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백여 년 전에 실재하였던 의주 상인 임상옥(林尙沃)'. 우리나라가 낳은 최대의 무역왕이자 거상이었던 임상옥의 발견은 우리나라에도 상업에 도(道)를 이룬 성인(聖人)이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였으며,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기업인들에게도 자랑할 만한 사표(師表)로서 임상옥을 부각시키는 것이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임상옥은 죽기 직전 자신의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였고,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이란 유언을 남긴 최고의 거상이었다.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라는 그의 유언은, 평등하여 물과 같은 재물을 독점하려는 어리석은 재산가는 반드시 그 재물에 의해서 비극을 맞을 것이며, 저울과 같이 바르고 정직하지 못한 재산가는 언젠가는 반드시 그 재물에 의해서 파멸을 맞을 것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임상옥에게 석숭 스님이 내려주었던 죽을 사(死)’와 솥정(鼎)’과 계영배(戒盈杯)' 의 세 활구(活句)야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반드시 간직해야 할 화두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1.천하제일상
“장사란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윤이며, 따라서 신용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인 것이다."商人(주인)'
'장사는 곧 사람이며 사람이 곧 장사' 라는 상도에 있어서의 제1조는 임상옥이 평생을 통해 지치나간 금과옥조였다.
"그럼 무엇에 미치셨습니까."
내가 묻자 김 회장은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내가 미친 것은 바퀴(輪야. 나는 어릴 때부터 바퀴가 좋았어. 바퀴는 그 어떤 무거운 물건도 쉽게 운반시켜 주지. 바퀴는 사물을 이동시켜 줄 뿐 아니라 빨리 굴리면 속도가 나거든, 바퀴는 또 둥글고 모난 데가 없어. 난 그래서 바퀴가 좋아. 그래서 말인데, 사람들이 나를 차에 미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알맞은 별명일 수가 없거든."
"그럼 남들이 뭐라고 부르면 좋겠습니까."
내 질문에 그는 싱긋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바퀴벌레"
2.서곡
중국인들은 이 소수민족 중에서 티베트인들과 위구르인들 그리고 조선족 이렇게 세 민족을 가장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 세 민족이 가장 자주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독립에 대한 욕망이 가장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바퀴벌레" 바퀴벌레 김기섭, 당신은 평생 재물을 모았지만 지갑 속에는 단돈 이십원이 들어 있을 뿐이었소."
3.비밀의 열쇠
글은 예가 아니라 도인 것이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도둑놈은 도척(盜)이었다.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에도 도척을 대도(大盜)로 기록하고 있으며 그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도척은 모질고 사나웠지만 그의 부하들은 도척의 신의를 한없이 칭찬하였다. 이런 판단으로 보면 혁대의 갈고리단추를 훔친 자는 처형이 되고 나라를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는 말이 사실이 되어버린다.' 그렇지 않으냐, 남의 돈 천원을 빼앗은 자는 강도가 되어 처벌을 받지만 군사를 일으켜 탱크로 정권을 훔친 도둑들은 대통령이 되고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어버리지 않느냐."
“장자(莊子)는 한갓 대도에 불과한 도척을 성인(聖人)이라 일러 표현하였다. 한 도둑놈 졸개가 도척에게 물었다. '도둑에게도 도가 있습니까. 그러자 도척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물론 도둑에게도 도가 있다.'졸개 도둑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어찌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놈에게 도가 있습니까. 그러자 도척은 대답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도가 있는데 하물며 도에도 도(道)가 있을 수 없겠느냐. 이 말을 들은 졸개 도둑은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하면 도둑의 도에 이르겠습니까. 그러자 도척은 말했다. ‘그냥 도둑이 되고 싶다면 그냥 남의 물건을 훔치면 된다. 그러나 네가 정말 큰 도둑이 되고 싶다면 반드시 지켜야 할 다섯 가지의 도가 있다. 이것을 지키지 못하면 절대로 대도를 이루지는 못할 것이다.' 졸개 도둑이 비로소 도척에게 무릎을 꿇고 간청하였다. '스승님, 저에게 도둑으로서의 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도척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도척은 도둑의 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집안에 간직한 재물을 밖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을 성(聖)이라고 한다. 이것이 도둑이 지켜야 할 제1의 도다. 그 다음엔 선두에 서서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용(勇)이라고 한다. 이것이 도둑이 지켜야 할 제2의 도다. 그 다음엔 맨 나중에 나오는 것이 의(義)라고 한다. 이것이 도둑이 지켜야 할 제3의 도인 것이다. 그 다음 도둑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것을 지(知)라고 한다. 이것이 도둑이 지켜야 할 제4의 도인 것이다. 가장 마지막에는 훔쳐온 물건을 덜 갖고 치우침 없이 공평하게 나누는 것을 인(仁)이라고 한다. 이것이 도둑이 지켜야 할 제5의 도인 것이다. 이 다섯 가지의 도를 터득하지 못하면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큰 도둑은 절대로 되지 못할 것이다.”
“성(聖), 용(勇), 의(義), 지(知), 인(仁). 이 다섯 가지의 도를 터득하지 못하면 절대로 큰 도둑이 되지 못한다고 도척은 말하였다. 이것이 '도둑의 도' 란 것이다. 이름하여 '도도(盜道)' 라고 부른다."
그 어른의 이름은 임상옥이다. 본관은 전주이고, 자는 경약이며, 호는 가포라고 하였다. 조선후기 대략 1800년대 중반 사람으로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난 대표적인 의주상인이다.
4. 운명의 밤
당시 조선의 상권은 세 곳의 국경지대에서 좌우되었다. 대마도의 일본 장삿배를 상대하였던 동래의 왜관, 여진족의 담비가죽을 사들이던 회령·경원지방, 그리고 청나라와의 사이에 밀 무역시장으로 유명했던 책문후시(楊門後市)였다.
개시(市)가 국가에서 공인하는 공무역이라면 후시(市)는 상인끼리 주고받는 일종의 밀무역이었다.
