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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유대교회는 아론의 후손들로 제사장이 있고, 그 중에 제사장을 대표하는 대제사장이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유대교회의 수장으로, 가장 권위가 있는 지도자입니다. 그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요, 상징적인 인물인지, 도피성에 들어가면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 곳 도피성에 머물러 있어야 하고, 대제사장이 죽으면 사면될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일년에 단 한 번 성전의 지성소에 들어가 제사를 드리면 온 백성들의 죄가 사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도 죄를 짓는 한 사람이기에 백성을 대표하여 제사를 드리되, 먼저 자신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구약의 제사제도는 온전한 것이 오는 것을 예표로, 모형으로 보여주신 것이지, 완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약의 제도가 완전하였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속죄의 제물로 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완전한 구원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불완전한 제사장이었습니다.
히 10:1 말씀에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였습니다. 참 형상이 아니었습니다. 해마다 드려야 하고, 달마다 드려야 하고, 날마다 드려야 하는 구약 제사는 우리를 온전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1. 우리 주님은 하늘로 승천하신 하나님이 세우신 큰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하늘로서 내려오셨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셨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오셨고, 인간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시고 하늘 성소로 올라가셨습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신 인간으로, 그리고 신성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주님이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고 했습니다. 히 10:23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탁월성, 우리 주님의 초월성,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으로, 우리는 어떤 박해에도 흔들릴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문제, 죄와 죄의식의 문제, 인간의 한계성, 인간의 연약함을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굳게 잡아야 할 것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이 최후에 최선의 방법으로 최고의 진리로 허락하신 방책은 당신의 아들, 죄 없으신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어 죄를 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순간 그 처절한 모습을 보면서 인류의 죄를 다 심판하시고 벌하신 것입니다.
유대교의 제사장들은 자신의 죄를 속죄하려고 먼저 제사를 드리고, 다시 백성들의 죄를 가지고 매년 지성소에 들어가야 했지만,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직접 나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엡 3:12에 보면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짊어주셨습니다.
15절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리 인간은 죄의 유혹에 잘 넘어갑니다. 그리고 마음은 원이 있지만 육신이 약하여 불쌍한 사람을 동정하지 않습니다. 강한 것 같으면서 참으로 연약합니다. 죄 앞에서 자신 있다고 큰소리칠 사람이 없습니다. 들키지 않은 것뿐이지 죄인들입니다. 서로 점잖은 체면에 말하지 않는 것뿐이지 속으로부터 겉까지 다 죄인입니다.
죄의 문제는 자신 있다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다윗을 예로 든다면 우리의 잘못과 죄악을 회피하고 그 책임을 모면하려는 것 같지만, 천사와 같이 믿다가도 타락할 때는 악마로 변신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어도 얼마나 흔들렸고, 나약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에 거하지 못하고 흉년이 왔다고 애굽으로 내려갔고, 거짓말로 일관하고, 아내의 몸종을 통하여 자식을 낳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다 아시고, 그 모든 연약함을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로 나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십니다.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십니다. 히 2:18에는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받고 있는 모든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물질의 시험, 명예의 시험의 권세의 시험도 이기셨습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고, 모욕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있습니다.
3. 우리 주님은 은혜의 보좌이십니다.
16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주님은 다른 사람의 도움 받는 것을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그에게 있어 은총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에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갈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은혜의 보좌는 우리 주님이 앉아계시는 하나님의 우편입니다. 그 자리는 왕의 보좌입니다. 은혜의 보좌는 시은소이며, 속죄소입니다. 은혜의 근원이 되는 곳을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이 때때로 도우시는 중에 살아가야 합니다. 은혜에 보좌에 나아가는 것은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의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축복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민수기 6:22-27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서 은혜가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은혜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상급 사상, 공로사상이 율법주의입니다. 오직 은혜만이 감격이지, 자격이 있다거나 자신이 있다고 하면 그 순간 은혜는 사라지고 공로사상, 상급주의만 남게 됩니다. 공로사상이나 상급사상은 성경에서 멀리 버려야 하는 신앙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무엇을 봉사하시고 헌신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도 모두다 은혜입니다. 봉사한 것 잊어버리세요. 무엇을 드리신 것도 잊어야 합니다. 은혜 안에 거하면 죄의 문제도, 회개의 문제도 사죄의 문제도 다 해결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연약하여 죄를 지은 것도, 그것이 주님 앞에 엄청난 잘못이라는 죄를 깨닫는 것도, 우리의 추한 죄를 용서해주시는 것도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 속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연약하기에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대언의 기도를 드리시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주님 안에 들어가야 해결됩니다. 우리 안에 주님을 모셔야 해결됩니다.
우리 주님은 당신의 몸을 한번 드림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드리신 제사는 “한영원한 제사”입니다. 그 말은 한번 드림으로 영원한 속죄가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히 10:12에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늘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 큰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짊어지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의 보좌가 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만왕의 왕으로, 하나님 앞에 대언의 기도를 드리시고 우리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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