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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삼 중 기쁨을 아십니까?(요한이서 : 12-13절),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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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어느 도시를 여행하던 사람이 주일이 되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통 경찰에게 교회를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경찰은 멀리 보이는 교회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까운 곳에도 교회가 있을 텐데, 저렇게 있는 교회를 가르쳐 주십니까?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경찰은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근처에 있는 교회들보다도 저쪽 교회에서 예배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훨씬 기쁘고 즐겁게 보였습니다. 나는 불신자이지만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이고 참된 교회인 같아서 소개한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도 은혜받은 얼굴과 은혜받지 못한 얼굴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평안하고 기쁜 환경에서 나오는 감사보다 고통과 환난 가운데서 나오는 감사가 더욱 값진 감사입니다. 설령 우리의 삶에 많은 힘겨운 문제가 있을지라도 은혜받은 백성에게는 영혼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며 우리 영혼을 즐겁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영혼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을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 삼위일체의 기쁨을 아십니까?

좋은 사람을 만나는보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복되고 기쁜 만남을 기대합니다. 삼위일체의 기쁨이 있다는 아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십니다( 3:1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하셨습니다( 15:11).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살전 1::6).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가 사랑, 희락, 화평입니다.

2.성도들간에 기쁨을 아십니까?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당시의 성도들에게 요한이서를 보내면서 이렇게 편지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대면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서로의 관계가 불편할 때에는 전화로 하거나 편지를 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직접 대면하여 서로의 의도를 파악하고 감정을 공유할 때 관계가 좋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도 요한은 편지로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직접 만나서 나누고 싶어하였습니다  당시에 종이는 갈대 종류의 풀로 만든 종이로서 파피루스 한장은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의 붕량을 합친 크기입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성도들을 대면하여 그들이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전화, 팩스, 엽서 편지, 이메일 등에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의 식구들들은 직접 대면할 진정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성도들 상호간에 기쁨을 충만하게 하련는 것을 멸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2 3 하반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줄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성도들이 자신의 방문으로 인하여 기쁨이 충만하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삼중 기쁨입니다. 요한일서 1 3, 4절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나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먼저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통해서 기쁨이 있어야 성도들 간에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기쁨이란 삶의 우선순위가 바로 잡혀 있을 가능합니다. 영어의 기쁨이란 단어는 JOY입니다. 먼저 J입니다.  J JESUS입니다. 다음은 O입니다. O Others,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Y YOU(당신)입니다.


사도
요한은 택하심을 받은 성도들의 문안인사를 대신 전해줌으로써 편지를 끝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도 요한이 머물고 있는 에베소 교회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은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즐겁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상 절망 속에서 슬픔에 젖어 있거나 고통에 머물러 있어서는 됩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지만 부활의 종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부활로 새롭게 십자가의 의미를 찾는 종교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좋은 환경이 오면 기뻐하고 역경이 오면 좌절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죄와 죽음과 세상의 질곡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와 기쁨, 그리고 승리와 감격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더 이상 찡그리지 마십시오. 어깨를 펴고 위를 바라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손해를 보면서도 기뻐하고 당하면서도 즐거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과 사탄의 공격에 말려들지 않고, 그 폭풍과 역경 속에서도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며 감사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렇듯 역경 속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핍박과 역경보다 더 위에 계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죽음보다 강하고 어떤 환경보다도 위대하십니다. 그분에게는 자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핍박받았다면 부끄러워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적극적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머지않아 곧 승리의 면류관이 당신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그대에게」/ 하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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