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는 함께 살기 싫은 사람이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하는 곳이다(헨리 나우웬)
1부 서로에 대한 환상을 깨다
고슴도치 딜레마
상점에는 으레 엄청나게 싼 값에 공급하는 물건들이 쌓여 있는 진열대가 있다. 여기서 파는 상품들은 모두 똑같은 꼬리표를 달고 있다. 보이는 그대로(as it). 이 말은 하자 있는 상품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있어서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우리는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믿는다. 나처럼 정상적인 사람과 남들처럼 비정상적인 사람. 그러나 성경 기자는 안전 정상은 어디에도 없다고 잘라서 말한다. 최소한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그렇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거늘.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버드 의대 수석교수 에드워드 할레웰은 ‘연결“(connection)이란 말로 공동체를 이루고 싶어 하는 인간의 기본 욕구를 설명한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공동체 안에 있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혼자되는 것을 조심하라”고 썼다. 즉 서로에게 뿌리는 내리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슴도치의 관계 기술은 두 가지, 공격과 후퇴뿐이다. 고슴도치는 늘 혼자 다닌다.
고슴도치의 딜레마가 있다. 어떻게 해야 상처를 입지 않고 고슴도치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댈러스 월러드에 따르면, 공격과 후퇴는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죄악의 대표적인 형태들이다. 공격과 후퇴는 모두 한 가지 무시무시한 죄악, 사랑의 부재에서 시작되었다. 이것 가장 중요한 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기적 중에 기적, 고슴도치들 사이에서도 관계가 이루어진다. 삶의 공간을 나누는 친구가 된다. 고슴도치들은 가시를 누그러뜨리고 춤을 배운다.
외로움, 이제는 안녕
모든 인생은 만남이다(마틴 부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누군가는 알아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외롭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외롭다는 것은 곧 자신이 실패자와 같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심리학자 재클린 올즈).
무기명 설문 조사를 하면 자신은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하지만, 이름을 적어내라고 하면 자신은 독립심과 자부심이 강하다고 대답한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테레사 수녀는 외로움을 현대사회의 문둥병이라고 말했다. 헨리 나우웬은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이란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우리는 과도한 활동이나 텔레비전 시청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이 무서운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린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우리는 늘 같이 있지만 외로움으로 죽어간다.
에드워드 할로웰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경험으로 성취와 연결을 꼽는다. 하지만 언제나 연결이 성취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외로움을 싫어하신다. 하나님은 아담이 독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공동체는 우리가 창조된 목적이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인류가 번성하기 위해서 공동체는 반드시 필요하다.
의미 있는 관계는 말 그대로 생명력을 강화시킨다. 하버드 사회학 교수들이 주도한 프로젝트는 9년 동안 7천명의 삶을 추적했다. 그 결과 가장 외로운 사람의 사망률이 끈끈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 보다 무려 3배나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흡연, 잘못된 식습관, 비만, 알코올 중독 등 건강에 나쁜 습관을 가졌지만 강한 사회적 유대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은 좋은 습관을 가졌지만 외로움에 떨며 힘들어 하는 사람보다 훨씬 오래 살았다.
혼자서 브로콜리는 먹는 것보다 좋은 친구와 함께 감자튀김을 먹는 것이 훨씬 낫다는 말이 있다. 아무데도 소속된 곳이 없다가 어딘가 소속되기로 결심하는 순간 그 다음 해에 죽을 위험이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주장한다.
의학 저널에 보고된 다른 연구에서는 실험에 자원한 276명을 일반 감기 바이러스에 감염시켰다. 연구 결과 강한 감정적 교류를 나누는 사람은 병마와 싸우는 능력이 혼자 고립된 사람보다 4배가 뛰어났다.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누군가를 알아내야 한다. 누군가 알아냈다.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찾으신 답은 공동체다.