중국을 상대로 무역을 하는 상인을 일컬어 만상(灣)이라 하였는데 이는 의주의 원 이름이 용만(灣)으로 고려시대 때까지는 용만현으로 불렸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정화의 인삼'이란 말이 생겨난 것이다. 이 정화의 인삼이란 말은 사행길을 따라 인삼 장사를 하는 만상들에게는 상도의 제1조와 다름없었다. 즉, 가짜의 물건으로 남을 속이면 그처럼 벌을 받아 언젠가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는 뜻이다. 상업을 할 때 절대로 남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의주 상인의 철칙이었다. 저울을 속이거나 남의 돈을 떼먹으면 안 된다는 뜻이며, 또한 정화처럼 단번에 큰돈을 벌려는 욕심은 큰 화를 불러일으킨다는 경책(警責)의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장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사이다. 인사야말로 최고의 예(禮)인 것이다. 공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군자는 먼저 신임을 얻은 후에 사람을 부린다. 만약 신임을 얻기 전에 사람을 부리려 하면 사람들은 자기들을 속이려 한다고 생각한다( 後勞其民未信則以 爲厲己也).’ 장사도 이와 같다. 신임을 얻는 것이 그 첫 번째 비결이다. 신임을 얻지 못하면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신임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사로써 예를 갖추어야 한다."
임상옥은 부지런하고 깨끗하게 정돈하는 것을 습성으로 갖고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임상옥은 다음과 같이 표현되고 있다.
'임상옥은 집물(物) 관리가 정밀하여 항상 치부책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임상옥은 녹심첩(帖)도 잘 정리하고 있었는데 이는 자신의 상점을 드나드는 단골손님들의 명부였다. 이 책 속에는 단골손님의 가계가 족보처럼 적혀 있고 외가, 처가의 가게까지 적혀 있었는데, 임상옥은 이들의 경조사를 절대 잊는 법이 없었다.
"장사에 있어서 그 첫 번째는 신용이다."
의주 상인들의 상거래에 있어 제1조인 신용거래를 위해서는 이처럼 단골손님들의 명단 관리가 필수적이었다.
임상옥의 집물 관리는 너무나 정연하여 그는 무슨 물건이든지 쓰고 난 뒤에는 반드시 제자리에 도로 갖다 두었으며 그의 집에서는 비 한 자루, 신발 한 켤레까지도 항상 일정한 자리에다 두고 쓰는 버릇을 길러서 '그것 어디 갔느냐'고 찾는 일이나 허둥대는 일이 없었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산해관 문루 현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씌어 있었다.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
천하제일상(天下第一商). 너는 반드시 하늘 아래 제일의 관문'이라는 저 현판처럼 '하늘 아래 제일의 상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의 원칙이 있었다. 여인의 몸을 돈을 주고 산다는 것은 더러운 일이다. 여인의 몸을 사랑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모르지만 여인의 몸을 상품처럼 사고판다는 것은 법도에 어긋난 일이다. 분명히 말해서 인신(人身)은 물건이 아니며 상품이 아닌 것이다. 여인을 한갓 돈으로 사고, 돈으로 파는 행위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범죄며 이 때문에 인신매매의 죄를 저지른 인간은 훗날 노예의 신분으로 태어나는 죄값을 받게 될 것이다.
장사는 이문(文)을 남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큰 장사는 결국 사람을 남기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철학이었다.
이는 《논어》에 나오는 구절인데 이인(里仁)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사람이 이익대로 한다면 원망이 많다(放於利而行 多怨). 이익이란 결국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이니 필히 상대방에게 손해를 주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 이익을 좇으면 원망을 부르기 쉬우니 결국 ‘의를 따라야 한다. 따라서 군자가 밝히는 것은 의로운 일이요, 소인이 밝히는 것은 이익인 것이다.
"장사란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윤이며, 따라서 신용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인 것이다.”
자신은 신용은커녕 최소한의 이익조차 남기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마친 객상이었지만 그가 남긴 교훈은 임상옥의 인생에 있어 귀중한 법도가 된 것이다.
‘商卽人(상즉인).'
'장사는 곧 사람이며 사람이 곧 장사'라는 상도에 있어서의 제1조는 임상옥이 평생을 통해 지켜나간 금과옥조였다.
임상옥이 장미령의 몸을 사서 그녀를 자유의 몸으로 살려준 것도 '이(利)를 남기기보다 의(義)를 좇으려는 그의 상도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문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종잣돈뿐 아니라 공금을 횡령해서까지 가진 돈을 모두 털어 한 여인의 생명을 구해내었다. 구해내요 그는 옳은 일(義)을 위해 자신의 이익(利)을 버린 것이다.
결국 어떤 형태의 '옳은 일'은 크건 작건 그냥 사라지는 법이 없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그와는 반대로 어떤 형태든 '옳지 않은 일'은 크건 작건 그냥 사라지는 법이 없이 반드시 나쁜 열매를 맺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진리다!
당시 의주 상인들은 삼계(三戒)라 하여 '친절', ‘신용', ‘의리’를 상도의 계율로 굳게 지켜나가고 있었다. 만약에 고용살이하는 점원이 이 세 가지의 계율을 한 가지라도 깨트리면 즉시 상주는 전상계에 이를 통문하여 그 점원은 다시는 발을 못 붙이게 하는 불문율이 있었다.
'친절''신용', '의리'. 이 세 가지의 계율은 의주 상인들의 불,율이었다. 그중에서 점원이 상주의 돈을 떼어먹거나 저울을 속이거나, 가짜의 물건으로 남을 속이는 행위를 저질렀을 경우에는 그 즉시 상점에서 추방되고 다시는 상계에 발을 못 붙이는 파문선고를 당하게 되어 있었다.
"내가 하는 말을 명심토록 하여라. 너는 네 손으로 꽃을 꺾어 꽃의 생명을 꺾지는 않았으니 분명히 자비심을 갖고 있다. 장사란 것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돈을 벌기 위해서 남을 짓밟거나, 이(利)를 추구하기 위해 남의 생명을 끊어버리는 무자비한 일을 해서는 아니된다. 너는 남을 불쌍히 여기는 자비심을 갖고 있으니 반드시 장사로 큰 성공을 거둘 것이다. 또한 너는 방안에 있던 꽃을 들어 내게로 가져왔다. 너는 꽃을 가져오기 위해 먼 곳을 돌아 헤매지 않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꽃을 발견하는 눈을 가졌다. 무릇 재화(財貨)란 멀리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것이며, 성공 또한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곁에 있는 것이다. 너는 가장 가까운 곳에 복(福)과 재화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정의 화합이 모든 일을 이룬다(家和萬事成)'는 옛말을 실천하고 있으니 이 또한 복이 있을 징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너는 방안에서 꽃을 구하였으니 평생 주색잡기와 같은 허망한 일로 세월을 허송하지는 않을 것이다."
