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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길(유 1:1-4),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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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은 정말 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것은 이 세상에서 잘하고 못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신앙생활은 잘하고 못하는 그 결과가 영원까지 미치기 때문입니다. 유다서는 요한계시록과 함께 심판이 그 주제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장차 오는 심판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유다서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앞까지,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 믿는 사람들 가운데 멸망한 사건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멸망당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본문 3절은 그 이유가 가만히 들어온 마귀 때문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유다서는 유다가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본문 1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여기서 유다는 야고보의 형제요, 예수님의 아우 유다를 가리킵니다. 유다는 이 편지를 보내면서 성도들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도는 자신이 누구인지 언제나 점검해야 합니다.

 

첫째로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성도는 단순히 교회에 나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때로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낙심과 좌절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있는 곳에서 즉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부르심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을 말합니다(1:27)‘

 

둘째로 성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자입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1절).

요한복음 1516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의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받게 하려 함이니라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사랑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생활 가운데서 사랑의 과실을 맺고 항상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열매를 맺고 기도하면 무엇을 구하든지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성도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보호를 받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1절).

하나님께서 성도를 부르시고 사랑하시는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는 세 가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본문 2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긍휼과 형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긍휼과 평강과 사랑으로 지켜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본문 3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여기서 일반으로 얻은 구원이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헤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2:8).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잘나고 똑똑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지식이 많고 인격이 좋다고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나의 노력으로 받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라는 그 자체에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을 발견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210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디도서 213-14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였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이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레미아 219절에 보면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선이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의 목적대로 살라고 부르셨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42:8).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513-16절에 보면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믿음의 길'이 주어집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믿음의 길"이란 무엇일까요? "믿음의 도'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반드시 행해야 할 도(, 명령, 말씀, 계명, 규례와 법도와 율법)을 가리킵니다. 그런에 우리가 이 믿음의 길 대로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유혹이 있습니다.

 

본문 4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이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마귀가 옛적부터, 즉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꾸어 행동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먹으면 정녕 죽는다(2:17)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그 선악과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게 느껴졌겠습니까?

 

도대체 누구의 말을 듣고 난 후부터 선악과가 그렇게 느껴졌을까요? “그것을 먹으면 죽기는커녕 도리어 네 눈이 밝아 하나님같이 된다는 뱀의 말(3:5)을 듣고 난 이후부터 그렇게 보였습니다. 하나님 같이 돤다는 말에 그렇게 바뀌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자가 영광을 받는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자기에게 돌리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물질의 바벨탑, 자녀의 바벨탑, 명예의 바벨탑 그것이 어떤 것이든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쌓은 바벨탑은 처음에는 올라가는 것 같아도 반드시 무너져 내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사야 428절에 나의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나의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시겠다고 못박아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음이 항상 미혹되어 믿음의 도를 알지 못함으로써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시편 9510-11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사십년을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미혹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넘어가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오늘날도 마귀는 교회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시켜 믿음의 길을 알지 못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만듭니다. 여기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디도서 116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즉 입으로는 시인하지만 행동으로 부인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의 길을 위하여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목사님과 장로님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성도와 성도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와 교회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고 공중 권세 잡은 자의 악의 영들과의 싸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창조의 목적대로 살라고 하시지만 마귀는 창조의 목적대로 살지 못하도록 미혹합니다.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언제나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단순히 열심만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이 없는 열심은 매우 위험합니다.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는 열심은 위험합니다. 더구나 자신을 나타내려고 하는 열심은 위험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기에게 돌리는 것은 멸망을 좌초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다른 것으로 바꾸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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