댈러스 월러드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목표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그곳에서 제일가는 지킴이가 되고, 가장 영광스러운 거주자로 참여시키는 것이다. “
이해가 되든 안 되든, 삼위일체 개념은 하나님이 영원에서 영원까지 공동체를 경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해주기 때문에 지극히 중요하다.
공동체를 너무나 사랑하신 하나님은 그것을 함께 나눌 대상으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다.
혼자 있을 때 우리는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공동체 안에 있으면 마음의 충만함을 경험한다. 마음은 닫혀 있을 때 영원히 텅 빈 상태로 남는다. 공동체, 특히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서 마음은 생명을 얻는다.
공동체를 통해 우리는 소속되는 기쁨, 존재를 인정받고 사랑받는 기쁨, 주면서 성장하는 기회, 진정한 안식처를 찾는데서 오는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가사,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과 같다.
본연의 임무에 따라 사람들을 보이는 그대로 사랑한다면 세상의 눈에 아무리 실패한 인생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멋진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멋진 친구를 선택하라
친구가 없는 인생을 선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경에는 공동체를 엿볼 수 있는 멋진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그중 하나가 바로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온 친구들 이야기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모든 사람이 침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하나 있다. 침상은 타락과 불완전을 상징한다. 침상은 정상이 아닌 부분이며 우리가 결코 내보이고 싶지 않은 보이는 그대로의 꼬리표다.
언제나 다스리지 못하는 분노 또한 침상과 같다. 두려움이 침상일 수 있다. 남을 믿지 못하는 성격, 의지박약, 솔직하지 못한 성격,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속에 담아둔 채 벙어리 냉가슴 앓는 과거의 끔직한 잘못, 어께를 짓눌려오는 패배감, 무력감, 외모 콤플렉스, 외로움…….이 모두가 우리의 침상이다.
구성원의 행복을 위해 비이성적으로 헌신하는 그룹, 여기서 핵심 단어는 비이성적이다. 훌륭한 구성원은 자신의 이익을 따지지 않고 침상을 나르고 지붕을 뚫는다.
해리 스택 설리반은 대인심리학의 선구자다. 그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프게 만드는 것도 사람이지만 낫게 만드는 것도 사람이다. “
도스도예프스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고백은 나의 고백이기도 하다. “꿈속에서 거의 언제나 나는 주변 사람을 열심히 섬기겠다고 굳게 결심한다. 그러나 나는 어느 누구와 단 이틀이라도 같은 방에서 지낼 수가 없다. 지금까지 늘 그런 식이었다.
영적으로 성장할수록 우리 마음은 사람에게 끌린다. 특히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뻗치고 싶어진다.
2부 상처받지 않고 가까워지다
진실, 고백은 고백을 낳는다.
고백 속에서 공동체는 크게 성장한다. 함께 고백을 나눌 친구들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영원히 외롭지 않다(디히트리히 본회퍼).
시인 R.M. 릴케는 “사랑은 두 외톨이가 서로를 보호하고 만지고 반기는 것이라고 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뿐 아니라 육체적으로 또 영적으로 서로를 피해 숨는다. 서로를 아는 것이 아담과 하와의 가장 큰 기쁨이었지만 이제는 자신의 본모습을 상대방이 알까봐 너무나 두려워한다.
우리는 진실한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가면 벗어던지기 3단계를 살펴보자
첫째, 말을 가려서 하라
무엇을 밝힐지 하는 문제에 대해 지혜를 발휘하라고 경고한다. 특히 미덥지 않은 사람에게는 깊은 속내를 드러내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씻지 못할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둘째, 영혼의 맨 얼굴을 보여주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수건을 벗은 얼굴로 공동체의 삶을 살라고 말한다. 리차드 포스터의 말을 들어보자. “십자가 없는 고백은 기껏해야 심리 치료에 도움이 될 뿐이다. 진정한 고백은 훨씬 더 깊은 치유를 가져 온다. 객관적인 면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변하고 주관적인 면에서 우리 안에 변화가 일어난다. 고백은 영혼을 치유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다.
