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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스승과 제자(빌 2:25-30),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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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농부이신 아버지를 따라 농부가 되려고 했습니다. 마을의 모든 농기구 트랙터 방앗간 발동기를 고치는 엔지니어를 보고 소년은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 후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변호사를 보고 소년은 변호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머니가 아파 병원에 갔을 때 어머니를 치료하는 의사를 보고 소년은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 교회에서 설교를 듣던 소년은 이번에는 목사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는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그가 기도하는 중에 "너는 모두가 되겠느냐?" 그 소년은, "? 어찌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음성이 다시 들리기를 "너는 다는 될 수 없느니라. 그러니 너는 그런 사람이 될 사람들을 가르치거라. 선생님이 되거라. 그래서 네가 가르친 제자가 농부, 엔지니어, 법률가, 의사, 목사가 되게 하거라. 그러면 너는 모든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소년은 훌륭한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계몽주의 교육자 룻소 입니다.

 

오늘은 스승의 주일입니다. 어떤 스승을 만나는가에 따라서 당신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제 경우에는 고 1학년 2학기 수학 수업시간 때였습니다. 그때 박우배 선생님이 칠판 가득이 인수분해를 풀어가고 계셨습니다. 분필로 써가시면서 열강하시는 박선생님을 바라보는 순간, 나도 저 선생님처럼 될 수 있을까? 그 선생님은 모교회 고등부 부장 집사님이셨습니다. 그 선생님 덕분에 마음을 잡고 공부해야할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저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그 선생님은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고등학교 때에는 미션 스쿨에 교목으로 계셨던 분이 길성철 목사님께서 제가 다니는 교회에 오셔서 신앙의 뜨거운 열정과 삶의 바른 가치를 심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다니고, 대학원 시절, 목회를 하는 동안 제게 신앙의 좋은 교수님들이 멘토가 되어 주셔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스승들의 사랑과 격려 덕분입니다. 제게 있어서 스승은 늙어가지 않는 분, 언제나 좋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계신 분이셨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소록소록 떠오르게 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과 에바브로디도는 아름다운 스승과 제자의 관계입니다. 에바브로디도를 보면 바울을 보는 것 같습니다. 바울이 에바브로디도를 칭찬하는 모습을 보면 그 스승에 그 제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 빌립보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누구를 보낼까 고민하던 끝에 두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입니다. 바울은 두 제자를 빌립보 교회에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요? 스승 바울은 제자,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그만큼 신뢰하였습니다. 또한 제자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는 스승 바울은 그만큼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신뢰의 관계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어 그 교회의 사정을 듣고 위로받고 싶었습니다. 디모데를 보낸 이유는 그가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의 일을 구하는데 급급하지만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기에 앞서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어 성도들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누구일까요? 그의 이름은 사랑스런, 매력이 있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줄여서 에바브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골로새서 17절에 나오는 에바브로와는 다른 인물입니다. 빌립보서에 나오는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출신입니다

 

빌립보서 418절입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 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빌립보 교회가 바울에게 선교비를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전달할 만큼 그를 믿고 신뢰하였습니다. 바울 역시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받은 선교비에 대해서 큰 힘을 얻었고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드린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표현합니다. 신자들 간에는 주고 받는 것이 거래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요, 하나님과의 관계로 이어지는 은혜인 것입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빌립보서 225절입니다.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자기 제자인데도 나의 형제라고 소개합니다.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사람, 같은 비난과 영적인 공격 앞에서도 끝까지 동고동락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빌립보 교회를 통해서 바울의 선교 사역에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었던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바울과 에바브로디도의 신뢰 관계가 어떠한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의 글을 인용합니다. “사람들은 기대 수준에 따라 그 평가가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합니다. 만일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회의와 의심을 나타낸다면 그들은 당신을 신뢰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들을 믿고 기대감을 표시한다면 그들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는 결국 당신과 그들 모두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이 됩니다.