임상옥이 차를 마신 후 잔을 내려놓자 석숭은 다시 가득 차츰 따라주면서 말을 이었다.
"또한 너는 구한 꽃을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아두었다. 너는 모든 물건이나 사람이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분수를 알고 있으니 반드시 복이 있을 것이다. 너는 모든 천하만물이 반드시 제 있어야 합자리에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있다. 장사도 이와 같다. 장사란 사람이 하는 것인데 모든 사람에게도 대소귀천(大小貴賤)이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큰 사람도 작은 사람도 없고, 날 때부터 귀한 사람도 천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사람을 부릴 때 있어 차별하지 말고, 사람을 대할 때 있어 크고 작음을 논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네가 선택한 꽃은 배롱나무의 꽃이었다. 배롱나무꽃은 가장 오래 피는 꽃이 아니더냐, 배롱꽃은 죽은 꽃잎에서 계속 새순이 나와서 가을이 될 때까지 한 번도 꽃이 지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너의 재물은 계속 늘어만 가고 너의 상업은 계속 번창하여 나갈 것이다."
"너는 반드시 살아감에 있어 세 번의 큰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그 큰 위기가 있을 때마다 너는 이를 잘 극복해 나갈 것이지만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하루아침에 멸문지화를 당하게 될 것이다."
이 죽을 사 자가 너를 반드시 첫 번째 위기에서 살려줄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위기는 다르다. 그 어떤 묘책도 그 어떤 방법도 너를 살리지는 못할 것이다."
임상옥은 온몸을 떨었다.
"만약에 네가 그 위기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너는 반드시 능지처참을 당할 것이다. 문제는 네가 첫 번째 위기는 위기임을 알겠으나 두 번째 위기는 위기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데에 있다. 위기를 위기로서 직감할 때는 헤어날 방법이 반드시 있는 법이다. 그러나 위기를 위기로서 인식하지 못할 때에는 자신도 모르게 멸문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심하여라.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릴 때 그때가 가장 위험한 고비가 아닐까 생각하여라."
“위험한 고비임을 깨달았을 때엔 어떻게 하여야 제가 살아나겠습니까."
임상옥이 묻자 석숭은 물끄러미 임상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 빙그레 웃었다. 그는 임상옥이 볼 수 없도록 몸을 돌려앉았다. 그는 다시 붓에 먹을 묻혀 종이 위에 무엇인가를 써내렸다.
석숭은 먹물이 마르기를 기다려 그 종이를 겹겹이 접었다. 석숭은 다시 임상옥 쪽을 향해 돌아앉은 후 이렇게 말하였다.
“네가 살아날 방법이 이 종이에 씌어 있다. 그러나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함부로 이 종이를 펼쳐보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너는 천기(天機)를 누설하여 반드시 하늘로부터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반드시 네가 최대의 위기에 봉착하였음을 깨달았을 때에만 이 종이를 펼쳐보아야 한다. 네가 살아날 수 있는 묘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 말을 알아듣겠느냐.'
"나머지 위기가 다시 한번 남아 있다."
그 위기는 어떻게 벗어나야 합니까."
임상옥이 문자 석숭은 말없이 임상옥이 마시던 잔을 집어들었다. 잔은 비어 있었다. 석숭은 그 잔을 임상옥에게 내밀어 말하였다. 가져라.
이 잔은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
어떻게 하면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만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아니하고 대신 마시던 잔을 선물하는 큰스님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잔을 잘 갖고 있도록 하여라. 이 잔이 너의 마지막 위기를 잘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잔이 너를 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전무후무한 거부로 만들어 줄 것이다.
첫 글자는 계(戒)자였다.
그러나 두 번째 글자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시선을 집중해서 바라보자 마침내 두 번째 글자를 판독할 수 있었다. 그것은 영(鼎)자였다. 세 번째와 네 번째 글자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기자와 원(願) 자였다. 이를 합쳐서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계영기원(祈願)'
그러나 술잔에는 연이어서 또 다른 네 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여이동사(同死)'
그 여덟 자의 글자를 모두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戒盈祈願 與爾同死’
이 말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그 문장의 뜻을 직역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가득 채워 마시지 말기를 바라며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
조선 상인들이 신용을 상도의 제1조로 치고 있었다면 중국 상인들의 고도 그 제1조는 신중함인 것이다.
남에게 은혜를 베풀어주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타인으로부터 받은 은덕을 절대로 잊지 않는 알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미령은 의로운 사람, 즉 의인이었던 것이다.
하늘과 땅이 비롯된 것은 바로 오늘이다' 라고 하지 않았느냐."
송씨부인의 말은 장미령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가 말한 '하늘과 땅이 비롯된 것은 바로 오늘이다(天地始今日是也)'란 말은 성악설(性惡說)로 유명한 순자(荀子)의 대표적인 사상이었다. 즉 하늘이나 땅과 같은 관념적인 사상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보다 실념적(實念的)인 현실에 충실하라는 금언이었던 것이다.
불교에 있어 남에게 은덕을 베푸는 일을 보시(布)라 한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남에게 베푼 선행을 기억하고 항상 이를 자랑한다. 때문에 은덕을 베풀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한 인간은 그 베푼 사람에 대해 무엇인가를 기대하게 되며 또한 섭섭해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햇빛은 인간에게 베푼다는 생각 없이 내리쬐어 곡식을 익히고 과일을 맺게 한다. 비는 인간에게 베푼다는 생각 없이 마른 대지를 적시어 강을 이루고 바다를 완성한다. 이 세상 만물 중에 오직 인간만이 남을 위해 은혜를 베풀었다는 생색을 낸다!
남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는 생각조차 없이 하는 베풂, 이를 불교에서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한다. 문자 그대로 머무름이 없는 보시인 것이다.
그러나 이 머무르지 않는 보시(布)는 임상옥에게 간과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쌓게 하였다.
천우신조(天佑神助).
