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로님이 평소에 자신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성도와 함께 이웃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런데 예배시간에 성찬의 순서가 있었습니다. 장로님과 그 성도는 주님의 몸과 피를 서로 나누면서 각각 떨어져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그 교회의 목사님이 이런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예배가 끝난 후에 장로님에게 물었습니다. “장로님께서는 왜 같이 오신 성도님과 함께 성만찬을 나누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와 돈 거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정직하지 않았고 약속도 잘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를 상대하기도 싫기 때문에 떨어져 앉았던 것입니다.”이 말을 들은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그럼 장로님은 자신이 우리 주님보다 더 위대하다고 생각합니까? 주님께서는 유다가 자신을 팔아 넘길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와 함께 앉아서 성찬을 나누시지 않았습니까?”이 말을 들은 장로님은 다시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실 돈 거래에서 그가 딱 한 번 실수를 했던 것 뿐인데 그것을 가지고 자신과 차별을 두는 것은 자신이 비난받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장로님은 그 성도와 좋은 관계를 회복하여 가까이 앉아 성찬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외쳤습니다. 누가복음 19장 38절에 의하면 당시의 군중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왕으로 추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분위기는 갑자기 돌변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시게 됩니다.
1.성찬의 유래를 아십니까?
성찬이 시행되기 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1절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팔리게 될 것이라고 폭탄 선언을 하십니다. 이어서 6-13절에 보면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옥합을 깨뜨려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을 때 제자들이 분개하여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고 책망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를 괴롭게 하지 말라 이 여자가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한 것이니라.”
14-16절에 보면 그때에 가롯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팔아 넘기겠다고 약속하고 그 대가로 은 삼십을 챙겼습니다. 17-19절에 보면 유월절 절기를 어디서 지킬 것인가에 대해 예수님과 제자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에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는 사람들이 모여 들었기 때문에 방을 구하는 문제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선뜻 방을 내주는 것이 위험 부담이 컸을 것입니다. 더구나 유월절 음식은 반드시 예루살렘 성 안에서 먹어야 하기 때문에 방을 잡아 놓는 것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 한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남자) 만나면 집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사회에서는 남자를 물을 운반할 때 가죽으로 된 병으로 운반했고, 여자들은 동이로 운반했기에 제자들이 물 동이를 운반하는 남자를 발견하는 것은 쉬웠을 것입니다.이와 같이 성찬은 예수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예식입니다. 유월절 절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2.최초의 성찬식이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마태복음 26장 20절에 보면 날이 저물 때에 최초의 성찬식이 진행됩니다. 제자들과는 최후의 만찬이 시작됩니다. 성만찬식과 성찬식의 차이를 아십니까? 성만찬은 밤에 거행하는 예식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월절 음식을 드시면서 핵폭탄 선언을 하십니다. 21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마태복음 26장 1절에서 인자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누군가 나를 팔리라는 소식 자체도 충격이었는데 이제는 그 사람이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밝히자 그 충격은 메가톤 급이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몹시 근심하여 한 사람씩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아니지요? 가롯 유다는 어떻게 했을까요? .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가롯 유다는 이미 예수님을 팔아 넘기기로 돈까지 받은 상태에서 나는 아니지요?라고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이 네가 말하였도다.” 예수님이 가롯 유다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13장 26절에서는 예수님이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라고 하시면서 가롯 유다에게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식사 중에 가룟 유다의 배신 예고를 한 것은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시 41:9). 그것은 곧 예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끝까지 사랑을 베푼 바로 그가 예수님께 배신 때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롯 유다에게 계속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그는 거절했던 것입니다(요 13:30).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함께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초의 성찬이 거행되었던 것입니다. 그 뿐인가요? 31절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나는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이 진행되는 것을 아시는데 최후의 만찬을 하고 싶으셨을까요? 누가복음 22장 15절입니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예수님은 제자들과 유월절 잔치를 그토록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이러한 분위기에서 제자들과 자리를 같이하고 만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을 텐데 왜 최후의 만찬을 하고 싶어 하셨을까요?
가롯 유다의 배신을 이사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할 것을 아시고 제자들도 흩어질 것을 아셨지만 언제가 그들 가운데 복음의 증인이 될 것을 내다 보셨던 것입니다. 가롯 유다의 배신에 몰두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의 부인에 섭섭해 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다 버리는 것이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변화받아 복음의 증인이 될 것을 바라보시고 그렇게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나누고 싶었던 것입니다.
3.성찬의 유익을 아십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마태복음 26장 26절입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떡을 떼어 주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당하시면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떡을 떼어 주신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는 것, 자신을 내어 주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아마도 예수께서는 유월절 식사에서 전통적으로 쓰이던 공식 문구인 '우리 주 하나넘, 우주의 왕이시여, 땅에서 떡을 내신 당신께 영광이 있기를'과 같은 말로 축복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유월절 성찬식에서 예수님은 자기를 다 버리고 떠날 제자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의미하는 떡을 떼어 주십니다. 떡을 떼어 건네는 것은 상호간의 신뢰와 관계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받아 먹으라'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가져다주는 죄로부터의 해방과 구원의 은혜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 27절입니다.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을 죄 사함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어서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이 '잔'은 세번째 곧 '축복의 잔'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 우리 주 하나님, 우주의 왕이시여, 포도의 열매를 창조하신 당신에게 영광 돌립니다'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잔을 제자들에게 주시며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구약의 유월절은 신약의 성찬식을 통해서 구속의 사건이 성취된 것입니다.
성찬의 유익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찬을 통해서 우리가 은혜의 언약에 속해 있음을 확실히 믿게 하시려고 주님께서 친히 언약을 제정하셨습니다. 둘째로는 우리가 이 성찬에 참여하여 그리스몸의 지체로 연합되어 있다는 것을 확증해 줍니다. 마지막으로는 이 성찬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있을 때 마지막 혼인 잔치를 갈망하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5절입니다.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며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그리스도의 피를 마신 자는 그분과 생명적인 연합을 이룬 것입니다. 성찬은 영적인 회복의 기회입니. 성찬을 받음은 그리스도처럼 살기로 서약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성찬을 함께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의 한 지체가 되었다는 표증입니다
성찬은 우리를 주님의 식탁에 초대하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1문은 “주님의 식탁에는 누가 참여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묻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죄를 미워하고 고난과 죽음에 의하여 자기 죄가 용서받고 사악함이 가리워진다는 것을 믿으며 그 믿음이 더욱 강해져서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성찬을 통해서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십자가 위에서 친히 담당하심으로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죄책과 심판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성찬을 통해서 교회는 하나가 되는 것을 강화시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찬을 통해서 서로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확인하며, 격려하고 오직 그리스도로 말마암아 얻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성찬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기억하는 예식일 뿐 아니라, 성령님을 통하여 주시는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즐거운 축제입니다.
성찬에 합당하게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고린도전서 11장 27, 28절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자기를 살피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감사하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기를 원하는지 자신을 살피고 성찬에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으면 참여하지 말라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살피고 주님의 희생에 감사드리며 서로에게 사랑과 헌신으로 섬겨야 합니다. 주님의 대속의 피를 인정하고 자신의 죄인된 것을 고백하는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을 말합니다. 주님이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지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여겨 주시고 죗값을 모두 치룬 것으로 간주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것은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뿐 아니라 그분의 죽으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용서하십시오.
성찬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죄를 용서받고, 성결을 회복하고, 생명의 교통을 누리며, 언약적 연대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재확인합니다. 이제 남은 일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며, 구속의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찬을 통해 떡과 잔을 나눌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런 사랑의 마음을 나누어 받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용서받은 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중보자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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