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는 가장 큰 요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현재적으로 마음에 품고 살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
신자가 과거에 아무리 하나님을 만나고 진리를 경험했다 할지라도 말씀을 현재적으로 마음속에 품고 살지 않으면, 죄에 대한 승리는 없습니다. -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성찬을 행하신 것은 제자들의 신앙을 강화시켜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성찬을 행하신 것은 구속의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마신 자는 그분과 생명적인 연합을 이룬 것입니다
성찬은 영적인 회복의 기회입니다
성찬을 받음은 그리스도처럼 살기로 서약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성찬을 함께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의 한 지체가 되었다는 표증입니다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용서하십시오
"
주와 함께 죽으면 주와 함께 산다.’ 이것이 내세 신앙의 중심 사상이며, ‘주께서 고난을 당하셨으니 나도 주와 함께 고난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이 십자가 신앙입니다.
옛 언약은 인간의 행위를 담보로 세워진 것이지만,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행위를 통해 구원을 약속받은 은혜의 언약입니다. 은혜 언약은 행위를 담보로 세워진 옛 언약과 달리 믿음에 의존합니다.
토머스 왓슨Thomas Watson은 “은혜 언약은 난파된 후의 널판지와 같은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찬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죄를 용서받고, 성결을 회복하고, 생명의 교통을 누리며, 언약적 연대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재확인합니다.
이제 남은 일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며, 그 구속의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사는 일입니다.
화목제에는 다른 제사와 구별되는 뚜렷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제사 이후, 예물을 드리는 자와 제사장과 하나님이 함께 그 예물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예물을 드리는 자가 그 예물을 하나님과 함께 즐겼다는 사실은 성찬의 교제를 나타내 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과 함께 음식을 나누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 12:17-19. 이 말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화목제를 드릴 때에는 온 이스라엘 자녀들이 레위인과 함께 하나님이 택하신 장소에서 제물을 즐겁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평화로운 교제뿐 아니라 성도의 아름다운 교통이 이루어지는 제사였던 것입니다.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사 교회에 주신 은혜의 방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디”(고전 11:23).
은혜의 방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수단이지, 우리가 은혜를 받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종교개혁자 칼빈John Calvin은 1545년 자신이 작성한 『제네바 요리문답』에서 성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에 관한 외적 증거이며, 이 증거는 가시적인 표로써 영적 은혜를 표상하여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약속들을 인치므로 이에 대한 진리가 좀더 잘 확증되게 한다.”
17세기에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 제 27장은 좀더 단순하게 “성례는 은혜 언약의 표와 인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성례를 통하여 성령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 성례가 우리에게 은혜 언약이 체결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표일 뿐만 아니라 적용되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또 앞으로 계속적으로 부어지는 은혜에 대한 인이라는 의미를 깨닫고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찬이 표하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우리도 동참해야 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요 6:54).
성찬에서 우리는 단지 떡과 포도주를 바라보고만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인 그 떡을 먹으며 그 포도주를 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여겨 주시고 죗값을 모두 치룬 것으로 간주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것은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뿐 아니라 그분의 죽으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성례인 성찬을 통해 신자는 실제적인 유익을 누립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9).
성찬은 다시 오실 예수님과의 교제의 식사이며, 성령 안에서 기쁨과 환희가 있는 잔치입니다. 이러한 교제 속에서 나누는
성찬은 미래에 있을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현재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맛볼 뿐만 아니라 미래에 있을 더 큰 즐거움과 말할 수 없는 기쁨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그분과 맺은 언약을 기념하며 참여하는 성찬을 통해, 우리는 왕이신 그분의 명령, 언약 백성으로서의 마땅한 책임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겠다고 서약하는 것입니다. -
말씀이 없는 성례는 독립적으로 사람에게 효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례가 말씀과 함께 행해질 때만 은혜의 방편으로 작용하도록 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례는 설교와 분리되어서는 안 되고, 그것만이 신비주의적인 개념과 거짓된 경험을 피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시려고 절기를 정하셨습니다
“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유월절 예식을 행하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신 16:1).
성찬의 참된 목적은 교회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성령의 역사 없이 성찬에서 은혜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들이 모이게 된 목적을 “떡을 떼려 하여”라고 말합니다(행 20:7). 그들이 함께 모여 떡을 떼었다는 것은 성찬이 베풀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그들은 함께 모여 떡을 뗌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기념하고 자신들의 죄 사함에 감사했습니다.
십자가 진리에 대한 생생한 경험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갈 2:20).
성찬은 십자가 사건을 경험하게 하는 효과적인 방편입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고전 10:16).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찬을 베푸실 때 우리에게 원하셨던 것은 자신의 고난과 죽으심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것만이 아닙니다. 성찬에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죽겠다는 거룩한 죽음에 대한 결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성찬을 통해 떡과 잔을 나눌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런 사랑의 마음을 나누어 받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한 하나님과 범죄한 우리 사이의 중보자가 되셨듯이, 이제는 우리가 용서받은 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중보자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에는 간절한 소원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너희들이 지금은 이 죽음의 의미를 몰라도 나는 너희와 더불어 죽어도 너희 안에 다시 살고 또 너희가 죽어도 내 안에 다시 살게 되기를 원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의 첫 번째 의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것입니다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행 3:14-15).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의 두 번째 의미는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에 대한 짐을 지는 것입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십자가를 묵상할 때 우리의 마음은 치유를 받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 1:21).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성찬을 행하신 것은 구속의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마신 자는 그분과 생명적인 연합을 이룬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롬 6:5).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면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피에 참예한 자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찬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와 생명적으로 연합되어 있는 존재임을 확신하게 되고, 보증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성찬은 영적인 회복의 기회입니다
성찬을 받음은 그리스도처럼 살기로 서약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성찬을 함께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의 한 지체가 되었다는 표증입니다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전 10:17).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용서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이 성찬을 통해 사랑과 용서를 몸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종교개혁 당시 작성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는 “누가 주의 상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의 죄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의해 자기의 죄가 사하여지고성찬식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행복을 목표로 하여 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 26:29).
성찬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서 이제는 천국의 행복으로까지 뻗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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