하늘과 신령의 도움을 받는다는 천우신조는 바로 이 머무름이 없는 자비에서 비롯된 것이다. 임상옥은 바로 장미령을 통해서 하늘과 신령의 도움, 즉 천우신조를 받게 되었다.
무릇 모든 사람들은 인정을 받으려 하고, 존경을 받으려 하고, 발자취를 남기려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 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욕망은 그의 공덕을 일시적이거나 한시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임상옥이 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돈을 벌었으나 돈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명예를 얻었으나 명예를 누리지는 않았고, 풍류를 즐겼으나 쾌락에 탐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생을 크게 소유하였지만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여 본 적은 없었다. 그는 상업을 통해 도인의 길을 걸었던 수도자였다.
'부자는 인간 스스로가 만들지만 거상은 하늘이 낸다'는 말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공자천주라 하면 문자 그대로 '공자가 구슬을 꿰다' 라는 뜻이지만 그 뜻의 교훈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한 명은 반드시 나의 스승이다(三人行 必有我師).
"무릇 장사에는 반드시 권세의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작은 감사에는 작은 권력이 필요하지만 큰 장사에는 큰 권력의 힘이 필요합니다. 장사란 무릇 이익을 추구하는 일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이익을 추구하는 장사와 힘을 추구하는 권력이 합쳐지면 거기에서 이권이 생겨나는 법입니다. 지나치게 권세에 의지하면 그로 인해 멸망하게 되지만 또한 권세를 지나치게 멀리하면 그로 인해 흉하지도 못합니다. 따라서 장사와 권세의 관계는 입술과 치아와의 관계도 같습니다. 입술과 치아는 함께 있지만 서로 떨어져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입니다."
대감어른 댁에 하루에 수천 명이나 손님들이 온다 하여도 결국에는 이로운 사람과 해로운 사람 단 두 사람뿐이나이다."
이로운 사람으로는 세 유형이 있으니 그 첫 번째는 정직한 사람이오, 그 두 번째는 성실한 사람이오. 그 세 번째는 박학다문(博學多패)한 사람이나이다."
"그러하면 "
박종경이 수염을 한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물어 말하였다.
"내게 해로운 사람은 도대체 어떠한 사람들인가."
“해로운 사람으로도 세 유형이 있으니 그 하나는 아첨하여 정직하지 못한 자요, 그 둘째는 신용이 없이 간사한 자요, 진실한 견문없이 감언이설(甘言利說)하는 자가 그 셋째이나이다."
임상옥이 대답하여 말한 내용은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금언 중의 하나이다.
<공자는 《논어》의 '계씨(季氏)' 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세 명의 이로운 벗과 세 명의 해로운 벗이 있다. 정직하고 성실하며 박학다문한 벗이면 이로운 벗이며, 아첨하여 정직하지 못한 자와 신용 없이 간사한 자와 진실한 견문 없이 말을 잘 둘러대는 자는 해로운 벗이다. '
군자는 의(義)를 따르지만 소인은 이(利)를 따른다는 임상옥의 말을 들은 박종경이 소리를 높여 말을 이었다.
"그러하면 자네가 말하는 '의'와 '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신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므로 불의가 있을 수 없지만 이익은 내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므로 불의와 원한이 생길 수밖에 없나이다."
소인이 천 냥을 쓰면 대감어른으로부터 천 냥만큼의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오천 낭을 쓰면 오천 냥만큼의 관심을, 만 냥을 쓰면 만 낭만큼의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소인이 그 어떤 액수를 적어넣는다고 하여도 그 액수만큼의 마음을 얻을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나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소인이 생각하였던 것이 백지어음이었나이다.”
"그러하면."
박종경이 물어 말하였다.
"자네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소인이 대감어른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것은 관심(關心)도, 점심(點心)도 아닌 마음(心) 그 자체이나이다. 대감어른, 사람에게 있어 호기심이나 관심은 돈으로 살 수 있사오나 마음은 이 하늘 아래 그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나이다."
"그렇다면."
박종경이 백지어음을 임상옥에게 내던지며 말하였다.
"자네가 어음의 백지 위에 쓰고 싶은 것을 써보시게."
임상옥은 망설임 없이 붓을 세워들었다. 그는 단숨에 어음의 빈 백지 위에 무엇인가를 써내렸다. 글씨가 마르기를 기다려 임상옥은그 종이를 박종경에게 두 손으로 받쳐올렸다. 박종경은 임상옥이 쓴 어음의 내용을 쳐다보았다.
'赤心(심)'
적심이라면 조금도 거짓이 없는 참되고 충성스러운 마음을 가리키는 말로 다른 말로는 단심(丹心)이라고 부른다.
중국 상인들에게 있어 자존심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들에게 있어 이익은 최고의 선인 것이다. 일찍이 임어당(堂)은 중국인의 성격 중 나쁘면서도 뚜렷한 세 가지 특징을 '참을성', '무관심',그리고 '노회함'으로 구분하여 설명한 일이 있었다.
중국의 상인들은 노회의 극치였었다. 이들은 '큰 일은 작은 일로 환원할 수 있고 작은 일은 없던 것으로 환원할 수 있다' 는 상인들의 처세술을 철저히 신봉하고 있었다. 따라서 어제까지의 자존심 싸움과 같은 큰 일〔大事)은 이익을 위해 작은 일(小事)로 바꿔 생각할 수 있으며 오늘의 굴욕이나 수치 같은 작은 일(小事)은 아예 없는 일(無事)로 생각할 수 있을 만큼 후안무치(厚顔無恥) 하였던 것이다.
장사꾼끼리는 원래 돈을 빌리고 꿔주는 일은 있어도 사람을 추천하거나 보증해주는 일은 금기시되고 있었다. 왜냐하면 돈은 돈으로 그치지만 사람은 결국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결과를 초래하여 상대방을 원수가 되게 하는 원인이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세왕이 되어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은 천명(天命)을 얻어야 한다. 제왕은 하늘의 명령을 받은 지도자로서 하늘을 대행하여 하늘의 뜻으로 인민을 다스린다. 그러므로 제왕을 '하늘의 아들', 즉 천자라고 부른다. 천명을 받은 제왕이 하늘의 뜻에 어긋나는 정치를 하면천명을 잃게 된다. 즉, 하늘이 제왕을 파멸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무 엇으로 하늘의 천명을 잃은 것을 아는가.