당신의 수건은 무엇인가? 당신은 어떤 벽 뒤에 숨어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피상적인 대화 뒤에 숨는다. 어떤 사람들은 유머 뒤에 숨는다. 풀 투르니에는 “우리 모두는 방패 뒤에 숨으려고 안갖 힘을 쓴다.” 어떤 사람은 지성을 수건으로 사용한다.
문제는 우리가 수건을 벗은 사람에게 끌린다는 사실이다.
믿을만한 친구에게만 털어 놓으라
가장 깊은 단계는 우리 삶의 가장 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자신을 드러내는 것과 육체적 건강 사이에는 깊은 연관이 있다.
티모스 존스는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고 고칠 점을 다른 사람과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산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지적한다.
야고보서에도 너희 죄들을 고백하고 병 고침을 받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나를 믿겠느냐? 숨기를 그만 두겠느냐? 내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겠느냐? 비밀은 아무리 잊으려 해도 항상 머리속을 맴돌기 마련이다. 비밀은 간직한 사람은 사랑을 온전히 경험할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을 드러내는 만큼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자신을 완전히 드러낼 때에만 완전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형제와 고백을 나누는 그리스도인은 어느 곳에서도 다시는 혼자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기개방은 심리학적인 용어이며, 과거에 저지른 잘못 뿐 아니라 전통적으로 고백의 영역에까지 포함되지 않는 부분을 말한다. 고백은 영적이며 도덕적인 용어다. 회개나 화해의 과정에서 특정한 죄들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다.
서로 가까워지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부적절한 유머, 신뢰를 저버리는 사람, 비판적인 말, 섣부른 조언 등이다.
포용, 비난의 돌을 내려 놓으라
사도 바울은 너희도 서로 받으라고 말한다(포용하라). 포용은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다. 포용은 다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그 영혼만큼은 잘 되기를 기도해 주는 것이다.
기독교사상가들은 죄를 두 가지로 나눴다. 육체적인 죄는 정욕, 탐욕, 폭식, 만취, 게으름 등 지나친 욕구와 관련이 있다.
영적인 죄는 오만, 자기 의, 정죄 의식 같은 죄가 여기에 속한다. 교회에서 영적인 죄에 대해서 징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수님은 영적인 죄를 가장 미워하신다.
교회에 잘 나가지만 자기 의에 빠진 냉혹한 위선자가 창녀보다 훨씬 더 지옥에 가까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영적인 죄가 가장 위험하고 파괴적인 이유는 사랑을 소멸시킨다는 데 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에 돌을 쥔 채 인생길을 걸어간다. 정좌의식의 돌, 우월감의 돌, 참을 성 없는 말의 돌, 격렬한 분노의 돌, 사랑 없음의 돌.
필립 얀시는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현장에서 청중들을 그 여자와 같은 죄인들과 자신들과 같은 의인의 범주들로 나눴다고 말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포용하는 죄인과 외면하는 죄인 두 범주로 나누신다.
공감, 마음을 읽는 기술을 배우라
대니얼 스턴은 사람을 제대로 읽고 대응하는 능력을 조율이라고 부른다. 관계에 밝은 사람은 조율에 천재라고 할 수 있다.
엄마와의 조율 과정을 통해 아이는 자기 마음을 읽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조율하는 능력을 기른다.
누구나 관계 지능을 높일 수 있다. 관계 기술을 배워 제대로 사용하기만 하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편안함을 주고 매력을 풍기고 사랑을 나눌 기회가 반드시 있다.
관계도로에는 교통법규가 있다
사람을 읽는 기술의 대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표지를 읽을 수 있어야 할까?
첫째, 지혜롭게 침묵하라
지혜로운 침묵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관계 기술을 발휘할 기회를 만든다. 그 기술은 다름 아닌 듣는 것이다. 대니얼 골만은 듣기를 가장 중요한 관계 기술로 꼽았다. “지혜로운 질문을 하고 이해해 주며, 끼어들지 않고 조언을 구하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가장 확실한 표현이다.” 상대가 자신의 말을 관심 있게 들어준다고 느낄 때 두 사람은 하나가 된다. 사람들에게 관심을 지불하라. 관심은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재산이다.
