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학생들을 대상으로 몇 가지 설문을 조사했는데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학생은 교사가 어떨 때 가장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거기에 대한 대답은 힘든 일이 있을 때 내 얘기를 들어주는 교사 37%,
딱딱한 성경 말씀보다 선생님의 재미있는 체험을 들려주는 교사 21.6%,
몰랐던 성경 말씀의 뜻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는 교사 16.9%.
두 번째 질문은 학생은 교사가 어떨 때 가장 싫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생각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무시할 때 38.1%,
아무 연락없이 주일에 자주 빠질 때 27.2%,
주일 예배에 나보다 늦게 나올 때 5.9%.
세 번째 질문은 학생은 교사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싶습니까?
경건하고 올바른 신앙생활의 모범 56.0%,
인생 설계나 진학 상담 등 미래의 조언 15.25%,
새롭고 체계적인 성경지식 14.1% 등입니다.
누가 스승일까요?
나이가 드신 분들은 인생의 스승입니다. 직분을 맡은 분이나 신앙의 연수가 오래된 사람은 스승입니다. 집에서 부모들은 스승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스승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스승을 만나왔습니까? 지금 우리는 어떤 스승이 되어 있습니까? 어떤 스승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성경은 어떤 스승이 되라고 말씀할까요?
아버지 같은 스승은 복음으로 낳고 해산의 수고를 다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15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당시에 일만 스승은 자칭 교사라고 주장하는 거짓 교사들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당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만 하는 거짓 교사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낳는 수고를 하는 아버지와 같은 스승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주일에 와서 아이들에게 가르치지만 말고 평소에 생활 가운데 아이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녀를 낳는다는 것은 바로 전도입니다. 자기가 직접 눈물과 사랑을 쏟아서 낳고 기른 아이는 더 사랑하게 됩니다. 이제 얻어서 키우지 말고 낳아서 기릅시다. 물론 얻어서 키우는 것도 소중한 일입니다. 낳아서 키워봐야 자식을 더 사랑할 줄 압니다. 자녀를 낳는 것뿐 아니라 잘 양육해야 합니다. 말씀을 제대로 먹이지 않고, 기도로 하지 않고 사랑을 쏟지 않는 교사라면 자녀만 낳아놓고 버리는 부모와 같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19절입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아버지와 같은 스승은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와서 학생들에게 공과내용을 전달하는 교사가 아닙니다. 먼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학생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도록 해산의 수고를 다해야 합니다.
해산의 수고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할까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교만과 자랑을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그의 사역을 무가치하게 만들고 교회에서 말썽과 분열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바울은 깊은 상처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성도들이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영향으로부터 이제는 돌아오라고 권면합니다. 해산의 수고란 복음으로 낳아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도록 양육하는 것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복음을 제시하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해야 합니다. 복음을 깨닫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아무리 성경을 가르쳐도 좀처럼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사랑을 받지 못한 자녀들이 복음을 통해서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순간 변화됩니다. 복음을 듣는 순간 믿지 않는 영혼이 믿게 되고 미지근한 마음을 주님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바꾸게 합니다. 복음을 심어야 변화가 시작됩니다. 복음이 있어야만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많은 교사들이 복음을 전할 줄 모릅니다. 아이들이 복음에 목말라서 애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같은 스승은 사랑으로 대하고 잘 들어줍니다
고린도전서 4장 14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히는 것이라.”
교사가 학생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말 잘 안 듣고 사고를 치는 문제아로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때로는 속이 상하고 힘들어도 사랑하는 자녀 같이 대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고치려고 하기 전에 관심을 보여줘야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뒹굴며 어울려야 합니다
. 내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나타나야 합니다(습 3:17).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권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훈계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 같은 스승은 사랑과 훈계를 잘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사랑의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혼들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망으로 그들을 대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눈빛만 보아도 선생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압니다. 아이들의 고민, 그들의 걱정, 근심, 어려움 등을 잘 들어 주고 공감해야 합니다.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지 않으면 그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에 있는 것을 털어놓기를 원하고 내 말을 들어주었으면 합니다. 아이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가장 좋은 것은 아이들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겉만 바라보고 판단하는 교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아이들의 영혼을 바라보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와 같은 스승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한 고난을 나눌 줄 아는 관계입니다.“내가 너희를 위하여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교사가 학생들에게 내가 얼마나 수고하고 힘들었는지를 때로는 언급할 때 부끄럽게 하거나 민망하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역효과를 낳게 됩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렇게 아침부터 늦게까지 고생하는 게 누구를 위해서 그러는 줄 아느냐고 부끄럽게 하면 안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반감을 갖게 됩니다. 힘들고 어려운 사연을 말할 때 함께 공감하고 힘을 북돋아야 합니다. 사실 고난과 역경은 실패가 아니라 인격을 형성하는데 필요한 자양분입니다.
아버지와 같은 스승은 자신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본받게 합니다
사도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고 강조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신의 삶을 본받으라는 의미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라는 것을 어필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한 것처럼 너희도 주와 복음을 위하여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되라는 의미입니다. 스승과 같은 교사는 자신이 당한 고난과 학생들이 당한 고난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디모데를 보내면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17절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 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디모데는 유대인 어머니와 헬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로서 그 외조모와 어머니의 신앙을 이어받은 충실한 일꾼입니다.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서 고린도 교회의 분쟁 소식을 듣고 디모데를 파송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디모데를 파송하는 것은 그만큼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신임이 컸던 것을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내가 주 안에서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이라고 소개합니다. 디모데는 사도 바울이 복음으로 낳은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입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의 관계가 이렇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의 관계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디모데가 고린도 교회에 가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행한 것, 곧 각 처에서 각 교회에서 가르친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사역과 가르침을 그대로 반영하는 제자입니다. 스승은 제자들에게 일상생활에서 모범을 보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교육의 진정한 목표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느냐, 왜 가르치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가 가르치느냐가 중요합니다. 학생들 가운데 우리반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훌륭한 교사입니다. 훌륭한 아버지는 닮고 싶은 아버지입니다. 저 역시 방황하고 갈등할 때 아버지 같은 스승을 만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분들을 통해서 많은 은혜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저 또한 그런 분들을 닮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가 존경했던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 박사는 자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본보기, 둘째도 본보기, 셋째도 본보기라고 했습니다.
나가는 말
미래는 아이들의 손에 달려있고, 아이들은 교사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좋은 교사가 되면 아이들은 평생 복을 받게 됩니다. 교사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이들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그 아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은사를 계발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아버지의 심정으로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사랑하고 세우는 교사가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부모, 지도자, 교사입니다. 이들이 바로 서면 자라나는 다음 세대인 자녀들과 어린이들이 주님 앞에 세워질 수 있습니다. 교사라면 적어도 학생들을 좋아해야 합니다. 그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해야 합니다. 알고 싶고, 함께 있고 싶고,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교육은 삶을 나누는 것이며, 삶을 나누려면 관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학생들이 더없이 사랑스럽고 그들의 미래를 생각 만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관계를 맺는 일은 주일 성경공부 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을 내어서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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