그것은 민심이다. 제왕이 민심을 잃으면 천명을 잃은 것이다. 심이 곧 하늘의 마음, 즉 천심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의 욕망이 있다. 그 하나는 명예욕이요, 다른 하나는 지위욕, 즉 권력에 따른 욕망이며, 나머지 하나는 재물욕이라 하였습니다. 이 세 가지 욕망을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삼욕(三欲)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찍이 노자, 장자와 더불어 도가삼서로 널리 읽혀온 열자(列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번쇠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네 가지의 욕망 때문이다. 첫째는 수명, 둘째는 명예, 셋째는 지위, 넷째는 재물이다. 이 네 가지 것에 얽매인 사람은 귀신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며, 위세를 두려워하고 형벌을 두려워하게 된다. 이런 사람을 두고 자연의 이치로부터 도망치려는 둔인(人)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죽여도 좋고 살려도 좋다. 목숨을 제재하는 것은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순(順)이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순민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운명을 거스르지 않거늘 어찌 수(壽)를 부러워하겠는가. 귀함을 뽐내지 않거늘 어찌 명예를 부러워하겠는가. 권세를 추구하지 않거늘 어찌 지위를 부러워하겠는가. 부를 탐하지 않거늘 어찌 재물을 부러워하겠는가."
김정희는 말을 이었다.
이처럼 이처럼 자고로 중국의 도가(道家)에서는 인간의 욕망을 명예, 지위, 재물 이렇게 삼욕으로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마치 솥의 세 발과 같은 것입니다.
"이는 노자도 마찬가지였나이다. 노자도 《도덕경》에서 이렇게 말하였나이다. 누구나 똑똑한 자가 되고 싶고 명성을 누리기 원한다. 또 누구나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고 권세를 누리기 원한다. 또
한 누구나 금은보화를 얻고 싶고 부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지위와 명예는 끝없는 경쟁심을 일으키고, 재물은 끝없는 욕심을 불러일으킨다. 끝없는 경쟁심과 끝없는 욕심은 백성들로 하여금 한도 끝도 없는 거짓을 야기시켜 결국 사회를 혼란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무지와 무욕 그리고 무위야말로 백성을 다스리는 최고의 덕인 것이다.'솥의 세 발처럼 지위, 명예, 재물이 인간이면 누구나 가진 세 가지 욕망이라면 무지, 무욕, 무위야말로 성인이 가져야 할 세 가지의 덕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나이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전체적인 문장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戒盈祈願 與爾同死(계영기원 여동사)'
그 뜻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가득 채워 마시지 말기를 바라며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 이 뜻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음인가 가득 채워 마시지 말라(戒盈祈願)’는 뜻은 쉽게 알 수 있다. 문자 그대로 이 잔에 술이건, 차건, 무엇이건 가득 채워서 마시지는 말라는 뜻이다.
"대인어른께 =오서는 어째서 짚신을 삼은 사람에게는 백 냥을 주시고, 종이 연을 만든 사람에게는 2백 냥을 주셨습니까."
"짚신을 만든 사람은 꼼꼼해서 절대로 낭패를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사는 한 푼으로 한 푼을 버는 행위는 아닙니다. 그것은 씨앗을 뿌려 씨앗을 거두는 농사꾼이나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굶어 죽지는 않겠지만 절대로 부자는 되지 못할 것입니다. 예로부터 부지런한 사람은 굶어죽지는 않지만 큰 부자는 되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백 낭만 빌려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종이 연을 팔아 한 냥을 남긴 사람에게는 2백 냥을 빌려주셨습니까."
"종이 연을 만들어 판 사람은 짚신을 삼아 판 사람보다 머리가 좋습니다. 그는 마침 섣달 대목이라 아이들이 종이연을 갖고 논다는 시기를 적절하게 이용하였습니다. 그는 시기를 살필 줄 아는 눈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장사는 한 치 앞의 때를 살피다가는 낭패를 보기 마련입니다. 때를 살피는 장사꾼은 한때 성공할지 모르나 언젠가는 그 때를 타서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를 살피는 장사꾼은 부자가 될 수도 있지만 하루아침에 쫄딱 망할 수도 있습니다.
“흔히 장사는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저울을 속이고, 물건값을 속여서라도 이문을 남기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쉽소이다.
상업에 있어 천도는 범중엄의 말처럼 '남을 속이지 않음'에 있는 것이오. 남을 속여서 일시로는 이익을 남겨 재미를 볼 수는 있을 것이오. 그러나 남을 속이면 절대로 큰 상업을 이룰 수 없는 것이오. 왜냐하면 남을 속여서는 절대로 신용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오, 신용이야말로 장사에 있어 최대의 자본이요, 재물인 것입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여인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하고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하였던가.
'본시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으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오는 것도 아니며 가는 것도 아닌 것을 네가 괴로워하는 것은 진흙덩어리에 불과한 네가 소유하려 하기 때문인 것이다. 가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욕망이 진흙덩어리에 불과한 너의 실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고통과 괴로움은 너의 욕망 때문이며 너의 애욕 때문인 것이다. 보아라, 너야말로 저와 같이 진흙에 불과하지 않느냐. 진흙덩어리에 불과한 네가 도대체 무엇을 그토록 고통스러워하고 있음이냐. 그 고통은 바로 너의 욕망 때문이 아닐 것이냐.'
그러므로 천하의 명기는 그 그릇의 모양새나 빛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명기가 담는 내용에 따라 좌우된다.
우명옥은 고통을 통해 인생이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며, 나고 죽는 것도 아니며, 오고 가는 것도 아닌 것을 깨달았다. 본시 그러한 인생이 고통스러운 것은 그것을 소유하려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임을 각성하였다. 우명옥은 이제 아름다운 형태나 빛깔을 가진 그릇이 아니라 인간이 지닌 헛된 욕망의 유한성을 경계하는 그 경계하는 그릇, 즉 '늘 곁에 두고 보는 그릇'을 만드는 것이 최종목표였다. 늘 곁에 두고 보는 그릇, 이를 유좌지기 (坐之器)라고 부른다. 유좌지기란 마음을 적당히 가지라는 뜻을 새기기 위해 늘 곁에 두고
교훈을 삼는 그릇을 말함인데 이 그릇에 대해서 말한 사람은 공자였다.