둘째, 기쁨 바이러스를 지녀라
잠언은 눈의 밝은 것(밝은 표정)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라고 말한다(잠 15:30). 최근 연구들에 의하면 기쁨 바이러스는 매우 강력하다고 한다. 미소와 박장대소는 엔돌핀, 엔케팔린,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켜 통증과 스트레스를 없애주고 행복감을 극대화시켜 준다.
스트레스와 근심, 자기 몰두, 외로움, 두려움에 허덕이는 사람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마음속에 똑같은 표지를 지니고 다닌다. 기쁨이 필요합니다. 제발 긴장을 푸세요.“
5개월 된 아기는 엄마가 다가가면 눈웃음을 짓지만 낯선 사람이 다가가면 눈웃음 없이 그냥 웃는다. 기쁨 장애를 앓는 사람은 공동체 삶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30배나 더 웃는다고 한다.
셋째, 접착제 인간이 되어라
모든 관계는 겉에 조립해야 함이라고 쓴 상자와 같다. 모든 관계는 공사 중이다.
감정은 독감보다 전염성이 강하다. 마치 우리가 작은 감정 자동인출기를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과 같다. 만남이 이루어질 때마다 우리는 상대방 속에 생명력을 예금하거나 인출한다.
골먼은 공동체를 끈끈하게 결속시키는 그런 사람을 접착제 인간이라고 부른다.
넷째,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열쇠
관계지능이 높은 사람은 관계역학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가장 적절한 자세와 행동을 취한다. 관계 지능이 높은 영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자기 마음의 열쇠를 주셨다는 것을 안다(계 3:20).
다섯째,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라
내게 용기를 줘, 내가 성장 할 수 있도록 채찍질해주고, 내가 성장하면 칭찬해줘, 내가 인생의 무거운 짐을 견딜 수 있게 도와줘.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영화 아폴로 13호 결말 대목에서 우주선 안의 세 우주인은 생사의 기로에 선다. 그들의 삶은 갑작스레 생명 살리는 일을 맡게 된 휴스톤의 작은 엔지니어 공동체에 달려 있다. 엔지니어주 한 명은 나사 역사상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자 에드 헤리스가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지금은 우리의 가장 멋진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화해, 싸운 후에 현명함
공동체가 성장하고 관계가 깊어지기 위해서는 긴장이 필요하다. 그 긴장은 갈등에서 나온다. 대립은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가 찾아오는 신호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혜와 사랑의 눈으로 그것을 분별해야 한다(장 바니에).
화는 하나님께 중요한 문제다. 공동체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분노와 갈등을 다루는 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
예수님의 화해 매뉴얼 7단계
1. 갈등이 있거든, 갈등을 솔직히 인정하라
내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갈등 해결은 우리 삶에 해결되지 않은 갈등이 있다는 사실, 부러진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2. 너,먼저 나서라
예수님은 우리 더러 먼저 화해를 찾아 나서라고 촉구하신다. 화는 남을 탓하고 책임을 회피하게 만드는 자기 의라는 놈을 언제나 데리고 다닌다. 남이 잘못했다고 해서 다스리지 못한 자신의 화를 정당화 하지 마라.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끊어진 관계를 잇는 책임을 스스로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3. 가라,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지 마라
얘수님은 가라고 말씀하신다. 행동을 취하라. 화가 곪아 터질 때까지 방치하지 마라. 완벽할 때까지 기다리다간 영원히 다가가지 못한다. 책임회피는 공동체를 죽이고 우리 안의 분노를 곪게 한다.
