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

신앙 생활 100배 즐기기(약 5:13-16),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5. 12.
반응형

 

 

 

요즈음 기업체에서 합병과 더불어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시너지 효과라는 단어가 부쩍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시너지란 둘 이상의 서로 다른 개체가 힘을 합쳐 둘이 지닌 힘의 단순한 합 이상의 힘을 내는 현상을 말한다. 상승효과(相乘效果)라고 번역되는 시너지 효과는 '11= 2 '이상의 효과를 낼 때 쓰는 말이다. 요즘 주변에서 주유소와 편의점을 함께 운영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시너지 효과를 관찰할 수 있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

 

제가 수수께끼를 하나 내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혼자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두 가지가 무엇일까요? 하나는 결혼입니다. 다른 하나가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신앙 생활입니다. 간혹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님 신앙생활은 혼자 마음으로 하면 되는 것이지 꼭 교회에 나갈 필요가 있습니까? 혼자 성경 읽고, 혼자 기도하고, 혼자 봉사하면 되지 않습니까? 시간도 바쁘고 교회가면 골치 아픈 것도 많은데 그래도 교회에 나가야 합니까?

 

저는 그렇게 대답합니다. 신앙 생활을 잘하려면 반드시 교회에 나가야 합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신앙에 손해되는 것처럼 느낄 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서로 부대끼는 과정을 통해서 쑥쑥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은 서로 함께 있을 때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은 서로의 삶을 나눌 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게 되어 있습니다.

 

윌리엄 바클레이는 야고보서 주석에서 당시의 유대교에서 질병에 대한 세가지 견해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견해는 유대교의 신앙에 따르면 모든 질병은 죄에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랍비들은 말하기를 죄가 없이는 죽음이 없고, 죄가 없이는 고통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질병으로부터 고침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두 번째 견해는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먼저는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 다음에 잘못한 사람에게 찾아가서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은 사람에게 죄를 고백하는 것보다 쉬운 일입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장벽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와 다른 사람 사이의 장벽을 제거해야 합니다. 모라이안 교도들과 웨슬리안 성도들은 일 주일에 두 번 혹은 세 번 그들의 잘못을 서로에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치유를 위해서 그들은 서로를 위하여 기도했다고 합니다.]

 

세 번째 견해는 기도의 능력을 제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견해입니다.

하나님의 은헤와 능력이 기도의 채널을 통해서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양성경에서는 때때로 고난을 참으라고 하지만 질병에 대해서는 항상 고치기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어떻게 하면 100배나 즐길 수 있을까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신자들과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514절에 보면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병든 자가 있으면 먼저 취해야 할 행동이 있습니다. 먼저 교회에 전화를 해서 기도를 부탁하십시오. 본인이 직접 하기 어려우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기도를 부탁하십시오. 직접 만나기 어려운 상황일 때는 전화나 핸드폰으로 기도를 받으십시오. 환자는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을 미안해하거나 망설이지 마십시오. 환자가 병을 위하여 교회의 지도자를 청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요 의무입니다.

 

특별히 환자가 교회를 지도자를 찾지 않고, 교회의 지도자가 환자의 집을 찾아가도록 한 것은 은혜요 감사한 일입니다. 환자들이 의례히 알아서 찾아오려니 잘못된 기대감을 갖기보다 적극적으로 기도를 부탁하십시오. 교회의 지도자들이 환자에게 찾아가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주님께서 고쳐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반드시 기도원에 고쳐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이 다니고 있는 교회에 지도자들에게 병고치는 능력을 이미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15절에 보면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분이 계십니까? 당연히 병원에 가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십시오”(16). 믿음의 사랑하는 성도들이 서로를 위하여 기도할 때 놀라운 기적이 나타납니다. 서로 기도해야할 일이 단순히 질병뿐이겠습니까? 어떠한 고난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그 문제를 가지고 함께 기도하십시오. 자신의 문제를 알리는 것이 챙피하다고 해서 혼자 그 문제와 씨름하지 마십시오. 서로 그 문제를 내 놓고 함께 기도하십시오. 교회 안에서 서로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 놀라운 기적이 나타납니다.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서로 나누기만 해도 얼마나 힘이 되는 지 모릅니다.