유자지기는 속이 비면 기울어지고,적당하게 물이 차면 바로 서 있고, 기득차면 엎질러진다고 하지요.
인간의 욕망, 그 끝간 데를 모르는 한계를 깨우쳐줄 수 있는 그룻, 단지 그 안에 무엇을 담아 먹고 마시는 그릇이 아니라 인간의 야망을 꾸짖고 경책(責)하는, 곁에 두고 보는 그릇, 그 유좌지기, 만들고 싶은 것이 우명옥의 최종목표였다.
우명옥은 자신이 만든 그릇의 이름을 미리 결정해 두고 있었다. 그 그릇의 이름은 '가득 채움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의미를 가진 계영배였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말하였다.
'적당히 채워라. 어떤 그릇에 물을 채우려 할 때 지나치게 채우고자 하면 곧 넘치고 말 것이다. 또한 칼은 쓸 수 있을 만큼 날카로우면 되는 것이지 예리하게 갈고자 하면 날은 지나치게 서서 쉽게 부러지고 만다. 금은보화를 지나치게 가진 자는 남의 시기를 사게 되며, 또한 부귀해져서 지나치게 교만해지면 상황이 어지러워져서 결국 모두를 탕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적당히 성공한 후에는 그곳에 영원히 머물러 있으려고 노력해서는 아니되며 적당히 때를 보아서 물러감이 바로 하늘의 도리인 것이다. 하늘은 만물을 낳되 소유하지 않으며, 또한 무리하지도 않고 공을 이루어도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도, 즉 자연의 도리인 것이다. 노자가 말하였던 '모든 불행은 스스로 만족함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는 천도를 깨우쳤으며, '어떤 그릇에 물을 채우려할 때 지나치게 채우고자 하면 곧 넘치게 되고 만다(持而之 不知己)'의 문장에서 '가득 채움을 경계하는 잔', 즉 계영배의 이름을결정할 수 있었다.
인간에게는 깨닫기만 하면 곧 없어지는 번뇌인 여든 여덟 가지의 견혹(見惑)과 깨달아도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 열 가지의 번뇌인 수혹(修惑)이 있다. 여기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인 탐심(貪心)과 화를 내는 진심(眞心)과 어리석음의 치심(心) 등 근본번뇌인 열 가지를 모두 합쳐서 백팔 가지의 번뇌가 있는 것이다.
임상옥은 그 새벽 종소리를 들으며 ‘현지는 모든 것에서 배우는 사람이며, 강자는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며, 부자는 자기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석숭 스님이 '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전무후무한 거부'가 되리라고 예언하였던 것은 임상옥이 앞으로 그러한 거부가 되리라고 예견한 것이 아니라, 욕망의 유한함을 깨닫고, 그 욕망의 절제를 통해 스스로 만족하는 자족이야말로 하늘 아래 최고의 거부로 나아가는 상도(商道)임을 예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사한 첫날 밤에는 팥죽을 끓여서 집안 곳곳에 뿌리기도 하고 가족들끼리 나눠 먹곤 하였다. 이는 귀신이 붉은색을 무서워하므로 붉은 팥의 주력을 이용하여 새 집에 붙어 있는, 모르는 악귀를 몰아내고자 하였다.
부인 홍남순이 놀라서 임상옥에게 쫓아와서 물어 말하였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려는 겁니까. 애써 지은 집을 살지도 아니하고 부숴버리시다니요."
평생을 통해 임상옥의 말에 순종하고 따랐던 정처(妻) 홍남순의 질문에 임상옥은 빙그레 웃으며 다만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내가 집을 부숴버리려는 것은 보다 큰 집을 지으려 함이네." 홍남순은 다시 물었다.
"도대체 언제 어디에 그 큰 집을 다시 지으려 하심입니까."
임상옥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제는 그 큰 집을 밖이 아니라 안에서 지으려 함이네."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한 홍남순이 다시 물었다.
"그 안이 어디이시나이까."
임상옥은 아내의 질문에 대답하지 아니하고 다만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고만 전해오고 있다. 임상옥의 그 수수께끼와 같은 대답이 실제로 큰 집 지을 곳은 밖이 아니라 가슴속의 마음 임을을 나타내 보인 선문답이었는지 그 깊은 뜻을 헤아릴 길은 없다. )
부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사람이 애욕에 얽매이면 마음이 흐리고 어지러워 도를 볼 수 없다.
"가까이 사귄 사람끼리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연정(戀情)에서 근심이 생기는 것임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애욕은 그 빛이 곱고 감미로우며 즐겁게 한다. 또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산산이 흐뜨려 놓는다. 관능적인 애욕에는 이와 같은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갇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
송이야, 너는 이제 내 마음에서 떠났음이니라. 한 번 흘러간 물은 거꾸로 흘러갈 수 없고 한 번 흘러간 마음은 돌이킬 수가 없는 것이니라."
"나는 평생 동안 이 물건을 주우며 살아왔소. 이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고 이 물건을 모으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왔소. 그런데 이제와서 돌아보니 이것은 다만 하나의 물건, 즉 아도물임을 깨달았던 것이오. 나는 이것이 나의 것이라 생각해 왔으나 이 물건은 본디 그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물건임을 깨달았소. 마치 흐르는 물이나 푸른 하늘이나 대기처럼 이 물건은 가질 수도, 소유할 수도 없는 하나의 물건임을 나는 깨달았소. 이것은 잠시 내가 맡고 있는 것일 뿐,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물건이오. 이 아도물을 내가 영원토록 소유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집착임을 깨달았던 것이오 옛 중국 전한의 무제 때 큰 세력을 떨쳐 중앙정권에 큰 위협이 되었던 회남왕(淮南王) 유안은 《회남자>란 책을 남겼는데 이 책 속에 이런 말이 나오고 있소."
임상옥은 잠시 붓을 들어 먹을 묻힌 후 종이 위에 다음과 같이 써내렸다.
(逐鹿子不見山(축록자불견산)
擺金子不見人(확금자불견인)
임상옥은 박종일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하고, 금을 움켜쥐려는 자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
임상옥은 껄껄 웃으며 말하였다.