화는 화재경보기와 같다. 경보가 울리면 문제가 발생했다는 신호다. 화는 문제가 잘못되었으니 행동을 취하라는 신호다. 화를 문제를 해결하도록 동기를 유발한다. 닐 위렌은 이런 표현을 쓴다.“내부 계기판에 노발대발이 표시되면 천천히 반응하라.”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찼을 때 남자들이 가장 애용하는 방법은 혼자 드라이버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드라이버 하는 두 번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하지만 내 생각엔 산책도 좋은 방법 같다. 새로운 생각을 통로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몇 가지 좋은 방법이 있다. 그중 하나는 화에 기름을 붓는 악한 생각이 꼬리를 물면 단순히 그만 외치는 것이다. ‘내가 문제일지 몰라’라는 말로 화를 물리칠 수 있다.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가기‘에 앞서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 번째 질문은 왜 화가 났는가? 두 번째 질문은 무엇을 원하는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도로 폭력에 관한 어느 연구팀은 운전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인지 교육을 시켰다. 다른 운전자에게 화가 날 때마다 차를 멈추고 ‘거기 우리 엄마가 타고 있어’라고 생각한다.
4. 그 사람에게, 제 3자는 사절하라
예수님은 당사자를 직접 찾아가라고 말씀하신다. 초대교회는 갈등이 없는 곳이 아니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공동체였다.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향하여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고한다.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여인들이란 최고의 찬사를 한다.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한다. 갈등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신뢰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5. 그 사람과만, 당사자를 난처하게 하지마라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라는 것은 여러 사람 앞에서 당사자를 난처하게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상대를 배려하라. 배려는 올바른 화 다스리기에 가장 중요하면서도 자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이다.
화 다스리기에 또 다른 오해는 화를 표출해도 좋다는 것이다. 화를 날려 버리면 당장은 바라는 것을 얻을지 몰라도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원하는 친밀함을 얻을 수밖에 없다.
6. 권고하라. 직접 터놓으라
마지막 10퍼센트의 법칙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직언만 하라는 뜻은 아니다. 다음은 마지막 10퍼센트의 법칙의 뼈대다
본대로 명확하게 표현하라. 당신은 제 말 전혀 듣지 않았어요
어떻게 기분이 상했는지 설명하라. 당신에게 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결과가 어떤지 말하라. 우리 관계에 거리가 생겼어요. 그건 제가 원하는 일이 아니에요.
원하는 변화를 요구하라. 함께 있을 때는 서로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7. 다시, 1단계로 돌아가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언제나 관계 회복에 집중해야 한다.
3부 친구가 되어 마음을 나누다
용서, 영적인 수술을 받다
용서하는 하나님의 심장 박동에 따라 추는 춤이다. 하나님은 살아있는 사람과 사랑을 나눌 유일한 길로 용서를 창조하셨다(루이스 스미즈).
미움과 배반으로 얼룩진 관계를 치유할 만큼 강력한 치료약은 용서뿐이다. 예수님은 라멕의 법칙(77배를 갚음)을 뒤엎으신다.
상처로 가득한 세상에서 사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복수의 길과 용서의 길, 첫 번째 길의 종착역은 죽음이요, 두 번째 길의 종착역은 생명이다.
배반과 상처를 해결하시기 위해 새로운 가능성을 여셨다. 네가 빚을 졌으니 내가 갚겠다. 하나님은 용서를 베푸신다. 하지만 용서의 대가는 결코 값싸지 않다.
루이스 스미즈는 먼저 가짜 용서들을 알고 진정한 용서의 세 단계를 밟으라고 말한다.
1. 용서는 봐주기로 다르다.
봐 주기는 한 마디로 정상을 참작해 주는 것이다. 용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필요한 것이다.
용서는 잊기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 죄를 잊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그 말씀이 하나님의 기억세포가 망가졌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우리의 지난 죄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무의미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용서는 화해와 같지 않다. 누군가를 용서하면 무조건 그와 재결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화해하려면 신뢰가 쌓여야 한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서로를 다시 믿어야 하는 것이다.
용서는 상처를 받은 만큼 똑같이 돌려주지 않겠다는 결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정의의 목적은 공평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복수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용서의 다음 단계는 새롭게 보고 새롭게 느끼는 것이다.
