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

하나님의 영(고전 2:6-16),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5. 16.
반응형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전도할 때 특별히 신경을 썼던 부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고린도전서 24-5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사도바울은 전도할 때 혹시 사람의 지혜로 하면 안된다는 사실 때문에 두려워하고 떨었다고 했습니다.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도하기를 간절히 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도 전도가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6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전도란 이 세상의 지혜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지혜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전도할 때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평소에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무언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면 전도가 어떻게 가능합니까? 본문 7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본문 8절에 보면 이 세대의 관원들은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의 지혜를 알지 못했습니다. 만약에 알았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겠습니까? 이 세상의 지혜로는 감취어진 하나님의 지혜를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본문 9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이 세상의 현실적인 감각으로는 하나님의 지혜의 차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다니지만 영적세계를 체험하지 못하면 성경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기도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고 싶은데 안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막힌 것이 있다면 뚫어야 합니다.

 

본문 11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사람의 사정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의 사정은 자신 안에 있는 영이 나를 가장 잘 압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깊은 차원은 영적인 차원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영이 성령의 조명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사정을 이해하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에 밝은 빛을 비추어 줍니다. 본문 10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만 영적인 차원이 열리게 됩니다.

 

본문 12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십자가만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나게 됩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물론 이전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잘해서 그렇다는 생각이 훨씬 강했는데 이제는 사도 바울과 같이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이 연결되기 시작할 때 당신은 성령의 조명을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본문 10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성령이 우리의 영적인 차원을 이해하고 깨닫게 해주십니다. 본문 13절 말씀에 보면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영적인 차원을 육적인 차원으로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영적인 눈이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왜 우리에게 영안이 열려야 할까요?

 

본문 14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야 분변함이니라“. 영적인 세게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합니다. 육적인 사람은 영적인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영적인 사람을 핍박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 성도님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영적인 세계를 경험하고 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많은 것을 생각할 때마다 언제나 점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의 생각이요 다른 하나는 영의 생각입니다. 로마서 85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사람은 자신이 좇고 있는 분야를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언제나 육신을 좇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의 일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어디에 드리는가에 따라 그것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로마서 616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옛다 모르겠다. 될대로 돼라‘. 자신을 아무데나 방치하지 마십시오. 한번 들어가면 다시 빠져나오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거기에 종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아예 죄의 습관에 발을 들어놓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은 생활 가운데 대부분이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영의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육신의 생각인지 영의 생각인지 어떻게 분별합니까? 로마서 86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만약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답답하면 그것은 육신의 생각입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나서 생기가 돌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면 그것은 영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하고 있다면 빨리 영적인 생각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가 육신대로 살면 안됩니다. 로마서 813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로마서 813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우리는 영의 생각을 가지고 성령의 일을 좇아 살아가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가라않게 되고 삶의 의욕까지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런데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인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내가 이런 마음으로 교회에 나가봐야 무슨 은혜가 되겠는가? 집에서 점이나 실컷 자자! 그 순간 그래도 일어나서 교회에 나아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한 가지 더 예를 들면 화가 잔뜩 나고 도저히 기도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기도하는 것이 영적으로 사는 길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만약 우리가 교회는 다니지만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로마서 814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만약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이 영의 생각인지 육신의 생각인지 점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준이 있습니다. 로마서 815-16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만약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무서워하는 마음이 자꾸 생기면 그것은 영의 생각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무서워하게 만드는 것은 사단이 우리에게 주는 생각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은 양자의 영으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마음에 참 평안과 벅찬 감격을 느끼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갖게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할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는 초대교회와 같이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 회개의 영을 부어주십니다. 또한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합심하여 기도할 때 성령의 감동을 받게 됩니다. 무엇보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십니다. 우리가 그 감동에 순종할 때 성령께서 계속 우리에게 소원을 주십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