 

당신의 사고방식을 바꿔 다른 사람을 믿기 시작하십시오. 당신의 삶은 급격히 향상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의 따른 사람들에게 믿음을 가질 때,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주면 그 돈은 곧 바닥이 나고 만다. 자원을 주면 기대만큼 유용하게 이용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믿어 주면 그들은 당신을 신뢰하고, 의욕을 갖고 힘차게 행동하게 되며, 자립심을 갖게 됩니다. 그들에게는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동기 부여가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을 믿어 줄 때, 그가 아무리 자신 없고 미숙한 사람일지라도 그 꽃을 활짝 피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바울이 에바브로디도를 그렇게 아끼고 칭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울 자신에게만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빌립보 교회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26절입니다.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간절히 사모하였습니다. “간절히 사모한다는 것은 갓난 아이가 젖을 간절히 원할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 성도들을 얼마나 간절히 사랑하고 보고 싶어하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또한 자신이 병든 것을 빌립보 성도들이 안다는 것으로 인해 심히 근심하였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의 건강보다는 빌립보 교회를 더욱 염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의 근심은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성도들의 사정을 깊이 헤아리고 진실히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스승과 제자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신뢰 관계입니다. 신뢰관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사랑의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헌신의 관계입니다

 

에바브로디도가 왜 병들었을까요? 마게도냐에 위치한 빌립보 교회로부터 바울이 수감된 로마까지의 거리는 무려 1500킬로가 됩니다. 대략 40일이 넘게 걸리는 머너먼 여정입니다. 치안이 열악했던 당시에는 강도와 도둑이 우굴거렸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에게 전할 선교비와 자신이 사용하게 될 돈을 소지하고 홀로 간다는 것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드도는 바울을 위로하기 위해 멀고도 위험한 길을 기꺼이 떠났던 것입니다.

 

빌립보서 23절입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가 가까이서 바울을 섬기지 못한 부분을 채우려고 정말 최선을 다하여 섬겼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사형 판결을 받게 되면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을 도왔기 때문에 공범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의 병든 몸을 이끌고 드디어 로마 감옥에 당도하여 빌립보 성도들이 준비한 선교비를 바울에게 전했습니다. 바울은 자기 때문에 이렇게 중병으로 신음하는 에바브로디도를 보는 순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더구나 에바브로디도를 파송했던 빌립보 교회에 그 소식을 알린다는 것 자체가 너무 미안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성도들이 자신이 병든 것을 안다는 것으로 인해 심히 근심하였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고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본문 27절입니다.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니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나를 또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에바브로디도를 긍휼히 여기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셔서 고쳐주셨습니다. 바울이 에바브로디도의 중병 때문에 많이 근심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깨끗하게 고쳐주셨습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로 인한 빌립보 성도들의 받을 충격에 대해 고심을 했는데 그것을 완전하게 해결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편에 빌립보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를 전하면서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고 부탁합니다. 주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사람들에 대해 성도들이 기쁜 마음으로 그를 영접해야 합니다. 영접이란 최고의 VIP 대접을 하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와 같은 분들을 존귀하게 여기는 교회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교회 안에서 수고하는 교사들과 섬기는 분들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분들을 위하여 계속해서 기도해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름다운 스승과 제자들의 관계, 목회자와 성도들과의 관계, 주의 복음을 위하여 섬기는 분들을 존귀하게 여기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동안 주일학교 부서들을 위하여 섬겨주신 교사와 도움을 제공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의 그 섬김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바울과 에바브로디도의 아름다운 관계, 목회자와 성도의 아름다운 관계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들은 관계의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고 상대에 대한 우월감이나 열등감으로 나타납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까요? 빌립보서 25절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자기 중심적인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자신이 아닌 그리스도에게로 향하십시오.

 

에바브로디도가 이렇게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한 것이라는 분명한 목표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생각하는 만큼 아이들도 선생님을 생각하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스승의 좋은 유산을 우리가 받은 것으로 끝내지 말고 흘려보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신뢰받는 교사, 헌신적인 교사의 영향력은 어디에까지 미칠지 상상을 초월합니다.

 

헨리 나우웬이 죽던 날 간행된 마음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소리(The Inner Voice of Lover)에는 신뢰라는 말이 65번 나온다고 합니다. 몇 군데 소개한 글을 인용합니다.

 

매 순간 당신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모태에서 너를 조직했다’(139:13)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신뢰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방황을 멈추라. 대신 집에 돌아와 하나님이 당신의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을 신뢰하라".

 

 “지금까지 당신은 남을 기쁘게 하는 자였고 남에게 의존하여 자신의 정체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스스로 만들어 낸 모든 버팀목을 내려 놓고 하나님만으로 족함을 신뢰해야 한다.”

 

근본적 선택은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계시며 당신의 가장 절실한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을 항상 신뢰하는 것이다.”

 

우리의 최고의 스승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이십니다. 성령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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