깊은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리는 가해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오직 상처만 떠올린다. 상대방을 용서하면 상처의 구름을 뚫고 하나의 인간이 보인다.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너머의 세상이 보인다.
용서의 세 번째 단계는, 즉 실질적인 진전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화복하는 것이다. 그와 하나님 사이가 회복되고 그의 인간관계가 건강해지고 그의 삶의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뀐다.
하나님이 용서를 명령하신 것은 그것이 살아가기 위한 최선의 길이기 때문이다. 용서하지 않는 사람만큼 불행한 사람도 없다.
하나님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으니 용서하고 화해하라고 명령하신다.
용서하지 마라. 분노가 짐이 될 것이다.
용서하지 마라. 모든 즐거움이 당신에게 조금씩 빠져나갈 것이다.
용서하지 마라. 다시는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용서하지 마라. 원한이 우리 마음에 있는 사랑을 천천히 완전히 영원히 밀어 낼 것이다.
용서하지 마라. 우리가 품은 작은 원한은 점점 크고 강하게 자랄 것이다.
대립, 사랑으로 서로를 감시하다
다른 그리스도인을 죄의 길에서 공동체로 이끄는 호된 질책만큼 아름다운 자비는 없다.
진실의 종이 필요한 까닭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심을 해야 한다.
언제 어떻게 얼마나 기도할 것인가?
언제 어떻게 얼마나 성경을 읽을 것인가?
언제 어떻게 얼마나 봉사할 것인가?
우리가 품은 뜻과 가치를 최대한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유혹을 혼자서 상대하려고 할 때 우리는 쉽게 자기기만에 빠지곤 만다.
진짜 선지자와 가짜 선지자 사이에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 차이가 있다. 진짜 선지자의 마음 깊은 곳에는 분노가 아닌 사랑이 불타오른다. 때론 우리는 다윗과 같다. 남의 죄에 대해서는 길길이 날뛰면서 정작 자신의 죄는 모른다. 우리는 스스로 죄를 짓고도 의로운 분노를 품을 수 있는 존재다.
연합,벽을 깨고 담을 허물다
타락한 공동체는 따돌림을 선택한다. 배척의 이면에는 오만이나 무시, 우월감을 느끼려는 욕구가 있다.
불량 인간과 우정을 나눈 예수님. 예수님은 제자들과 가나안 여자를 시험하고 계신다.
우리 주변은 숨을 구멍이 없는 생쥐처럼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예수님은 시험의 두 번째 단계에 돌입하신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고 말씀하시지만 여자는 자기에게 던지시는 말씀으로 받는다.
로버트 푸트남에 따르면 사회학자들은 연결을 두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묶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다리를 놓는 것이다. 서로를 비슷한 부류로 보고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묶는 것이고, 아주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다리를 놓는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위대한 다리 놓는 분이시다.
긍극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선택은 희망과 절망 사이의 선택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예수님은 속삭인다. 희망을 선택하라.
섬김, 감사함으로 마음을 쏟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최고의 계몽과 신의 계시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장 피에르 드 코사드
가장 큰 빚은 사랑을 모르는 것이다. 누가 큰 빚을 진 자인가? 바로 당신과 나다
우리는 믿음과 삶을 복잡하게 고민하지만 그 핵심에는 지극히 단순한 목적이 있다. 사랑하라는 부르심을 입은 것이다.
가치를 아는 능력은 세상에서 가장 드물고 가장 소중한 은사 중 하나다. 하나님의 눈으로 가치를 매겨라
천국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그곳은 모든 게 정상이다. 완벽히 하나 됨을 누리라. 천국은 완전한 공동체가 존재하는 유일한 곳이다.
지옥은 외로움과 상실의 도시다.
어깨 위에 하나님의 손이 있다.
성경은 천국이 신부를 기다리는 신랑이라고 말한다. 마침내 우리 모두는 정상을 회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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