 

서로 기도하는 관계만 되면 적어도 문제의 중압감에서 빠져 나오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 혼자 이렇다는 생각을 할 때 한없이 약해집니다. 그런데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마음이 강해지고 힘이 납니다. 신자는 누구나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입니다.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나에게 필요한 존재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필요한 존재입니다. 나는 당신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당신은 나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환자를 방문했을 때 가자 마자 바로 기도하지 마시고 먼저 대화를 나누십시오. 이를 테면 언제부터 아프셨습니까? 아프기 전후에 있엇던 일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당신의 질병이나 고통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시까? 당신 탓으로 돌릴 수 있는 죄나 스트레스가 있습니까? 당신이 고침을 받는다면 당신의 삶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겠습니까? 어느 누군가 당신은 도운 적이 있으십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기도를 통한 축복을 100배 누리면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기도는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그런데 욕심의 기도는 잘 안들어 주십니다. 그러면 욕심의 기도를 줄이고 믿음의 기도를 많이 들이면 될 꺼 아닙니까?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욕심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목회자는 성도를 위해서 성도는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할 때 더불어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그런 경험을 종종 하곤 합니다. 기도의 부탁을 받을 때 내가 기도한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될까? 믿음이 안가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부탁하는 사람의 간절하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기도 때문에 해결해 주시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어느 쪽이든 하나님께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할 때 간절히 사모하는 그 믿음 때문에 역사하십니다.

 

때로는 서로가 믿음이 부족할 때도 많지만 하나님께서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면 해결해주신다는 약속 때문에 예상치 않은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문제를 위하여 기도하지 말고 해결을 위해 기도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병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라우리의 언어 자체도 많이 바뀌면 좋겠습니다. 서로의 안부를 물을 때 흔히 우리는 별 일 없습니까? 어딘지 모른게 마치 별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좋은 일 없습니까? 그렇게 안부하시기 바랍니다.

 

신자들은 서로 자신의 부족을 나누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카톨릭에서는 이 본문을 가지고 신자들이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전체적인 문맥을 고려해 볼 때 신자들 상로간에 서로의 죄를 고백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때때로 자신의 죄 때문에 병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지만 병이 낫지 않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기 전에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합니까? 우리는 먼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19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릴 깨끗케 하실 것이요또한 우리는 자신의 죄를 서로에게 고백해야 합니다. 성경은 신부님이나 고해성사를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고해성사는 인간이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에 대해 죄를 범했을 때 그 죄를 뉘우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는 행위를 통해 죄의 용서와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는 성사입니다.

 

그러나 전체의 문맥을 살펴볼 때 성경은 교회의 지도자들 뿐 아니라 평신도들 간에도 서로에게 죄를 고백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 것이나 고백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가정 이야기나 덕이 되지 않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싶은 상처를 주었을 때 반드시 그에게 찾아가서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만약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 마음이 개운하지 않습니다. 만약 교회 전체에 아픔을 주었던 부분이 있으면 교회 앞에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서로 죄를 고백할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서로의 죄를 고백할 때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기 도취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스타일 역시 개인주의 신앙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성숙하다는 증거입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자신의 부족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면 손해 본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자신의 약점을 숨기려고 하기 때문에 더욱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평가할 때 어느 단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부족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예 나는 부족한 것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별로 숨길 것도 없습니다.

 

서로의 죄를 고백할 때 그만큼 죄를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우리는 흔히 작심 삼일이라는 말을 쓰곤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굳게 결심을 한다 하더라도 삼일이 지나면 다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사람은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 살아갈 때 결국에는 변화된다고 합니다.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같아서 아예 고백조차 하지 않고 결심을 하지 않는 사람은 금마큼 발전이 더디다고 합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그런 가정을 만나게 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너무 고통을 당하면서도 인내하며 살아갑니다. 어느 날 너무 지친 아내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계속해서 이렇게 하면 나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단 말이예요. 말이라도 다시 한번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하면 그래도 나을텐데. 아무 말도 없이 계속해서 그렇게 사는 것에 나도 지쳤단 말이예요.

 

그래서 남편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아내에게 소망을 주는 말을 좀 하십시오. 나 자신을 너무 잘 압니다.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할텐데 말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겠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 저는 입장이 참 곤란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앞으로 잘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은 결코 혼자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세 사람 이상에게 신앙의 나눔을 가질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단순히 설교만 듣고 은혜 받는다고 해서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하는 저 자신을 바라볼 때도 그렇습니다. 매주 그렇게 좋은 설교를 준비하면서 사람이 확확 바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요? 자신의 부족을 서로 나누고 자신의 문제를 나누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고 누구보다도 잘되는 것을 함께 기뻐할 때 사람이 바뀌는 것입니다. 사람은 일시적인 관심으로는 바꾸지 않습니다.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바뀝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들을 필요한 사람을 위하여 사용할 때 우리의 신앙이 자랍니다. 우리는 교회에 나올 때 이런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주님의 사랑을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사랑으로 그를 섬길 수 있는 그런 분을 꼭 만나게 해주십시오. 나 자신의 약점까지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믿음의 동역자를 제게 붙여 주십시오.

 

자신의 기도 제목을 구체적으로 나누도록 하십시오. 적어도 세 사람 이상에게 나누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어떤 기도 제목은 부탁받은 사람 이외에는 절대 비밀로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다시는 기도를 부탁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부탁하실 때 가능한 구체적으로 하십시오. 목사님이 내 형편 아시니까 다 알아서 기도해 주겠지 하지 마세요. 언제나 상황이 바뀌면 진행되는 상황을 말씀을 드리십시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