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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골 2:24-29),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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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41장 후렴에서 주 나를 사랑하시오니 즐겁고도 즐겁도다 주 나를 사랑하시오니 나는 참 기쁘다는 가사가 얼마나 우리 마음에 와 닿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의 표정을 바라보면 그렇게 기쁜 것 같지 않습니다. ‘주 나를 사랑하시오니 즐겁고도 즐겁도다이 가사가 나의 고백이요 생활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번 주일부터 고난 주간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고난 주간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인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우리에게 거는 기대가 있습니다. 우리 역시 사도 바울과 같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할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1038절 말씀에 보면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져야 할 자기 십자가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십자가란 단순히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힘들고 어려운 것이 십자가는 아닙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빌립보서 28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즉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란 유라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당하는 고난을 가리킵니다. 십자가는 매달고 다니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지고 가라고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포기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끝까지 지고 가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반드시 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일까요?

 

1. 가정에서 져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035-38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오늘 본문은 오해하기 쉬운 본문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한다고 가족들과 블편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다른 부분에 있어서 부모를 최선을 다하여 공경하고 부부 사이에도 화목한 관계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주님의 일을 한다는 핑계로 우리의 역할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의 역할을 최선을 다하지만 어떤 부분에 있어서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적어도 믿음의 문제로 인해 집안에 가족이 원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에를 들면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처녀 때에 신앙생활을 잘했던 며누리가 그만 다른 종교를 믿는 시어머니 때문에 교회를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난 가정의 평화를 위해 시어머니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교회가 나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잘 하는 것일까요?

 

성경은 그런 경우에도 우리가 믿음의 생활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시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고 정말 잘 해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문제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 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자녀와의 관계가 있어서 다른 부분은 정말 좋아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037절에 보면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부모된 우리가 자녀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는 주님보다 자녀를 더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2. 교회에서 져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224절에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어디에서 채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 그의 몸돤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위하여 당하는 괴로움을 기뻐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돤 교회가 여러 가지 당하는 고난을 사도 바울은 자신의 육체에 채우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성도를 위하여 주님의 일을 위하여 당하는 고난을 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교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 자신에게 맡겨진 시명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교회의 일군이 된 것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경륜에 의한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25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 내가 교회 일군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우리가 교회의 일군이 된 것은 그저 내가 잘나서 된 것도 아니요, 남들이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요 하나님의 놀라우신 경륜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만도 감사한데 우리에게 직분을 맡겨주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골로새서 126-27절에 보면 우리에게 맡겨진 직분이 엄청난 비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비밀은 놀라운 영광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베드로에게 사명을 맡기실 때 네가 지금을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밝히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공원묘지에 가면 많은 비석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무슨 ‘...회장의 묘, ...사장의 묘, ...부장의 묘, ...과장의 묘라고 씌여진 비석은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누구 누구의 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의 비석에는 ...성도의 묘, ...집사의 묘, ...권사의 묘, ... 장로의 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거룩한 직분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기 때문에 골로새서 129절에서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힘을 다하여 교회에게 맡겨진 직분에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요한계시록 210절 말씀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너희가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셨습니다. 문제가 없을 때 충성하라고 하셨을까요?  “환난을 당할 때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고비만 지나가면 신앙생활 잘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사단의 최고의 전략은  이 고비만 지나기면 다음에 잘 하면 된다고 부추깁니다. 그런데 이 고비가 지나가면 그 다음에 문제가 없던가요? 계속해서 고비가 꼬리를 물고 진행됩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는 계속해서 고비사막이 펼쳐져 있습니다.

 

왜 우리가 죽도록 충성해야 할까요? 죽도록 충성하는 것은 목회자나 선교사나 특별히 사명받은 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믿는 성도라면 누구나 자기에게 맡겨진 직분에 대해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왜 그렇까요? 요한계시록 1211절에 보면 죽도록 충성하는 자가 이기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기는 자는 둘째사망의 해를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둘째 사망이 무엇일까요? 요한계시록 2014절에 보면 둘째사망은 불못, 곧 지옥을 가리킵니다. 즉 우리가 죽도록 충성해도 되고 안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반드시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3. 사회에서 져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513-14절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6절에 보면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즉 우리는 세상 가운데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여 줌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510-11절 말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여기서 는 말씀에 순종하는 의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다 보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불의를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를 욕하고 사실도 아닌데 우리에게 뒤집어 씌우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아야지 잘못해서 비난을 받는 경우는 없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지 소금을 맛을 잃음으로 밖에 버리워 사람들에게 밟히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215절에 보면 이 세상의 실체는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이기 때문에 우리는 흠없고 순전하여 생명의 말씀을 밝혀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세상은 우리를 핍박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의를 놓지 않고 끝까지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직장에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가정에서 믿음 때문에 당하는 갈등과 고통을 지혜롭게 대처하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교회에서 맡겨진 직분에 대해 죽도록 충성하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직장과 사회에서 우리는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당하는 십자가를 끝까지 지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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