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를 보면 두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그들’과 ‘너희’이다. 이 두 단어는 전혀 다른 두 세계를 대표한다. ‘그들’은 아담의 타락한 세계에 속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너희’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선택된 자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알기 원하는 사람은 심적 동요를 겪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할 때마다 우리 안에 소용돌이가 일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동요를 느낀다고 동요하지 말라
하나님의 영이 인간의 영에 직접 작용하시는 것이 그분의 방법이다.
성령님은 그분 자신이 인간의 영에 직접 작용하셔서 그분의 거룩한 목적을 이루신다.
성령님이 주님의 제자들에게 주신 또 하나의 복은 감동이었다.
위로부터 능력이 임하지 않고는 우리의 문제가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성령 충만한 삶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더 좋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분은 가시 돋힌 농담을 싫어하신다.
성령충만을 위한 구체적인 조언
1. 당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롬 12:12).
2.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한다(눅 11:9-12).
3.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행 5:32)
4. 믿음을 가져야 한다(갈 3:2)
성령 충만은 단순히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우리를 완전히 지배하시는 것이다.
절망이 절망으로 끝나면 말 그대로 절망이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 믿음을 가지면 그 절망은 약이 된다. 왜냐하면 이런 절망은 우리 영혼의 가장 큰 적수중 하나인 교만을 깨부수고 위로의 성령님이 찾아오실 길을 예비하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충만하려면 우리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하고 내적 죽음의 과정을 통과해야 하고 오랫세월 동안 쌓인 아담의 쓰레기를 우리의 마음에서 제거해야 한다.
성령님은 살아계신 인격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인격체로 대우해 드려야 한다.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한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면 그리스도로 충만해야 한다. 지금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은 성령님이 거하시는 처소이다.
성령님은 우리가 감정적인 기복에 좌우되지 않고 늘 그분을 믿고 의지할 때 기뻐하신다.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하는 이유
1. 종교생활에 감정이 개입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편견 때문이다.
2. 광신적 신앙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3. 성령의 능력이 없는 설교자에게서 계속해서 성령의 능력에 관한 설교를 듣기 때문이다.
오순절에 성령은 불로서 임하셨다(행 2:3)
1. 성령님은 도덕적 불이시다.
기독교의 이상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해지는 것이다(약 4:8).
2. 성령님은 영적 불이시다.
우리의 예배를 진정한 영적 자원으로 끌어올 릴 수 있는 분은 오직 성령님이시다.
신앙을 통한 우리의 종교적 체험은 단지 선에 차원에 머무르지 않으며 초자연적인 차원으로 올라간다.
창조주 하나님이 도덕적 즐거움이 구속받은 피조물들의 마음 속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그들은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3. 성령님은 지적 불이시다
기독교인의 지성은 온전히 하나님께 굴복해야 한다.
성령 충만한 사람의 지성은 하나님께 기쁨이요, 모든 선한 사람들에게 즐거움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천재는 온화한 치료의 광선을 발하기 때문에 거기로 가까이 나아오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4. 성령님은 의지의 불이시다.
인간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복종시키는 구속이야말로 제대로 된 구속이다.
인간의 의지를 치료하기 위해 성령님이 은혜 가운데 신자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그의 의지를 변화시켜야 한다.
성령님은 인간의 의지를 어떻게 치료하는가? 그분은 구속받은 사람의 의지가 그분 자신의 의지와 하나가 되도록 만드심으로써 그의 의지를 치료하신다.
5. 성령님은 감정의 불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사랑과 같은 그것, 우리의 슬픔과 같은 그것, 우리의 기쁨과 같은 그것을 체험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를 보면 노래를 부르며 기뻐하신다(습 3:17, 히 12:2, 눅 15:6)
성령에 관하여 꼭 알아야 할 사실
1. 영은 물질이 아니다.
영은 사태를 뀌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영은 물질적 존재, 정신적 존재, 영적 존재를 꿰뚫어 볼 수 있다.
2. 성령님은 인격체이시다
성령님은 인격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성품과 능력을 소유하고 계시다. 그분에게는 의지, 지성, 감정, 지식, 그리고 동정심이 있다. 우리와 똑같이 그분은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사랑하신다.
성령님에 관한 자기 묵상
1. 자기부정(롬 6:16)
우리에게 남아야 할 한 가지 소원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는 소원이다.
고행이 자기 부정은 아니다. 잘못을 뉘우치며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이 자기 부정은 아니다. 자기 부정은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부정은 우리의 모든 것을 무엇을 위해 쏟아 붓느냐의 문제아다. 자기 부정은 이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라고 묻지 않고 이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하나님께서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라고 묻는 것이다.
2. 부흥(행 4:31)
냉랭한 심령에 성령에 불을 붙여라. 뜨거운 마음과 불타는 사랑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라. 이렇게 불붙기 시작한 교인들이 열심히 기도하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한다.
