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드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의 잘못된 행실로 인해 오히려 예수 믿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착한 행실을 어디서부터 나타내 보여야 할까요? 예수 믿는 성도 가운데 이외로 많은 사람들이, 집안사람, 예를 들면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 믿지 않는 부모나 형제에게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기보다는 처음 보는 사람이나 외부 사람에게 먼저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집안사람들에게 먼저 착한 행실을 보이고, 외부 사람에게도 그와 같이 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반대로 처음 보는 사람이나 외부 사람에게는 착한 행실을 나타내면서 정작 가장 가까이 있는 집안의 부모나 형제와 아내에게는 소홀합니까?
그리하여 처음 보는 사람과 같이 외부 사람들은 여러분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데, 집안사람들은 여러분을 손가락질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본문 15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먼저 집안사람에게 먼저 빛이 되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세상사람, 아니 악한 사람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친철을 베풉니다.
심지어 사기꾼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선하게 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처음 보는 사람, 외부사람에게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먼저 집안 모든 사람에게부터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본문 14절부터 16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게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의 빛된 행실, 곧 착한 행실을 외부사람에게 비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하여 그들로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게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합니다. 집안 식구들에게는 소홀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잘 하는 사람들이 이외로 많습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집안사람들은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정말 너를 보니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느끼겠다“라며 여러분 까닭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고 계십니까? 아니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더 너희 같으냐? 라며 도리어 예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빠지기 쉬운 딜레마는 가까운데도 잘못하면서 다른데 눈을 돌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은 가까운데서 부터 멀리까지 확산되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7절에 보면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말씀하신 후에 곧바로 가정의 문제를 먼저 다루고 나서 직장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22-23절은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에베소서 6장 1-4절에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나서 에베소서 6장 5-9절에서 노사의 관계가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가까운 사람에게 잘 해주고 싶어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잘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언제나 사랑은 가까운데서 부터 멀리 퍼져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도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 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행 1:8).
물질 사용에 있어서도 먼저 가까운데서부터 멀리 사랑이 확산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출25:1-9절). 그리고 목회자와 자녀들의 필요한 부분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출 28:1-2). 그리고 성도들의 가정을 돌아보아야 합니다(갈 6:6-10). 그리고 우리의 이웃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5장 8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만약 가족들이 돌보지 않으면 불신자들보다 더 악하다고 말씀합니다.
신자는 언제나 삶의 우선순위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먼저, 그 다음은 당신 먼저, 그리고 나.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경우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언제나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가족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헤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복음을 위해서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분들에게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명을 위해서 거기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지 결코 소홀히 도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19장 26-27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에게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아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모친 마리아를 보시면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예수님께서 아들로서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시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고백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를 요한과 그의 제자들에게 부탁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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