“이 말이야말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오. 나는 평생 동안 사슴을 쫓아다녔으므로 산을 보지 못하였고, 나는 평생 동안 이 아도물을 쫓아다녔으므로 제대로 사람을 본 적이 없소이다. 내가 사람을 본 것은 이 사람이 내게 이로운 사람인가 해로운 사람인가, 이익을 남겨줄 사람인가 손해를 끼칠 사람인가만 따져보았을 뿐 그 사람의 진면목은 보지 못하였던 것이오. 이 모든 것이 이 아도물에서 비롯된 것이오. 나는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장님이 되고 말았소. 이 모든 것도 이 아고물 때문에 비롯된 것이오. 이제 나는 이 사슴을 버림으로써 산을 볼 것이며, 금을 버림으로써 사람을 제대로 보고 싶소. 또한 이 아도물을 버림으로써 하늘과 땅의 모든 천지만물을 똑똑히 보고 싶소이다."
“일찍이 공자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소. '부귀가 가령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채찍을 잡는 마부라도 하겠지만, 억지로 할 수 없는 것이니 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르겠다.'부귀는 사람의 욕망으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하늘의 뜻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오. 다행히 이 늙은이도 비록 '채찍을 잡는 마부' 노릇을 하지 않았으나 하늘의 도우심으로 이만큼이나마 재물을 모으게 되었던 것이오. 이만큼이나마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부지런히 모으고 일한 덕분도 있었지만 전국 제일의 거상이 되자면 천우신조로 하늘과 신령님의 도움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소. 이보시게 박공, 내가 곡식을 심으면 지나가는 소라도 밭고랑에 거름이 될 똥을 한 무더기 누고 갔으면 갔지 곡식을 밟는 일은 한 번도 없었소. 하다못해 호박을 심으면 한 꼭지에 두 개씩 열렸으면 열렸지 물러서 떨어지거나 썩는 법이 없었소. 마찬가지로 사온 물건의 수량이 한두 개가 더 많았으면 많았지 결코 모자란 적이 없을 만큼 이를테면 재수가 좋았던 것이오. 또한 짐승을 먹여도 새끼가 죽는 법이 없었고, 닭을 쳐도 계란 열세 개를 품에 안겼다면 나중에 병아리로 깨어나온 것은 한두 개가 늘어난 열네 마리거나 열다섯 마리가 되도록 어미닭이 알을 더 낳아 보탰으면 보태었지 결코 줄어드는 법은 없었소. 심지어 닭이 거름 무더기에서 벌레를 쪼아먹을 적에도 끌어모으지, 끌어내려 흩은 적이 없었소. 그런데 그날 오후 평생 처음으로 솔개 한 마리가 닭 한 마리를 채어가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던 것이오."
"일찍이 내가 불문에 몸담고 있을 때 들은 이야기가 있소. 한 사람이 길을 가는데 황야에서 호랑이를 만났소. 도망치다 도망치다 결국 절벽까지 도망친 그 사람은 두 손으로 나무덩굴을 붙잡고 간신히 버티며 자신이 절벽에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호랑이,의 입을 쳐다보고 있었소. 그때 흰 쥐와 검은 쥐가 나타나 그 덩굴을 갉더니만 툭 하고 덩굴이 끊어져버리게 되었소. 떨어지는 도중 그는 절벽에 피어난 산딸기 열매를 목격하고는 그것을 따 입에 넣으며 '아아, 맛있다'고 감탄하였다는 이야기요. 우리의 인생도 절벽에서 덩굴을 붙잡고 버티는 사람에 지나지 않소이다. 그 덩굴에서 낮의 흰 쥐와 밤의 검은 쥐는 번갈아 가면서 시간의 날카로운 이빨로 생명줄을 갉아내리고 있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호랑이 아가리에 잡혀먹을 죽음에 이르렀음에도 산딸기를 따먹으면서 아아 맛있다고 감탄하고 있을 뿐인 것이오.”
임상옥은 말을 이었다.
“부처님은 《육방예경(六方禮經)》이란 경전에서 재물을 없애는 여섯 가지 일에 대해서 말씀하셨소. 나는 평생동안 상인으로 살아오면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 여섯 가지의 경계를 항상 마음속으로 새기며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소."
"그것이 무엇이나이까."
박종일이 물어 말하였다. 임상옥은 대답하였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재산을 없애는 여섯 가지 일은 다음과 같소이다. 첫째는 술에 취하는 일' 이요, 둘째는 도박을 하는 일' 이요, 셋째는 방탕하여 여색에 빠지는 일' 이며, 넷째는 풍류에 빠져 악행을 저지르는 일'이며, 다섯 번째는 나쁜 벗과 어울리는 일' 이며, 여섯 번째는 게으름에 빠지는 일' 이오. 이때 제자인 선생(生)이 부처님께 물었소. 어째서 그 여섯 가지의 일들이 재산을 없애는 허물이 될 수 있겠습니까.' 부처께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셨소.”
임상옥은 상인으로서 평생 동안 자신이 지켜왔던 계율을 비로소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술을 마시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허물이 있다. 재산을 소비하게 되고 몸에 병이 생기고 잘 다투고 나쁜 이름이 퍼지며 분노가 폭발하고 지혜가 날로 없어진다. 그러므로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 또한 도박에도 다음과 같은 허물이 있다. 재산이 날로 줄어들고 도박에 이기더라도 원한이 생기며 지혜로운 사람이 타일러도 듣지 않으며 사람들이 그를 멀리하며 도둑질할 마음이 생긴다. 또한 방탕에도 다음과 같은 허물이 있다. 몸을 보존하지 못하고 자손을 보호하지 못하고 항상 놀라고 두려워하게 되며 온갖 괴롭고 나쁜 일이 몸을 얽어매고 허망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쁜 벗과 어울리는 데에도 다음과 같은 허물이 있다. 남을 속일 꾀를 내고 으슥한 곳을 좋아하며 남의 여자를 유혹하고 남의 물건을 훔치며 재물을 독차지하려 하고 남의 허물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재산을 없애는 여섯 가지 일 중에 가장 마지막은 '게으름' 이었소. 게으름에 대해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소이다. '게으름에는 다음과 같은 허물이 있다. 부자면 부자라고 해서, 가난하면 가난하다고 해서 일을 하기를 싫어한다. 추울 때는 춥다고 해서, 더울 때는 덥다고 해서 일을 하기 싫어한다. 시간이 이르면 이르다고 해서, 시간이 늦으면 임상옥은 빈 잔에 술을 따라 단숨에 이를 "평생을 상인으로 지내오는 동안 나는 이 말씀을 항상 마음속에 새기며 계율을 지켜왔소이다. 술을 마시되 지나치지 않으려 노력하였고, 도박에는 손도 대지 않았고, 방탕은 되도록 물리치려 하였으며, 나쁜 벗은 멀리 하려 하였으며, 특히 게으름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해왔소. 그리고 또 한 가지 부처께서 말씀하신 다음과 같은 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왔소. 즉 '그 대신 가까이 해야 할 벗이 있다. 그는 너에게 많은 이익을 주고 많은 벗을 보살펴준다. 잘못을 말리고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며 남을 이롭게 하고 사업을 같이하는 벗이다. 그런 이는 친해야 한다. 내게 있어 그대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사람이었소. 내게 많은 이익을 주고 내 잘못을 말리고 평생동안 나와 함께 사업을 같이해왔던 벗, 그 사람이야말로 박공, 그대인 것이오."