3. 육신에서 벗어나라(롬8:2)
폭군처럼 우리를 짓누르는 육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육신의 속박을 종식시킨다. 육신의 속박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 능력은 성령님으로부터 나온다.
4. 인간 중심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의 연합이어야 한다(시 27:8)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인간들까지 잘 어울리는 단결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영적영합이다. 영적연합은 생명과 사랑의 기초 위에 세워진다.
5. 우리의 지혜에 사랑의 불이 붙어야 한다(요 4:24)
신학의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불더라도 우리에게는 두 가지가 확실하다.
하나는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자신을 증거한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성령님이 정통 교리의 수호자라는 사실이다.
지혜만 있는 사람은 차갑고 완고해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지혜에 사랑의 불이 붙고 성령님의 능력이 임한다면 우리는 세상에 복을 전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6. 진리이신 그리스도께 순종하라(요 1:6, 15)
진리는 영원히 동일하지만 진리의 형식과 강조점과 적용은 달라질 수 있다.
성령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고 부활하여 지극히 높으신 분의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를 증거하신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면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 한다. 그 다음으로 순종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분은 하나님의 빛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에게는 빛을 주지 않으실 것이다.
7. 분별력(요 1:32)
세례 요한은 정확한 영분별의 소유자였다. 그에게는 본질을 꿰뚫어보는 눈이 있었다. 비둘기가 하늘에서 두발을 모으고 땅에 내려와 않듯이 성령님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하나님의 아들 위에 머무셨다. 그때 세례요한처럼 성령님의 임하심을 본 이가 우리 중에 또 있었을까? 없었다.
8. 살아계신 하나님이 당신 속에 있는가?(행 4:12)
기독교에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영적생명, 도덕적 실천, 그리고 공동체의 향상이 바로 그것이다.
진리를 믿는 사람에게는 신비한 방법으로 생명이 주어진다(요 5:24, 요 7:38-39). 십자가에 깃들어 있는 메시지는 영생이요 성령님의 내주하시는 복이다. 바로 이점에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구별된다. 기독교는 초자연적인 종교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인간 속에 거하시는 종교이다.
9. 소명(롬 12:4)
사람의 부름이 아니라 성령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
압살롬처럼 풍채 좋은 설교자도, 인류애를 가진 설교자도 아니다. 성령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교회가 아니라 인간들이 경영하는 교회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대학 졸업장은 있지만 성령 충만하지 못한 목회자가 기적을 만들어낼 수 없듯이...우리를 통해서 성령님의 임재와 능력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본질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10.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선한 사람이 되라(마 12:35)
깊이 헌신되어 있는 사람이 교회에 필요하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 이외에 달리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 자기도 모르게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필요하다. 교회에서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교회로 달려오고, 기도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가장 늦게까지 남아 기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이 위대한 존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어린양의 보혈과 성령님의 능력을 통해 선한 존재가 되라고 부르신다.
11. 죄를 미워해야 의를 사랑할 수 있다(잠 8:13)
그리스도에게 속한다는 것은 그분과 반대되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는 의미이다.
시편 기자는 왕이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위하시나니(시 45:7). 라고 말한다.
미워할 줄 알아야 사랑할 줄 알게 된다. 죄를 미워하지 않는 사람은 의를 사랑할 수 없다. 부정할 줄 알아야 긍정할 줄 알게 된다. 노(NO)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에스(YES)라고 말하지 못한다.
12. 언덕 위의 십자가는 내 마음의 심자가가 되어야 한다(갈5:24)
‘십자가에 못박힌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우선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오직 한 방향만 향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과 에수님과 성령님이 계신 곳만 바라보아야 한다.
두 번째로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이미 다시 돌이 킬 수 없다네. 십자가에 죽기 위해 나서는 사람은 영구적인 작별을 고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순간 자신은 끝장이라고 믿는 사람을 회심시켜라. 그렇게 하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얻을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 속에는 십자가와 보좌가 있다. 그들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다면 그들은 보좌에 앉아 있는 것이다.
13. 일보다 예배가 더 중요하다(마 4:10)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본래의 목적에 다시금 충실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본래 목적은 예배이다. 우리는 회심자를 얻는 즉시 그를 일꾼으로 세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회심하여 그리스도인이 된 자는 우선 예배드리는 법을 배우고 그 다음으로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예배이다. 왕이신 그분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바치는 일이다.
14. 모든 신앙의 행위는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요 4:24).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께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게 만드시는 분은 오직 성령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들으실만한 기도를 올려 드릴 수 있는 분, 역시 성령님이시다.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 되도록 하려면 그것은 성령님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요컨대 우리의 모든 신앙 행위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15. 예배의 기술에 대해 무지하다(시 29:2).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결여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예배할 줄 아는 능력이다. 심지어 복음주의 교회조차 예배의 기술에 대해 무지하다.
예배는 무엇인가? 본질적으로 예배는 우리의 태도요, 마음의 상태요, 지속적인 행동이다. 우리의 태도와 마음의 상태와 예배 행위는 경우에 따라서 그 완성도와 강도가 달라진다.
