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다고 말합니다.
자기 일과 그리스도의 일을 구분하는 핵심은 '자기의 욕심'과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는 데 있습니다. 자기의 욕심은 자신의 이익이나 만족을 우선하며, 그리스도의 일은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당신의 성공이 자신의 영광을 위한 기회로 삼으면 자신의 일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이면 그리스도 예수의 일입니다.
세상에서 하는 일은 지가 일이고, 교회에서 하는 일을 주의 일일까요? 교회애서 봉사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사람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 한다면 자기 일이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한다면 그것은 주의 일이 됩니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가족들이 소중함에 감사하며 한다면 그것이 주의 일이 됩니다.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단순히 생계를 위한 목적이라면 자기 일이고 주께하듯 한다면 그것이 주의 일이 됩니다.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복음을 위하여 주의 영광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한다면 그것은 주의 일이 됩니다. 그러나 교회에 많은 봉사를 하지만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고 인정을 받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자기 일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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