"그러나 박공, 부처께서 말씀하신 그 여섯 가지의 경계도 천도(天道)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오. 술과 도박을 멀리하고 나쁜 벗과 방탕을 멀리하고 아무리 부지런하게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하늘의 뜻은 저버릴 수가 없는 것이오. 내가 평생 모은 재물도 결국 호랑이에게 쫓기면서 절벽에서 떨어지며 따먹은 산딸기 열매에 불과한 것이오. 이제 마침내 호랑이 아가리에 잡아먹힐 때가 된 것이오. 내가 오사필의라고 말한 것은 바로 그런 뜻이었던 것이오."
박종일은 두 손으로 그 종이를 바쳐 올렸다. 김정희는 묵묵히 그 종이를 펼쳐보았다.
그 문장을 읽은 후 김정희는 말하였다.
“이 문장을 쓰신 전후 사정을 말씀하여 보시게나."
"나으리께오서는 한낮에 어미닭이 병아리를 데리고 모이를 쪼고 있는 모습을 보시다가 문득 솔개 한 마리가 발톱으로 그 닭을 채어가는 것을 보신 후 그날 밤 이 문장을 지으셨다 하더이다."
"그런 후 어떠하셨는가."
"다음날 상인들을 불러 모든 부채를 탕감해주셨으며 그 문부를 불에 태우기까지 하셨나이다. 그뿐 아니라 돌아가는 상인들에게 금괴 하나씩을 들려서 돌려보내시기까지 하셨나이다.”
"옳거니."
느닷없이 김정희가 자신의 무릎을 치면서 탄성을 질렀다.
“채마밭에서 채소를 가꾸는 한갓 늙은이가 채마밭에서 금불상하나를 캐내었구나."
임상옥의 호는 가포(稼圃)였다. 가포라 함은 '채마밭에서 채소를 가꾸는 사람'이란 뜻이다. 채마밭에서 채소를가꾸는 늙은이라면 바로 임상옥을 가리키는 비유인 것이다. 그 임상옥이 채마밭에서 금불상 하나를 캐냈다는 표현은 부처상 하나를 캐냄으로써 도(道)를 이루어 부처가 되었음을 나타낸다.
임상옥은 '천하의 권세도 십 년이 가는 것은 없고, 열흘 이상 더뭄 붉은꽃도 없다(權不十年 花無十一紅)’는 진리를 꿰뚫어 보고 있던 철인이었다. 그 어떤 부자도 3대 이상 계속되지 못함을 임상옥은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3대 이상 부(富)를 세습하는 가문은 전무후무한 것이다. 임상옥이 말하였던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같다(財上平如水)' 라는 철학과 일치되는 것이다. 그 어떤 재물, 어떤 재산, 그 어떤 부도 3대 이상 세습되지 못함은 하늘의 도리(天道)인 것이다.
임상옥은 평소 자손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을 '재산은 화(禍)의 문이요 유산은 몸을 베는 칼(財是禍之門 遺產斬身刀)'이라며 경계하였다.
인간의 진정한 욕망은 만족(滿足)이 아니라 자족(自足)임을 임상옥에게 일깨워준 이 작은 술잔.
현대인들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자기 욕망의 분수를 가늠할 수 있는 '계영배' 다. 계영배는 우리나라가 낳은 최고의 무역왕 임상옥을 완성시킨 유좌지기(坐之器)인 것이다.
인간의 욕망인 명예도, 재물도, 권세도 가득 채우려 한다면 깨끗이 없어져버리니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보다 못하다'는 진리를 임상옥에게 깨우쳐준 '한 방망이'였다.
일찍이 태사공(太史公)은 《사기》에서 '못이 깊으면 고기가 그곳에서 생겨나고 산이 깊으면 짐승이 그곳으로 달려가며 사람이 부유하면 인의가 부차적으로 따라 온다'고 말하였다. 이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오직 부유하기 때문에 인의가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의 부보다는 마땅히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인도(人道)가 있어야만 인의(仁義)가 따라오는 것이다. 이를 일컬어 '상업의 길'이라고 부를 만하다(史記 太史公云 淵深而魚生之 山深而獸往之 人富而仁義附焉 此言有理 然非僅富而仁義附焉也 與其曰人富 莫若言循 人道方使仁義附之 蓋可謂商業之道).
가포는 평생 부를 모아 조선팔도에서는 그 누구도 당할 수 없는 거부가 되었다. 그러나 가포는 일찍이 공자가 말하였던 대로 ‘상업이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의(義)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것에 충실하여 평생동안 인의를 중시하던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아 재물보다는 사람을 우선하였다(稼圃平生積富 終富甲朝鮮八道 所謂稼圃經商 如孔子云 非逐利而求義也 故其乃平生重道之君 經識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之利理 故優於人而非優於財).
그는 평생 동안 재물을 모았지만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 황금을 벌었으나 이는 다만 채소를 가꾼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그를 '채소를 가꾸는 노인'이라고 부를 만하다. 고로 그를 상불이라 부르니 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즐겁고 기쁜일이다(雖生涯積財 而不拘一物 竭生平勞作實無爲之人 盡終身普金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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