16. 머리로만 믿는 기독교가 문제이다(딤후3:5)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는 흥왕하는데 어째서 도덕은 쇠퇴하는가? 라고 묻는다. 이에 대해 문제의 원인은 머리로만 믿는 기독교에 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겉모양만 순종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순종에는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은 그분을 향한 최고의 사랑에서 자발적으로 흘러나오는 순종을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은 것을 요구하지도 받지도 않으신다.
17.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 거룩한 삶을 살라(출 33:14)
자신이 거룩한 삶을 산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제로 이기적이고 교만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정직하고 진지한 사람들이 거룩함을 믿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며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스도의 무한 공로로 구속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18. 신앙의 본질은 성령의 역사로만 깨달을 수 있다(고전 2:12)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지게 된다. 한 부류는 기독교의 교리에 머리로만 동의하는 사람들이다. 또 다른 부류는 신앙의 본질은 잉성으로 접근할 수 없는 영혼의 깊은 곳에서 성령님이 초자연적으로 작용하시는 것이다.
19. 어중간한 신앙을 탈피하라(수 24:15)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단어 medicore는 두 개의 라틴어가 합쳐져서 민들어진 단어이다. 이것의 문자적 의미는 ‘산 봉우리와 산 밑의 중간’이다. 그들의 영적 상태는 산을 오르다가 중간쯤에서 멈쳐버렸다고 비유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이런 어중간한 상태가 아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큰 것을 주셨는데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 작은 것에 안주하는가?
20. 성령으로만 예수를 주로 고백할 수 있다(고전12:3).
성령님이 영적생명과 체험을 통하여 우리에게 능력을 주실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21. 성령의 기름부음(시45:7,8)
신약시대에 성령님이 오셨을 때 그분의 임재는 거룩한 기름부음의 모든 향기를 발하셨다(행 2:4, 행 7:55, 행 10:44).
22. 세상과 타협하지 말라(욥 27:6)
하나님의 은혜와 영적 능력을 얻으려는 사람은 세상과 어정쩡하게 타협해서는 안된다. 빠지기 쉬운 죄의 유혹까지 완전히 이겨야 한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들로부터 돌아서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승리와 복을 얻을 수 없다.
당신의 아내가, 남편이, 당신이 속한 사회 계층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사랑한다할지라도 당신은 거기서 돌아서라. 안타깝게도 우리는 세상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고 성령님의 영향을 너무 적게 받는다.
23. 인위적 감정 조작을 경계하라(눅 24:32)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이 함Rp 역사하시면 우리 안에 거룩하고 고상한 감정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 속에 역사하여 우리의 감정을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찬된 기독교적 체험이다.
24. 성령님이 당신의 삶의 중인이 되셔야 한다(고전 6:20).
우리는 우리의 삶과 체험 속에서 나타나는 성령님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언제나 믿고 따를 수 있다.
당신은 당신의 영이 아닌 다른 영에게 사로잡히기를 전정 원하는가?
만일 성령님이 당신을 사로잡는다면 성령님은 당신의 삶의 주인이 되실 것이다.
25. 삶에서 제자도를 실천하기(딤전 4:15)
영적인 일에서도 조율이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일들을 수행하기 위해 조율되고 훈련받고 성령님께 순종해야 한다.
26. 성령의 불은 우리로 결단하게 한다(수2 4:15-16)
사람 안에 불꽃을 이루시는 분은 성령님이다. 이 불꽃은 죄를 깨닫게 하고 영적인 복을 갈망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실 때 선택하고 결단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도덕적인 문제를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27. 겟세마네를 지나야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을 수 있다(눅 24:42)
어떤 시대이든지 간에 하나님을 위해 유용하게 쓰임받은 사람들은 모두 상처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을 더욱 겸손하게 만드는 상처를 입어 보았기 때문에 회개하고 긍휼을 배우며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찾게 되었다(갈6:17).
28. 하나님을 닮아 정결하라
하나님은 거룩하고 께끗한 분이시다.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나타나는 거룩함이란 바로 순종하고 헌신하고 신뢰하는 신자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시다.
우리는 우리를 깨끗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29. 하나님의 나라는 거듭난 자만이 들어간다(골 3:2)
거듭난 사람들이 들어가는 ‘성령님의 왕국’이 곧 하나님의 나라임을 믿는다.
30. 성령님의 불은 열심의 불이다(행2:18)
오순절 사건은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그중에서도 특기할 만한 것은 갑작스럽게 도덕적인 열심히 고조되었다는 점이다. 오순절 사건을 체험한 제자들은 내면의 불이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열심의 불이 그들을 완전히 불살라버리는 것 같았다.
31. 영원한 복을 받아라(대상 28:9)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여라. 그려면 당신을 보호해줄 하나님의 모든 능력,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당신을 지켜줄 하나님이 공의, 그리고 당신을 받아들여 복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긍휼이 당신에게 베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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