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든 인간의 일이든 아름다운 것임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힘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일하는 것이 너무 고달프게 변합니다. 창세기 3장 17절에 보면 인간의 일이 기쁘고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고 힘들게 됩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의심하고 하나님 보다 뱀의 말을 더 믿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결과 땅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덩쿨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일이 기쁨보다는 고역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범죄는 서로의 관계를 악화시켰습니다. 아담이 자기 아내를 비난하고 지배하려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4장 8절에 보면 첫째 아들 가인이 자신의 제사가 열납되지 않자 동생 아벨을 살인하게 되었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불순종으로 발생하였지만 그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보면 한 사람 아담을 통해서 죄와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찾아왔습니다.
성경적으로 일은 여러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타락한 결과와 구속받은 결과가 다릅니다.
첫째, 의무와 활력을 가져다 줍니다.
그런데 타락의 결과로 인해 그렇지 못한 결과들이 나타납니다. 너무 많이 잠을 잡니다(잠 6:10). 게으른 것(잠 26:13), 방탕하는 것(잠 28:19), 자신의 일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함니다(살후 3:10-11).
그러나 구속받은 사람에게들에게는 일에 대해 다른 태도를 갖게 됩니다ㅓ.
골로새서 3장 23절 앞부분에서 사도 바울은 구속받은 사람들이 의무와 활력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권면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서 해야 합니다. 즉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을 열심과 헌신된 자세로 해야 합니다. 일이 거룩한 부르심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께 하듯이 열심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을 통해 주님을 섬기는 것이고, 주님이 우리에게 상급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일하는 사람에게 성취감을 줍니다.
하지만 타락으로 인해 일하는 것이 싫고 피곤하고 헛되며 의미가 없습니다(전 1:1-10).
일에 대한 거룩한 부르심이 노예제도로 왜곡되고, 노예적인 직업을 통해 이용당하게 됨(출 1:11-14).
전도서 1장 2-3절에서 타락한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을 지겹게 여기고 힘들어 합니다. 일을 통한 만족감, 성취감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구속받은 사람들은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합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일이 가장 만족스러운 것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일은 공동체에 유익을 주어야 합니다.
타락의 결과 일이 공동체에 유익을 주기보다는 해를 끼칩니다. 일꾼을 고용하고 품삯을 주지 않습니다(렘 22:13). 물건을 팔 때 저울을 속입니다(암 8:5).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 열심히 일하지만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일은 공동체에 유익을 주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3-16절에 보면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면서 유익을 끼쳐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구체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실천할 수 있는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넷째, 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타락한 결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진노하게 합니다(약 5:1-6). 관계로 인한 많은 분제들이 생겨났습니다. 분쟁, 과도한 경쟁, 기업분쟁, 저임금 노동, 파업, 동료 간의 승진 경재, 남성우월주의, 여성 해방 운동.
마태복음 5장 16절에서 이웃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의 착한 행실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이 일을 하면서 소금의 맛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인간의 일이 인간의 타락을 통해 수고로운 고역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는 첫 번째 원인은 일에서 하나님을 제외시키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이웃을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주위 사람이 자신에게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성차를 입게 됩니다. 자신이 중심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소금의 맛을 잃은 그리스도인의 한 예입니다. 직원이 한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을 도와 일한다는 것이 너무 어려워. 이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이 사람이 출석하고 있는 교회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좀 보았으면 좋겠어.“
우리의 일에 중심에 하나님이 중심이 되게 해야 합니다. 미가서 4장 5절에 보면 미가 선지자가 전쟁의 무기를 쟁기로 낫을 만들어 일을 하게 된다고 예언합니다. 마지막 때에 기쁨과 평안 속에서 남자와 여자들이 일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일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 관계성의 악화, 심지어 창조 세계가 파괴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20절, 22절에 보면 모든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고, 오늘날까지 신음하고 해선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마지막은 아닙니다. 로마서 8장 21절에 의하면 피조물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썩어짐의 종 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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